컷오프라는 단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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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속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괴테-
김지혁이 짜증 난 듯 말한다.
“그러시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너무 순진하시네.”
“예?”
“절반은 저 같을걸요?”
“나머지 절반은요?”
기가 차지도 않는 상황에 커피가 물처럼 느껴졌다.
남자가 말한다.
“나머지야 ‘알바’로 생각하겠죠.”
“본인들이 출마했네.”
“예?”
김지혁은 한순간 돌변하는 사람이 싫다.
사실 사람들은 바뀐 게 아니다.
본질이 그러했던 사람들일 뿐이다.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시고···.”
“뭘요?”
“저와 함께 그쪽으로 가시면 해서요.”
“어디요? 다른 후보요?”
“예···.”
김지혁은 남자를 한 대 칠 뻔했지만 참았다.
태세 전환이 빠르다 못 해 광속이다.
“어차피 우리 당이 이겨야 하니까”
“당이 우선이시다?”
“당을 돕는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이 남자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결국 컷오프나 경선은 당의 단일 후보를 추대하기 위한 것이니까.
하지만 김지혁은 당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당원도 아니다.
후보의 공약 때문에 온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김지혁의 뜻을 후보가 수용했기 때문이다.
김지혁은 이런 제안에 단호하게 대답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저는 그런 생각은 없습니다.”
“후보와의 의리 때문인가요?”
“사장님은 당을 위해서 가시는 건가요?”
“그럼요.”
남자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이미 양다리 아니었나.
솔직한 심정은 자신을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닌가?
동네에 흔히 있는 50대의 사업하는 아저씨다.
말이 사업이지 희한한 것들을 지역에서 많이 한다.
게다가 이거저거 닥치는 대로 한다.
누가 봐도 외모부터 태도까지 ‘장사의 향기’가 뿜어져 나온다.
술 마시면서 안주로 ‘사람 장사’ 정치 얘기를 전설처럼 하는 사람.
남자가 말한다.
“나중에 생각이 바뀌시면 꼭 전화 주세요.”
“들어가세요.”
김지혁은 생각할수록 짜증이 난다.
다른 후보가 직접 부탁을 해도 고민할까 말까인데.
줄타기했던 사람이 제안하는 것 자체가 기분이 안 좋다.
저런 저돌적인 제안은 한두 번 해서 생긴 스타일이 아닐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하지 않고 이익을 위해 들이대는 스타일.
계속 캠프 관계자들에게서 전화가 온다.
‘한숨을 내뱉는 한탄.’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하소연.’
‘나는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엄포.’
캠프만 이럴까 하는 생각이 김지혁의 머릿속을 맴돈다.
이때 최한숙에게 전화가 왔다.
“캠프 난리지? 절반은 다른 데로 갔을 거야.”
“이거 너무 한 거 아니에요. 마무리도 안 되었는데.”
“꼭 그렇게 생각하지 마.”
“그래도···.”
김지혁은 속으로 생각한다.
‘의리가 아니라 도리는 있어야지.’
최한숙이 말한다.
“정당정치잖아. 당 후보가 결정되면 합쳐야 하는 거니까.”
“그렇죠.”
“지지자들도 아직 선택할 수 있는 시기지.”
“예···.”
그래도 김지혁은 찜찜하다.
도리상 정리하는 시간의 잠잠함은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후보가 공관위 결정 수용 여부를 명백하게 안 해서.”
“며칠을 못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니까.”
조급한 것이 솔직한 것인지.
솔직해서 조급한 것인지.
최한숙이 말한다.
“누구 탓할 필요 없어. 공천은 후보의 몫이잖아.”
“맞는 말씀이죠.”
“일단 쉬어. 지금은 절대 좋은 꼴을 못 볼 거야.”
“그렇겠죠?”
“사람들이 지금은 당황해서 우왕좌왕할 거야.”
최한숙은 확실히 경험이 많다. 이어서 말한다.
“곧 서로 공과 따지고 서운하다느니 손해 봤다느니 그럴 거야.”
“그렇죠.”
“같이 있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야.”
“싸움만 나겠죠.”
불이 난 게 아니라 불이 꺼진 상황이니까.
“후보가 해결할 일이고 그냥 이럴 때 쉬는 거지 뭐.”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 며칠 뒤에 시간 날 때 밥 먹자.”
최한숙은 조급하지 않다.
조급해서 될 일이 아니란 것을 아는 것이다.
김지혁은 컷오프는 처음 겪어 보았다.
주로 불리한 선거들을 많이 도왔다.
험지라고 불리는 곳에서는 치열한 공천 경쟁이 오히려 없다.
오히려 출마하는 것 자체가 애잔한 도전인 경우가 많다.
기적도 있었고 좌절도 있었다.
그런 곳에는 정이 있다.
질 것을 알면서 나가는 선거.
‘실패를 알고 하는 도전.’
그만큼 슬프면서도 애잔한 캠프란 없다.
하지만 진다고 생각하는 캠프는 없다.
만에 하나 기적이 찾아오길 바라는 캠프는 많다.
‘캠프를 돌리는 수레바퀴는 기적이다.’
갑자기 강태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후보 컷오프라면서요?”
“봤구나?”
급한 성격의 강태현은 바로 묻는다.
“어쩌시려고요?”
“나야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어. 하하.”
김지혁은 허탈하게 웃으며 말한다.
“받아들이고 할 일 해야지.”
“그렇죠. 형 한번 봐야 하는데. 언제 시간 되세요?”
“내일 술 한잔하자.”
“예! 저녁에 봐요.”
***
여기저기 캠프들이 난리다.
컷오프가 많다.
바람이 불다 보니까 경쟁이 치열했다.
경선은 더 치열할 것이다.
반면 열세 지역은 조용하다.
패배가 뻔한 곳들은 나가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곳에 나가는 사람들은 등 떠밀려 나간다.
아니면 다른 데서는 공천받기 어려운 사람들.
이유는 간단하다.
선거 보전 비용을 받으려면 당선되거나 15% 이상 득표해야 한다.
15%도 받지 못하는 경우 후보는 경제적 손실마저 크다.
공천의 소용돌이가 곧 끝나야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될 것이다.
‘선거보다 공천이 더 어렵다.’
틀린 말은 아니다. 투명하고 시대가 바라는 공천 시스템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인간의 시스템인데 욕망의 사슬이 느슨해질 수 있겠는가.
선거는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그런데 변함없이 이어온 것이 있다.
‘공천 무소불위의 권력은 지역위원장이 쥐고 있다.’
병폐지만 사라지기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공관위 같은 것이 있어서 사전 서류심사도 한다.
현직 국회의원들이 지역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의 호족이나 다름이 없다.
지역위원장의 눈에 거슬린다면 공천은 받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현직 국회의원이 지역위원장을 못 하게 한다?
그래봤자 어차피 지역위원장은 어차피 허수아비가 되지 않을까?
다른 것은 모두 혁신하고 바뀌어도.
정치가 잘 바뀌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공천이다.
하지만 공천의 근원은 정치가 아니라 인간이다.
‘권력이 존재하는 한 공천은 잡음이 없을 리 없다.’
***
김지혁이 밀던 후보는 선거를 포기할 것이다.
재심청구가 공관위에서 기각될 것으로 확신한다.
컷오프된 후보들은 논란거리도 아니다.
되지 않을 사람들이 컷오프를 통과한 것이 더 논란이다.
납득이 가지 않는 컷오프 통과자가 많다.
범죄사실 확인으로 전과기록이 있는 사람들.
어떤 지역은 전과 3범인 경우에도 공천이 되었다.
이러한 행태가 당을 몰락의 길로 걸어가게 할 것으로 본다.
당이 몰락하는 것은 괜찮다.
유권자가 피해를 보는 것이 문제다.
후보로 나오고 나서야 유권자는 실력행사를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당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상수원이 썩은 물을 담고 있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당욕보다 사욕이 먼저다.’
시스템으로 공천한다고 말은 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국회의원을 견제할 방법이 있을까?
국비를 지역에 갖다주는 그 힘을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다.
게다가 중앙당이나 도당 또는 시당에서도 지역 맹주를 반대하기 쉽지 않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가장 세고 효율적인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국회의원은 지역위원장을 하지 말아야 공천이 올바르게 된다고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지역위원장을 직업 정당인이 한다면?
임명할 때 과연 지역 국회의원의 힘이 작용하지 않을까?
지역 국회의원이 허수아비를 앉히지 않을까?
안 봐도 뻔한 것 아닌가?
‘인간이 존재하는 한 권력은 존재한다.’
김지혁은 실력으로 이 현실을 뛰어넘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
김지혁은 강진도 기정시에 왔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적어도 현장이나 후보는 알아야 결정을 할 수 있다.
도울지 말지.
최한숙이 말한다.
“오래 걸리지 않았어?”
“아뇨. 금방 왔어요.”
“그래?”
“주차가 조금 힘들기는 했어요. 초행길이라. 하하.”
“고생했어. 거기는 정리가 되었지?”
김지혁이 대답한다.
“정리하고 말고 뭐 있나요. 하하.”
“더 있으면 안 좋은 거 많이 봐.”
최한숙의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자 현실이다.
“후보가 끝까지 말 안 할걸?”
“그럴까요?”
“예전에는 뭔가 이유 없이 컷오프되는 줄 알았어.”
“그런데요?”
“대부분 치명적인 이유가 있더라고.”
김지혁은 짐작이 가는 일이 있기는 했다.
아마 가족 문제일 수도 있다.
김지혁도 동의하며 말한다.
“그럴 수 있겠네요.”
“이유 없이 컷오프는 안 해. 보통은 경선까지는 하게 해주거든.”
“뭔가 행동이 어색한 게 있긴 있었어요.”
공천이 당선의 보증 수표는 아니다.
유력 정당의 공천이 당선에 가까워지는 건 사실이다.
결국 선거의 가장 첫 단두대는 ‘컷오프’인 것이다.
- 작가의말
<용어>
*공관위 : 공천관리위원회. 공천심사관리위원회라고도 한다.
*지역위원회 : 과거 지구당. 어떤 정당의 지역 조직을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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