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수우족의 장로를 만나다.
109화, 수우족의 장로를 만나다.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하니 배가 로스앤젤레스 강 안으로 들어가 중유를 선적하고 있었다.
비행기도 파도를 피해 강 안쪽으로 들어가 접안 했다.
증기기관 기술자가 인사를 걸어온다.
“어서 오십시오. 대장님!”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가까운 거리에 별일 있겠습니까?”
“배 성능은 어떤가요?”
“예술입니다. 석유 증기기관도 좋았지만 프로펠러의 성능이 압도적으로 좋았습니다. 높은 파도가 쳐도 아무런 이상 없이 잘 작동되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증기선들이 강이나 연안 운송에 이용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파도가 높을 때 물레바퀴처럼 생긴 구동장치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파도가 높으면 물레바퀴가 잠겨서 안 되고, 낮으면 물에 닿지를 않아서 추진력을 상실했다.
그런 이유로 배가 대형화 될 때까지 대양의 항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프로펠러는 항상 물속에 잠겨서 동력을 온전히 전달하기 때문에 증기기관 기술자가 보기에는 예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빨리 온 것이군요.”
“예, 동력이 제대로 전달되니까 그냥 쭉쭉 나가더군요.”
이미 프로펠러가 정답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박정기가 흥분해있는 증기기관 기술자의 말을 끊고 다른 것을 물어 보았다.
“석유 소모량은 얼마나 되나요?”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대략 오크통 30~40통 정도 소모되었습니다.”
박정기가 스마트 폰을 꺼내 계산해 본 결과 700km를 200L 오크통 30개로 왔다면 1km 오는데 대략 10L 정도 소모됐다고 보면 되었다.
정확한 항로와 소모량을 측정한다는 게 아직은 한계가 있어서 이렇게 밖에 알 수가 없었다.
“예상했던 정도의 수치군요.”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석유가 얼마나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밸브만 조절하면 배의 속도가 바뀐 다니까요.”
석탄을 사용하는 증기기관의 경우 속도를 높이려면 창고에서 석탄을 퍼다가 증기기관에 던져 넣어야 한다.
그게 한 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석탄을 많이 태우면 석탄재도 많이 나온다.
벌겋게 달아오른 석탄재를 제거해주는 일 또한 아주 고되고 위험한 노동이었다.
그에 비해서 연료 밸브만 조작하면 화력을 조절할 수 있고, 찌꺼기가 전혀 남지 않으니 보직 중에 이런 꿀 보직도 없다.
“증기기관을 혼자서 다뤄도 전혀 문제가 없겠습니다.”
“그래도 잠은 자야지요.”
“하루 종일 하는 일이 없는 걸요. 가끔 온도계와 물만 체크하면 나머지 시간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도 두 명은 있어야지요. 바람도 쐬고 운동도 하고.”
증기 기술자와의 면담이 끝나고, 시몬스 팀장과 말했다.
시몬스 팀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박정기를 맞이했다.
“대단합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습니다.”
“진정하시고 어떤 점이 좋은지 설명을 해주세요.”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고요. 이렇게 강 안쪽까지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범선에서는 가고 싶어도 바람 방향이 안 맞으면 움직이는 데 제약이 따른다.
그리고 넓은 강이 아니고 좁은 강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람을 거슬러 전진하기 위해서는 갈지자(之) 모양으로 왔다 갔다 해야 하는 데 좁은 강은 그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를 저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작은 보트를 내려서 사람과 물건을 날라야 한다.
그런데 이 배는 좁은 강에서도 방향 조절이 원활하고 전진 후진이 가능해서 강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올 수 있었다.
현대인이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시몬스 팀장은 감동에 젖어있었다.
“그럼 계속 타고 다니시던 가요?”
“아니요, 오면서 새로운 배를 설계했습니다. 이것보다 더 날씬하게 만들면 훨씬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벌써 설계를 마쳤다니 앞으로 생산될 배는 클리퍼에 가깝지 않을까 짐작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범선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클리퍼는 크고 빠르며 종단에는 철선까지 등장한다.
클리퍼가 처음 등장했던 1845년 미합중국의 레이보우호는 뉴욕에서 중국 광동성까지 88일 만에 주파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고 말리카 해협을 지나는 대 장정인데도 불구하고 대단한 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클리퍼는의 최고 속도가 22노트나 되었다고 하니 증기선 보다 훨씬 빠르지만 지속적인 스피드가 아니고 바람의 방향과 풍속이 좋을 때만 가능한 속도다.
반면에 바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증기선은 안정적인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어서 훗날 클리퍼를 밀어내고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다.
“크기도 더 키워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럼 증기기관의 출력이 부족할 것입니다.”
“내연기관을 만들었습니다. 얼마든지 키우셔도 됩니다.”
“오호~ 그 자들이 드디어 만들어 냈군요.”
엔진톱을 분해하다가 걸려서 함께 전기 찜질을 당했던 자들이 내연기관을 만들어 냈다고 하니까 무척 기뻐하는 시몬스 팀장이다.
“성능은 어떻습니까?”
“증기기관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4기를 장착할 생각이니 지금보다 4배는 좋아지겠죠.”
“4개나요? 그럼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나요?”
“아닙니다. 4개를 합쳐도 증기기관보다 작습니다.”
시몬스 팀장의 입이 쩍 벌어졌다.
힘이 4배나 강해지는데 장소는 더 줄어든다니 믿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연료도 훨씬 적게 소모될 것입니다.”
“하하하 그럼 설계를 다시 해야겠군요.”
힘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설계를 다시 한다는 것이 기뻐서 하는 말이다.
그렇게 새롭게 만들어질 배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무전이 들어왔다.
-시장님 북쪽에서 온 손님이 급하다고 자꾸 재촉 합니다. 치익.
“알았어, 한 시간 안에 도착 할 거야.”
-네, 기다리라고 하겠습니다. 치익.
시몬스 팀장과 증기 기술자, 그리고 군기시 장인들이 아쉬워하고 있었다.
“참, 항해사와 범선 선원들을 데려왔습니다. 포로들이니까 잘 감시하면서 항해술을 배우세요.”
“오! 항해사입니까?”
“네, 하와이에서 해적질을 하다가 잡혔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간단하게 하와이에서 있었던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항해사를 데리고 조선에 다녀오라고 했다.
“저도 다녀 오라고요?”
“그럼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사람과 화물을 실제로 실어보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조선소 일을 봐줘야 하는데요.”
“두 달이면 다녀올 수 있습니다. 그때까지 지금 만들고 있는 것만 완성하고 목재를 많이 건조해 놓으면 되잖아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혼란스럽네요.”
“걱정할 것 없습니다. 이런 스쿠너는 그만 만들고 앞으로는 새로 설계한 배로 만들 겁니다. 그러려면 철저하게 검토하고 계산해야 하니까 직접 다녀와 보세요.”
시몬스 팀장은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증기기관 기술자와 군기시 장인들도 당연히 끌려가게 된 것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연료인 중유를 가득 채우고, 조선에 판매할 등유도 잔뜩 실었다.
배는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갔다가 잠시 업무 인수인계를 마치고, 보급품을 싣고 조선으로 떠날 것이다.
모든 조율을 마친 박정기는 피라미드 호수로 돌아왔다.
수우족에서 찾아온 장로와 전사들은 호수에 착륙하는 비행기를 보고 도망가려고 했다.
부시장 톰과 북쪽에서 온 동맹 부족의 병사들이 그들을 간신히 진정 시켰다.
“진정하세요. 저건 우리 시장님이 타고 다니는 비행기라는 겁니다.”
“여기 대장은 새를 타고 다닌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해치지 않으니까, 마음을 가라앉히세요.”
“세상에 이런 기이한 일이 있나?”
박정기는 비행기를 선착장에 정박 시키고 수우족에서 온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세상에 정말 새에서 사람이 나오다니?”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장로와 전사들을 집으로 데려가 테라스에서 차를 대접했다.
“이제 진정이 되십니까?”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그래 어째서 나를 급히 찾으셨습니까?”
수우족 장로는 울분의 찬 목소리와 몸짓으로 억울함을 토로했다.
“백인들이 쳐들어와서 저희 부족 사람들을 보이는 대로 죽여서 씨를 말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억울한 것도 사실이다.
다름 아닌 윌슨이 백인들 요새를 공격하고 정착민들의 말을 모두 잡아갔기 때문에 백인들이 보복을 하려고 대규모로 쳐들어 온 것이다.
이전 부터 오랜 기간 전쟁과 화해를 반복해오던 사이인데, 이번에는 인디언들을 멸족 시키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다.
그 만큼 인디언들은 위협이 된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런 쳐 죽일 놈들을 보았나? 우리는 동맹을 맺었으니 당장 지원 부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수우족 장로가 의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는 동맹을 맺지 않았습니다 만.”
“예? 북쪽에 있는 부족들은 모두 우리와 동맹을 맺었다고 했는데. 아니라고요?”
“네, 어린 전사들이 우리 부족에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도끼와 칼을 줄테니 금을 달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물건들은 우리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동맹을 맺지 않았습니다.”
“정말 그렇게 말했나요?”
“네, 정말입니다. 그리고 백인들을 막으러 왔다고 했지요.”
수우족 장로는 오면서 들은 이야기를 따지고 싶었지만 차마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요새에서 강탈한 구식 총과 비루한 말을 주고 금을 빼앗는 게 동맹인가?’
지금 중요한 것은 부당한 처사를 따지는 게 아니고, 성능이 우수한 총과 총알을 막아주는 모포를 구해가야 하는 게 목표다.
“동맹도 아닌데 도와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총과 모포를 구매하고 싶습니다. 보여드려라!”
전사들이 각자 가죽 가방에서 금덩어리들을 테이블 위에 꺼내 놓았다.
잠시 후 금덩어리가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였다.
‘허흡! 이게 다 얼마야?’
정신을 가다듬은 박정기가 물었다.
“웬? 금입니까?”
“지난번에 온 전사가 금을 받고, 물건을 판다고 하기에 가져왔습니다.”
“총을 원하신다 고요?”
“총보다는 모포가 더 필요합니다.”
‘무슨 모포를 말하는 거지?’
윌슨이 요새에서 싸우다가 총알을 맞고 아파서 죽을 뻔했다고 한 말이 기억났다.
“하하하 아하! 총알을 막아주는 모포를 말씀하시는군요?”
“네 맞습니다. 저희는 그게 꼭 필요합니다.”
“왜죠?”
“요새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모포를 쓰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제 상황을 이해하게 된 박정기는 어떻게 금을 차지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총을 주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 지금 유럽에서 사다 놓은 퍼커션 캡 소총이 500자루나 있다.
하지만 모포는 재고가 얼마 없고, 있어도 팔 물건이 아니다.
‘모포를 쓰더라도 총알에 맞으면 죽는 것 보다 더 아플 텐데.’
“총은 팔 수 있지만 모포는 팔 수 없습니다.”
“그럼 곤란하군요. 이거 넣어라!”
장로도 세월을 헛 살아온 게 아니기 때문에 주도권을 잡으려고 금을 치우라고 지시한 것이다.
“잠깐! 모포는 없어도 요새를 박살 내주겠습니다.”
“벌써 여러 개 만들어 놨습니다. 그리고 계속 짓고 있고요.”
“전부 부숴주고 백인들을 몰아내 주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물론입니다.”
박정기는 호기롭게 답하며 금덩이를 바라봤다.
“그럼 소총 한 자루에 얼마입니까?”
“소총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저 비행기로 싹 쓸어버리면 두 번 다시 쳐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저 큰 새로 싹 쓸어버린 다고요?”
“네, 한번 보시겠습니까?”
박정기가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 전이었다.
‘오늘 안에 모두 해치울 수 있겠는 걸.’
그러지 않아도 비행기라는 것을 타보고 싶었던 장로는 흔쾌히 대답했다.
“네, 보고 싶군요.”
“그럼 바로 보러 가시죠.”
“이건?”
“금방 다시 올 겁니다. 그냥 빨리 갔다 옵시다.”
“으음, 그럼 다녀와서 애기 하죠.”
수우족 장로와 전사들도 박정기를 따라 나섰다.
“장금아 점심은 비행기에서 먹자”
“네, 준비 할게요.”
박정기는 어리둥절해 하는 수우족 일행을 비행기에 태웠다.
‘바로 가서 대포로 조져버리고 돌아오면 되지 뭐.’
비행기가 호수 위를 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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