소주 한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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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 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 존 시드니 매케인 3세 -
김지혁이 전화를 건다.
“태현아. SNS 1차 세팅 언제 될까?”
“내일이면 됩니다.”
“벌써?”
“말 그대로 1차니까요.”
“좋아. 어차피 다듬으면 되니까.”
강태현이 묻는다.
“어디세요?”
“선거 운동 수행.”
“벌써요?”
“미리 연습 삼아. 하하.”
“수고하세요! 형.”
김지혁은 통화를 하고 송선자는 공원에서 명함을 건네며 인사하고 있다. 할머니들 앞에 앉아서 딸처럼 행동한다. 타고 난 스킨십.
후보와 거리를 둔 김지혁은 최한숙에게 전화를 건다.
“사무장이랑 회계책임자는요?”
“구하긴 했는데 해본 적이 없다는데?”
“그래요? 친구인가요?”
“응.”
김지혁은 속으로 생각한다.
어지럽혀진 도화지 보다 새하얀 도화지가 차라리 낫다.
최한숙이 말한다.
“경험이 없어도 괜찮을까?”
“잘 따라와 주면 괜찮을 겁니다.”
김지혁이 힘주어 묻는다.
“설마 이 동네 주민 아니죠?”
“아니야. 친구라서. 문제 있어?”
“아니요. 다행이네요.”
김지혁은 동네 주민 중에 사무장이나 회계책임자를 쓰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주변 하이에나들에게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지역에 연고가 없는 편이 낫다.
김지혁은 밋밋하게 묻는다.
“그분들 매일 못 나오죠?”
“어떻게 알았어?”
“매일 나오는 게 이상한 거죠. 하하.”
어느 날 캠프에 한 달 가까이 나온다는 게 말이 되나? 다 하던 일들이 있는데. 어찌어찌 스케줄 맞아서 나오는 경우면 몰라도.
경험이 없으면 성실함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함부로 결정하지 말고 작은 일도 협의해야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
선거 행정은 보통 일이 아니다.
유권자가 관심이 없을 뿐 선거법은 촘촘하다.
캠프의 행정 업무는 하루가 한 달 같은 느낌이다.
지칠 수도 있고 자괴감이 들 수 있다.
최한숙이 묻는다.
“자괴감?”
“돕는다고 오잖아요?”
“그렇지. 얼마나 고마워?”
“막상 ‘힘’보다 ‘짐’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거는 권력 쟁취를 위한 전장이다.
전쟁터에 사격 훈련 시켜가면서 전투하는 격이다.
같이 죽자는 거나 다름없다.
대부분 지인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다른 사람이 그 사람 일까지 해야 한다.
이러면 캠프는 끝이다.
최한숙이 말한다.
“큰일이네···.”
“선관위에서 사전 교육합니다.”
“알지. 컴퓨터도 잘 다뤄야 하는데.”
“PC 못하면 문지기밖에 못 합니다.”
최한숙이 한숨을 뱉으며 말한다.
“놀던 사람은 어렵겠네?”
“책자도 주기는 하는데.”
“또 뭐가 있어?”
“회계 프로그램도 배워야 합니다.”
“선거사무장도?”
“화계를 알아야 그것에 맞게 행정이 가능합니다.”
기본 사무 능력이 없는 사람은 필요 없다.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도.
이러니 사람 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일하겠다고 자원하면 둘 중 하나다.
‘후보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김지혁이 결론 낸다.
“회계책임자 한 명만 쓰시죠.”
“한 명만? 사무장은?”
“후보가 겸임으로 하죠.”
“겸임?”
김지혁이 말한다.
“후보도 당선되면 선거법 알아야 합니다.”
“그건 그렇지.”
“미리 훈련도 할 겸.”
***
공직선거법 및 이해충돌방지법 등 법에 대해서 모른다면 입법 기관에 들어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기초의원들의 갑질에 국민은 미칠 지경이다.
그 문제의 본질은 간명하다.
‘자질 미달의 사람이 자질 충족의 사람을 부린다.’
억지로 생떼를 쓰고 윽박지르고 압박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권자의 문제일까?
답은 ‘아니다’.
무소속이 아니라면.
정당을 기반으로 대의 민주주의에서 자질 미달의 후보를 공천했다면 그것은 정당의 문제이고 책임이다.
사퇴한다면 책임이 될까?
세금으로 치러진 세금 비용과 손실은?
범죄나 논란으로 사퇴해서 입법 공백을 소속 정당이 배상해야 한다. 법적 책임은 당연하고 선거 보전 비용의 수십 배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서 유권자의 지방세 납부를 보전해줘야 한다.
‘유권자의 돈으로 선거한다.’
그래서 정치인도 돈으로 책임져야 한다.
정치인에게 경제적 형벌을 강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김지혁의 철학이다.
***
최한숙이 묻는다.
“가능할까?”
“굵직한 몇 개만 신경 쓰면 됩니다.”
“그럴까?”
“어차피 선거법은 제가 챙기니···.”
김지혁이 말한다.
“세금도 아끼니까요.”
“보전 비용?”
“후보가 겸임이면 보수가 없습니다.”
“선거 보전에서 제외되겠네.”
“주민에게 이득이죠.”
“그렇게 되겠네!”
‘힘든 선거 운동은 편한 주민 생활을 가져온다.’
김지혁은 캠프 일을 줄이고 싶다.
선거사무장과 회계책임자는 보수가 지급된다.
당선되거나 15% 이상 득표 시 비용 보전이 된다.
이것이 다 세금이다. 주민들 돈이다.
‘당선되더라도 주민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
김지혁이 말한다.
“어차피 홍보에 쓸 겁니다.”
“어떻게?”
‘선거부터 덜 쓰고 더 일하겠습니다.’
김지혁은 ‘최저 선거비용’을 달성하려 한다.
송선자에게 제안했다.
후보도 수락했다.
송선자의 정치 인생에 밑거름이 될 것이 분명하다.
있으나 마나 한 제도보다 이런 ‘바람’으로 유권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 이래야 선거는 진짜 축제가 된다.
갑자기 김지혁이 다급하게 말한다.
“누가 후보한테 소리치거든요!”
“그래 얼른 가봐.”
“다시 전화하시죠.”
“오케이”
공원 끝에서 누군가가 소리치고 있다.
칠십 중반쯤 노인으로 보인다.
후보에게 삿대질하며 고함치고 있다.
김지혁이 끼어들었다.
“어르신. 왜 그러시는지요?”
“선거하는 인간이 유권자를 우습게 보잖아.”
김지혁은 속으로 생각한다.
‘송선자가? 말이 안 돼.’
“살살 얘기해보세요. 어르신.”
“남들은 다 알아서 주는데.”
“주는데요? 뭘요?”
“용돈도 주고.”
“누가요?”
“···.”
노인은 느낌이 이상했는지 갑자기 말이 없다.
김지혁은 감을 잡았다.
‘선거 걸뱅이.’
송선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김지혁이 송선자에게 말한다.
“후보님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그래도···.”
“카페에서 쉬고 계세요. 부탁입니다.”
“예···.”
더러운 선거판만 전전한 늙은 괴물이 많다.
김지혁은 능숙하게 제거 작업에 들어간다.
“어르신 정확히 뭘 해 드리면 되죠?”
“이 친구는 말이 통하네.”
“제가 눈치가 있습니다. 하하.”
“내가 말이야!”
“예.”
노인이 눈을 부라리며 말한다.
“노인정에 소주 한 박스 가져다 달라고 했어.”
“정말 그러셨습니까?”
“응. 그랬어.”
“어르신 처음이 아니에요?”
“저번에도 주던데?”
“누구한테 받으셨어요? 예?”
“···.”
노인은 또 말이 없다.
김지혁이 몰아붙이기로 결심한다.
“소주 한 박스면 되죠?”
“그럼. 이 친구 마음에 드네!”
김지혁은 부드럽지만 강하게 말한다.
“소주 드릴 테니까 저랑 경찰서 가시죠.”
“경찰서는 왜?”
“제가 자수하려고요.”
“무슨 사고 쳤어? 어?”
놀란 노인에게 김지혁이 말한다.
“자수해야 벌을 적게 받습니다.”
“내가 왜 같이 가?”
“주범이거든요.”
“주범?”
“금품을 요구하셔서 선거법 위반입니다.”
“소주가 금품이라고?”
금품이 뭔지 향응이 뭔지도 모르는 ‘묵은지 걸뱅이’
김지혁이 계속한다.
“가보시면 알겠죠. 가시죠?”
“왜 이래? 이 친구가!”
“자녀분들 연락처 좀···.”
“그건 왜?”
“제가 사죄하려고.”
“뭘?”
“아버님이 선거법 위반하는 거 못 말렸다고.”
“이 사람이!”
김지혁이 말한다.
“선거 범죄는 중대 범죄입니다. 어르신.”
“···.”
“형벌이 가볍지 않습니다.”
“···.”
“아드님한테 전화해도 됩니까? 어른답게 사셔야죠.”
“···.”
노인이 말한다.
“미안하네. 없던 일로 해주게.”
“그냥은 안 됩니다.”
“후보에게 사과하십시오.”
“알겠네.”
김지혁은 송선자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송선자가 뛰어온다.
“송 후보 미안합니다.”
“어르신 이해해주셔서 감사해요.”
김지혁이 노인에게 말한다.
“어르신 또 이런 일 있으면 제가 경찰서 바로 갑니다.”
“이젠 안 그러겠네.”
“제가 녹음 해 놔서 저 혼자 가도 됩니다.”
“아···. 알겠네. 이제 가도 되나?”
“조심히 가세요. 송선자도 찍어주세요!”
일단락되자 송선자가 말한다.
“뭘 어떻게 하신 거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앞으로 이런 거는 제게 맡기시면 됩니다.”
“예! 그렇게 할게요!”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젊은 할머니가 말한다.
“선자야! 저거 미친놈이야.”
“이모. 그러지 마세요. 사정 있으시겠죠.”
“아냐! 노인정에서 다 싫어해.”
할머니 이름은 송화자.
이름이 비슷해서 송선자를 끔찍이 아낀다.
“내가 혼내 줄려고 했는데 말이야!”
“이모 그러다 큰일 나요!”
“큰일은 무슨.”
“저는 괜찮으니까. 그러시면 안 돼요.”
“다음에는 내가 혼낼 거야.”
그러더니 송화자 할머니 말한다.
“젊은이는 조카야? 아들이야?”
“앗. 선거 도와주시는 분이에요.”
“아주 당차던데. 마음에 들어!”
이때를 놓치지 않고 김지혁이 말한다.
“어머니. 후보랑 사진 한번 찍어주실래요?”
“젊은이가 하자면 해야지! 호호.”
둘은 부둥켜안고 카메라를 본다.
사진을 찍고 5초 영상을 찍는다.
둘이 속닥거리더니 외친다.
‘화자! 선자! 이기자!’
김지혁은 모처럼 크게 웃었다.
‘이 할머니가 후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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