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들일 수 없는 맹수는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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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 그것이 현실이냐 비현실이냐를 따지기 보다는 먼저 그 일이 바른길인지 어긋난 길인지를 알아야 한다.“
- 백범 김구 -
김지혁은 강태현에게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태현아. 누군가를 도울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최기석이 진다는 얘기에 강태현은 바로 대답도 못 할 정도로 너무 놀랐다.
세상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예측일 뿐만 아니라 김지혁의 예측은 항상 무게감이 있었기에 더 충격적이었다.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와야죠.”
“딴소리 말고. 중요한 게 뭐냐고?”
강태현은 너무 놀라서 동문서답을 했다.
김지혁은 강태현에게 ‘선거조력자’로서 자신의 철학을 이야기하려고 하고 있다.
“살다 보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지?”
“그럼요. 대부분이 그렇죠.”
강태현은 대강 답하면서 착잡한지 표정이 이내 어두워졌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다.
“투표라는 것도 일종의 대리 위임이나 마찬가지이고.”
“그렇죠.”
“요즘 같은 시대에 투표는 너무 소극적이지 않아?”
“그건 그래요.”
김지혁은 지금 같은 시대의 투표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고.”
“그렇죠.”
“그것은 투표 이상의 의미가 있잖아.”
“맞죠. 힘을 주는 것 이상이죠.”
강태현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한다.
“그렇죠. 그런 의미로 형이 선거 조력을 하는 거잖아요.”
“캠프에 있는 사람의 90%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거나.”
“자기 욕심 채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이권을 개입하려 하거나 둘 중 하나지.”
“맞아요.”
김지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지 알면서도 강태현은 대화에 빠져든다.
“그런데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이 돕는다면 말이야.”
“그러면요?”
“뒤에 탈이 안 생기잖아.”
“그렇죠. 그게 쉬운 게 아닌데.”
탈이 안 생긴다는 말은 단순하지 않다.
이권을 안 주거나 취직을 안 시켜주면 선거 승리 이후에도 캠프에 있던 사람들끼리 싸움이 나기 일쑤다.
“나는 이것이 이상적인 선거 운동이라고 생각해.”
“저도 전적으로 동의해요. 형.”
“너무 이상적인 꿈같은 거지.”
정말 극히 드물기도 하지만 의외로 숨겨진 곳에 이런 의지를 가진 선거 조력자들이 있다. 김지혁이 그 중 대표적인 사람이다.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선거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 그래서요.”
“나를 대신해서 큰일을 할 수 있는 대리인을 만들어 낸다는 생각으로 해야지.”
“맞아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이고. 정말 민주 시민이죠.”
계속해서 김지혁은 말을 이어 나간다.
“바른 소리를 하려면 어떻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게 없거나 애정하거나 둘 중 하나겠죠. 하하.”
“맞아. 그런데 바른 소리를 후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건 계산이 들어간 거죠.”
“역시 태현이는 찰떡같이 아는구나. 하하.”
강태현은 김지혁이 최기석 후보가 질 것이라고 한 얘기가 너무 궁금하다.
김지혁은 왜 그렇게 생각할까?
“형 그런데 왜 진다고 생각하세요?”
김지혁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한다.
“사납고 힘이 센 길들일 수 없는 호랑이가 있어.”
“예.”
“그리고 길들일 수 있는 약해 보이는 강아지가 있다고 치자.”
“예. 형.”
김지혁이 예를 들자 강태현은 집중한다.
“태현이는 호랑이를 키울래? 강아지를 키울래?”
“말 안 듣는 호랑이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요.”
“그렇겠지?”
“차라리 강아지를 키우는 게 낫죠.”
김지혁은 호랑이 좀 키워본 강태현답다고 생각한다.
“유권자가 그런 마음인 거야.”
강태현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다.
“비교하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하하. 다른 경우 같은데요?”
“본질은 같다.”
“어째서요?”
“유권자가 정치인을 키우는 거고. 유권자가 주인인 것은 같아.”
강태현은 놀라고 있다. 항상 김지혁은 어렵고 힘든 난제를 간단한 비유로 정의를 내린다.
갈치의 뼈를 바르는 것을 임연수 뼈 바르듯이 툭툭 발라내는 것 같다.
“맞네요. 맞아.”
“말 안 듣는 사나운 호랑이와 최기석이 뭐가 다르니.”
“그렇네요.”
유권자들은 후보의 강렬한 이미지나 고집 같은 것에 위협을 느낄 수도 있다.
강태현은 김지혁이 유권자의 본질을 늘 잊지 않고 예리하게 기준을 잡고 이야기하는 것에 놀란다.
“본질은 유권자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니야.”
“그럼 누가 만든 거예요?”
“후보가 그렇게 만드는 거지.”
“그렇네요.”
후보가 자신이 살기 위해 악을 쓰는 것이 되어 버리면 유권자들을 위해 정치를 하려는 본질이 사라진다.
즉 자신이 잘되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것이 그대로 유권자에게 투영된다면 되돌릴 수가 없다.
“이 유권자의 본질을 정말 최기석 후보가 들으면 좋겠네요.”
“이미 알고 있어.”
“알고 있을까요? 정말?”
“그럼. 이게 ‘선거뽕’ 이라고 하는 거야.”
“선거뽕이요?”
평상시면 절대 할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하는 후보를 일컬어 선거판에서는 ‘선거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지혁은 그걸 짚은 것이다.
“지금 힘을 빼지 말자. 우리는 우리대로 살자.”
“슬프게 들려요. 형.”
“그리고 그들이 깨닫고 실수하고 다시 제대로 반성하고 노력한다면.”
“그렇게 한다면요?”
“그때 도와주면 돼.”
“그래도 지면 타격이 클 텐데.”
“매번 이길 수는 없는 거야.”
그런데 이번 선거의 패배가 작은 일이 아님을 김지혁은 알고 있다.
이번 선거가 보궐이기 때문에 1년 뒤에 있을 지방선거 그리고 대선에서 연달아 민진당은 3연패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서막이 지금 열리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김지혁은 잔을 비운다. 그리고 한숨을 내쉰다.
“유권자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도 우리 이웃을 돕는 거다.”
“예. 형···.”
강태현과 김지혁은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강태현은 느끼고 있다.
그 누가 김지혁을 설득한다 해도 김지혁의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후쿠오카를 다녀오고 김지혁은 다시 또 출국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는 해외의 기업과 제휴의 일을 마무리하러 가는 중요한 일이다.
이한철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잘 지내고 있었냐?”
“정신없이 일만 하고 있었네요.”
“후쿠오카 갔던 일은 잘된 거야?”
김지혁이 너스레를 떨며 말한다.
“놀러 간 건데요. 뭐. 하하.”
“나 좀 데리고 다녀 정말!”
“다음에 꼭 같이 가요 형. 하하”
잠깐 머뭇거리던 이한철이 충격적이라는 듯이 말한다.
“네가 얘기한 대로 최기석이 지고 이정식이 됐네.”
이한철은 그간 고민이 많았던지 어렵게 얘기를 꺼냈다.
반면 김지혁은 덤덤하다.
예상했던 일이니까.
“그럴 거라고 했잖아요.”
“내가 선거 여러 번 봤는데.”
“그런데요?”
“더블스코어가 역전되는 거는 처음 봤다.”
마음을 비운 듯이 김지혁이 말한다.
“지려고 노력하는데 당할 장사가 있나요. 하하.”
“그렇게 치명적일 줄은 몰랐는데.”
“형. 유권자들이 예전의 유권자들이 아니에요.”
“그러게 말이다.”
“세상은 정치인이 바꾸는 게 아니라 유권자들이 바꾸는 거죠.”
더는 정치인들의 셈법대로만 선거는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게. 하던 대로 하면 되는대로 되네.”
이한철답게 명언을 한다.
“깨닫는 것이 있으면 좋을 텐데.”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이번 일을 반면교사 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도 질 걸요.”
“그럴 것 같다.”
“이번의 사현 시장 패배가 결국은 민진당 몰락의 시작이 될 수도 있어요.”
김지혁은 평소에 생각대로 말해버린다. 연승 후에 연패하기 마련인데 그 시발점을 최기석이 열었으니 김지혁의 예측대로라면 연패는 확실하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니?”
이한철은 답답한 듯이 머리를 긁적인다. 설마 그렇겠냐는 생각도 하면서.
“사현시는 우리나라 수도잖아요.”
“그렇지.”
“민진당은 여당에 다수의석 그리고 기초단체장을 다수 확보하고 있죠.”
“맞지.”
“심지어 심지어 교육감들도.”
“너무 좋은 조건이었지. 이번에.”
“이런 완벽한 조건에 민진당이 패배했다는 것은 의미가 커요”
김지혁은 민진당 전체 조직이 약화 된 것이 아니라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외부에서는 못 느끼는 내부 지지층의 붕괴.
이한철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한다.
“듣고 보니 질 수가 없는 선거였네. 그런데도 졌네.”
“지금 당 대표가 책임도 안 지고 있던데요.”
“왜 그럴까?”
“감각을 잃은 거죠.”
“감각?”
이한철은 감각이라는 말에 등골이 서늘하다. 자신도 이런 표현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책임의 정치는 사라지고 변명의 정치만 남았던데요.”
“져도 제대로 졌다.”
“선거 패배보다 수습하는 모습이 더 위험해 보이네요.”
“···.”
이번 선거의 패배는 큰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민진당에서 축소하고 있다.
몰락의 서곡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안타깝다. 그리고 걱정이다.”
“너무 애쓰지 마세요. 상처만 깊어져요. 언제 한번 봐요.”
“그러자.”
- 작가의말
28화부터 4천자로 업로드합니다.
29화에는 주인공이 귀환합니다.
(29화부터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호,추천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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