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가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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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른 사람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다.”
- 마틴 루서 킹-
최한숙이 김지혁에 전화를 걸었다.
“선관위 자료 받고 교육도 받았데.”
“잘했네요.”
“그런데 컴퓨터가 미숙해서···.”
“어느 정도시길래?”
“초등학생 보다 못하는 것 같아.”
“예?”
김지혁이 말한다.
“죄송한데 다른 분으로 대체해주세요.”
“그래야 할까?”
“예. 빨리 부탁드립니다.”
“알았어. 바로 수배할게.”
컴퓨터를 못 다루면 선거 회계를 할 수가 없다.
증빙 서류들이 디지털로 만들어져야 한다.
서류를 못 만드는 사람은 선거 캠프에 없을까?
아니다.
이런 경우는 업체들이 해주는 곳을 찾는다.
어떻게 될까?
발린다. 생선 가시 발리듯 발린다.
모를 리가 없는 김지혁은 서둘러 수배를 권했다.
곧바로 최한숙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언제부터 캠프를 제대로 움직일 생각이지?”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사무실은 구했고 사무집기도 세팅했어.”
김지혁이 말한다.
“디데이 35일 전부터?”
“그래도 될까?”
“정형화된 패턴이라 별것 없습니다.”
김지혁에게는 별것 없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서툰 사람에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김지혁이 말한다.
“선거비용 총액 제한 아시죠?”
“알지.”
“여기 지역구가 선거인 수가 많던데”
“그래서 선거비용 상한도 높아.”
“우린 최저로 해보시죠!”
“최저?”
김지혁은 선거비용 최소화를 도전해 보려고 한다.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보통은 선거비용 보전되는 범위 내에 금액을 맞춘다. 그리고 목구멍에 걸릴 때까지 금액을 부풀려 놓는다. 어차피 받을 돈이라 생각하니 업체에 선심을 쓰듯 집행한다.
‘선거비용을 덜 쓰고 보전을 덜 받는다.’
오늘의 송선자를 보니 분명 가능하다.
발로 뛰고 SNS로 홍보하면 충분하다.
지난 선거의 패인 중 하나가 당 눈치 보느라 자기 선거를 못 한 것 같다. 이제는 그럴 이유가 없다. 어차피 두 번의 버림을 받았다.
‘자기 선거만 하면 송선자는 이긴다.’
캠프에서 최저 비용을 위해 불필요한 선거 활동을 최대한 줄이면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세 방향이 좋다.
‘지방 재정이 좋고, 후보가 좋고, 유권자가 좋다.’
최한숙이 묻는다.
“큰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유세차, 현수막, 벽보, 공보물, 명함, 문자, 선거 운동원이 거의 전부죠. 나머지는 일도 아닙니다.”
“전문 업체를 알아야 할 텐데?”
“알 필요도 없어요. 중앙당 추천 업체가 좋습니다.”
물론 동네 쓰레기 업체들이 많다.
협박 아닌 협박도 한다. 일 달라고.
이 사람들을 피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중앙당에서 추천하는 업체다.
심지어 별도의 디자인 비용이 필요 없다.
수준 높은 디자인도 포함되어 있다.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십만 이상의 유권자가 있는 드넓은 전장에서 늑대 몇 마리 무서워서 선거를 겁먹을 필요가 없다. 자기 선거란 이런 것이다.
김지혁이 말한다.
“모르는 데가 좋습니다.”
“왜?”
“일을 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
“지역 업체 잘못 섭외하면 바가지만 씁니다.”
선거 캠프에서 바가지를 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유권자의 돈을 도둑맞는 것이다.’
세금 빼먹는 업자들과 공범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권자들이 피땀흘려 번 돈으로 선거라는 장을 마련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
전화를 마친 김지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마침 초등학생들이 하교한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만나 집으로 간다.
송선자는 교문 앞에서 인사하고 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김지혁은 지켜본다.
“안녕하세요. 송선자입니다. 1-‘나’입니다!”
“예···.”
멀리서 봐도 송 후보는 풀이 죽어 있다.
김지혁이 손짓한다.
“무슨 일 있어요?”
“조급해하지 말고 쉬시죠.”
둘은 벤치에 앉았다.
어린이공원 운동기구로 다리를 쫙쫙 찢는 할머니.
“힘들지?”
“예?”
“좀 쉬어.”
송선자가 대답한다.
“어머니. 고마워요!”
“오래 있지 말고. 자주 와.”
이 짧은 한마디에 김지혁은 충격을 받았다.
‘후보 각인에는 반복이 더 효과가 있다.’
운동하던 할머니가 깨달음을 준 것이다.
김지혁은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했다.
그리고 둘은 다시 걷는다.
그 순간.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송선자가 말한다.
“오늘 선거 운동은 못 하겠네요.”
“그 반대입니다!”
“예?”
“철물점 어딨죠?”
공원 옆은 임대아파트라 낙후된 아파트다.
아파트 상가에 철물점이 아주 작게 있었다.
“사장님! 우비 있죠?”
“예. 두 가지.”
“투명한 거는 천원. 불투명은 이천 원.”
“천 원짜리 세 개 주세요.”
송선자가 황당한 듯 묻는다.
“두꺼운 게 낫지 않아요?”
“안 보여서 안 됩니다.”
“왜 세 개?”
“제 가방도. 하하.”
김지혁은 서둘러 후보에게 우비를 입힌다.
후보의 옷에 새겨진 이름이 잘 보인다.
그리고 김지혁이 말한다.
“명함은 그냥 매개체에 불과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 아닌가요?”
“아닙니다.”
송선자가 묻는다.
“그러면 뭐가 중요해요?”
“송선자입니다.”
“저요?”
“캠프에서 후보는 전부입니다.”
김지혁이 힘주어 말한다.
“걸어 다니는 간판이 되어야 합니다.”
“예?”
“후보님 스스로가 광고판입니다.”
“아···.”
김지혁이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한다.
“두고 보시면 압니다.”
“뭘요?”
“곧 오늘 얘기를 하는 지지자를 만날 겁니다.”
김지혁은 고층 아파트 단지를 공략하는 방법을 안다. 아파트 숲은 사람이 보이지 않으니 걸어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아파트 앞에서만 건성으로 선거 운동을 한다.
이렇게 되면 유권자의 눈에 후보는 보이지 않는다.
후보의 광고만 보일 뿐이다.
이것이 최대의 마이너스다.
비 오는 날 아파트에는 분명 사람이 있다.
그들은 투표할 확률이 높다.
투표하는 유권자는 권력을 향한 킬러나 마찬가지다.
‘우비를 입는 사람이 드문 시대.’
‘선거인 수가 많은 연령층은 4050.’
‘우비를 입고 혼자 걸어 다니는 송선자.’
유권자의 눈에 가장 바람직한 선거 운동으로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송선자의 절박함도 함께. 화려함으로는 절대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유권자는 후보보다 뛰어나다.
이 전제로 모든 것을 해야 한다.
그것이 사실이니까.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변함없는 절실함.’
김지혁이 선택한 선거 운동전략의 핵심이다.
우비를 입고 걷는 송선자는 당당했다.
우산을 쓴 주민들에게 명함을 건넨다.
우비 입은 송선자의 명함은 버리거나 거부하지 않는다. 송선자의 모습을 보면서 거부하기 힘든 것이다.
유권자는 현명하다.
절실한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
절실한 후보를 접하기 힘들 뿐이지.
송선자가 김지혁에게 묻는다.
“이름도 안 보일 것 같아요.”
“제가 간판이라고 했죠?”
“그렇죠.”
“간판은 글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가요?”
“후보님의 걸음걸이나 그 모든 느낌이 바로 이미지입니다.”
스스로 절실하면 꾸밀 필요가 없다.
본질에만 매달리면 된다.
주변에서 결국 알게 된다.
둘은 단지를 나와 대로변에 왔다.
횡단보도가 있다.
김지혁이 말한다.
“여기서 인사하시죠.”
“그럴까요?”
이제는 송선자도 능숙하고 자연스럽다.
불과 몇 시간이지만 김지혁의 의도를 캐치했다.
김지혁은 스냅사진도 찍는다.
송선자는 타고났거나 당선되고 싶은 마음이 커 보인다.
횡단보도에서 가만있지 않는다.
건너는 아이들을 챙긴다.
할머니도 부축해준다.
지나가는 버스에도 손을 흔든다.
버스정류장 대기 의자에 둘은 앉았다.
“후보님 좀 쉬시죠.”
“예. 좀 젖었네요.”
송선자에게 전화가 왔다.
“예? 아. 호호.”
무슨 내용인지 김지혁이 물었다.
다른 지역의 같은당 후보라고 한다.
“뭐라세요?”
“집중 유세 안 가냐고요.”
“그래서요?”
“차 타고 가다가 저를 봤다네요.”
“뭐라던가요?”
“자기가 다 눈물 난다고. 이번에 꼭 되라고···.”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다.’
김지혁은 송 후보에게 말한다.
“항상 행동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런 것 같아요. 이제 알 것 같아요.”
송 후보는 김지혁이라는 지렛대로 성장한다.
김지혁은 할머니의 한마디에 깨달았다.
“어? 이게 왜 여기에.”
송선자가 놀라서 무엇인가 잡는다.
다른 당 광역의원 후보의 명함이다.
무려 100장이 그냥 놓여있다.
‘광역의원 후보 한보당 기호 2번 이상한.’
김지혁이 말한다.
“후보님 잠시 비키세요.”
그리고 김지혁은 DSLR과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는다.
사진보다 영상이 확실하니까.
그리고 김지혁이 말한다.
“명백한 선거법 위반입니다.”
“그래요?”
명함을 뭉텅이로 뿌리거나 놓아두면 선거법 위반이다. 대부분 약식으로 경고 조치를 받기 일쑤지만 상황에 따라 변수가 된다.
송선자가 말한다.
“신고하시게요?”
“일단 묵히죠.”
“왜요?”
“지금은 새총밖에 안 됩니다.”
“아···.”
선거 운동을 편법으로 하고 입법 기관에 들어가겠다는 출마자들. 녹슨 철판을 송선자라는 지렛대로 김지혁은 들어 올려서 엎을 생각이다.
‘후보가 유권자를 돕고. 유권자가 후보를 돕다.’
선거전략가로 자원봉사를 하는 이유다.
김지혁은 멈추지 않고 진격에 진격을 거듭할 것이다.
송선자의 파란을 위해.
유권자의 파란을 위해.
- 작가의말
그림. ADDA
공모전 기간 내내 아낌없이 응원과 격려 그리고 읽어주신 독자님과 작가님들께 깊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게는 너무나 행복한 나날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웹소설도 좋지만 판타지보다 더 판타지스러운 삶의 조각들을 소설로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곧 공지에 ‘집필의 변’을 올리겠습니다.
부족한 글에도 매일 기쁨을 주신 작가님들을 저도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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