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과 함께 출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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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는 소총과 같다. 둘의 유용성은 모두 사용자의 특성에 달려있다."
- 시어도어 루스벨트 -
김지혁은 사무실 캐비닛을 열고 뭔가 챙기고 있다.
그러던 중 강태현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언제 한가하세요?”
“난 시간이 많아. 네가 바쁘지”
“바쁜 척해서 죄송해요. 하하.”
웃으면서 강태현이 말한다.
“며칠 있다가 시간 내주세요.”
“무슨 일 있어?”
“상의드릴 게 있어서요.”
김지혁이 대답한다.
“언제든지! 미리 알려만 주면 돼.”
“형! 감사합니다.”
김지혁은 캐비닛에 들어갈 기세다.
DSLR. 미니짐벌. 액션캠. 케이블. 보조배터리 20000mAh. 핸드폰 공기계. 핸드폰 짐벌.
“DSLR 짐벌은 차에다 두어야겠지?”
평소에는 잘 안 메는 방탄 나일론 백팩을 꺼냈다.
내부 분리 수납이 20가지나 되는 가방.
촬영 장비와 소품을 다 챙긴다.
작은 DSLR에 맞게 망원렌즈 대신 번들렌즈를 장착한다.
마지막으로 작은 노트북을 백팩에 넣었다.
***
기정시청역 앞. 출근길 인파가 밀려온다.
저쪽에서 송선자가 김지혁을 부른다.
“여기 있어요!”
김지혁이 손을 흔들어 보인다.
그리고 이쪽으로 와달라고 손짓한다.
“식사하셨습니까?”
“예. 대표님은요?”
“저는 아침 안 먹습니다. 하하.”
“뭐라도 드셔야죠.”
김지혁이 말한다.
“명함 가지고 오셨죠?”
“200장씩 다섯 통이요.”
“한 통 빼고 저 주세요.”
그리고 김지혁은 백팩에 다 넣는다.
수행은 후보를 짐으로부터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송선자는 조끼 차림이다.
예비라는 말이 적혀 있지만 ‘1-나’ 번호도 있다.
김지혁이 말한다.
“지갑. 차키. 핸드폰 다 주십시오.”
“예!”
“혹시 모르니 현금만 주머니에 넣고.”
“아! 예.”
명함과 현금만 후보가 가지고 있게 했다.
그리고 김지혁이 말을 더한다.
“송선자를 명확히 말해야 합니다.”
“기호와 번호는요?”
“너무 길어서 이름이 안 알려집니다.”
“예. 이해했어요.”
김지혁이 힘주어 말한다.
“저는 항상 20m 뒤에 있을 겁니다.”
“왜요?”
수행이 옆에 있으면 주민에게 부담도 되고 후보가 덜 드러난다.
“사진 찍을 때는 손짓하세요.”
“예. 그렇게 할게요.”
“여기 블루투스 이어폰이요.”
“아. 이것도 가져오셨어요?”
“그럼요. 하하.”
송선자가 말한다.
“지금 사람이 많으니까. 인사부터 할게요.”
“예. 하시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김지혁은 송선자를 보내고 근처 건물 옆에서 보고 있다. 지금부터 김지혁의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
‘공간을 스캐닝하라.’
송선자의 움직임.
행인의 동선.
유권자의 반응.
주변 상가의 상황.
모든 것을 시시각각 머리에 담아야 한다. 그래야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선거 운동’이 가능한 기초들이 쌓인다.
후보는 출근길 사람들에게 인사하면서 명함을 주고 있다.
“송선자입니다.”
“예···.”
갑자기 누군가 후보에게 다가온다.
“언니!”
“어디 가?”
“오늘 알바 생겨서.”
“잘됐다. 호호.”
“준비 잘 돼가?”
“열심히 할게요오! 호호.”
그러기를 1시간
명함 200통은 다 소진했다.
생각보다 후보의 ‘명함 전투력’이 좋다.
김지혁이 후보에게 휴식을 권했다.
둘은 카페에 들어섰다.
따뜻한 카페라떼 두 잔을 시켰다.
음료 주문하면서도 송선자는 명함을 건넸다.
50대 아저씨가 들어온다.
그러자 송선자가 벌떡 일어선다.
“사장님!”
“어. 여기서 뭐 해?”
“커피 마시죠. 호호.”
“열심히 해! 쉴 시간이 어딨어?”
아저씨는 송선자를 걱정한다.
“야단만 치시고. 호호.”
“이번에는 돼야지!”
“이따 밥 먹으러 갈게요.”
“좋은 거 먹고 힘내! 딴 거 먹어!”
“사장님 짬뽕이 최곤데요.”
김지혁은 속으로 약간 서운했다.
점심 뭐 먹을지 묻지도 않고 결정하다니.
‘식권은 기본권인데···. 흐흐흐.’
후보의 말로는 옆 짬뽕전문점 사장이라고 한다.
알고 지낸 지 꽤 오래된 골목대장 자영업자.
그래서 밥 먹으러 간다고 했다는 것이다.
후보는 확실히 스킨십이 뛰어나고 감각 있다. 김지혁은 보조배터리를 꺼내고 후보 핸드폰에 연결하고 건넨다.
그리고 DSLR을 꺼내서 후드를 역방향으로 끼운다.
주민들이 커메라에 부담을 안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
지하철 인사에 대해 품평한다.
“후보님. 동선을 더 바깥으로 하죠.”
“왜요?”
“전철역 초입은 사람들이 조급합니다.”
“그렇기는 해요.”
그리고 김지혁이 말한다.
“전철역 바로 앞에 골목 신호등 있죠?”
“거기요?”
“신호 기다리는 사람들한테 인사하죠. 내일.”
“아! 그 생각을 왜 못했지!”
사람들이 느긋한 순간이 후보에게는 기회다.
김지혁이 DSLR을 가리키면서 말한다.
“해상도가 좋은 사진 좀 찍겠습니다.”
“마음껏 찍으세요! 전 좋아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초상권이 있어서 함부로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죠?”
사진은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김지혁이 당부한다.
“주민이 동의하면 후보님이 손짓하세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요?”
“예. 양해 구하고 찍으면 됩니다.”
“원래 이렇게 하나요?”
김지혁은 송선자에게 설명했다.
김지혁은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 시선으로 선거 운동을 봤다. 그들이 싫어하는 것 중의 하나가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가방에 카메라를 넣고 동의가 있을 때만 찍었다. 그러자 후보는 더 돋보이고 주민들은 덜 불편해했다.
송선자가 듣더니 말한다.
“그랬군요. 좋네요.”
“우리가 불편하면 주민이 편합니다.”
“이 말씀 슬로건으로 쓰고 싶은데요?”
“다듬어서 만들어 보죠.”
둘은 카페를 나와 주민센터 근처 공원으로 간다.
사실 김지혁이 이 동선을 권했다.
이유를 듣고 송선자가 놀랐던 부분이다.
‘이 시간 주민센터 근처 공원에 있는 사람이 투표할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사람이 많다고 아무 데나 선거 운동하면 안 된다.
한정된 자원으로 금덩이를 캐려면 치밀해야 한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 절반은 투표 안 한다.
슬프게도 이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확실히 투표할 사람’ 한 명이 중요하다.
전략적인 동선만이 제한된 시간에서 빛을 낸다.
***
송선자가 공원으로 가는 골목으로 향하고 있다.
김지혁은 뒤에서 멀찌감치 따라가고 있다.
휠체어 탄 젊은이가 송 후보를 부른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으로 보인다.
상체는 다부지고 얼굴은 훤칠하다.
송선자를 부르는 목소리도 또렷하다.
“저기요. 이리 와 보세요.”
“예! 송선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러면 안 돼요!”
20m 거리라 둘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는다.
약간 소리치는 것이 찜찜하다.
다른 당 지지자거나 정치를 혐오하는 주민일 수 있다.
어쩌겠는가?
송 후보가 택한 세상인 것을.
명함만 주고 간단한 인사를 하고 공원으로 갈 줄 알았다.
안 싸우는 걸 보니 김지혁은 안도한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간다.
1분.
10분.
30분.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되는데.’
김지혁은 답답하다.
빠듯한 일정에 한 사람에게 너무 시간을 쓴다.
송선자는 계속 고개를 끄떡이면서 호응만 하고 있다.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봐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김지혁은 아무 일 없기만 바랄 뿐이다.
갑자기 송선자가 이쪽에 손짓한다.
‘사진 찍는다고?’
다툰 게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게다가 이렇게 찍는 사진은 지하겠다는 말이니까.
송선자가 활짝 웃으면서 말한다.
“사진 찍어주세요!”
둘은 팔씨름하듯 손을 잡는다.
‘여성 후보가 이런 자세를?’
송선자는 볼수록 남다른 매력이 있다.
“자 짧게 5초 영상도 찍겠습니다!”
김지혁이 외치자 둘은 더 손을 꽉 잡는다.
“송선자 파이팅!”
짧은 응원 영상을 찍고 나자 젊은이가 말한다.
“기철우라고 합니다. 우리 누나 잘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아···. 예! 열심히 돕겠습니다. 하하.”
김지혁은 당황했다.
‘처음 만난 지역 주민이 지금 우리 누나?’
기철우가 말한다.
“운동선수였는데 교통사고로 다리를 못 써요.”
“예···.”
그리고 김지혁이 묻는다.
“원래 민진당 지지자신가요?”
“아닙니다. 송선자 지지자 할 겁니다!”
“지금 잠깐 봤는데요?”
“당선되면 의회에 간다니까 매달 골목으로 온다네요. 누나가.”
“아 후보님이 그러셨군요.”
“그것 때문에만 지지하겠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면요?”
김지혁은 미치도록 궁금했다.
송선자의 필살기가.
그런데 기철우의 대답은 김지혁을 얼어붙게 했다.
“의회 가면 조례를 주민들이랑 함께 만들고 싶다고 해서요.”
“···.”
‘기초의원 후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김지혁은 송선자가 이런 면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스스로 주민과 동일시 하는 후보라니.
지역위원회에서 좋아할 스타일이 절대 아니다.
그러니 공천에서 밀렸을 것이다.
기철우가 이어서 말한다.
“같이 출마한다고 생각하라고 누나가 말했어요.”
“예?”
김지혁은 아찔하다 못해 어지럽다.
‘천재 후보인가?’
“제가 저한테 표 찍는 거잖아요. 송선자 찍으면.”
“···.”
김지혁은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송선자는 주민과 함께 출마합니다.’
송선자는 선거 운동의 괴물이었단 말인가.
3,000분 같은 30분을 쓴 송선자.
김지혁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김지혁과 기철우가 얘기하는 동안 송선자는 행인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기 바쁘다.
김지혁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역위원장에게 얼마나 미움을 샀으면 밀려났을까?’
‘아니면 사또가 원한 것이 옳지 않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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