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 인디언
9화, 윌슨 너는 내 쫄다구다.
박정기는 삐딱성을 타고 있는 윌슨을 벼르고 있었다.
'한번 더 맞아야지 정신을 차리겠지?'
윌슨이 몽둥이를 들고 설쳐 대니 인디언 청년들이 설설 기었다.
독수리 발톱이 모포를 나줘 주고 한 곳으로 모았다.
모닥불을 여러 개 피우고 빙 둘러 잠자리를 만들었다.
이소룡 영화를 보고 흥분이 가시지 않은 청년은 모닥불 주변에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새 잠들지 못했다.
너무 긴 하루를 보낸 박정기는 들것에 누워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새벽에 잠을 깬 박정기는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탈한 사람이 없어 다행이네.”
아직은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라 사방이 고요했다.
호숫가로 가서 세수를 하고 비행기를 바라봤다.
‘기장님은 잘 주무셨나?’
멀리서 동이 트려고 하늘이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반짝! 비행기 앞부분부터 시작한 광채가 동체 뒤쪽과 날개로 번지듯이 확산했다.
찰라의 순간이지만 신비의 광채가 낡은 것을 걷어내고 깨끗하게 새것으로 닦아내는 것 같았다.
“어! 뭐였지?”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지만, 아직은 해 뜨기 전이라 햇빛에 반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게 리셋 되는 순간이구나.”
박정기는 매일 새벽에 모든 것이 원 상태로 리셋 된다는 것을 알았다.
핸드폰을 꺼내보니 배터리가 100% 완충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거지? 습관이란 참 무섭구나.”
박정기는 최근통신 목록을 열어보았다.
3일전에 엄마와 통화한 기록이 남아있었다.
‘지금쯤 비행기가 실종돼서 애타게 찾고 계시겠구나.’
박정기는 눈물이 핑 돌았다.
[대장님!]
“어! 독수리 발톱 일찍 일어났네.”
독수리 발톱은 박정기의 눈이 붉어져 있는 것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괜찮아 엄마 생각이 나서~”
[어무이]
“엄마!”
[엄마! 어무이]
“엄마가 어무이야?”
독수리 발톱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동작을 하며 ‘어무이’ 거렸다.
“신기하네. 북미 원주민은 아시아에서 건너온 고대인의 후손이라고 하더니 비슷한 말도 있었구나.”
박정기는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왔다.
“네가 말하는 것을 적어봐야겠다.”
그렇게 말하고는 손으로 물건을 하나씩 짚어주었다.
“이건 뭐야?”
[옷]
“옷, 그럼 이건?”
[깃털]
“깃털, 그럼 이건?”
두 사람의 공부는 또다시 시작되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림과 한글이 노트에 쓰여 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의 물건들은 거의 기록 할 수 있었다.
현대처럼 세세하게 명칭이 분류되어 있지 않고 풀도 그냥 몇 가지 단어밖에 없었고, 나무도 몇 종류 밖에 없었다.
영어는 3,000 단어만 배워도 일상적인 회화가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는 100가지 단어만 외우면 대충은 소통이 될듯했다.
왜냐하면 물건이 없다.
신발도 없고, 바지도 없고, 수건, 머리빗, 양말, 화장품, 다양한 음식, 수퍼마켓 제품들, 가전제품, 생활용품 아무것도 없다.
명사 자체가 몇 개 안 된다.
현대의 몇 십만 단어를 외우는 것 하고는 비교가 안 되게 쉬웠다.
참고 자료 : 나라별 사전에 등재된 단어의 수
( 출처 - 위키 백과 )
한국어 - 1,100,373 백십만 단어
영어 - 520,000 오십이만 단어
중국어 - 378,103 삼십칠만 단어
미친! 한국어의 단어수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영어의 두배, 중국어의 세배에 가까운 단어가 존재한다.
우리말, 사투리, 한자어, 영어, 신조어, 일본어, 온갖 외래어가 난무하는 한국에서 어떻게 말로 소통을 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아무튼! 타임슬립 하면서 머리도 리셋이 되었는지, 기억력이 좋아진 덕분에 잠깐 동안 인디언의 말을 대충 익힐 수 있었다.
“역시 비슷한 말도 많고, 발음도 한글과 잘 맞아 떨어지는 게 같은 뿌리인지도 모르겠어.”
[가튼뿌리]
“너도 한글 배워볼래?”
[배어볼래]
“너는 똑똑하니까, 하루면 배울 거다.”
[거다]
박정기는 ㄱㄴㄷㄹㅁㅂ,,,,을 가르쳐주고, 한글을 써가며 그들의 말을 써줬다.
독수리 발톱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관심을 보였다.
한참을 가르치고 있는데 해가 떠올랐다.
“뭐하고 있어요?”
“애들 말을 배우고 있어.”
“쟤들이 영어를 배우면 되잖아요.”
윌슨의 광오한 말에 박정기는 ‘왕이 될 녀석인가’ 생각했다가 머리를 흔들어 털어버렸다.
‘왕은 개뿔? 너는 평생 내 쫄다구다.’
확실한 위치를 못 박은 박정기다.
“나는 금방 배웠다.”
“진짜요? 하루도 안돼서 배웠다고요?”
“그래, 잠깐이면 배우겠더라.”
“말도 안 돼!”
박정기는 피식 웃어주고는 독수리 발톱에게 말했다.
[밥, 먹자.]
[네 알겠습니다.]
독수리 발톱은 어제 4명의 호위에게 음식을 가져오라고 지시를 했다.
윌슨이 멍 때리며 바라봤다.
“헐~”
“너도 배워봐. 하루면 배울 테니까.”
“저도 될까요?”
“머리가 좋으면 되겠지.”
박정기는 살짝 디스를 하고, 인디언 청년들을 불러 모았다.
[용사! 모여!]
인디언 청년들이 박정기 앞으로 모여들었다.
박정기는 노트를 펼치고, 한명씩 이름을 묻고는 노트에 적었다.
[이름]
[새벽 들소]
노트에 ‘새벽 들소’라고 적고 ‘오른쪽 눈 밑에 사마귀’라고 주석을 달았다.
[다음]
[수다 개구리]
[다음]
[빠른 거북이]
[다음]
[검은 황소]
큰 귀, 들소 심장, 천둥 번개, 곰보 얼굴, 바람 매, 큰 발, 돌진하는 사슴, 흉터 많다, 노래하는 사슴, 마른 거인, 산길 바람, 바위 머리, 붉은 구름, 푸른 늑대, 검은 매, 들소 발자국, 까마귀 날개,.....
박정기는 200개가량 되는 단어를 보면서 생각했다.
‘언어의 발달이 덜 돼서 단어가 몇 개 없네.’
음식을 가지러 갔던 호위들이 음식을 들고 왔다.
“어제보다 휠 씬 많은데?”
“소금 때문에 그런가 봐요.”
“그럼 금방 살이 찔 텐데.”
“찌면 어때요?”
“행동이 느려지잖아.”
“느려지면 어때서요?”
“윌슨 생각 좀 해봐라, 백인들이 가만히 있겠냐? 50명이 넘게 사라졌는데 찾으러 올 것 아니야.”
“그럼 다시 물을 뿌리면 되죠?”
“휴~ 그래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총 쏘고, 말 타는 정도는 훈련을 시켜야지.”
“아! 그럼 좋겠네요.”
‘얘하고 말을 하고 있으면 진이 빠지는 느낌이야.’
박정기는 윌슨을 보면서 혀를 찼다.
아침 식사는 너무나 즐겁게 끝이 났다.
윌슨은 아직도 먹고 있고. 인디언 청년들이 배를 두드리면서 박정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천막을 바라보고 둘러앉았다.
[저리가 여기는 내 자리야]
[니자리 내자리가 어디 있어?]
[야 조용히 해봐 이제 시작할거야]
[독수리 발톱! 빨리 보여 달라고 해]
이제 대충 말을 알아듣는 박정기는 어이가 없었다.
다들 영화를 보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에고! 이 녀석들아 해가 중천에 떴는데, 화면이 보이겠냐?’
“부기장님! 다들 기다리잖아요. 빨리 틀어주세요.”
빔 프로젝트를 들고 와서 윌슨이 말했다.
뜨억! 한 박정기는 뒷머리를 잡고 땅 바닥에 누었다.
“부기장님 빨리 틀어 주세요.”
“야! 너까지 왜 그래? 낮에 빔 프로젝트가 보이겠냐? 답답해 죽겠네.”
“보이잖아요.”
“보이긴 뭐가 보여?”
“저것 봐요. 보이잖아요.”
“뭐? 뭐가 보....이네.”
윌슨이 프로젝트를 들고 그늘진 천막에 비추고 있었다.
천막에 네모난 화면이 흐리지만 또렷이 보였다.
“아 씨~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빨리 보여 주세요.”
'빔 프로젝트도 성능이 좋아졌나 보네.'
하는 수 없이 영화 목록을 뒤져서 이소룡의 용쟁호투를 틀어주었다.
화면은 흐리지만 집중해서 보는 청년들에게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캬오~]
[오~ 캬오!]
‘또 발광하고 난리네 이소룡이 50명이나 생겼어.’
박정기는 영화를 틀어주고 마차로 가서 큰 가방을 꺼냈다.
“어디보자! 올해가 몇 년도인지 찾아봐야지.”
가방 속에 넣어 두었던 백인들 소지품을 꺼내서 살펴보았다.
은화와 금화도 있었고, 모포, 담배, 부싯돌, 화약, 커피, 편지 등이 있었다.
박정기의 관심을 가장 끈 것은 작은 노트였다.
약도가 그려져 있고, 스페인어로 보이는 글이 적혀있다.
가장 중요한 년도는 적혀있지 않았다.
“멕시코 쪽에서 온 탐험대 같은데? 처음에 72명이 출발한 건가? 그럼 중간에 많이 죽었나 보네.”
박정기는 명단을 세어보고는 몇 명인지 유추했다.
“다음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편지에는 날짜가 있겠지.”
편지를 열어서 읽어보려고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걸 ‘에바 베르날’이라고 읽어야 하나? 여기 있네. 1835년 3월 14일”
'계절도 비슷한 거 보면 얼마 전에 쓴 것 같은데.'
편지에는 아라비아 숫자로 쓴 날짜가 선명히 씌어있었다.
아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 같았다.
“참 안타까운 일이네. 딸에게 편지를 전해줄 수 있을까?”
부모를 못 보게 된 박정기는 마치 자신의 일처럼 가슴이 아팠다.
“기분도 꿀꿀한데 말이나 타볼까?”
박정기가 제일 좋은 말안장을 찾아서 말 있는 쪽으로 갔다.
"어디 보자, 저 녀석이 좋겠구나."
여러 마리 말 중에서도 덩치가 크고 털에 윤기가 흘러서 눈에 띄는 말이 있었다.
"깜둥이! 오늘부터 내가 너의 주인이다. 그러니까 말 잘 들어야 돼. 알았지."
건강하게 생긴 흑색 말이 프르륵 거렸다.
박정기는 말 등에 안장을 올리고 고정하는 끈들을 꼼꼼하게 묶었다.
말과 안장이 잘 어울렸다.
말도 거부감이 없는 것이 원래 제 물건인 것 같았다.
"오호~ 멋진 걸!"
박정기는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습관처럼 SNS에 올리려고 앱을 열었다.
"아참! 여기서 올려봐야 통신이 안 되는데...... 이건 뭐지?"
박정기는 잘 몰랐지만 비행기에는 공용 와이파이가 설치되어있다.
항공사들의 유료 와이파이 서비스가 아니고 비밀번호도 없는 완전 무상서비스다.
'와이파이는 되는 건가?'
"기장님께 보내볼까?"
박정기는 페북 메신저로 말 사진을 보냈다.
그리고 기대 없이 주머니에 넣었다.
"오늘 한번 달려보자."
고삐를 풀어 말을 끌고 호숫가로 갔다.
-띠링 띠링
페북 알람이 울렸다.
"와 대박! 와이파이가 되는 거야?"
확인해보니 기장이 엄지척을 했다.
-기장님 와이파이가 되는데요.
-그러게 나도 신기해서 보고 있네.
-그럼 무전기 필요 없겠는데요.
-얼마나 멀리 까지 되는지 모르겠군.
-제가 멀리 가서 해볼게요.
다음 대화에 박정기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아침은 언제 먹나?
-금방 갖다 드릴게요.
"으악! 내가 기장님을 잊고 있었다니."
박정기는 말을 타고 마을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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