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자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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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을 마스터하는 것은 어렵지만, 마스터한 후에는 모든 것이 쉬워진다.”
- 브루스 리 -
김지혁이 말한다.
“송 후보가 지역 주민을 많이 아느냐가 관건입니다.”
“주민이랑 스킨십은 최고인데.”
“그런데요?”
“안 좋은 사람도 많이 아는 게 문제지. 호호.”
김지혁이 크게 웃는다. 상관없다는 듯.
“하하. 어떻든 잘 되었습니다.”
“그래?”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많이 아는 게 낫습니다.”
“섭외 기준을 뭘로 할까?”
김지혁이 적으면서 보여준다.
0. 여성이면서 평판이 좋은 4050.
1. 사회생활을 하거나 했던 사람.
2. 당원 가입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
3. 당원인 사람.
4. 직장 경험이 있는 사람.
보더니 최한숙이 묻는다.
“0번이 제일 중요해? 기준이 있는 거야?”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유권자인 주민이면 됩니다.”
“꼭 안 맞아도 되지?”
“예. 사람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보통 일이 아니다.
딱 선거 시기 2주간 일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니까.
최한숙이 말한다.
“맞아. 어려울 것 같아.”
“잘 찾으실 겁니다. 하하.”
김지혁은 소비력이 좋은 선거운동원을 선호한다.
돈 잘 쓰는 사람들을 싫어하기는 어렵다.
반면 통반장은 선호하지를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적도 많다.
당원이라면 정치적 관점이 일치해서 좋다.
캠프에 대한 자긍심과 사명감도 있다.
정치 경향이 같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포용력이 낮아 반감이 있을 수도 있다.
선거운동원은 대부분 하루 8시간 일한다. 김지혁은 이 외의 시간을 주목한다. 생활 자체에서 운동원이 유권자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는 것을 더 중요시한다.
***
여의도 의원회관.
김지혁은 정경구 의원실에서 홍진철 비서를 만나고 있다.
홍진철이 말한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느낌이네요.”“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일 년도 안 되었는데 10년 만인 것 같네요.”
“자주 연락 좀 하지 그러셨습니까? 하하.”
“의원실 옮기느라 경황이 없었네요.”
홍진철이 정경구 의원실로 갈 때 김지혁은 말렸다. 중진 5선 의원의 밑에서 일하기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다. 4급 수석 보좌관이 환갑인 곳이다. 기본기를 다지기 전에 정쟁에 치일 수 있다.
게다가 정경구 의원은 지역 평판이 좋지 않다.
10년이 넘는 세월을 지역을 장악하고 있다.
관련 정치업자들도 오랫동안 이권에 개입하고 있다.
결국 이것이 지역을 후퇴시킨다.
‘비조차 오지 않는 고인 물. 악취가 얼마나 심하겠는가.’
***
김지혁이 묻는다.
“이번에도 방법론입니까?”
“예. 효율적인 방법론을 알고 싶어요.”
“보통은 잘하는 사람 시키지 않습니까?”
“아무도 안 하려고 해요···.”
홍진철의 맥 빠진 대답.
여의도에서 SNS는 핸드폰으로 끄적대는 일이라고 우습게 본다. 그래서 가장 어리거나 애매한 업무를 하는 비서에게 많이 시킨다.
그런데 지난 총선에서 SNS 열풍이 불었다.
심지어 트위터로 대박치고 신승한 당선자가 나왔다.
박빙의 선거였다.
SNS로 후보의 정보를 접한 40대가 진격했다.
‘어디로?’
‘투표소로.’
이후 정치권에서의 SNS 활용이 커졌다.
“아직도 한직으로 보는 겁니까?”
“아직 그렇네요.”
“대개는 정책이나 정무 하려고 하니까.”
“그건 그렇네요.”
“지난 총선부터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달라지긴 했어요.”
선거 SNS는 디테일한 관리가 중요하다.
삐끗하는 순간 무너진다.
“제가 쓰면서 설명하겠습니다.”
김지혁은 태블릿에 적으면서 보여준다.
1. 통계분석을 꼭 할 것.
2. ‘운영’이 중심. ‘제작’은 가볍게 할 것.
3. 프로세스가 중요. ‘제작, 검토, 배포, 운영’
4. ‘멀티’가 되는 사람을 쓸 것.
5. 오프라인 연계성 강화.
6. 일정을 역순 설계할 것.
7. 재미보다 ‘정책’. 이슈보다 ‘기조’.
홍진철 비서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홍 비서는 김지혁을 많이 따른다.
능력과 업무 스타일을 배우고 싶어 한다.
김지혁은 적진에 있는 홍 비서지만 알려줄 것은 알려준다. 홍 비서와의 신뢰 관계는 상상 이상이니까. 더더군다나 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이 조건들을 만족해도 최적화를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
각 SNS의 최적화도 중요하고 지역위원회 내부의 복잡함 속에서 조화로운 통합이 중요하다.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선거에서 SNS가 득표를 위한 홍보 수단이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 큰 본질을 김지혁은 이렇게 보고 있다.
‘당선이 될 만했다.’
이런 느낌을 유권자들에게 줄 수 있는 ‘디지털 히스토리’의 역할을 이 SNS가 한다.
후보자에서 당선자로 신분이 바뀌었을 때.
SNS라는 것은 ‘선거 운동의 기록’도 된다.
그래서 설계할 때부터 목표와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홍진철이 말한다.
“이해는 가요.”
“그럼 됐네요.”
“바로 정리해주시니 대단해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홍진철이 소리 내서 말한다.
“누군가 통찰을 할 수 있는 사람. 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김지혁이 대답한다.
“실전에 강한 팔방미인 전문가가 필요할 겁니다.”
“도와주십시오. 꼭.”
김지혁은 단호하게 말한다.
“제가 도우면 보좌관들 필요 없을 텐데. 하하.”
“걸리적거리면 밀어 버리시니. 하하.”
“제 스타일 아시지 않습니까?”
“아. 그렇죠···.”
홍진철을 외면할 수 없는 김지혁이 말한다.
“대신 기획서를 하나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떤 내용이죠?”
지역위원회에서 지방선거를 할 때 해주면 좋은 역할.
그것을 수행할 조직에 관한 내용이다.
“너무 감사합니다!”
홍진철은 고마워서 어쩔 줄 모른다.
김지혁은 홍 비서와 헤어지고 예전 일을 떠올린다.
총선 캠프에서 자문 이상의 과도한 역할을 했다.
순수하게 돕겠다고 해서 도왔다.
선거를 뛰면서 후보 당선 이후 보좌관 자리를 탐내던 사람들이 김지혁을 공격했다. 하지만 김지혁은 그 공격을 부수었다.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많은 인정을 받았다. 보좌관 자리 따위에 김지혁은 관심이 없었으니 선거 후 홀연히 떠났다.
‘사또 뒤치닥꺼리하는 계약직 따위.’
김지혁은 마케팅 실험에 집중했을 뿐이다.
단기간 마케팅 실험에 선거보다 좋은 무대는 드물다.
게다가 덜 나쁜 놈을 도운 것뿐이다.
그 이후 선거판에서 김지혁을 더 찾게 된 것이다.
***
지방선거는 많은 투표가 이루어진다.
후보를 알리기도 어렵고 유권자의 관심 받기란 쉽지 않다.
도지사나 시장 후보가 아니라면 언론에 노출도 안 된다.
그래서 김지혁은 예전부터 주장해 왔다.
‘어떤 선거든 박빙의 순간을 대비해야 한다’
이때 박빙의 신무기가 ‘SNS’.
메이저급 후보가 아니라면 더 그렇다.
상황에 따라서는 위력이 크다.
후보를 모바일로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
세련된 SNS는 유권자가 후보를 신뢰할 수 있게 한다.
송선자 후보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거가 40일 남았는데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당에 등록할 서류는 마무리하셨죠?”
“거의 다 했어요.”
“본선거 때 등록할 것도 미리 하셔야 합니다.”
“챙겨주시면 좋은데···.”
송선자가 김지혁을 건드렸다.
“그 정도는 직접 하셔야 합니다.”
“좀 어려워서···.”
“그런 후보라야 제가 도울 의지가 있습니다.”
“예···.”
김지혁이 또렷하게 말한다.
“죄송한데. 저 돕겠다고 확정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대표님.”
“수고하세요.”
5분도 안 돼서 최한숙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 있었나?”
“서류 챙겨달라는 건데. 아시잖아요.”
“아···. 지혁이를 모르니까. 단호하게 했지?”
“그럼요. 일에는 감정 없습니다. 하하.”
김지혁은 단호하다.
후보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안 하면 가차 없이 자른다.
***
몇 년 전 행정감사에 얽힌 일화.
입법기관이 행정 자료를 분석하고 문제를 찾아 지적하는 게 맞다. 그런데 피감 대상자인 공무원이 자료를 줘야지 행정감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광역의원이다.
조서가 서툴다고 형사가 도둑이 조서를 써줘야 수사할 수 있다고 하는 격 아닌가?
무능의 끝판이 아닌가?
지방자치는 누가 멍들게 하는가?
김지혁은 기본이 안 된 후보를 도울 생각이 없다.
기본을 하고 난 후에는 도울 생각이 있다.
그런 사람이 일해야 한다.
그것이 유권자들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책무다.
***
최한숙에게 전화가 왔다.
“지혁아 내일 송 후보 수행할 수 있어?”
“갑자기 무슨 일 있습니까?”
“예비후보지만 현장을 지혁이가 갔으면 해서.”
‘아까 일 때문인가?’
며칠 후면 선거 운동 시작이니까 빠른 것도 아니다.
“어차피 곧 선거 시작인데.”
“그래볼까요?”
“선자가 전화할 거야. 잘 봐봐.”
김지혁은 잘 되었다는 생각이다.
송선자와 호흡을 맞춰 보긴 해야 한다.
바로 송선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일 몇 시에 볼까요?”
“7시부터 움직이시니까 그때가 좋겠습니다.”
“예. 어디서 뵐까요?”
“기정시청역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송선자가 묻는다.
“준비할 게 있을까요?”
“명함 천장이면 됩니다.”
“천장이요?”
“예.”
김지혁은 장비를 챙길 생각에 벌써 마음이 분주하다.
수행의 정석을 보여줄 김지혁.
스킨십의 제왕 송선자.
‘송선자가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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