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가 판을 바꾸다
"소수의 신경 쓰는 사람들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믿지 마라. 사실 그들이 세상을 바꿨던 사람들이다."
- 마거릿 미드 -
동네 맏언니 타입의 송선자.
첫인상에서 순박함이 드러난다.
키는 크고 다부진 모습이다.
겉으로는.
화투패를 다 보여주면서 화투를 칠 것 같은 성격으로 보인다.
이런 사람이 정치하면 하이에나들에게 물어뜯길 수 있다.
반면에 동네 주민들과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인성일 것 같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단편적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전략가가 피해야 할 덕목이다.
상황에 맞게 그 사람의 진가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전략가다.
최한숙이 먼저 말한다.
“경선이 너무 힘들었어.”
“저는 이런 경우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지혁이는 지방선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진입장벽이 낮은 것이 지방선거다.
물론 총선이나 대선에 비해서.
‘문이 쉽게 열리면 길은 험한 법이다.’
지방선거는 그야말로 복잡함의 끝판이다.
“지혁이는 선자 인상이 어때?”
“고생 많이 하실 것 같습니다.”
“왜?”
“정치하면 안 되는 분 같은데요?”
“제대로 봤네. 호호.”
김지혁은 있는 그대로 말한다.
송선자는 전화가 걸려 와서 잠시 비운다.
그러자 최한숙이 말한다.
“결심은 했지?”
“방금 했습니다.”
“오케이!”
김지혁은 송선자라는 마중물을 만났다고 판단했다.
펌프질을 통해 판을 뒤집어 보고 싶은 욕망이 일어났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겠다.’
‘못된 사또의 밥그릇을 엎어버릴 기회다.’
어설픈 성공은 실패와 다름이 없다는 게 김지혁의 판단이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승리를 하고 싶어졌다.
‘역전이 아니라 반격.’
‘신승이 아니라 압승.’
지금 김지혁의 머리에 담기는 단어들이다.
김지혁이 말한다.
“이기겠습니다.”
“선거를?”
“전부 다 이겨야 합니다.”
“무슨 말이지?”
“같은 당도, 다른 당도, 단체도. 모두 경쟁 상대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는 건가!”
송선자의 위치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여기 오기 전에 김지혁은 여러 조사를 했다.
‘나’ 번으로 연달아 당선된 사람도 드물지만.
‘나’ 번은 바람이 불면 더 위험하다.
바람이 불면 ‘묻지마’ 투표다.
같은 당의 ‘가’ 번이 표를 독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치열한 중선거구 중의 하나.
여기서 압승한다면 판만 바꾸는 게 아니라 당과 동네도 바꾼다.
김지혁이 단호하고 또렷하게 말한다.
“제가 이기겠다는 것은 ‘가’ 번입니다.”
“가 번을? 그런 경우는 없었어.”
“그 정도 아니면 제가 합류할 이유가 없습니다.”
“좋아. 지혁아! 너답다.”
송선자가 전화를 마치고 들어왔다.
***
김지혁은 지역 현황 이야기부터 한다.
송선자에게 묻는다.
“지난 선거 투표소별 득표 현황 분석을 해보셨어요?”
“정확한 통계 숫자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알 리가 없다.
후보 등록부터 꾸역꾸역 일정을 겨우 맞추는 후보가 대다수.
확인차 물어봤을 뿐이다. 기대도 안 했다.
자료를 분석한 후에 방법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전략이다.
통계를 귀로만 듣고 ‘감’으로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어차피 기초의원에게 캠프라는 개념이 약하다.
동네 모임 하는 장소 정도?
하지만 김지혁이 이번에 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가장 아래의 선거.
선거 조직의 ‘세포’와도 같은 캠프.
기초의원 후보의 캠프.
이것을 시스템으로 만든다면?
김지혁 본인의 인생에도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판에서 하나의 효시가 될 것이다.
‘작은 틈이 둑을 무너뜨린다. 둑은 틈을 막을 수 없다.’
전략가적인 시각에서 장점이자 단점은 적은 인원이다.
즉, ‘소수 정예’가 해답이 될 것이다.
모두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누가 아프거나
누가 포기하면
전력 누수가 크다.
소수가 핵심적인 기능들을 모두 수행하기 때문에 큰 캠프보다도 더 어려울 수 있다.
김지혁의 선거 캠프 업무 체계는 크게 5가지로 분류한다.
‘정책. 기획. 홍보. 회계. 조직’
상사의 비즈니스나 영업조직에서도 유사하다.
결국 마케팅 요소를 어떻게 선거에 녹여내느냐가 문제다.
규모가 커져 봐야 더 양만 많아질 뿐이다.
소수가 한다면 여러 가지를 동시에 실행해야 한다.
큰 캠프도 인원 누수가 빈번하다.
욕망의 충돌로 튕겨 나가는 돌멩이들이 많다.
이렇게 되면 극한의 선거운동을 한다.
이 상황에 흔히 쓰는 속어가 있다.
‘갈려 나간다.’
맷돌에 갈리듯이 일에 갈려 나간다는 의미다.
최한숙과 송선자와는 달리 김지혁의 눈에는 보인다.
***
김지혁이 대답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홈페이지에 있습니다.”
“아 그래요?”
“과거 모든 선거에 대한 통계가 있습니다.”
“미리 볼 걸 그랬네요.”
“안 늦었습니다. 하하.”
“꼭 볼게요.”
“통계를 보시고 판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자 최한숙이 말한다.
“그렇지. 상황을 알고 지역을 봐야 계획을 세우지.”
“맞습니다. 투표소별로 유권자 숫자의 차이가 큽니다.”
“맞아. 그거 중요해.”
“대로변이 사람은 많아 보여도 유권자는 적을 수 있습니다.”
“맞아. 주소지 기준이니까.”
“감으로 하는 선거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송선자가 말한다.
“맞는 말씀인데요. 통계로 분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가 통계학자는 아니죠.”
김지혁이 이어서 대답한다.
“정량적인 분석이면 됩니다. 그 정도면 선거가 수월합니다.”
최한숙이 묻는다.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
김지혁은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는 것을 비즈니스로 알고 있다.
매사 판단에 필요한 것은 간명하다.
‘신속. 정확.’
정확도가 높고 속도가 빨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고뇌하다가 세월만 가면 선거 끝난다.
이번에는 태블릿을 꺼내서 바로 입력해서 보여준다.
최한숙과 송선자는 가까이 몸을 당긴다.
“요약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투표소별>
1. 유권자 많은 곳.
2. 투표율이 높은 곳.
3. 유권자 많고 투표율 높은 곳.
4. 유권자 적고 투표율 낮은 곳.
5. 유권자 적고 면적 넓은 곳.
6. 유권자 많고 면적 좁은 곳.
7. 속한 정당이 득표율 높은 곳
8. 속한 정당이 득표율 낮은 곳
“대략만 기준을 잡아도 이렇게 나옵니다.”
김지혁이 쭉쭉 태블릿에 써 내려가자 둘은 당황한다.
김지혁은 급한 대로 지역별 뼈대만 추렸다.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쓴 것이니까.
최한숙이 말한다.
“이걸 다 외우고 다니는 거야? 미친 건가?”
“이걸 왜 외웁니까. 패턴일 뿐인데. 하하.”
“그래도.”
최한숙과 송선자는 멍하니 있다.
이 분류에 따른 가장 큰 변수는 일정이다.
선거법은 꽤 촘촘해서 본선거 이전에는 제약도 따른다.
경선으로 번호가 늦게 확정된 송선자에게는 유리한 것이 ‘1’도 없다.
일정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김지혁이 거침없이 말한다.
“‘핵심 우세’ ‘분산 열세’ ‘집중 공략’ ‘관망’ 등의 키워드로 분류해 놓고 전략을 짜겠습니다.”
그러자 최한숙이 묻는다.
송선자 후보는 어안이 벙벙해 있다.
“이런 방식이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지?”
“일정을 산출할 때 저는 2주 단위로 뽑습니다.”
“그래?
“10일을 기준으로 지역을 도는 일정을 만듭니다.”
“그럼 우리는 대략 40일에서 50일이네. 주말은?”
“주말은 특별하게 구성해야 합니다.”
선거의 주말은 특별하다.
캠프마다 전략에서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공원이나 체육관 같은 곳을 김지혁은 선호한다.
현지 주민이 잘 있는 곳.
‘선거에서는 지역 주민만 사람일 뿐이다.’
예비 후보 기간에 미리 송선자는 움직였다.
이름만 알렸을 뿐이다.
그런데 상상도 못 한 ‘나’ 번이다.
‘송선자는 본선거 전에 갈려 나가야 한다. 그러면 당선이다.’
김지혁이 말한다.
“막연하게 움직이면 안 됩니다.”
“맞아. 비효율적이야.”
“지역을 5단계로 나누어 비중을 차별해야 합니다.”
“어떻게 차별화해?”
“핵심 공략 지역을 관망 지역의 3배 정도로 일정에 넣어야 합니다.”
멍하니 듣고만 있던 송선자가 말한다.
“그 이외의 지역은 너무 홀대하는 모습으로 보일 텐데.”
“그 부분도 맞는 말씀입니다.”
예상한 김지혁이 말한다.
“유세차나 선거운동원으로 신속하게 훑는 것으로 대체합니다.”
“아. 그런 생각을 못 했네요.”
“지난 패배 통계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사람 잘 안 바뀝니다.”
그렇다.
제대로 송선자가 바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그때 안 찍었던 사람은 또 안 찍는다.
***
‘송선자만의 바람이 필요하다.’
적군과도 아군과도 싸워야 한다.
동네 유권자들을 우군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유일한 답이다.
김지혁은 송선자의 듣는 태도를 지켜봤다.
생각보다 태도가 훌륭하고 진중하다.
선거운동 현장에서의 전투력도 기대할 만한 피지컬이다.
키가 큰 편이면서 다부지다.
이미지만 잘 만들면 신뢰감을 주기 좋은 외모다.
최한숙이 어제 전화로 말한 것이 있다.
“선자 별명이 ‘스킨십의 제왕’이야.”
“유권자들한테 머뭇대지를 않아요?”
“대한민국에서 최고일걸?”
김지혁은 최한숙의 눈을 믿고 판을 갈아엎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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