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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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하늘에서 맺은 인연
소란스러운 곳으로 가보자 건장한 조선 사람과 들소 바위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이자가 내 부인이 용변을 보는데 문을 열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세상 천지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후~ 뭔가 오해가 있었나 봅니다.”
“무슨 오해가 있겠습니까?”
박정기는 들소 바위를 째려보면서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이 화장실은 잘못 사용하면 고장이 날 수 있어서 그것을 우려했던 것 같습니다.”
“변소가 다 똑같지 뭐가 다르단 말이요?”
“이 것은 많이 다릅니다.”
박정기는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좋은 생각이 났다.
아이들은 배우는 게 빠르고 남, 여, 할 것 없이 교육이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
“사용법을 알려드릴 테니 똘똘한 아이들로 몇 명 데려와 보십시오.”
“크음! 네 알겠소.”
사내가 6명의 아이들을 데려왔다.
“자 여기를 화장실이라고 한다. 알겠나?”
“네~!”
“지금부터 사용하는 방법을 보여줄 테니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알겠나?”
“네~!”
“잘 봐야 한다.”
“네~!”
박정기는 들소 바위를 바라봤다.
들소 바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놈, 눈치는 정말 빠르단 말이야.’
[들소 바위! 들어가.]
들소 바위가 고개를 내저었다.
[확! 죽을래?]
[제발 요~ 모르는 사람 앞에서 어떻.....]
[야! 안 들어가?]
[아이고! 알겠습니다.]
덩치는 커다란 녀석이 움찔움찔 하니까. 아이들이 깔깔깔 웃었다.
아이들 뒤에서 어른 몇명이 쳐다보았다.
[실시!]
[휴! 아이고~]
박정기가 눈을 치켜뜨자 한숨을 쉬며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아이들이 깔깔깔 웃었다.
들소 바위는 힘을 주었다.
뿌드득! 소리가 나자 아이들이 자지러지게 웃었다.
‘아이고, 저 바보 녀석 진짜로 똥을 싸면 어떻게, 시범만 보여야지~’
지켜보던 사내들은 고개를 돌렸고, 들소 바위는 물을 내리는 버튼을 눌렀다.
쏴~ 악!
“봤지? 똥 싸고 물을 내리는 거야, 알았지?”
“네~ 에!”
[다음!]
들소 바위는 화장지를 뜯어서 뒤를 닦았다. 접어서 또 닦았다. 그리고 변기에 투입했다.
“봤지 종이로 뒤를 닦고 변기에 버리는 거야?”
“네~에!”
[다음!]
들소 바위는 옷을 입고 세면대에서 물을 틀고 손을 닦았다.
[잘했다.]
[네~ 에~]
“시범을 보여준 아저씨에게 박수!”
짝짝짝짝
“잘 봤지?”
“잘할 수 있는 사람?”
“......”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제 너희들이 용변 볼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는지 알려줘라.”
“네~ 에!”
아이들 중에 처음 싸웠던 사내의 아이도 있었다.
그 아이는 엄마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이들은 들소 바위에게 바보라고 놀리며 장난을 쳤다.
박정기는 더 이상 지켜볼 필요가 없어서 사내에게 물었다.
“잠깐 얘기 좀 할까요?”
“네 그러죠.”
“여기는 노비만 타는 줄 알았는데, 귀하는 양반인 것 같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사정이라고 하시면?”
사내는 말하기 난처했다.
“그건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말씀을 안 해주시면 저도 곤란한데요?”
“왜 그런 것이 궁금한 거죠?”
“우리나라에 아무나 데려갈 수 없지 않습니까?”
“저희는 대왕대비 마마의 명을 받고 가는 겁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첩자를 너무 대놓고 보내는 거 아니야?’
박정기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니까요. 무슨 명을 받았는지 알아야 데려가던 아니면 내려주던 할 것 아닙니까.”
“......”
“말 안하시면 비행기를 돌리겠습니다.”
“아니 잠깐! 휴~ 잠시만 조용한 곳에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박정기는 조종실 뒤쪽 공간으로 사내를 데려갔다.
“이제 말해보시오.”
“사실 우리 가족은 천주님을 믿는다고 고변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대왕대비 마마께서 도망가라고 여기에 태워주신 겁니다.”
박정기는 의외의 말을 듣고 천주님이 누군가 생각했다.
‘아~ 천주교가 박해를 받는 구나.’
“대왕대비 마마께서 챙겨주실 정도면 어떤 관계인지?”
“저는 동궁전 별감입니다. 저를 어찌 아셨는지 모르겠지만, 이걸 타고 떠나라고 만 하셨습니다.”
“누구랑 오셨습니까?”
“저기 있는 처와 자식들, 그리고 저기 누이와 매형 가족들입니다.”
어쩐지 노비들과 달리 양반 행색이 물씬 풍기는 사람들이 있어서 의심했는데 일이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럼 잘 오셨소,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요. 누가 무엇을 믿든 나라에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내가 금방 울 것처럼 상기되어 고개를 조아렸다.
떼죽음 당할 위기에 처해진 가족이 극적으로 구원 받는 순간이었다.
박정기는 사내의 인사가 부담스러워 난처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라와 헌법을 만들고 말았다.
조종실로 돌아온 박정기는 아까 얘기했던 여행 패키지가 대충 어떤 것인지 눈치를 챘다.
‘이 양반 진짜로 못 말리겠네. 잔 대가리는 정말 잘 돌아 간 다니까. 천주교 신자를 잡아다 주고, 부자들에게는 돈 1,000냥을 받고 태우겠다는 심보 아냐?’
박정기는 나중에 거론하기로 하고 그냥 넘어갔다.
의심은 가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앞날의 일이기 때문이다.
돌아가려고 하니 궁금해서 윌슨에게 SNS로 문자를 보냈다.
-윌슨 잘 지내고 있지?
-어떻게 된 거예요? 돌아오셨어요?
박정기도 깜짝 놀랬다.
이렇게 먼 곳까지 SNS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와 혹시나 했더니 되네. 신이시어 이거 너무 많이 주시는 거 아닙니까?’
정말 감사했다.
이정도면 현대의 재벌 집 아들로 사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도착이다. 시킨 일은 다 끝내 놨지?
-요새 만드는 거요?
-그래 3일이나 지났는데 아직 못했어?
-아뇨 다 끝냈어요. 내일 몇 시에 오시는 데요?
-그건 왜?
-그냥요.
박정기는 딱 촉이 왔다. 영화만 보느라 요새는 만들지도 않은 것 같았다.
-안 만들어 놨으면 죽는다.
-네 빨리 할게요.
윌슨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실토를 하고만 것이다.
박정기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쓴 웃음을 지었다.
‘철이 없어 그렇지 나쁜 애는 아니야.’
그 철없는 것이 사람 속을 뒤집어 놔서 탈이지만 말이다.
“기장님 교대하시고 좀 쉬세요.”
“그래주겠나. 화장실을 봐야겠네.”
“네 다녀오십시오.”
승무원 화장실은 조종실 바로 뒤편에 있다.
다만 다른 사람이 쓰는 것을 꺼려해서 잠가 놓았다.
기장님이 나가고 김좌근이 끙끙거렸다.
“왜 그러세요?”
“이제 이것 좀 풀면 안 되겠나? 다리가 저려서.......”
“아! 허리 옆에 쇠로된 것 있죠?. 그걸 잡아당기세요.”
찰칵! 안전벨트가 풀렸다.
“어휴 이제 살겠네, 이젠 돌아다녀도 되는가?”
“돌풍이 불면 크게 흔들려서 언제 떨어질지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아~ 알겠네. 소피 좀 보고 오겠네.”
옆에서 쥐 죽은 듯이 있던 수행 구종이 낑낑거리며 말했다.
“마님~ 저도 풀어주시면......”
“쯕쯕 알았다, 그것 하나 못하고 에잉~”
‘잘난 척은~ 하여튼 양반이라는 인간들은...’
멀리 앞에 일본이 보였다.
“저기가 일본입니다.”
“뭐라고? 정말 일본까지 이렇게 금방 오는가?”
“그렇다니 까요. 제가 거짓말 하는 거 봤습니까?”
“왜놈들에게 이런 배는 없는가?”
“네 없습니다. 우리나라만 있습니다.”
“다행이군.”
비행기는 일본을 지나 미드웨이 환초를 거쳐 하와이 진주만에 착륙할 예정이다.
이제 한 시간 정도 지났으니 앞으로 7시간 더 가야 한다.
항공 장비가 발전해서 갈 수 있는 것이지, 아니라면 태평양에서 어디로 날아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사이 화장실을 다녀온 기장님이 조종간을 잡았다.
“이제 출출하지 않나?”
“아! 네 그러네요.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박정기는 구종에게 준비한 식사 가져다 달라고 말하고 밖에 있는 사람들도 식사를 하도록 했다.
예쁘장한 처녀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아! 엄청 예쁘네, 승무원으로 딱 인데.’
왠지 행동에도 기품이 있었다.
이 처자는 대왕대비가 수랏간 나인을 노비로 위장해서 잠입 시킨 것이다.
박정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항상 주변에 붙어있는 찬모가 제격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조반 준비했사옵니다.”
“이리 주세요. 고맙습니다.”
쟁반을 받아 든 박정기는 궁녀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사극에서 보던 것과 똑같네.’
하는 행동과 말투가 TV로 보던 것과 너무 닮았다.
‘아이고, 연습을 제대로 시켜서 보내셨어야지요.’
박정기는 궁궐에서 몇 사람이 더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까 그 별감도 무슨 임무를 띠고 있을 것이고, 곱상하게 생긴 여자들이 몇 명 눈에 띄었다.
박정기는 마음대로 해보라는 생각으로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어차피 칼자루는 자신이 쥐고 있기 때문에 모략을 꾸미면 안 가면 될 것이고, 위협을 하면 자신의 특공무술과 넘치는 힘으로 제압하면 그만이다.
“와~ 이거 맛있네요. 뭔가 차원이 달라요.”
“그러게, 왜 이렇게 맛이 다른 거지?”
“궁중에서 먹는 건가 봐요.”
“그래? 한국 음식이 아주 맛있구나.”
기장님도 입에 맞았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맛있게 먹었다.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아주 잘 쓰겠습니다. 외할머니.’
족보로 따지자면 대왕대비가 외가 쪽으로 몇 대조 할머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박정기는 외할머니로 생각했다.
아마 대왕대비가 46살인 걸 알았다면 누나라고 불렀을지 모른다.
“아니 어린 녀석이 어찌나 잔소리를 해 대던지.”
“왜 그러십니까?”
“글쎄, 뒷간에서 소피를 보려고 하는데 앉아서 보라고 생트집을 잡지 뭔가.”
“그래서요.”
김좌근은 과장된 동작으로 혼내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호통을 쳤더니, 자네가 데려온 야인들이 눈을 부라리고 대들지 않는가, 그래서 여기 법도가 그런가 보다 하고 앉아서 일을 봤지. 요강이 신기하게 생겼더구만, 우리 집에도 갔다가 놓고 싶었다네.”
“여기는 무조건 앉아서 일을 봐야 합니다.”
“어찌 그런가? 혹시 자네 때문인가?”
박정기는 뭔 소린가? 싶어서 대답을 할까 하다가 잠시 생각했다.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나 때문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그게 크흠! 자네가 음 거시기...... 아니 됐네.”
‘뭐야? 말하다 말면 더 궁금하게.’
“왜? 말씀을 하시다가 맙니까? 말을 시작했으면 끝을 맺어야지.”
“아~ 그게 말하기가 영~ 거시기, 있지 않은가. 자네가 서서 볼일을 못 보니까, 이런 법도를 만들지 않았겠나.”
박정기는 뇌 정지가 와서 잠시 멍해있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제가 왜 서서 일을 못 봅니까?”
“자네는 수염도 안 나고, 얼굴도 곱상한 것이 말투도 조신하고 흠 그러니까, 그거 아닌가 말일세.”
‘뭔 개소리야 이게. 지금 나를......’
“그러니까. 내가 내시라? 그 말씀입니까?”
“그럼 아닌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게 할 소립니까? 어엿한 싸나이에게?”
“진짜 아닌가?”
“뭐~ 보여 줄까요?”
안에서 큰소리가 나자 밖에 있던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아니 그런데 왜 수염은 안 나는 건가?”
“아니 그거는 매일 면도를 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럼 얼굴은 왜 하얗고 고운데?”
“그건 조종할 때 자외선을 많이 쐬니까 UV 크림을 발라서 그런 거죠.”
“말투는 왜 여성스러운가?”
박정기는 뭐라고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우리나라 말투가 원래 이래요.”
“그래? 혹시 자네 나이가 얼마나 되는 가?”
“올해 35살 됩니다.”
“뭐? 그렇게 나이가 많았는가?”
“그럼 뭐가 좋다고 나이를 속입니까? 그러는 대감은 어떻게 되시는데요?”
“큼 나는 39살이네.”
박정기는 진심으로 깜짝 놀랬다.
“엥? 그것밖에 안됐어요?”
“그건 무슨 말이 그런가?”
“나는 50살은 되는 줄 알았는데.”
“내가 위엄이 있어서 그렇게 봤구만.”
‘위엄은 개뿔~ 겉늙어서 그렇지.’
박정기는 갑자기 김좌근이 만만해 보였다.
“형님 뻘 밖에 안 되는데, 괜히 어려워했네요.”
“나는 자네가 내관인줄 알고 거리를 두었었네.”
“나참! 별 소리 다 듣네요. 우리나라에서는 꽃 미남이라고 그러는데.”
“꽃 미남! 그거 딱 맞는 소리네 그려. 하하하”
왠지 이 양반이 말하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지는 박정기였다.
“올드 남께서 할 소리는 아니듯 합니다 만.”
“올드남! 그건 무슨 말인가?”
“뭐~ 성숙하고 품격 있다는 소립니다.”
“어허 그렇게 좋은 말이 있었던가?”
“우리나라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래 그럼 이 올드남과 꽃미남이 형제의 의를 맺기로 하세.”
“뭐 갑자기, 뜬금없이 형제입니까?”
“뭐 어떤가. 하늘에서 의형제를 맺는 게 얼마나 좋은가.”
“뭐 딱히 나쁘지는 않지만, 술 한 잔이라도 떠 놓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거 좋은 생각일세. 정서방 좋은 술 한 병 꺼내오게.”
뜬금없이 비행기에서 의형제를 맺게 되는 두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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