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5화 가문의 일원 - 7
재판은 다음날 바로 진행이 되었다.
성당 바로 앞의 그 넓은 공터에서 재판은 진행이 되었다.
헤이즈에서 하는 것처럼 위엄 넘치고 압도적인 풍경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절차는 다 진행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드릭과 넬슨은 네빌 폴츠비츠 양 옆 의자에 앉아있었다.
물론 온몸이 꽁꽁 묶여서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듣고 말하는 건 가능했다.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대충 얼핏 세어보니 몇 십 명은 되어보였는데, 마을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재판을 보려고 온 것 같았다. 이런 시골에서는 흔하지 않은 구경거리니 이렇게 모이는 것도 당연했지만, 세드릭은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싫었다.
“나, 네빌 폴츠비츠는 왕국의 유일한 지배자이자 정의의 수호자인 아밀 트윈 국왕께 받은 정당한 권리를 오늘 행사하고자 한다. 내 판결에는 정의롭고 공정할 것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다.”
네빌 폴츠비츠는 그들 사이에서 준비해온 선언문을 낭독했다.
“이제 두 피고에게 원한을 가진 자 앞으로 나오시오.”
네빌이 그리 말하자 모여 있던 사람들 사이로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중년 여자였다. 그 여자는 울먹이면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저자가 우리 아들래미를 죽였어요.”
“정확하게 이 둘 중 누가 죽였다는 것이오?”
“저자요.”
중년 여성은 세드릭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자가 우리 아들래미랑 톰네 자식을 웃으면서 칼로 찌르는 걸 제 눈으로 봤어요.”
“어떻게 그 광경을 보게 된 거요?
“저는 저녁으로 먹을 반찬거리를 위해 시장에 왔었는데……. 경비 서고 있다는 아들놈 얼굴도 한번 볼 겸해서요……그런데……저자가 내가 보고 있는 앞에서......”
여자는 목이 메었는지 말을 다 이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감정이 복받쳤는지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한참동안이나 세드릭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마침내 양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흑……흐흐…….”
그녀는 도저히 말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좋소. 이 여자의 말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 있소?”
네빌은 여자가 제대로 증언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는지 그녀의 말을 보충해 줄 수 있는 증인을 찾았다.
모여 있었던 사람들은 한동안 꿀을 먹은 듯 말이 없었다.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방금 나온 말은 무효로 취급할 수밖에 없소. 그럼 이자들은 무죄요.”
네빌의 외침에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딱히 앞으로 나서는 자는 나오지 않았다.
나서는 자가 없는 걸 보고 세드릭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기분이 드는 걸 보니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미련이 남아있었던 모양이었다.
“좋소. 그럼 없는 걸로 알고…….”
“영주님, 제가 증언 하겠습니다.”
네빌의 말을 자르고 앞으로 나서는 자가 있었다. 머리가 조금 벗겨지고 턱수염을 더부룩하게 기른 사내였는데 인상이 조금 험악해 보였다.
“저는 저기 보이는 앞에서 고기 장사를 하고 있는 놈입니다. 어제도 장사를 계속 하고 있었는데……. 저 놈들 둘이 와서 영주님 집에 경비를 서던 경비병 두 명을 죽인 것을 제가 봤습니다.”
“이 자가 죽인 게 확실하오?”
네빌이 손가락으로 세드릭을 가리켰다.
“저자가 칼로 찌르는 것은 확실히 봤습니다만……. 나머지 한 사람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것이오?”
“예.”
“많은 도움이 되었소. 또 다른 증언을 해 줄 사람이 있소?”
네빌의 말에 더 이상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더 이상 없는 걸로 알고 이제 이 두 명의 항변을 들어보겠소. 할 말이 있소?”
네빌은 세드릭과 넬슨을 향해 물었다.
사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사람을 죽인 것이 맞아서 아무런 할 말이 없었다. 죽은 경비병의 어미의 증언과 그를 뒷받침하는 증인이 있는 한 세드릭과 넬슨은 논리적으로 이길 수가 없었다.
“이제 판결을 내릴 것이오.......어디보자…….죄인에 대한 판결을 내리겠다. 피해자의 증언과 그 증언이 증인에 의하여 증명된 바, 죄인 두 명의 살인죄는 확실히 성립됨을 선언한다. 왕국의 정당한 지배자이자, 수호자인 아밀 트윈 국왕께 받은 정당한 권리로 나, 네빌 폴츠비츠는 여기 있는 죄인 두 명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세드릭은 순간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죽는 것이다. 죽는 게 확정이 난 것이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 그래? 어제까지만 해도 넌 사형 받고 싶어 했잖아.
마음속에서 또 다른 자신이 속삭였다. 맞다. 세드릭은 사형을 받고 싶어 했었다. 사형을 받아 죽고 나면 앨리스가 꿈에서 자신을 괴롭히는 일 따윈 없으리라 생각했다.
내가 죽어야 마땅한 놈인가?
짤막한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자신은 전쟁이라는 명목 하에 사람도 많이 죽여 본 인물이었다. 자신의 애인까지도 자기 손으로 죽였다.
죽어도 싸. 너 따위는 죽어도 싸.
아니야.
아니야. 아직 나는 살아야 해.
살아서 앨리스에게……. 그 전투와 다른 전장에서 죽어간 자신들의 동료들에게 그럴 듯한 묘비라도 세워 줘야 하잖아.
그리고 프로스트…….
프로스트!
세드릭은 그를 생각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아직 그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솔직히 말하지. 글랜 가문의 의도대로 행동하고 싶진 않네. 자네들을 죽이고 싶지 않아.]
네빌 폴츠비츠가 어제 자신에게 말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을 죽이고 싶지 않다고 분명히 말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이의 신청, 지금이라도 가능합니까?”
세드릭의 말에 네빌 과 모여 있던 청중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향했다.
“저는 저 피해자의 증언에 공감하지 않습니다. 증언은 사실과 다르며 증인의 진실은 불확실합니다.”
“재판에 대한 선고는 이미 끝났소.”
네빌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세드릭은 심호흡을 한번하고 단박에 말했다.
“재판 자체의 공정함이 의심스럽습니다. 저는 재판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증언으로 내린 판결을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명예와 재산, 기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걸고 결투를 신청하는 바입니다.”
사람들이 다시금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 아낙네와 결투를 벌인다는 말이오?”
“아닙니다.”
세드릭은 고개를 저었다.
“당신……당신에게……. 잘못된 판결을 내린 네빌 폴츠비츠,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세드릭은 네빌 폴츠비츠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의 그릇된 판결로 제 명예가 실추되고 모욕당했습니다. 이 판결의 재판관인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군중들의 웅성거림이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세드릭은 네빌을 쳐다봤다. 그는 울지도 웃지도 않은 무표정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나랑 결투를 하겠다는 거요?”
넬슨은 물으면서도 시선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을 보고 있는 네빌의 시선이 불편했다.
그의 눈빛을 받고 있자니 벌거벗겨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좋아.”
네빌은 무언가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저자를 풀어주고 무기를 주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 경비병들이 다가와 묶여있는 자신을 풀어주기 시작했다.
“결투 받아들이겠소. 바로 지금 여기서 하지. 증인도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소?”
네빌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