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 대왕대비
50화, 순원왕후의 미래를 위한 포석
[오른쪽으로 멀리 산해관이 있고, 왼쪽 멀리에 천진항이 보입니다. 이제 잠시후에 북경에 도착하게 됩니다.]
-오~ 정말로 청나라에 오다니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구먼.
-그러게요. 지난 정조사 때 북경까지 가는 길에 얼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한 시진이면 올 수 있는 곳을 엄동설한에 2달 걸려왔다니 너무나 허망합니다.
-앞으로 연행은 못 갈 것 같습니다. 그려.
대신들은 중국 사행 길에 겪었던 고초를 토로하느라 시간이 금방 흘렀다.
[드디어 북경에 도착했습니다. 아래 황금색 지붕이 자금성입니다. 자금성 밖으로 해자가 보이는 군요.]
박정기는 고도를 낮춰서 북경 내외를 빙글빙글 선회했다.
“아~ 크구나. 할마마마 자금성은 금으로 만들었어요?”
“이 할미도 처음 봅니다.”
자금성의 규모에 풀이 죽은 어린 임금을 토닥여 주는 대왕대비다.
그 시각 북경은 초비상이 걸렸다.
“황상 봉황이 날아왔습니다.”
“뭐라? 봉황이 날아와?”
“네 그러하옵니다.”
청나라 도광제는 급히 태화전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저것이 봉황 맞느냐? 사람이 만든 기물이 아니더냐?”
“소신은 분간하기 어렵사옵니다.”
“저것이 어디서 날아왔느냐?”
“동쪽에서 날아왔다 하옵니다.”
“저것을 당장 잡아오너라.”
“네, 황상!”
신하가 뛰어가고 잠시 후 사방에서 총 소리가 울렸다.
탕! 타탕! 타타탕!
아무리 쏘아 대도 아무일 없이 자금성 위를 빙글빙글 날아 다니던 비행기가 동쪽으로 유유히 날아갔다.
“어서 추격하라. 반드시 잡아 오너라.”
“명을 받듭니다. 황상!”
북경의 기병들이 전속력으로 비행기를 뒤쫓았으나 도저히 따라잡지 못했다. 그래도 그냥 돌아가면 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니 끝까지 추격해야 했다.
비행기가 날아간 방향으로 따라가며 목격자들을 수소문했다.
[비행기는 잠시 후 산해관에 도착합니다.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 이 산해관입니다.]
박정기는 고도를 낮춰 산해관을 두 바퀴 돌았다.
‘서비스 죽이네, 여의도 받았으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지.’
미래의 여의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잘 알고 있는 박정기는 수십 조 원이 될 수 있는 땅을 받아, 감사한 마음으로 요동 지역까지 꼼꼼하게 구경 시켜주기로 마음먹었다.
대신들은 자신들이 사행길에 오갔던 지역을 살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저기가 산해관이구먼.
-늘 저기를 넘을 때면 기가 죽었는데, 위에서 바라보니 개미성 같습니다 그려.
-맞소이다. 저렇게 보잘것없는 것이 그동안 왜 그리 두려웠는지 모르겠습니다.
비행기는 요동성, 신의주를 거쳐 평양에 도착했다.
[아래 보이는 곳이 평양입니다.]
“이제 이 할미는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아니 되옵니다. 할마마마 죽으면 안 됩니다.”
“아~ 알겠습니다. 우리 효손을 두고 죽으면 안 되지요, 안 되고 말고.”
드디어 비행기가 한양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임금과 대왕대비 날아가자 호기심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한 시진이 넘도록 나타나지 않자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왕실과 대신들을 태우고 사라졌던 비행기가 다시 나타나자, 안심이 되면서 그동안 마음 고생한 것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이 소리 높여 천세를 외쳤다.
-천세! 천세! 천세!
-천세! 천세! 천세!
-천세! 천세! 천세!
박정기는 천천히 고도를 낮춰 부드럽게 착륙했다.
쏴~아~ 쏴~아아
물보라를 일으키더니 속도를 줄여 나루터의 선착장으로 기수를 돌렸다.
[비행기는 안전하게 한양에 도착했습니다. 먼 여행을 다녀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박정기가 방송에 재미가 들렸는지 멘트가 매끄러워졌다.
박정기는 선착장에 접안하고, 입구로 나와 왕실 일행을 배웅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전하!”
“무척 재미있었어요. 언제 또 올 거예요?”
“조만간 다시 올 겁니다. 그간 강녕하십시오.”
“알겠어요.”
어린 임금이 당당하게 선착장을 걸어 나갔다. 어깨가 쫙 펴진 것이 꼬마 대장을 보는 듯했다.
“참으로 신묘하였소, 고생이 많아 구려.”
“저~ 잊지 마시고 여의도에 집을 부탁드립니다.”
“그럼! 그럼! 양국 친교를 위해서 반드시 마련을 해둘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오.”
“아니, 미국의 것이 아니 오라, 여의도는 제가 개인적으로 가지고 싶습니다. 아버님 고향이 가까워서요.”
“오~ 그렇구려, 잘 알겠소, 내 친히 챙기리다.”
대왕대비는 그 작은 섬이 여의도인 줄 알았다.
왕실의 소나 키우는 곳으로 알고 있어, 이처럼 귀한 경험을 한 대가로 주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한양은 왕실의 귀환으로 또다시 들끓었다.
-국왕전하 천세! 천세! 천세!
-대비마마 천세! 천세! 천세!
이번 행차로 왕실의 권위와 덕망은 더욱 높아졌다.
“이보게 하사 받은 고기는 어떻게 먹는 것인가?”
“나도 처음 보는 것이라 어떻게 먹는지 모르겠네.”
“상하기 전에 먹어야 할텐데 어쩐 담.”
“뭘? 어째, 숭숭 썰어서 가마솥에 넣고, 김치, 고추장 풀어서 팔팔 끓여 먹으면 되지.”
“그런가? 집사람에게 해 달라고 해봐야겠네 그려.”
길거리는 임금이 하사한 고기를 한 근씩 들고서,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 갑을박론이 한창이었다.
한양 도성 내 인구가 20만이요, 가구 수가 4만 호다. 한 근 씩 받아가고도 고기가 남았을 정도로 많은 양인 30톤을 싣고 온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가서 나름의 방법대로 먹어보았다. 맨 것으로 먹어보고, 화로 불에 구워 먹고, 솥에 넣고 끓여 먹었다.
저녁부터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아무렇게 먹어도 다 맛있었던 것이다.
급기야 크게 찌게파와 구이파로 나뉘게 되었다. 그래서 미국찌게와 미국꼬치가 한양의 먹 거리로 자리 매김 하게 된 것이다.
밥과 먹을 때는 뜨끈한 미국찌게에 밥 한 술 말아서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리고 출출할 때는 길거리서 숯불에 구운 미국꼬치 하나 사 먹으면 배도 든든하고 맛도 좋아 최고의 간식이 되었다.
왕실에서는 상하기 쉬운 고기를 시전 상인들에게 불하해서 세수를 보충했다. 그 고기들은 또다시 영세 잡상인들이 구매해서 길거리 음식으로 팔리게 된 것이다.
다음날 새벽 상상도 못한 사건이 발생했으니, 박정기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니 형님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건 나도 어찌 할 수가 없네, 마마께서 직접 챙기신 일인데 어쩌란 말인가?”
“안됩니다. 이건 무효입니다. 무효예요.”
김좌근은 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여의도도 무효인가?”
“그건 아니지요. 북경에 다녀와서 받은 걸 왜 건듭니까?”
“누님의 성정이 불같으시네, 자네가 떼를 쓰면 모든 게 틀어진단 말일세.”
“아니 제가 무슨 떼를 쓴다고 이러십니까?”
김좌근은 박정기를 살살 다래면서 다음을 기약했다.
“아무튼 이번은 그냥 넘어가시고, 다음에는 내가 필히 잘 챙길 터이니 걱정하지 마시게. 그리고 한두 번 볼 것도 아닌데 노여움 푸시게나.”
“살다 살다 이런 사기는 처음 맞아봅니다.”
“에헤~ 다음을 생각하라니까. 다음을.”
박정기는 더 해봤자 답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탑승을 허락했다.
출궁한 궁녀 100명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가 탑승을 시작했다.
그녀들을 본 박정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아무리 대놓고 한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야? 내가 의자왕도 아니고 이게 뭐냐고?’
전날 환궁한 대왕대비는 승무원 5명을 모아 놓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그러니까, 하와이라는 곳의 임금과 왕자들이 너희들에게 추파를 던졌다. 그 말이더냐?”
“말도 못했습니다요. 얼마나 끈적한 눈길을 보내는지 소름이 돋았습니다.”
“그리고 비행기에 있던 그 야인들도 그렇고?”
“네 맞습니다요, 숙맥같이 말도 못하면서 눈은 맨 날 저희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대왕대비의 눈은 점점 초롱초롱해졌다.
“그리고 미국의 성에도 병사들이 많았다고?”
“네! 얼마나 날래고 용감한지 일당백은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 수고 들 했다, 물러가 쉬 거라.”
대왕대비는 최상궁을 불러서 미국에 가기를 희망하는 자는 모두 모아오라고 명을 내렸다.
저녁 수라를 마치니 상궁과 나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대왕대비가 궁궐에 들어온지도 30년이 넘었는데, 지금 이 상황을 모를 리가 없었다.
어린 임금에게 승은을 바라는 것은 물 건너 가버린 상황, 아무 희망도 없이 늙어가야 하는 것을 누가 바라겠는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구나.’
15살에서 30살까지 거의 다 모인 것 같았다.
“음~ 내 오늘 중요한 말을 할 것이야. 잘 듣고 판단하기 바란다.”
“예! 마마.”
“주상께서 연치 어리시니 너희의 고충을 알겠도다. 그래서 출궁을 원하는 자 100명을 선발하여 내보내려 한다. 하지만 궁녀가 어찌 세인들과 살을 섞고 살겠는가. 하여 미국으로 보낼까 하는데 희망하는 자는 앞으로 나서 거라.”
서로 눈치를 살피던 나인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섰다. 이들이 용기를 낸 것은 장금이와 승무원들이 입고 온 의상이 큰 역할을 했다.
누가 봐도 귀하고 기품이 넘치는데, 자신도 나가면 저런 의상을 입고 편하게 살 것만 같았다.
거의 전부가 앞으로 나서니 대왕대비가 당혹스러웠다.
“너희들이 타국으로 가면, 그곳 왕실 또는 관리들과 혼인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고국을 위해 중요한 일들을 해주어야 한다. 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습니다. 마마.”
“무엇보다 급한 일은 비행기라는 기물을 만드는 기술을 가져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왕실과 왕자들을 조선에 우호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겠느냐?”
“네 알겠사옵니다.”
“각오가 된 자는 남고, 각오가 서지 않은 자는 뒤로 빠지거라.”
“......”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궁녀 생활에서 연애 사상을 가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 신분의 상승을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기꺼이 바칠 각오가 되어있으니, 상대가 누가 되었든 마다할 입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모두 보낼 수는 없고, 너희들이 20명씩 뽑아 가도록 해라.”
“황송하옵니다. 저희가 미욱하여 어찌 해야 할지 모르겠나이다.”
“괜찮다. 다음에 또 가면 될 것이고 순서만 바뀔 뿐, 개의치 말라.”
장금이와 승무원들에게 선택권이 넘어오자, 각자 복화술로 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허~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모두 눈을 감도록 해라!”
“네 마마!”
궁녀들이 눈을 감자, 장금이와 승무원들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뽑혀온 사람들이 박정기 앞에 있는 궁녀들이었다.
‘밤새도록 치장을 했나? 다들 곱게 차려 입었네.’
박정기가 궁녀들을 보고 느낀 점이다.
-헉! 이게 다 뭐냐?
-다 예쁘다. 모두 대장님 여자냐?
-우리는 또 침만 흘리는 거냐?
인디언 승무원들은 어여쁜 여인들을 모두 대장이 차지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와~ 말로만 들었는데 정말 잘생겼구나.’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옷은 왜 이렇게 멋진 거야?’
‘나 어쩌지, 첫눈에 반했나 봐. 아무것도 안 보여.’
‘어머머머, 어머머머.’
궁녀들은 박정기의 잘생긴 얼굴과 큰 키와 다부진 체격에 홀딱 반해버렸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이유, 바로 대장이란다. 여자의 신분은 남자를 따라가는 것, 대장의 부인이면 여기 있는 궁녀 모두가 자신의 부하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박정기를 향한 궁녀들의 시선은 눈을 부릅뜬 여 승무원들에게 접수되어 행선지가 결정되었다.
‘저년, 저거 안 되겠네. 하와이에 떨궈야겠다.’
‘아니, 저것이 눈 안 돌려? 저것은 추장에게 보내야겠다.’
비행기 안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각종 물품과 궁녀 100명을 실은 비행기는 한강을 질주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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