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를 드러내는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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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만족을 찾느냐 못 찾느냐는 지난 세월의 이야기가 아니라 의지에 달려 있다.”
- 미셀 드 몽테뉴 -
누구라도 출근 시간에는 경황이 없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자기들을 알리겠다고 소리를 쳐댄다.
유권자가 이 광경을 좋아할 리가 없다.
그래도 하는 이유는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때문이다.
‘후보가 절박한 것이지. 시민은 시끄러울 뿐이다.’
김지혁은 이런 구태는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한다.
김지혁이 뜬금없는 말을 꺼낸다.
“실은, 여러분 덕분에 좋은 전략이 나왔습니다.”
“저희 때문에요?”
“예 맞습니다.”
“어째서요?”
김지혁의 생각은 이랬다.
출근하기 바빠서 집중도가 떨어지고 전쟁터 같은 지하철이 홍보에 좋을까?
반면 집에서 나오자마자 여유 있을 때 보는 선거운동원이라면?
오히려 한적한 곳이어서 각인에 좋을 것이다.
진짜 투표할 사람 하나를 건지는 게 중요하다.
표를 얻으려면 유권자가 후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후보를 찍기로 결심해야 한다.
결국에 투표하러 투표소에 가야 한다.
기어코 후보를 찍어야 한다.
표 하나를 얻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길에서 보는 사람이 다 표는 아니다.’
김지혁이 말한다.
“동네에서 출근하는 분은 유권자가 거의 확실하죠?”
“백 프로죠!”
“퇴근해서 전철에서 내리는 분도 가능성이 높습니다.”
“맞아요.”
한 선거운동원이 질문한다. 운동원들의 말문이 터졌다.
“퇴근 인사는 지하철역 안에서 하나요?”
“여러분을 둘로 나누어서 지하철 안과 밖에서 할 계획입니다.”
“흩어지면 안 좋은 거 아닌가요?”
김지혁이 단호하게 말한다.
“오히려 시민들 통행에 방해를 주지 않게 됩니다.”
“그건 그렇네요. 저번에 보니까 거의 전철역에 운동원이 백 명도 넘게 모이니까 사람들이 짜증 내던데.”
“목소리 크게 외칠수록 표는 떨어집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출퇴근, 거점의 인사에 대해서 김지혁은 모두 말했다.
대화를 김지혁이 즐기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동의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나중에 딴소리를 안 한다.
‘사람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진상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
귀가 있다고 상대의 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귀가 있어서 뇌에 소리가 들어갈 뿐이다.
김지혁은 운동원에게 구체적인 장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다른 후보를 포함한 이 지역의 선거운동원은 서로 다 아는 사이다.
시장. 도의원. 시의원을 비롯해 도지사 운동원까지 생각보다 인원이 많다.
무엇이든 먼저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
어디서 정보가 새 나가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그것보다도 김지혁에게는 가장 큰 걱정이 있다.
‘일사불란’하지 않고 ‘우왕좌왕’하는 선거운동원들에 대한 우려다.
선거운동원의 숫자가 많고 호흡이 맞지 않으면 정말 보기 안 좋다.
우왕좌왕하기까지 하면 최악의 난장이다.
그래서 호흡이 맞기 전에는 팀을 나누고 조를 만들어서 서로 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운동원들의 질문이 이어진다.
이제는 후보를 걱정하기 시작하는 눈치다.
후보도 자리에 없는데 말이다.
“후보님이 유세차 연설하거나 선거송 틀 때 안무는 어떻게 하죠?”
“춤을 잘 추시는 분이 계시면 안무를 짜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가요?”
“예.”
의아하다는 듯이 한 사람이 묻는다.
“후보님이 원하시는 게 어떤 춤인지?”
“캠프가 정한 원칙이 있습니다.”
김지혁은 아직 후보와 합의 아닌 합의만 봤다.
‘내 마음대로 하겠다.’
제대로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없다.
동의하지 않으면 돕지 않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김지혁의 전략일 뿐이다.
김지혁이 몇 가지를 제시한다.
“안무는 쉽고 간단해야 합니다.”
“같은 생각이에요.”
“안무 시에는 흰 장갑 착용하겠습니다.”
“좋네요. 그래야 잘 드러나거든요.”
“당부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요?”
김지혁은 중요한 것을 말한다.
선거운동원을 선발할 때 동네에서 이미지 좋은 사람 위주로 부탁했다.
그러다 보니 나이가 있는 운동원도 있다.
“무리가 없는 율동으로 부탁드립니다. 다치시면 절대 안 됩니다.”
“아. 그런 거라면 좋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거운동원들의 대략적인 질문들이 끝나간다.
한편. 후보는 사무장과 함께 선관위에 갔다. 서류를 처리할 게 많다.
일반인은 선거법이 얼마나 촘촘한지 모를 것이다.
생각보다 세밀하다.
선거운동을 대강대강 하다 보면 끝에는 서류에 치여서 아무 일도 못 한다.
김지혁이 확인하려고 묻는다.
“또 궁금하신 게 있나요?”
그러자 휴식에 대해서 운동원이 말한다.
“낮에 휴식한다고 하셨는데요?”
“예.”
“2시부터 3시까지요.”
“맞습니다.”
“그때는 쉬기만 하면 되나요?”
김지혁이 말한다.
“쉬셔도 좋고 정보를 주셔도 좋습니다.”
“어떤 정보요?”
“어떤 이야기도 좋습니다.”
“동네 사는 얘기도 되나요?”
“예. 예.”
그리고 김지혁이 마저 말한다.
“당선되면 후보가 유권자들과 소통해야 하죠?”
“그래야죠.”
“지금은 여러분과 소통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가요?”
“여러분과 소통도 안 되는 후보가 당선되어봐야 뭐하겠습니까?”
“그건 그렇네. 호호.”
김지혁이 이어서 말한다.
“그리고 아이디어도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그럼요!”
“민심의 가장 가까운 곳이 여러분입니다.”
“그렇게 되나요? 호호.”
“꼭 선거운동이 아니더라도 동네의 이야기도 좋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캠프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후보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운동원들은 궁금함이 거의 다 해결된 듯이 보인다.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선거운동원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본선거’의 시작을 의미한다.
13일간의 전력 질주가 시작된다.
‘단 한 명만 생존하는 생존 게임.’
김지혁은 후보와 사무장을 만나면 내일부터 달라질 여러 가지 상황을 이해시켜야 한다.
‘선거 전략가는 일어나서 조율하고 잠들면서도 조율한다.’
* * *
세 달 전 어느 날.
김지혁은 인천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길지 않았던 해외 출장이지만 늘 그렇듯이 출국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귀국은 늘 아쉬움과 함께 쌓인 일들에 대한 중압감을 준다.
그래도 이번 출장에서 얻은 소득들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공항에서 처음으로 하는 일은 바로 ‘통화’다.
김지혁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별일 없지? 나 오늘 들어왔다.”
“우리 조만간 한잔해야지?”
“무사히 잘 다녀오셨죠?”
강태현이다.
김지혁의 가장 똘똘한 후배이자 광고 홍보 전문가.
“당연히 한잔해야죠. 형님! 제 선물도 가져오셨죠?”
“당근! 내일 보자고!”
“예. 형님.”
강태현과 약속을 잡고 나서 여기저기 분주히 전화한다.
밖에서 진행했던 일들을 이제 안에서 마무리할 것이 많다.
그동안 챙기지 못한 일들이 산더미다.
김지혁은 불현듯 생각이 나서 어디론가 전화한다.
“이번에 출마하시죠? 어떻게 잘 되어 가고 있으세요?”
“공천이 문제지 뭐.”
“자신이 있으시니까 결심하셨을 거 아니에요?”
“막상 그랬는데 지금 또 불안하지.”
“힘내세요.”
누군가와의 전화를 끊자마자 또 전화가 왔다.
인정구에 사는 최한숙이다.
“이제 공항 나왔지? 내일은 시간이 어때?”
“내일은 후배랑 저녁 약속이 있어요.”
“오전에는?”
“사무실을 나가봐야 하는데.”
“점심에 사무실 근처로 갈까? 점심 약속 있으면 그 이후 커피 어때?”
최한숙은 다급한 일이 있는 것인지 어떻게 해서든 약속을 잡으려고 한다.
김지혁이 대답한다.
“제조업체 공장장이 점심에 사무실로 와요. 점심도 같이 해야 해서.”
“그러면 오후에 커피 하자.”
김지혁은 빡빡한 일정에 약속을 끼워 넣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한숙이 이렇게 달려드니 어쩔 수 없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면 될 거 같아요.”
“오케이. 좋아!”
“제가 괜히 비싼 척해서 죄송하네요.”
“그럴 리가 있나. 귀국하자마자 보자고 하는 내가 미안해. 호호.”
김지혁은 사실 짐작 가는 것이 있어서 미리 물어본다.
“선거인가요? 이번에는 아무도 안 도우려고 하는데.”
“왜? 무슨 일이 있어? 아니면 바쁜 거야?”
“요즘 바빠서 선거 뛰면 저 죽을 것 같아요. 하하.”
“그렇게 바빠? 내가 대신 해줄 수도 없고. 어쩌지?”
김지혁은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한다.
“이번에는 정말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정말?”
“그리고 선거 자체가 이제는 징그럽네요.”
“뭐 때문에?”
최한숙은 김지혁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궁금했다.
“아시잖아요. 욕망의 화신들이 싸우는 게임.”
“세상이 다 그렇잖아. 새삼 왜 그래?”
“별꼴을 다 보니까. 보는 것만으로도 지치니까요. 하하.”
“그래도 좋은 사람들도 있잖아. 일단 내 얘기를 내일 들어봐.”
김지혁은 정말 이번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
아무 곳에도.
누구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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