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연수 커넥션을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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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남용은 보다 위험하다.”
-E.버어크-
최한숙은 친구를 도우려고 한다.
물론 훌륭한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지혁은 누구도 믿을 수 없다.
스스로 관철하고 싶은 공약에 맞는 후보를 도울 뿐이다.
선거캠프도 김지혁의 의지대로 바꾸는 것에 동의한 후보만 돕는다.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투표.
표를 얻기 위한 전초 기지 선거캠프.
정치인이 유권자의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아는 유일한 시기인 선거.
그 전장에서 전략가로서 김지혁은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
최한숙이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진다.
“말해봐.”
“해외연수가 문제 되는 것이 뭐죠?”
“일하러 가는 게 아니라 놀러 가니까.”
“놀아도 세금으로 노니까요.”
“사람들이 그래서 더 싫어하지.”
김지혁은 자신 있게 말한다.
“해외연수를 가서 일만 하게 한다면요?”
“그러면 안 갈려고 할 것 같아.”
“누나가 아까 말씀하셨잖아요. 문서도 제대로 못 만든다고.”
“그래서?”
“보고서를 직접 쓰게 해야죠. 그것도 개인별로.”
“지금은 상임위별로 ‘퉁치기’로 내지?”
“바로 그거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김지혁이 말한다.
“전세 사기 사건을 예로 들게요.”
“전세 사기?”
“예.”
“다른 얘기 아냐?”
김지혁은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면서 말한다.
“본질을 보면 부동산중개인이 방관하고 묵인하는 것이 핵심이죠?”
“맞아. 동의해.”
“중개인은 뭔가 이익이 되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 사람들은 피해는커녕 득이 되지.”
최한숙이 집중한다.
“해외연수 따라가는 공무원은요?”
“뭐가 이득이 있지?”
“쓰던 보고서 짜깁기하고 공짜로 해외여행 가죠.”
“그렇네.”
“그 기간은 휴가도 아니고 일 핑계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는 거네.”
“바로 그거예요.”
최한숙이 말한다.
“이해는 가는데. 어떻게 해외연수를 못 가게 해?”
“공무원이 못 따라가게 하면? 그것도 조례로 만들면?”
“아. 그러면 보고서를 대신 써줄 수가 없구나!”
“의원들이 알아서 써야죠.”
“그러면 관광은 힘들겠네? 호호.”
“이런 공약을 친구분이 해줘야죠.”
‘서류도 혼자 못 만드는데 법을 만드는 직업이 된다?’
‘총 못 쏘는 군인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할까?’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서 김지혁이 적으면서 설명한다.
“잘 보세요. 이 골자로 조례를 만들면 돼요.”
“그래. 어디 볼까?”
[시의원 해외연수는]
1. 공무원 또는 여행사가 동행하지 않는다.
2. 모든 경비는 증빙서를 첨부하여 공개한다.
3. 보고서는 개인별로 작성한다.
4. 현지에서 실시간 영상 라이브로 출퇴근 보고한다.
대부분 세세히 보지 않기 때문에 해외연수만 욕한다.
속을 들여다보면 완벽한 ‘세금 날로 먹기’ 시스템이 존재한다.
상임위원회나 몇 그룹이 가서 보고서도 하나를 낸다.
그러니까 10명이 몰려가서 보고서는 하나다. 그것도 공무원이 만든다.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베껴서 옛날 사진을 올렸다가 비난받기도 한다.
정말 웃긴 것은 이거다.
자신들의 의회 영상은 라이브로 송출한다.
그런데 해외연수를 가는데 그 현장은 영상으로 송출하지 않는다?
왜일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정치인은 관종이자 홍보 중독자다.
그런데 알리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욕망을 단단하게 결합한 것이 ‘해외연수’다.
월급도 받고.
국민이 돈 대주고.
공무원이 보고서 써주고.
안내는 여행사가 한다.
‘관광하기에 최적의 시스템 아닌가?’
이것은 ‘삥뜯기 조직’에 가까운 시스템이다.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니까 국민이 비난해도 나가는 것이다.
김지혁은 고리를 끊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고리를 끊어 내면 가라고 해도 안 갈 것이다.
‘공무원, 여행사, 기초의원의 고리를 끊으면 된다.’
여행사는 날로 먹는 매출을 못 하게 될 것이다.
공무원은 공짜 여행을 못 갈 것이다.
시의원은 일하러 가는 위선을 못 떤다.
국민은 자신의 세금을 지켜낼 것이다.
사실 여행사도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누군가 이렇게 김지혁에게 물었다.
“여행사가 없으면 해외를 어떻게 가?”
“군대 갈 때 엄마도 데리고 가시죠?”
“에이 그건 아니잖아.”
“아니긴 뭐가 아닌가요?”
어물쩍 말하는 사람에게 김지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도.”
“해외 가서 혼자 일도 못 하면 나가봐야 나라 망신 아닌가요?
“...”
***
김지혁의 노트를 보고 최한숙은 동의한다.
“이거야! 너는 판을 본다니까!”
“본질을 파야죠.”
“좋다! 이거.”
“후보 공약으로 쓰세요! 물론 지켜야 하고.”
“지혁아 꼭 네가 해줘라. 응?”
단순한 소개로 확답을 할 수는 없다.
대답을 뒤로 미루고 김지혁은 화장실을 다녀온다.
최한숙이 다시 말한다.
“지혁아. 서류를 못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아?”
“치명적인 것이 있나요?”
“너 행정감사 알지?”
“알죠. 국감이나 행감이나 유사하잖아요.”
“맞아.”
최한숙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행정에 대한 감사하는 거잖아.”
“그렇죠.”
“자료 준비할 게 많겠네요.”
“의원들이?”
“아까 말했잖아. 서류가 안 되는 사람이 태반이라고.”
“그럼 어떻게 해요?”
김지혁은 사실 이것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공무원들이 보고한 내용 보고 감사를 해.”
“예? 정말요?”
“지적할 것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공무원이 쓴 보고서를 보고 지적하는 게 보통이야.”
“그래서 누나가 문제가 있다고 하는 거구나.”
김지혁이 한탄하면서 말한다.
“형사가 도둑보고 조서 쓰라는 거네.”
“하하하. 지혁이 너는.”
“그렇잖아요. 잘 못한 게 있는지 찾아내는 건데.”
김지혁이 물을 마시고 말한다.
“‘제가 잘못한 것은 이것입니다.’ 이러는 공무원도 있나요? 아이구.”
“시민들이 알면 기겁할 일이지.”
최한숙은 정치 참여가 세상을 유지한다고 본다.
정치인이 아니라 이런 사람들이 삶 속에서 정치로 세상을 바꾼다.
하지만 혼자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김지혁을 찾은 것이다.
최한숙이 말한다.
“이왕 네가 봉사를 할 것이면.”
“그러면요?”
“그 마음을 실험해 보면 어떨까?”
“말씀은 이해했어요.”
김지혁은 총선과 대선만을 겪어 보아서 지방선거 자체가 생소하다.
그런데 최한숙의 얘기를 듣고 보니 바닥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최한숙이 계속 김지혁을 설득한다.
“그런데 이미 한 군데를 결정했다고 하니까.”
“그렇죠.”
“거기도 아직 후보로 확정된 거는 아니잖아.”
“아직은 유력한 거죠.”
“세상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건 누나 말이 맞아요.”
최한숙은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그 후보 안 되면 다음 순위로 내 친구 좀 부탁할게.”
“시장 후보로 공천 못 받으면 그렇게 할게요.”
“그래 주기만 해도 정말 고맙지.”
김지혁은 시장 후보가 공천을 못 받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인심이라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수락했다.
최한숙은 김지혁의 조건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
조건을 따르지 않으면 김지혁은 일을 결단코 하지 않는 것을 안다.
김지혁이 말한다.
“약속을 하나 해주셔야 해요.”
“어떤 거를?”
“합의를 본 ‘실행안’에는 토 달지 말고 캠프의 뜻을 따를 것.”
“아마도 네가 하자는 대로 전부 다 따를 거야.”
“그래도 확답이 필요해요.”
“그건 걱정 안 해도 돼.”
김지혁이 걱정하는 것이 있다.
기초의원은 혼자 선거를 뛰는 것이 태반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면 이권 관련자가 돕고 있다.
작은 캠프라고 살림이 작은 것도 아니다.
세금으로 충당해주는 선거 보전비용도 작지 않다.
먹을 게 있다는 얘기다.
지인들이 안타까워서 돕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지인들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한계가 있다.
그래서 김지혁은 옆에 붙어서 돕는 게 아니라.
선거캠프를 체계적으로 시스템화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다.
굳이 사무실에 다 들러붙어 있을 이유는 없다.
희생하면서 자원봉사를 해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구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평소에 그런 사람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뭔가 생각이 난 듯 김지혁이 말한다.
“바람이 부니까 어렵지 않을 것 같기는 한데.”
“공천이 더 치열하지.”
“공천만 받으면 될 것 같으니까?”
“맞아.”
최한숙이 궁금한 것을 묻는다.
“네가 돕기로 한 후보는 컷오프 괜찮아?”
“여론에서 앞서서 컷오프는 걱정도 안 하던데요?”
“근데 소문이 이상하더라고.”
김지혁도 알고 있었다.
한쪽 당으로 바람이 불면 그 당의 후보는 당선 확률이 높다.
후보가 되면 곧 당선이라는 생각에 공천 경쟁이 과열된다.
이럴 때 공천에서 사전에 탈락시키는 ‘컷오프’.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으로 행해지는 경우도 많다.
‘권좌의 게임’
김지혁이 말한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공천이란 게 그렇더라.”
“뒤에서 움직이는 것이 더 크죠.”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김지혁은 최한숙에게 정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맞장구를 쳐 줄 뿐이다.
김지혁이 자기의 뜻을 펼치지 못할 바에야 굳이 선거를 도울 이유는 없다.
그림. ADDA
- 작가의말
<용어 설명>
*공천제도 : 공천은 선거할 때 정당에서 후보를 추천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국회의원 총선거와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을 추천할 때를 뜻한다.
*컷오프 : 공천 심사 도중에 당 차원에서 출마예정자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는 것. 대부분 서류 심사를 통해서 진행한다.
*행정감사 : 지방의회에서 시민의 권리를 대신해 의회에서 지방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제도 중의 하나. 지방정부의 예산이나 행정 전반에 걸쳐서 감사를 하는 것. 국회는 국정감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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