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집의 개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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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언제나 위험하다. 권력은 최악을 끌어들이고 최고를 타락시킨다."
-애드워드 애비-
후보자에게는 공천이 ‘선거 위의 선거’다.
최한숙은 걱정인지 기대인지 컷오프를 자꾸 언급한다.
김지혁이 돕기로 한 후보가 컷오프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컷오프 안 당해도 경선에서 질 수 있으니까.”
“경선도 문제죠.”
“시장급이면 경선은 필수니까.”
“그렇죠.”
컷오프되면 공천 자격도 없다.
‘컷오프를 통과하고, 경선에서 이겨서, 공천받으면 후보가 된다.’
지역위원장은 대개 국회의원이 한다.
이 경우를 의회에 입성했다고 해서 원내 지역위원장.
아니면 떨어진 국회의원이 한다. 떨어진 경우는 원외라고 흔히 말한다.
공천에서 지역위원장의 말 한마디에 명운이 갈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자질이 부족하고 정치인이 되지 말아야 할 사람이 후보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고는 하지만 지역위원장이 공천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겉으로는 지역위원장은 공천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말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오히려 지역위원장이 후보를 선택하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이 병폐를 고치지 않으면 지방자치의 발전할 리 없다.
발전은커녕 지역은 퇴보할 것이다.
김지혁은 고쳐질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지가 오래다.
‘스스로 재갈을 무는 사또가 어디 있을까?’
선거라는 명분으로 국회의원이 지역의 사또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그 사또들이 지방자치라는 명목으로 수하들에게 일자리를 준다.
기초의원이라는 이름으로.
‘대충 투표하면 대충 살게 된다.’
***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돕기로 했던 시장 후보가 컷오프.
캠프를 꾸리기로 했던 조력자들은 멘탈이 무너졌다.
‘왜 움직이지 않지?’
충격적인 컷오프에 이상하리만큼 후보는 움직임이 없다.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사전 여론조사에서 5명 중에 1위였으니까.
그것도 압도적으로.
당에서 후보로 추대받으려면 공천심사를 거친다.
공천심사에서 후보에 대한 적격 심사를 하는 것을 공천관리위원회 또는 공천심사위원회라고 부른다.
줄여서 공관위 또는 공심위.
단 1명의 후보를 공천한다면 단수공천이라 부른다.
그리고 복수가 공천 대상일 경우 ‘경선’을 한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면 마침내 후보가 되는 것이다.
이 적격심사에서 후보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컷오프’이다.
컷오프와 경선 탈락의 차이는 엄청나다.
컷오프는 단순한 것들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대한 사유’에 의해서 컷오프가 되는 것이다.
컷오프를 당한 사람 중에는 지역위원장이 원점으로 돌려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현실은 만만치 않다.
지역위원장이 이미 공관위와 교감이 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역위원장이 현직 국회의원이라면 공관위에 있는 심사위원이 국회의원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국비를 쥐고 있는 국가에 300명만 존재하는 자들을?
최한숙에게 전화가 왔다.
김지혁은 커피를 마시다 말고 전화를 받는다.
“신문에서 봤어. 컷오프 충격이 클 것 같은데···.”
“상당히 당황스럽죠.”
“후보가 공심위로 가지를 않네요.”
“가기는 갈걸?”
“뭔가 아시는 거라도 있어요?”
김지혁은 당황한 나머지 다른 시에 있는 최한숙에게 묻고 있다.
“아니.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지.”
“그래도 혹시···.”
“그 지역은 아예 모르는데.”
컷오프의 사유는 후보만 알 것이다.
그리고 후보는 공관위를 비난한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여기는 정치판이다.
그렇다면 이런 추측도 가능할 것이다.
‘잘못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물타기?’
욕을 할 상황에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보통은 이렇게 생각한다.
‘수긍하는 것인가? 아니면 잘못이 있긴 있나?’
진실이 무엇이든 컷오프가 되면 반발해야 하는 것이다.
바둑판이 아니라 정치판이니까.
김지혁은 분명한 사유가 있으니 심사에서 컷오프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컷오프를 뒤집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도 안다.
김지혁은 최한숙에게 말한다.
“번복이 가능할 리가 없겠죠?”
“그럴 거면 컷오프를 안 했지.”
그렇다. 번복 가능성은 없다.
그렇다면 후보가 선거에 출마 가능한 방법은 많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은 탈당 후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것이다.
컷오프는 경선 참여 이전이므로 가능하다.
경선에 참여한 사람은 경선 탈락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해당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소위 ‘A 방지법’
경선 불복으로 선거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과거에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법이 생겼다.
김지혁이 최한숙에게 말한다.
“이 지지율로 선거 못 하면 피를 토할 일인데.”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겠지.”
“무소속으로 출마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당선되기 어려워. 바람이 불고 있으니까.”
최한숙은 ‘바람론’을 언급한다.
김지혁은 이것을 굉장히 경계한다.
‘바람론’이 동반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묻지마 투표’
후보의 자질과 이력을 보고 찍지 않는다. 어느 당 인지만 본다.
‘유권자의 족쇄’를 스스로 채우는 경우가 이때 많이 생긴다.
돌이킬 수 없는 가벼운 투표를 한다.
최한숙이 말한다.
“시장이나 구청장 이름도 모르고 투표하는 사람들이 널렸어.”
“바람이 불면 눈을 감는 건지.”
“무소속으로 떨어지면 그다음도 없게 된다.”
사실 이것이 핵심이다.
무소속으로 떨어지면 당적도 잃게 되어 난잡한 기록만 남는 무관의 정치인이 될 뿐이다.
김지혁은 수긍한다.
“그렇네요.”
“지지자들은 지금 난리겠지?”
“후보보다 더 날뛰죠. 하하.”
김지혁은 허탈한 웃음마저 나온다.
“아마 무소속 출마 펌프질을 할 거야.”
“그렇게 하고들 있죠.”
“그 캠프는 이제 끝났다고 보면 된다.”
“예···.”
김지혁은 착잡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
후보는 무엇 때문에 컷오프가 되었다는 설명조차도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말하면 안 될 수도 있다.
‘정치판은 아래가 끊어진 사다리와 같다.’
계속 오르지 않으면 떨어지는 구조.
오르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멈추는 순간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곧 떨어지게 된다.
희망의 사다리가 끊어지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 캠프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수군댄다.
대책을 마련한다고 캠프에 모인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다른 캠프로 간 사람들이 있어? 벌써?”
“그럴 줄 몰랐는데? 정말?”
후보를 위해 캠프에 왔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욕망이 더 컸던 사람들은 선거에 관심이 없다.
선거 이후에 관심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후보의 당선 이후에 떨어질 꿀에 관심이 있다.
임진왜란 때에 왜구의 격멸에 모든 걸 걸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왜구가 물러가고 난 상황만 대비했던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별반 다르지 않다.
‘공욕 이전에 사욕이 먼저다.’
캠프는 대책 회의 중이다.
그 와중에 정치 자영업자들은 벌써 정리 중이다.
‘괜히 이 캠프에 와서 이제 미움만 사게 됐다.’
‘줄을 잘 서야 한다.’
품위 있던 언어들은 이미 쓰레기통에 다 던져버렸다.
불과 몇 시간 전과는 상상할 수 없는 단어들이 쏟아진다.
자신만의 ‘행복 회로’를 돌리던 현수막 업자. 인쇄업자.
지역 기자들도 이 대책 회의에 와 있다.
그들이 와 있는 이유는 대책 마련이 아니다.
‘먹을거리를 찾는 하이에나.’
여기에 식량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다른 사냥터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사냥터마저 빼앗기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와 있다.
‘후보가 아닌 자신들의 대책을 위해 모여 있다.’
김지혁이 모두에게 말한다.
“후보가 내일 당에 가서 자초지종을 확인한다고 합니다.”
“확인할 게 아니고 항의해야죠?”
성난 표정의 아줌마가 답하자. 김지혁이 다독인다.
“며칠만 기다려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며칠이나요?”
“오늘은 각자 하실 말씀 하시고 당분간 선거 준비는 보류하기로 하시죠.”
김지혁의 말이 끝나자 바로 한 남자가 묻는다.
“며칠 후에 어떻게 하실 겁니까?”
“후보가 결정하시면 그 결정을 보고 판단하시죠.”
사람들은 그대로 앉아서 얘기하기에 분주하다.
그런데 한 사람이 김지혁을 보자고 한다.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서.
“뭐 더 큰 일이 있나요? 하하.”
“혹시 따로 얘기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저도 나가 봐야 해서. 그러시죠.”
갑자기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한 것이 정상인데 지금 김지혁은 궁금하지도 않다.
워낙 맥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캠프에서 이보다 더 큰 일은 있을 수 없으니까.
카페에서 중년의 남자가 먼저 말한다.
“사실 다른 캠프로 가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누가요?”
“제가요.”
김지혁은 짜증이 온몸에 전기 흐르듯 느껴진다.
남자가 말한다.
“저는 사업을 지역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요?”
“어느 한쪽에만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 좋지는 않아서요.”
“깊이 관여하고 계셨잖아요? 예?”
김지혁은 할 말을 잃었다.
어차피 이 남자는 내부에 있는 바퀴벌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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