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 여복
78화, 아끼다가 똥이 됐구나.
저녁 무렵 영화 스크린 앞에는 관람객이 확 줄었다.
사람들이 새로 생긴 주막에 앉아 낮에 있었던 진흙탕 싸움 얘기로 시끌벅적했다.
박정기는 새로 생긴 번화가를 내려다보며, 지나간 시간을 회상했다.
호수 속으로 빠져들어 과거로 오게 되었고, 인디언 청년들과 인연을 맺어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도시라고 해도 될 만큼 성장한 원주민 마을, 주변 부족들의 유입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이제 세인트 조지를 접수하고, 산타페를 점령해야겠지.’
“손님 오셨습니다.”
“어~ 얼른 모셔와.”
“예.”
욕실에서 옷을 가져갔던 송 나인이 손님을 모시고 들어왔다.
“어서들 오십시오. 이쪽으로 앉으세요.”
“이렇게 좋은 곳으로 초대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 여기 계신 스테인씨 덕분입니다. 이 테라스는 정말 마음에 듭니다. 아주 감사합니다.”
손님은 부시장, 건축업자, 카를로스, 정육점 사장, 기술 팀장 스티븐씨다.
“윌슨 대위는 아직 안 왔나봅니다.”
“안 불렀습니다.”
“아니 왜?”
“잘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영문을 몰라 하는 기술 팀장 스티븐씨다.
“장금아 음식 들여와.”
“네 잠시만요.”
장금이와 승무원들이 화로를 들고 들어왔다.
“삼겹살이 제격인데 돼지고기가 없어서 꽃 등심으로 준비했습니다.”
“숯불은 어째서?”
“보시면 압니다.”
승무원들이 박정기에게 배운 대로 화로에 석쇠를 올리고 꽃등심을 굽기 시작했다.
치익~ 치~이~
“한잔씩 합시다.”
“네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다 같이 건배할까요?”
“좋습니다.”
“우리 리노시의 영원한 발전을 위하여~ 건배!”
“건배!”
“건배!”
“건배!”
챙 챙 챙
서로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마신 술잔을 머리 위에 털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원샷하고 확인하는 겁니다.”
“원샷이요?”
“한입에 털어 넣는 걸 말합니다. 그냥 각자 알아서 마시면 됩니다.”
“재미있습니다. 한번 더하시죠?”
기술 팀장인 스티븐씨가 흥미를 보였다.
“식기 전에 고기부터 드시죠. 소금을 찍어 드시면 됩니다.”
“네, 그럼.”
“드십시다.”
“네,”
장금이 적당히 구워진 꽃등심을 접시에 나눠주자, 한 점씩 입에 물고는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와우~ 입안에서 살살 녹습니다.”
“이렇게 맛있는 고기는 처음 먹어봅니다.”
“아니? 이게 그 고기입니까?”
“네 맞습니다.”
“으음 기름이 많아서 안 먹었는데. 이건 환상적이군요.”
“많이 드십시오.”
예네버는 소주와 비슷하지만 도수는 꽤 높다.
높은 건물 테라스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며 꽃등심을 구워 먹으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한잔씩 더 합시다.”
“네네, 그러시죠.”
“원샷 할까요?”
“좋습니다. 하하하”
“건배,”
“건배! 하하하”
몇 순배가 돌아가자 알딸딸 해진 박정기는 관리자들에게 말을 한 마리씩 선물한다고 밝혔다.
“도시를 이만큼 발전시킨 여러분께 좋은 말로 한필씩 드리겠습니다.”
“오! 정말이십니까?”
“진짜입니까?”
건축가 스테인씨가 놀라며 물었다.
사실, 아까 병사들에게 말을 나눠줄 때 자신도 갖고 싶었다.
“그럼요. 미리 준비 해두었으니 내일 찾아가세요.”
“지금 가져가면 안 됩니까?”
“음주 승마하면 벌금이 1만 실버입니다.”
“헉! 너무 비쌉니다. 평생을 벌어야겠네요.”
“하하하 안하면 되죠.”
박정기는 집을 너무 잘 지어줘서 선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스테인씨만 고생한 게 아니고 모두 했기 때문에 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하하하하 이제 걸어 다니지 않아도 되겠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감사하죠. 수고들 많았습니다.”
“이런 때 술이 빠지면 되나요. 건배!”
“건배!”
“건배!”
말을 선물로 받게 되자 기분이 좋아진 관리자들이 줄 곳 건배를 해댔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한 가지 계획을 밝혔다.
“제가요~ 술이 채서 그러는거는 아닌대요. 담주에 원정을 갈껍니다.”
“아뉘~ 그개무~슨소~ 립니꺼~”
“어~디로 가는검닙까~”
“싼타패를 먹어치울껍니다.”
“진짭니껴? 글럼 나도 가야지요.”
“안돼~ 안 됩니더, 여기는 누가 지킵니까?”
만취한 남자들의 술자리는 자정을 넘어서 끝이 났고,
남자 승무원들이 올라와서 한명씩 들쳐 업고 내려갔다.
새벽에 잠을 깬 박정기는 일어날 수가 없었다.
실오라기 하나 없이 벗겨 놓고, 팔다리 하나씩 붙잡고 베게 삼아 자고 있는 승무원들 때문이었다.
다행인 것은 에바가 없었다는 것이다.
‘흐억! 이것들이 뭐하는 짓이야? 아이고 팔 저려 죽겠네.~’
박정기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술김에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뗄 생각이었다.
한숨을 더 자고나니 오줌이 마려워서 도저히 더 잘 수가 없었다.
‘오줌보 터지겠다. 어떡하지?’
박정기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이 여자들 깨지 않게 화장실 가는 방법을 모색했다.
빠져나갈 방법을 파악해보려고,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으악! 뭐야?”
“어머!”
“엄마야!
“아악!
“꺅~~”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살려주십시오.”
박정기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보니,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 사타구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서있었다.
“누구냐?”
“송가 나인이라 하옵니다. 흑 흑 흑”
“진정하세요. 대장님!”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아유 놀래라.”
별것도 아니라는 김혜수의 말에 발끈하는 박정기다.
“뭐? 이게 별것도 아니라고?”
“숙직서고 있는 거잖아요.”
“숙직을 엉? 그걸 왜 쳐다보고 서있냐고?”
“송가야 왜? 쳐다봤어?”
김혜수가 송가 나인에게 물었다.
“밤새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좀 전에 갑자기 커지고 꼿꼿이 서있길래 무슨 문제가 있나 살피고 있었사옵니다.”
“지금은 또 죽었네.”
“젠장! 도저히 못살겠다. 에이~ 증말.”
박정기가 승무원들을 뿌리치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송가나인이 비단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따라 들어왔다.
“또~ 왜?~”
“매화를 보시고 나면....”
“나가~아! 제바~알~~”
박정기는 새벽부터 멘탈이 탈탈 털려서 너덜너덜해졌다.
궁중에서야 당연했던 일이 박정기에게는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광해에 나왔던 것처럼 일보고 나면 뒤도 닦아줄 판이었다.
‘대왕대비 어디 두고 봅시다. 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
“내 옷 가져와!”
“네이.”
‘말투가 어째 저래? 적응이 안된다 안돼.’
“여기 있사옵니다.”
“너는 말투부터 바꿔야겠다.”
“네이. 알겠사옵니다.”
“안 나가고 뭐해?”
“용포를 입으실 때....”
“당장 나가!”
“네이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박정기가 화를 내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러나는 송가 나인이다.
‘햐~ 나를 죽일 놈으로 만드는구나.’
툭하면 눈물을 보이는 송가 나인 때문에 박정기는 여자나 울리는 아주 못된 놈이 되어버렸다.
옷을 다 입은 박정기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이부자리 정리가 모두 끝나있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야?”
“저희 무수리들이에요.”
“니들 무수리?”
“네. 하나씩만 두기로 했어요.”
어이가 없어서 또 물어봤다.
“여기에 총 몇 명이 있는 거야?”
“지밀 3명, 침방 1명, 수라간 2명, 생과방 1명, 세답방 2명이요.”
“그럼 몇이야? 음, 9명이야?”
“아니죠. 저희가 하나씩 데리고 있으니까. 14명이죠.”
박정기는 어질 했다.
‘이건 진짜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내 옷은 왜 벗겼던 거야?”
“기억 안 나세요?”
“뭐가 기억나?”
“사방에 토해서 옷을 빨았잖아요.”
“내가 언제?”
“쯕! 쯕!.....에휴,~”
장금이 박정기의 옷깃을 정리해주면서 안됐다는 듯이 혀를 찼다.
‘이것들을 싹 처리해야지 안 되겠다.’
호수가 보이는 테라스에 설치된 긴 원목 테이블.
다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경치와 달리 분위기는 침울했다.
-다들 왜 말을 안 해?
-대장님 표정이 안 좋아 보이니까 그렇지.
-원래 저렇지 않아?
-오늘은 더 심하잖아.
신체 능력이 향상돼서 남들의 귓속말도 잘 알아듣는 박정기 얼굴이 한층 더 찡그러졌다.
-저것 봐~
-호호 어린애 같다.
-속이 안 좋으신가?
-그럴 만 하지 그 난리를 쳤는데.
-그런데 선화가 누구야?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자기돈 내놓으라고 하잖아.
-대장님은 다 좋은데 돈 욕심이 너무 많아.
탁!
흠칫!
박정기가 수저를 탁 내려놓고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왜 저래 방귀 뀐 놈이 성질 낸다더니~”
“이 샘! 말 좀 가려서 해라! 애들이 보고 있잖아.”
“저년은 비행기에서 안자고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다시 머리털을 뽑아 놔야 정신을 차리지.”
“이년들이~ 두고 보자!”
“흥! 두고 보자는 년 하나도 안 무섭더라.”
“호호호호”
“히히히히”
이 샘이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단체로 욕을 먹고 쫓겨나다시피 방으로 들어와 씩씩거렸다.
“두고 보자! 누가 먼저 올라타는지 똑똑히 두고 보라고.”
“뭘 올라타?”
“어머! 아이 몰라~”
박정기가 화장실에서 나오며 물어보자 이 샘이 얼굴을 가리고 도도도도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저러다 자빠지지.”
꽈당탕~
끼약!
말이 씨가 되었다.
미안해진 박정기가 내려가서 살펴보니 발목이 접질려서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잘한다.~ 여자가 조신하지 못하고~”
박정기가 이 샘을 안아 들고 다시 방으로 올라왔다.
-저년이?
-요망한 것이
-휴~ 못 말리겠군.
박정기 품에 안겨서 나타난 이 샘을 바라보는 눈길에 분노와 부러움이 교차했다.
“장금아 구급상자 가져오라고 해.”
“네?”
“뭐해?”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구급상자가 오자 압박 붕대로 이 샘의 발목을 꼼꼼히 감아주었다.
“많이 움직이면 안 된다.”
“네~ 알겠어요.”
“일단 푹 쉬고.”
“네에~”
우여곡절 끝에 박정기는 연구단지로 향했다.
주퇴복좌기와 연결되는 부분과 포신을 용접해서 붙여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날이다.
“충분히 예열을 하고 용접해야 속까지 잘 붙게 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어제 테스트 다 해봤습니다.”
“시작 하시죠?”
“네, 거기 잘 잡아 야해! 조금만 비틀어져도 안 되는 거야.”
“네, 걱정하지 마세요. 단단히 고정했어요.”
칙! 파앗! 쑤우~~~~
빨간색 불꽃이 나오자 뒤의 밸브를 조절하니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시작합니다.”
기술자가 용접 부위에 불꽃을 가져다 대자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가열을 하고 용접봉을 가져다 대자 봉이 녹으면서 물이 흡수되듯이 틈 사이로 스며들어 갔다.
“잘하시네요.”
“세상에 이런 게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런 것만 있으면 증기기관도 금방 만들 수 있는데.”
“예? 그럼 여태 헛수고 한 겁니까?”
“증기기관부터 만들었으면 좀 더 편했겠지요.”
‘그러니까 증기기관을 먼저 만들었으면, 내가 선반을 돌리지 않아도 됐다는 거잖아.’
“이걸로 증기기관을 만들려면 얼마나 걸리는데요?”
“일주일이면 만들었겠죠.”
결국 뻘짓만 했다는 게 드러났다.
먼저 용접기로 증기기관을 만들고, 그다음 대포를 만들었다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선반을 돌리느라 그동안 괜히 고생만 한 것이다.
‘용접기를 빨리 보여줬어야 했는데. 괜히 아끼다가 똥 돼버렸구나.’
대포와 포가가 연결되어 완성이 되었다.
시험 사격은 내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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