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역적의 후예라는 천형(天刑)의 굴레
역적의 후손. 죽을 때까지 아니 대를 이어 후손까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천형과 같은 굴레다.
훗날 사학계에서는 자신의 조부 이괄에 대해 시비가 엇갈렸다.
역성혁명까지 꿈꾸었는지는 모를 일.
단지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반역을 꿈꾼 풍운아(風雲兒)였는지. 아니면 자식의 죽음을 막기 위해 우발적으로 거사를 일으켰는지. 정말로 새로운 나라를 만들 대의(大義)를 품었던 것인지.
벌써 11년 세월이 흘렀다. 효수(梟首)되어 장대에 걸려 있는 할애비의 눈은 뭐가 그리도 억울한지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잊혀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목 잘린 조부와 아비가 꿈에 나타났다.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두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한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변란 속에서 죽어간 사람 중에 유독 처참했던 죽음을 기억한다. 바로 항왜(降倭)들이었다. 그 항왜가 바로 의부 서달이다.
그의 아비는 아직도 살아서 우록동에 칩거하고 있는 사야가 김충선과 함께 항왜의 정신적 지주였다.
가토 기요마사의 선봉장이었던 사야가가 투항하여 선조로부터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무장으로 입신한 데 반해 서아지는 항왜와 함께 변방을 전전했다.
쌓은 공에 비해 평가는 인색했다. 동료들을 살리고 그들의 후손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서북 영변에서 항왜 부락을 만들어 살았다.
만주족과의 빈번한 싸움에서 아무리 전공을 세워도 출세는 힘들었다. 그저 조선을 침략하여 온갖 패악을 저질렀던 왜구와 한 묶음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더러운 항왜. 쪽바리 왜놈 신세를 면할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숨죽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때였다.
반정이 벌어졌고 논공으로 한성판윤을 지낸 이한의 조부인 이괄이 부원수가 되어 북으로 오면서 서달의 삶이 달라졌다.
서달의 아비 서아지가 이괄의 설득으로 수하가 되었고 주종관계를 맺었다. 서로를 알아본 것일까. 두 사람은 피보다 진한 의리로써 맺어진 사이로 발전했다.
조부는 항왜들의 무력을 존중했고 그들로 하여금 단병접전에 약한 서북의 군사들을 조련하게 했다. 짧은 시간에 강군으로 거듭났다.
이제 후금이 침략해도 충분히 막아낼 자신이 생길 무렵. 예기치 않은 일이 터졌다.
이한의 아비 이전이 한명련, 정충신, 기자헌 등과 모의하여 변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고변을 접한 조정에서 이전을 추포하기 위해 평안도 영변으로 임금의 선전관과 금부도사를 급파했다.
대역죄.
삼대가 멸문을 당할 정도로 엄청난 죄다.
이괄은 억울했다. 뚜렷한 증거도 없이 아들 이전의 신병을 요구하는 임금과 조정이 미웠다. 이괄은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거병(擧兵)했다.
“아들이 역적의 누명을 썼는데 그 아비인들 무사하랴.”
평소 군사들을 잘 관리했고 아랫사람들에게 신망을 잃지 않았던지 휘하 장령들이 대의에 떨쳐 일어났다.
영변을 출발한 부원수 이괄의 병력은 노도와 같이 남진을 개시했다. 그는 용병의 달인이었다.
그는 워낙에 칼을 잘 사용하고 전투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항왜를 선봉에 앞세웠다.
서아지와 서달 부자, 사쇄문, 고효내와 같은 평생 칼밥을 먹고 살던 항왜 장수들이 130여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적진에 뛰어들어 날뛰면 훈련이 부족한 조선 관군은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기 일쑤였다.
이괄은 관군이 막고 있는 군사 거점은 과감하게 지나쳐버렸다. 웃기는 게 조선의 북방 방어는 산성을 중심으로 거점 방어전략이었다.
문제는 가장 북방에서 외침을 막아야 할 부원수 이괄의 군대 1만5천이 그런 전략을 속속들이 꿰고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원수 장만과 정충신 같은 쟁쟁한 지휘관들이 있어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들의 병력을 다 합쳐도 이괄의 군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전투력은 그보다 더 떨어졌다.
황주와 마탄, 임진강 방어선까지 돌파한 이괄의 군대는 결국 한양 도성을 함락하였고 인조는 반정 1년 만에 공주로 파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한심하고 치욕스러운 일이다.
갈수록 반란군의 기세는 높아졌고 진압군은 열세였다. 그러나 하늘의 운이 다했던 것일까.
이괄은 너무 자만했다. 안령 무악재 전투에서 그만 정충신과 남이홍 등이 이끄는 소수의 적군을 쉽게 물리치지 못하고 일진일퇴를 하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에 정충신이 기지를 발휘해 고춧가루를 살포하자 대군이 와해되어버렸다.
이 와중에 부장 한명련이 관군이 쏜 화살에 맞아 부상당해 전선에서 이탈하는 불상사가 벌어졌다.
이때 남이홍이 기지를 발휘했다.
“어이쿠. 한명련이 죽었다. 이제 네놈들은 다 죽었다. 이괄이 도망친다!”라고 외쳤고 관군은 사기가 급상승했다.
그렇지 않아도 고춧가루 때문에 혼란한 상황에서 관군이 외치는 소리에 이괄의 군대는 사기가 급전직하해서 모래알처럼 흩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직전까지 병사들의 전투숙련도는 물론이요 병력 규모나 사기 측면에서 월등했기 때문에 조금만 더 몰아붙였다면 승리를 하고 여세를 몰아 공주에 정예군 몇천만 급파해도 정변은 성공했을 터였다.
인조와 관군 입장에서는 마치 하늘이 내린 것 같은 기적 같은 한판의 역전승이었다.
패전하고 도성으로 돌아왔으나 사기가 무너진 군대를 가지고 버티기에는 관군의 기세가 너무 거셌다. 할 수 없이 경기도 광주로 물러났다.
한밤중에 일이 터졌다. 부장 기익헌과 이수백이 배신하여 이괄과 한명련의 수급을 베어 버린 것이다.
이한은 역사를 돌이켜보다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은 순전히 이진한의 기억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 의부 서달에게 들은 내용은 사뭇 달랐다.
한명륜의 아들 한윤 그 개자식이 배신을 때린 것이다. 무장으로서 명성과 경륜이 이괄보다 앞선 한명륜이 주장(主將)이 아니라 부장(副將)이란 것이 문제였다.
한윤은 반란이 성공할 기미를 보이자 기익헌과 이수백을 꼬드겨 이괄을 암살해버릴 모의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않게 다 이긴 전투에서 패하고 퇴각하게 되자 기익헌과 이수백이 이괄과 한명련을 살해해버렸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한윤은 평안도 변경으로 몸을 피했다.
그때 그런 일만 없었다면 광주에서 다시 군을 정비해 얼마든지 관군을 제압할 수도 있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지. 의부께선 조부께서 대의를 가지셨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대의란 것도 불분명했다. 차라리 이씨 왕조를 멸하고 새로 시작할 마음을 품었으면 그리 어리숙하게 일을 처리하지는 않았을 터였으니까. 에이..., 개새끼. 한윤과 그 자식들은 이곳에 와서도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다른 놈은 몰라도 내 반드시 네놈만은 천참만시(千斬萬尸)를 할 것이다.’
이진한의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으나 몸은 이한이다. 골육을 물려준 것은 그래도 이괄과 이전이다.
핑계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원혼을 달래주지 않고는 죽을 때까지 악몽에 시달릴 것 같았다.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던 이한이 녹도가 바라다보이는 강가 어귀에 천둥을 멈추고 땀을 식혔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말 한마디 없이 골똘히 자기만의 생각 속에 빠져있는 주인이 걱정스러웠던가.
“도련님. 뭔 생각을 그리하세요?”
“어! 아니...아니다. 서림아.”
“예. 도련님.”
“부탁이 있다.”
서림에게는 생경한 말이다. 주인처럼 모시는 도련님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을 하신다.
“그저 시키면 될 일을..., 뭔데요?”
“이제부터 나를 형이라 불러라.”
“...에이. 아바이가 경을 칠 텐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리 해. 훗날 철이 들면 나를 주군이라 부르고.”
순간 서림은 몸이 움찔했다. 득보 형과 시란, 바얀이 이한에게 주군이라 부르는 것이 어찌나 멋있게 보였던지.
“저...정말요.”
“그래. 네가 열여덟이 되면 그때부터 나를 주군이라 불러.”
“아...알았어요. 도련님.”
“형이라니까.”
“응. 혀...형!”
서림은 뜨악했지만 기분은 무척 좋았다. 한 살 터울이지만 누가 봐도 이한이 몇 살은 더 먹은 형처럼 보였다. 또 그동안 그렇게 지내 온 것도 맞고.
신이 난 서림이 앞장을 섰다. 그렇게 두 사람은 녹둔도 마석의 대장간에 도착했다.
마대가 반갑게 둘을 맞았다.
“리칸. 어서 와. 빨리 왔네.”
“어! 궁금했거든. 쓸만한 놈이 나왔는지.”
“리칸. 이놈. 내 솜씨를 의심하는 것이더냐?”
뒤에서 야장 노인 마석이 호통을 쳤다. 뭐 화가 나거나 해서가 아니라 나름 반가움의 표현이다. 좀 과격한 것이 흠이지만.
“헤헤. 어르신 그간 별래무양하셨습니까?”
“녀석. 누가 양반 끌텅 아니랄까봐. 알아듣지도 못하는 풍월을 읊고 그래. 따라와.”
이한이 서림과 마대를 거느리고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아직 봄이라 쌀쌀한 바깥공기와는 달리 대장간 안은 화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후끈했다.
“옜다 받아라. 네 아바이 봐서 신경 좀 썼다. 뭐 어지간히 튼튼한 놈과 부딪히지만 않으면 오래 쓸 거야.”
벌써 니루전사의 키와 덩치를 훌쩍 넘어선 이한의 키를 한 뼘 정도는 넘어서는 언월도다. 칼날의 길이만 3척이고 두께와 넓이도 다른 월도와는 꽤 차이가 났다.
창대는 단단한 나무로 만들었고 손잡이 쪽엔 가죽으로 감쌌는데 처리를 잘해서인지 원래부터 한 짝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썩 맘에 들었다. 이 정도 언월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꽤 많은 비용과 공임이 들었을 것이다.
“삯은 벌써 받았다. 잘 쓰거라. 저번처럼 눈먼 철시 따위에 얻어맞지 말고.”
“에이...쪽팔리게...,”
“이놈아. 솔호리 사람들 애간장 태우지 말란 뜻이야. 뭐 여기 녹도 사람들도 걱정 많이 했다.”
대칸 누르하치가 야인을 토벌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번호들이 죽거나 상했다. 적지 않은 야인들이 투먼장을 넘어 함경도 북쪽에 숨어들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다시 강을 넘어갔고 이미 와해되어버린 동해여진에 대한 경계심이 풀린 뒤로는 닝구타 협령을 통해 느슨하게 관리를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선에서 많은 유민들이 강을 넘었다. 그리고 투먼장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솔호 부락이 들어선 것이다.
구룬에서도 이를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굳이 초지도 별로 없는 바닷가 변경의 땅에 큰 관심을 둘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솔호들을 니루로 묶어 전쟁에 이용했다.
녹둔도는 애매한 땅이었다.
왜란이 끝난 이후 갑자기 세력을 키운 여진족 건주위가 해서와 야인까지 통합하는 과정에서 동해여진은 힘의 공백지대가 되었고 조선으로서는 더 이상 위협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항상 여진과의 분쟁이 잦았던 동해야인과의 다툼이 아니었다.
호시탐탐 명나라를 노리던 후금이 후방의 위협을 제거하는 차원에서 조선을 침공하였고 이후 조선의 관심은 서북 변경으로 집중되었다.
녹둔도는 이제 조선인과 야인들이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는 땅이 되었고 조선 유민들이 두만강을 넘어 정착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조선에서 전혀 경계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변방이긴 했어도 금국의 땅이니만큼 함부로 조선군이 월경하지는 않았다.
두만강 너머에 있는 섬 같은 땅이지만 기름졌다.
그래서 조산보와 인근 변방을 지키는 조선군이 먹을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둔전(屯田)을 실시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녹둔도(鹿屯島)라 불리지만 야인들이 볼 때는 섬이 아니다. 얕은 개울만 걸어서 넘으면 녹도이다.
조선에서는 녹둔도(鹿屯島)라 부르고 야인은 녹도(鹿島)라 부르는 그 땅에 이한이 발을 디딘 것이다.
“죄송해요. 대복이 아즈바이는 잘 지내세요?”
“고기잡으러 갔을 거다. 왜 보고 싶냐?”
“예. 못 본 지 꽤 되었잖아요. 검을 겨뤄본 지가 언제 적인지 모르겠네요.”
“하여튼..., 이놈아. 칼이란 것은 나를 지켜주지도 하지만 해하기도 하는 요물이여. 알고 있니?”
농기구보다 무기를 더 잘 만드는 야장(冶匠)이 할 말은 아니다. 마석은 이한이 어렸을 때부터 볼 때면 항상 비슷한 말을 건네곤 했다.
“알아요. 저를 지키기도 하지만 동리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칼이기도 하고요.”
“아이고...말이나 못 하면. 그래 월도(月刀)는 맘에 들어?”
“투먼 최고의 야장께서 만든 건데...당연하죠.”
“흐흠. 뭐...맘에 든다니 다행이다.”
마석은 이한의 칭찬에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얼굴이 붉게 상기된다. 이한이 그냥 단순한 꼬맹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쉰이 넘은 중늙은이와 이제 열여덟밖에 되지 않는 소년의 대화라고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마대와 서림은 곁에서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두 사람의 말을 듣고만 있다.
마석이 워낙 성격이 괄괄하고 드센 탓에 동리 사람들도 어지간하면 쉽게 말을 붙이지 않는다.
갑자기 밖이 소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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