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 암스테르담
28화, 북으로 달리는 말들
윌슨이 람보를 흉내 내서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두 하고 다니니까, 기병대도 따라서 옆구리에 막대기를 하나씩을 끼고 두두두두 거렸다.
거기에 하와이 왕자들까지 합세하니 요새는 난장판이 되었다.
광분해서 전쟁 놀이하는 것을 더 이상 유치해서 지켜볼 수가 없었다.
박정기는 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일하는 푸줏간으로 향했다.
기술자들이 람보를 보고 와서 인지 격앙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내장을 손질하고 있었다.
“이 밤에 뭐하고 계세요?”
“오늘 잡아온 것은 오늘 내로 처리해야 합니다.”
대충 만든 푸줏간에는 가죽이 벗겨진 두 마리가 매달려있고, 바닥에는 죽은 들소 3마리가 있다.
“그래도 좀 쉬고 하시지~”
“아닙니다. 저희는 이게 편합니다.”
멀리서 인디언과 하와이 야만인들이 광분해서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힐끗 쳐다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고는, 다시 해체 작업에 열중하는 기술자들이다.
‘아! 이 사람들이 인디언을 무서워하는 구나.’
“그럼 빵과 소시지를 갖다 드릴 테니 좀 드시고 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가죽을 벗기던 기술자가 박정기에게 질문을 했다.
“두 바퀴가 달려서 빠르게 달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 오토바이를 말씀하시는군요?”
“오토바이구나! 그럼 풍차를 달고 날아다니는 건 뭡니까?”
“그건 헬리콥터라고 합니다.”
“아! 헬리콥터! 그것도 타볼 수 있습니까?”
“지금은 안 되고 나중에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자신들 처지에 더 이상 물어보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하고 박정기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보관 창고도 만들어야겠네요. 많이 필요해서요.”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가 잘 해 놓겠습니다.”
돌아온 박정기는 유럽에서 온 기술자들에게 핫도그를 만들어주라고 장금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하와이 왕을 찾아갔다.
“뭐가 그렇게 심각하십니까?”
“오! 어서 오십시오, 박대사님! 생각할게 있어서요.”
“나라라도 잃은 표정이십니다.”
농담으로 건넨 말이 하와이 국왕의 가슴을 후벼 팠다.
“후~ 우리는 미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데, 대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도 그렇습니다. 사탕수수밭도 주시고, 파인애플 밭도 주셨는데, 관계가 바빠질게 있나요?”
“그렇죠? 아주 좋은 관계죠?”
박정기는 갑자기 왜 이런 말을 꺼내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살짝 의중을 떠보기로 했다.
“네 맞습니다. 서로 우호적인 관계입니다. 국왕 전하께서 변심만 안 하시면 됩니다.”
“내가 변심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웃는 모습이 어설펐다.
“대사님 그 연속으로 발사되는 총이 뭡니까?”
“아! 기관총이라고 합니다.”
“저희도 구할 수 있습니까?”
“그건 안 됩니다. 국가 전략 물자라서 해외 반출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박정기는 기관총은 없다고 말하기 싫어서 살짝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 만들면 되니까 아예 없는 거짓말도 아니었다.
“하~ 그렇겠죠, 나 같아도 안 팔겠습니다. 한 사람이 100명을 상대해도 될 만큼 강력한 무기를 팔 수는 없겠지요.”
풀이 죽어서 한숨만 쉬고 있는 국왕에게 박정기가 제안을 했다.
“하와이와 미국이 상호 방위 조약을 체결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저희가 하와이를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그게 정말이요? 그렇다면 조약을 언제 체결할 수 있을까요?”
“그건 보고를 하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와야 하니 시간이 조금 걸릴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사님 만 믿고 있겠습니다.”
박정기는 이게 왠 떡이냐고 생각했다.
‘이거 식민지 만들 때 많이 써먹는 방식 아닌가? 잘하면 하와이가 손에 들어오겠는 걸.’
박정기가 나쁜 생각을 할 때, 하와이 국왕은 더 나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와이에 가면 볼모로 잡고 기관총과 교환하자고 해볼까?’
두 사람이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밤은 깊어갔다.
하와이 국왕과 왕자들 그리고 여자 승무원들은 기내에서 잠이 들고 나머지는 요새에서 잠을 잤다.
다음날 이른 새벽 어김없이 한줄기 빛 무리가 비행기를 훑고 지나갔다.
“아~ 잘 잤다.”
“기침 하셨습니까?”
“어이쿠! 깜짝이야. 왜 여기 있어요?”
장금이가 인사를 하자 깜짝 놀란 박정기, 밖에서 자고 있어야 하는 장금이 왜 조종실에 있는지 물었다.
“무서워서 못 자겠어요.”
“뭐가 무섭단 말이요?”
“왕자님들이......”
박정기는 대충 감이 잡혔다. 돌아다 보니 승무원들이 바닥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내 이것들을...... 가만히 두나 봐라.’
열이 받은 박정기는 이들을 어떻게 혼내줄까 고민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구나. 아예 똥 오줌을 싸게 만들어 주마.’
아침 식사를 하고 하와이로 가기 위해 비행기에 탑승을 시작했다.
남 여승무원 10명과 하와이 왕의 일행 30명, 그리고 유럽에서 온 조선기술자 1명이 탑승했다.
조선 기술자는 노인이라 그런지 혼자 떨어져 다른 곳으로 가는데도 초연해 보였다.
박정기가 노인을 조종실로 데리고 와서 의자에 안전벨트로 묶어주었다.
“이걸 꼭 매고 계셔야 합니다. 이따가 비행기가 흔들려도 놀라지 마시고 안심하십시오. 안전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많은 장치들은 무엇입니까?”
“비행기가 날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입니다.”
“허허, 배는 나침반과 육분의만 있으면 되는데.....”
뒷말은 안 들어도 뻔했다. 스위치며 계측 장비, 그리고 디스플레이들이 가득 찬 계기판은 보는 것 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박정기는 승무원들을 불러서 다른 사람은 내버려두고 너희들은 안전벨트를 단단히 묶으라고 지시했다.
고기와 물건도 모두 실었기 때문에 비행기는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국왕전하 우리나라 좀 구경하고 가시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 있는데 언제 또 보겠습니까?”
“좋지요. 내 대사님의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뭐 은혜까지는 아니고요.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알겠소. 잘 부탁드리오.”
이내 비행기가 이륙했다. 아래에서 이를 지켜보던 유럽의 기술자들은 울상이 되어 떠나가는 비행기를 마냥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만 남겨 놓고 떠났소.”
“이 야만인들 속에 우리를 버려두고 가면 어쩌자는 건지.”
“휴~ 큰일이요, 노는 모습 보이면 안되니까, 뭐라도 합시다.”
“그럽시다. 빨리 움직입시다.”
그들의 움직임이 요새를 요새 화 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더불어 안정호 대방과 그 일행들도 이들을 도와서 건축 일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공법과 도구들로 서양식 건물을 짓자 모두 호기심이 생겨서 지켜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무 방벽과 천막이 있었던 요새는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요새의 안과 밖이 공사판으로 변하자, 윌슨은 도끼를 들고 나무를 베어주었고, 기병대도 나서서 일을 도왔다.
한편! 박정기는 그랜드 캐니언을 향해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700km 도착하는데 1시간이면 된다.
뒤쪽에서는 왕자들이 노는 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조금만 참아라, 다와 간다.’
그 순간 박정기의 시야에 뿌연 흙 먼지가 보였다. 라스베이거스 쪽에서 북쪽으로 달려가는 말들이었다.
가까이 살펴보기 위해 기수를 낮추었다.
‘100마리 정도 되겠는 걸, 아마도 탐험대를 찾아가는 것이겠지?’
피라미드 호수까지 거리는 약 600km 빠르게 달리면 일주일 후에 도착할 것이다.
머리가 하얘진 박정기는 윌슨에게 문자를 보냈다.
-윌슨! 라스베이거스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네? 얼마나요?
-말이 100마리쯤 되는 것 같은데.
-어! 큰일인데요?
윌슨도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래, 그러니까 기병대 훈련 잘 시키고, 요새도 더 강화해!
-네 알겠어요. 얼마나 걸릴까요?
-일주일은 넘게 걸리겠지.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박정기는 비행기를 돌리려 다가 국왕과의 약속을 깰 수 없어서 그랜드 캐니언으로 향했다.
“드래곤이다! 저 위를 보십시오.”
“앗! 모두 피해라.”
비행기가 선회하자, 이를 발견한 무리는 뿔뿔이 흩어졌다.
“다시 날아갔습니다. 탐험대가 걱정이 되는군요.”
“전령의 말에 드래곤 얘기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무튼 조심해서 가야겠습니다.”
“아버님이 위독하십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네, 알겠습니다. 아가씨.”
무리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북쪽으로 내달렸다.
비행기는 그랜드 캐니언으로 들어섰다. 고도를 낮춰서 계곡 아래로 들어섰다.
“와 대단해요. 조각을 보는 것 같아요.”
“장금씨 이제 꽉 잡으세요.”
“네?”
계곡이 굽어진 곳에서 비행기가 왼쪽으로 급선회 했다. 동체가 거의 수직으로 세워지고 중력이 두 세배 높아졌다.
“으악! 앞에 부딪혀요!”
-악!
-으악!
꽈당, 쿵!
객실 안은 우당탕 쿵쾅 쓰러지고, 자빠지고, 뒹굴었다.
‘흐흐흐흐 이놈들 당해봐라.’
다시 계곡이 굽어진다. 기수를 오른쪽으로 휙 돌렸다. 비행기가 왼쪽이 들리면서 반대쪽으로 기울어졌다.
으악 꽈당 우당탕, 커억
장금이는 혼절해서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고, 배 만드는 노인은 신기한 것 구경하느라 눈이 초롱초롱했다.
객실 내에서는 왕자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박정기는 몇 차례 더 급 회전을 하고는 기수를 들어 올렸다.
비행기가 계곡을 빠져나와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마지막 피날레다.”
박정기가 조종간을 휙 돌리자 비행기가 나선형으로 두 바퀴 회전했다.
“헤헤헤 맛이 어떠냐? 이 자식들아! 이제 두 번 다시 비행기 타겠다는 말은 못하겠지.”
의기양양해진 박정기는 기수를 틀어 하와이로 향했다.
“저기~ 아쩌씨!”
“응 누구냐?”
꼬마 왕자가 조종실로 들어와 박정기를 불렀다.
“더 해주시면 안돼요?”
“뭐? 더해 달라고?”
“네 재밌어요. 한번만 더해주세요.”
박정기는 완전히 실패한 작전에 머리를 쥐어뜯고 싶었다.
‘윽! 이 자식들이 즐기고 있었던 거네!’
“절대 안 돼, 이제 조용히 갈 거야. 아주 안전하고 지루하게.”
“히잉~ 다시 해주세요~ 제발요~”
“안 돼! 절대로 안 돼!”
왕자 꼬맹이는 터덜터덜 밖으로 나갔다.
“키악! 살려주세요! 흐헉! 흐헉!”
장금이 때늦은 비명을 질러 댔다. 혼절해 있다가 지금 깨어난 것이다.
‘괜히, 애먼 사람만 잡았네. 젠장! 에이 시발!’
“장금씨 괜찮아요?”
“으앙~ 저 내릴래요. 내려주세요.~”
“진정하세요. 이제 안전해요. 진정~ 진정~ 마음을 편안히 가져보세요.”
“으앙~ 으앙~ 내리고 싶어요.~”
박정기는 하와이에 도착할 때까지 장금을 달래주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비행기가 하와이 진주만에 착륙했다. 조선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선착장에 나와 환영을 해주었다.
박정기는 비행기 문 옆에 서서 내리는 사람들을 배웅했다.
“박 대사! 수고가 많으셨소, 우리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더군요. 다음에 또 부탁 드립니다.”
“크음! 장시간 피곤하셨을 텐데, 잘 쉬십시오.”
“나야 피곤할 게 뭐가 있겠소, 좋은 구경 잘하고 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유럽 순방을 마친 하와이 국왕이 국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왕궁으로 돌아갔다.
끝없이 나오는 물건들을 왕궁으로 옮기느라 한참이 걸렸다.
“대사님 참으로 큰 경험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교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염 사장님은 장거리 여행에 피곤하지도 않으십니까?”
“너무 즐거워서 힘든 줄 모르겠습니다.”
“아까 비행기가 많이 흔들렸는데 괜찮으세요?”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면 몇 배는 더 한데, 그깟 조금 흔들린 게 뭐 큰일이라고.”
박정기는 허무하다 못해 좌절감을 맛보았다.
‘아니 다들 괜찮다고? 정말? 그럼 괜히 헛짓거리 만 하고 온 거잖아.’
박정기에게 좌절을 알려준 중국 상인 염인환은 유럽에서 싣고 온 물건들을 자신의 범선으로 옮겨 실었다.
“선장도 없는데 가시는 겁니까?”
“항해사가 있어서 가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또 오시나요?”
“네 광동에서 물건을 내리고 다시 돌아오려면 1년은 걸릴 겁니다.”
1년이라니?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니까,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아 그렇군요. 혹시 광동에 가면, 어디로 찾아가야지 만날 수 있을까요?”
“오시기만 하면 열일 제쳐두고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부디 꼭 한번 들러주십시오.”
“참! 오실 때 한양에 가서 사람들을 싣고 올 수 있겠습니까? 보수는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박정기는 사람을 태워올 때 이 무역선을 이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제안을 했다. 그럼 비행기 보다 많은 인원을 태우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빈 배로 와야 하는데, 사람 태우는 건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한양까지는 가기에는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부산포에서 태우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럼 부산에서 태울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포틀랜드의 모피 수집장까지만 태워다 드릴 수 있습니다.”
포틀랜드에서 모피를 가득 싣기 때문에 사람을 내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네 문제없습니다. 혹시 다른 배들도 이용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저와 경쟁하는 입장이라 연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네, 그렇군요, 아무튼 꼭 부탁드립니다.”
일이 잘 풀려서 아주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비행기로는 한계가 있다. 100명씩 100번을 왕복 해야 겨우 1만 명이다.
‘더 크고 빠른 배를 만들어야 해.’
모든 사람을 배웅하고 나서,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숙소로 이동했다.
건물이 몇 채 더 지어져 있었다. 하와이 전통 가옥 형태인데 약간의 개조를 한 것 같았다.
더운 지역이라 온돌이니 아궁이도 필요가 없었고, 비만 피할 수 있으면 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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