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색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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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거짓말이라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지옥의 불길처럼 사나운 기세로 커진다."
-그라시안-
‘미소’ 시리즈가 성공한다면.
동네 미용실 이용자에게 후보가 알려지고 온라인에도 퍼진다. 2주 정도 진행하면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김지혁이 말한다.
“오프라인은 좁고 세밀하게.”
“예. 지역선거니까.”
“온라인은 넓고 보편적으로.”
“양면을 가지고 가겠다는 전략이네요.”
“맞아. 역시 빠르네.”
강태현은 바로 응용한다.
“누적되면 ‘밈’ 형태의 ‘짤’들로 해도 되겠네요.”
“그렇지. 그래야 강태현이지!”
“하하. 쥐어짜야죠!”
김지혁이 듣고 있던 최한숙에게 말한다.
“실행이 관건입니다.”
“그럴 것 같아.”
김지혁은 후보에게도 말한다.
“후보님도 제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뒷일들이 만만치가 않아요.”
“사활을 걸게요!”
최한숙이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숨 가쁘게 재미있는 선거가 될 수 있겠어!”
“모두 맷돌에 갈려 나갈 겁니다.”
“무섭다. 지혁아.”
“갈리면 당선됩니다. 하하.”
김지혁이 이어 말한다.
“누나가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어떤 거?”
“여성으로서의 ‘루틴’이 있잖아요.”
“많지. 많아.”
“그 ‘루틴’들을 찾아주세요.”
“왜?”
갑자기 뜬금없다는 표정으로 최한숙이 바라본다.
김지혁은 경쾌하게 답한다.
“오프라인 선거운동 동선에 끼워 넣을 겁니다.”
“아하!”
“장을 본다든지 여러 루틴이 있을 거니까.”
“식사도 해당이 되네. 동네 식당 시리즈도 오케이?”
“오케이! 하하. 여성이 아닌 동네 주민 루틴도.”
“아파트 알뜰장 같은 거?”
“그렇죠! 바로 그겁니다.”
듣고 있던 송선자가 말한다.
노트에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이 보인다.
“외부에서 보면 규모 있는 캠프로 알겠는데요?”
“그렇게 보여야 당선됩니다.”
과하다 못해 부서지도록 뛰어야 한다.
선거란 지면 끝이다.
지고 나면 더 사람들이 밟으니까.
살려면 이겨야 한다.
***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자봉들에게 물질적 혜택은 없다.
혜택이 있다면 그것은 불법 선거.
반면 후보가 낙선하면 캠프의 정신적 피해는 크다.
그 패배감에서 최소 1년 이상 탈출하지 못한다.
김지혁이 마저 말한다.
“선거는 당선자와 낙선자만 존재합니다.”
“예···. 그렇죠.”
“인생에서 이런 승부를 몇 번이나 하겠습니까? 후보님.”
송선자가 말한다.
“최선을 다해서 해야겠네요.”
“선거에서 최선은 없어요. ‘전부’를 하셔야 합니다.”
***
최한숙이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지혁이 말이 맞아. 진다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니까.”
“지는 캠프를 저는 많이 겪었습니다.”
“어땠니?”
“‘슬프다’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선거에 패배하면 후보는 충격과 회한 그리고 좌절이 온다.
사실은 말로는 표현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최한숙이 말한다.
“여러 번 본 적이 있는데···.”
말끝을 흐리더니.
“수습이 쉽지 않아.”
경험이 많은 최한숙답다.
패배한 캠프의 ‘수습’은 상상을 초월한다.
후보가 떨어지고 쉬고만 있어도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상상도 못 할 험담과 소문들이 퍼져나간다.
후보가 가장 힘든 것이 있다.
조력자들의 원망과 보상에 대한 요구다.
후보가 자연인이 되면 더 노골적으로 압박한다.
‘떨어지고도 정신 못 차렸다.’
‘사람들한테 이럴수록 더 잘해야 하지 않냐.’
이런 말들은 애교다.
김지혁이 말한다.
“나쁜 올가미는 다 던집니다. 패배한 후보한테.”
그러자 강태현이 말한다.
“선거를 안 뛰려고 하시는 이유를 알겠네요.”
“져본 사람은 그 심정을 알지.”
“절벽 앞에 후보와 같이 서는 게 너무 힘드신 거죠?”
“아는구나. 선거는 매일 절벽에 서는 기분.”
김지혁이 모두에게 말한다.
“야구 얘기 하나 해드릴까요?”
메이저리그에서 연승에 대한 기록을 세웠던 한 감독이 기자와 인터뷰에서 한 일화다. 기자는 왜 경기장에서 경기를 지켜보지 않느냐? 기쁨을 함께하고 싶지 않냐? 라는 질문을 했다.
김지혁이 묻는다.
“그 감독은 뭐라고 했을까요?”
“모르겠는데.”
“졌을 때의 고통이 너무 크다. 이길 때의 기쁨보다 100배는 더 아프다. 그래서 지지 않고 싶었을 뿐이다.”
단지 지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는 얘기.
승리를 생각할 여력도 없을 만큼 패배가 아프다는 것.
선거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
상세한 전략과 실행방안들을 협의했다.
진정성과 최선.
이런 말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를 하고 있다.
선거라는 승부의 본질을 말한다.
졌을 때의 괴로움이 너무 커서 지고 싶지 않았다는 감독의 말처럼. 고통을 알지 못하는 자는 기쁨을 누릴 자격도 없다고 김지혁은 생각한다.
***
최한숙과 김지혁은 중요한 사안에 대해 논의한다.
김지혁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일로 보인다.
김지혁이 말한다.
“캠프의 뼈대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야겠지.”
“사람이 아니라 업무가 우선이어야 합니다.”
“맞아. 동의해.”
“원칙을 몇 가지 세워야 합니다.”
“어떤 게 기준이 되는 걸까?”
김지혁이 말한다.
“일정 관리가 우선입니다.”
“그럼 1순위를 일정 관리라고 생각하면 되겠네?”
“선거는 시간과의 싸움이니까요.”
김지혁이 힘주어 말한다.
“소통에 대한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사람도 별로 없는데?”
“권한의 분배가 명확해야 합니다.”
“분배?”
“수평적으로 소통하면 힘듭니다.”
“인원이 없어서?”
“단기간 극단적인 몰입이 필요한 선거라서요.”
“인원 문제가 아니구나!”
캠프에서는 의사결정 권한이 항상 문제다.
어설픈 수평적 협의를 하면 난상토론만 하게 된다.
실행도 해보기 전에 협의 단계에서 지쳐버리기 일쑤다.
듣던 강태현이 말한다.
“회사도 사실상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어떻게?”
“여유 있거나 신규 아이템은 수평적인 것이 좋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너무 힘들죠.”
“어떤 면에서?”
“시간도 없고 목표도 명확한 일에는 의미가 없죠.”
“맞는 얘기네.”
최한숙이 계속 묻는다.
“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팩트입니다.”
“팩트?”
김지혁의 단호한 대답에 당황한 반응이다.
갑자기 뜬금없는 단어의 등장.
“선거 캠프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이 팩트가 아닙니다.”
“소문들···. 그거?”
“거짓이나 허위 사실이라고 하기에 애매한 것들입니다.”
“잘 와닿지 않는데 쉽게 정의해주면 좋겠는데?”
김지혁은 이 애매한 경계선을 정의해준다.
“각색입니다.”
그러자 강태현이 맞장구를 친다.
“맞네요. 느낌이 확 오는데요.”
과장된 내용이나 사실을 비틀어서 전달된 내용들이다.
거짓은 아니지만 부풀려져서 전혀 다른 내용이 된다.
이 각색이 위험한 이유는 ‘시간’ 때문이다.
흘러 나간 각색들이 수정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각색으로만 끝나지 않고 캠프의 발목을 잡는다.
이 각색된 루머에 휘둘려 허우적대는 캠프가 많다.
결국 ‘멘탈 게임’의 승부처는 각색에 대한 대처.
김지혁이 말한다.
“황당하게도 각색은 보통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합니다.”
“어떤 것들?”
“자신들의 능력, 경험, 출신, 그리고 이력 등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공과에 대해서도 각색합니다.”
“후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주변인의 각색. 모두가 위험인물이다.’
각색의 주범.
김지혁은 캠프 안팎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도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팩트만 믿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송선자가 말한다.
“캠프에 그런 사람들 많이 와요.”
“많이 당했을 겁니다.”
“···.”
‘나는 선거기획사를 해도 될 정도’라고 남들이 말한다고 떠드는 회계책임자가 있다면 그것은 확인해야 한다. 확인을 안 하고 믿는 순간 선거 회계는 망가진다.
‘자신의 얘기를 들었다고 하면서 하는 말은 대부분 각색.’
김지혁이 선거 캠프를 겪으면서 깨달은 진리다.
전달을 가장한 자신의 얘기는 대부분 각색이다.
김지혁이 각색을 가장 경계하는 이유가 있다.
내부의 각색이 캠프의 붕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잘 믿는 사람들이 각색에 많이 당한다.
당한 후에 ‘사기’라고 하지만 각색에 당한 것에 불과하다.
캠프 뼈대를 세우는 것에 가장 장애물이 ‘각색’인 셈이다.
***
강태현이 묻는다.
“캠프에서 다른 위험한 각색들이 있나요?”
“선거는 ‘멘탈 게임’이라고 봐야 하거든.”
“많이 들었어요. 형님.”
“누가 멘탈을 제대로 잡고 뛰느냐가 중요해.”
“그렇죠. 선거는 힘드니까.”
“멘탈을 흔드는 각색들이 많아.”
그리고 김지혁은 노트에 적으면서 보여준다.
‘이길 것이다. 분위기 좋다더라.’
‘상대는 이미 무너졌다.’
‘조기축구회에서 너 민다더라.’
중심을 어지럽히는 방법은 양 끝을 흔드는 것이다.
결국 칭찬도 낙담도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후보를 지나치게 안심시키거나 지나치게 위축시키거나.’
통계나 일정 그리고 정보들을 각색해서 흔든다.
송선자가 묻는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팩트밖에 없습니다.”
“저는요?”
선거의 최대 바이러스.
‘각색’
과연 김지혁은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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