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화 - 복수
96화, 심양 황궁을 접수하다.
병사들을 위문하고 돌아온 어린 임금은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흘렸다.
재빨리 조종실 문을 닫고 박정기가 물었다.
“갑자기 왜 옥루를 보이시는 겁니까?”
“가슴이 북받쳐서 자꾸 눈물이나.”
박정기는 한쪽 무릎을 굽혀 임금과 눈높이를 맞추고 꼭 안아주었다.
“그렇게 좋았습니까?”
“응, 병사들이 충성을 맹세하고 만세를 불렀어.”
어린 임금을 안아주면서도 걱정이 됐다.
‘이런 거에 맛들이면 안 되는데.’
괜히 데려왔나 후회도 됐지만,
멍청한 군주보다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얻어맞는 것보다 때리는 게 낫잖아?’
한참을 안아주자 진정이 됐는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지밀상궁에게 임금을 맡기고 김좌근과 두 병마절도사를 만났다.
“순찰사 대감! 오늘밤에 야습이 있을 것 같은데 대책은 있습니까?”
“누가 야습 한다고 했어?”
“에 헤이~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서로 존대 좀 합시다.”
“미안하이 동생!”
“대비는 되었습니까?”
“네! 경비를 철저히 하라 일렀습니다.”
평안 병사(병마절도사)가 대답했다.
“우리도 도울 테니 주둔지 외각에 1장 높이로 망루 20개를 설치해주십시오.”
“망루만 있으면 되는 겁니까?”
“네 2사람씩만 올라가면 되니까. 자정 전까지만 만들어주시면 됩니다.”
“그 정도는 금방 만들 수 있습니다.”
하기야 1만2천의 병사가 있으니 망루 20개야 금방 만들 수 있다.
밖은 이미 껌껌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망루 주변으로 조총과 궁수를 집중적으로 배치시켜 주십시오.”
“야습을 확신하시는 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100분의 1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대비해야 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오랜 기간 전쟁 없이 지내다보니, 실전 경험이 전무 한 상태다.
“낮에 총 때문에 호되게 당했으니. 적들은 어두운 밤에 들이쳐서 칼과 창으로 혼전을 유도할 것 입니다.”
“조총은 어두워지면 명중을 못시키니 밤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겠군요.”
“맞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밤이 깊어야 쳐들어 올 테니 자정까지는 조선군이 경계를 맡고, 자정이 되면 우리 특공대를 투입해 교대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특공대를 배불리 먹이고 일찍 잠을 재웠다.
자정이 되도록 야습은 없었다.
“기상! 일어나라!”
“기상!”
박정기는 일어난 특공대에게 플래시 20개를 지급하고, 2인 1조로 망루에서 경계근무를 하라고 지시했다.
“절대로 공격범위 안으로 들어오기 전까지 플래시를 켜지 마라! 그리고 모포는 아래에 한 장 깔고 한 장은 덮어라.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윌슨 대위는 가운데 자리를 잡도록 해.”
“알겠어요.”
“전체를 살피면서 지원이 필요한 쪽으로 집중사격을 해줘.”
“걱정 마세요.”
“자 출발!”
특공대는 조용히 비행기를 빠져나가 숙영지를 지나 망대로 향했다.
곳곳에 횃불을 밝혀 놓았지만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대원들이 조선 병사들과 교대를 하고 망루로 올라가서 바닥에 모포를 깔고, 한 장은 둘이 함께 덮어 갑작스런 기습을 대비했다.
박정기는 비행기에 설치되어있는 열상 카메라를 작동시켜 보았지만 중간에 숙영지가 때문에 시야가 가로막혀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고 이 밤에 날수도 없고. 잘 처리하겠지.”
그 시각 심양의 성문이 조용히 열리고 창과 칼로 무장한 보병들이 소리없이 몰려나왔다.
입에는 나뭇가지를 물어 말을 못하게 하였고, 날붙이에는 천을 감아 빛이 반사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여러 방면으로 나뉘어 조선군 숙영지로 향하는 청군은 초닷새의 어두운 달과 짙은 구름으로 인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숙영지 300m 앞까지 도달한 청군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 신호를 기다렸다.
조선군 숙영지와 망루에서도 이상함을 감지했다.
노루가 뛰어 달아나고, 개구리 울음 소리가 멈추었다.
조선군 장수들은 소리 없이 병사들을 깨우고 망루 주변에 사수들을 배치시켰다.
사수들 후미에는 창과 칼로 무장한 병사가 몸을 낮춰 대기했다.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지나고 새벽 3시가 되었다.
야습이 맞는지 아닌지 의심스러워질 무렵,
쐐액~~~쐐액~~~쐐액~~~
멀리서 3발의 효시가 날아올랐다.
와아~ 와아~ 돌격하라!
섬멸하라!
와아~ 모두 죽여라!
우렁찬 함성과 함께 청군들이 일제히 돌격해 들어왔다.
만약 무방비 상태로 당했으면 우왕좌왕하다가 상당한 피해를 입고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기의 기지로 일찌감치 대비하고 있던 조선군은 달랐다.
청군은 무장을 하고 200m를 달려왔으니 뛰는 속도가 떨어졌다. 100m 앞에 접근하자 망루에서 플래시가 일제히 켜졌다.
화악!
-앗 눈이 부시다.
-앞이 안 보인다.
-돌격을 멈추지 마라!
-무조건 달려라!
탕!타타타타타타타타탕!
윌슨의 개틀링이 불을 뿜었다.
타탕! 타타타탕! 탕! 탕타타타탕!
리볼버 소총도 불을 뿜었다.
“전군 쏴라!”
쒹!시시시쒹! 쒹!쒹!쒹!시시쒹!시시쒹!
수백발의 화살이 날았다.
크악~
윽!
컥!
으악! 살려줘.
청군은 달려오면서 쓰러지고 그러면 또 뒤에서 달려들었다.
남은 100m를 달려오는 10여초, 죽음의 질주가 되었다.
탕!타타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타타탕!
타탕! 타타타탕! 탕!타탕! 타타타탕!
쒹!시시시쒹! 쒹!쒹!쒹!시시쒹!쒹!
수많은 총알과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져 내렸다.
밝은 불빛아래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청군은 그렇게 학살되었다.
망루 위에서 내려다보며 사격해대니 30m안으로 접근하는 자가 없었다.
불빛을 겨냥해 몇 발의 화살이 날아왔으나, 방탄 모포에 막혀 쓸모없이 되었다.
개틀링 기관총이 사방으로 난사하고, 리볼버 소총이 연속사격을 해댔으며, 조총과 화살이 전장을 가득 메워다.
전멸적인 피해를 입고 도주하기까지 10여분. 청군은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와~ 이겼다!
-만세, 만세, 만세,
-쫒지 마라!
-자리를 지켜라!
조선군은 승리한 가운데 차분히 전열을 정비했다.
-윌슨! 고생했다. 특공대를 철수시켜.
“넵! 알겠습니다.”
-탄피는 한발도 잃어버리면 안 돼!
“네 알겠어요.”
개틀링 기관총의 탄피는 부사수중의 하나가 포대를 들고 전부 받아냈으며.
리볼버 소총은 처음부터 탄피를 회수해 주머니에 넣도록 훈련시켰기 때문에 잃어버릴 일은 없겠으나, 혹시라도 분실하면 똑똑한 군기시 장인들이 복제해낼 것이다.
‘무기기술은 최대한 숨겨야지.’
임무를 마친 특공대원들이 흥분된 모습으로 기내에 들어왔다.
화약 냄새가 화악 풍겼다.
“오늘 진짜 끝내줬다.”
“그놈들도 대단하다. 죽는 줄 알면서 끝까지 뛰어들다니.”
“뒤에서 도망가는 놈들을 죽이고 있었잖아.”
“그래? 나는 못 봤지.”
“나는 총알이 다 떨어졌다.”
“나도.”
100발씩 나누어준 총알을 모두 소진하고 자랑하는 특공대원들이다.
“탄피를 회수해라!”
“탄피 하나라도 없어지면 전체 기합이다.”
“찾을 때까지 굶는 거다.”
“정말이요?”
“그래!”
박정기는 탄피문제 만큼은 양보가 없었다.
다행히 정확하게 숫자가 맞아떨어졌다.
“장금아 야식과 술도 내줘라!”
“네 알겠어요. 모두 도와줘.”
“알았어.”
총소리에 잠에서 깬 어린 임금에게 김좌근이 찾아와 전장의 상황을 보고했다.
“전하! 약 7천의 청군이 야습을 해왔으나, 저희 병사들과 람보 특공대가 합심하여 물리쳤사옵니다.”
“훌륭합니다. 지금 병사들을 치하하러 가야겠어요.”
“지금은 밤이 깊습니다. 내일 동이 트면 하시옵소서.”
“그럴까?”
어린 임금은 벌써 관심 받는 걸 좋아한다.
‘에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거냐? 누군가 케어를 잘해줘야 할 텐데.’
박정기의 우려와 달리 어린 임금의 치기를 꺾어 땅에 묻어버릴 만큼 강력한 사상과 신념으로 무장한 사대부들이 조정에는 한가득 포진해있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사방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결과적으로 3천6백 명의 청군이 몰살당하고, 부상병과 포로가 2천3백 명이다.
달아난 자가 1천여 명으로 집게 되었고, 아군의 피해는 미미했다.
어린 왕은 숙영지를 다니면서 병사들을 치하했다.
-주상전하 만세! 만세! 만세!
-대조선국 만세! 만세! 만세!
우렁찬 함성이 곳곳에서 들려왔고, 임금은 구석구석 다니면서 한사람도 빠짐없이 꼼꼼하게 치하했다.
“오늘은 눈물이 안 나옵니까?”
“응! 이제 눈물이 안 나와.”
“감축 드리옵니다.”
“왜?”
“이제 조금 성장하신 것입니다.”
“아! 나도 어른이 된 거야?”
“네, 조금 빠르게 어른이 되실 것 같사옵니다.”
“그럼 친정을 해도 돼?”
“친정을요?”
박정기는 깜짝 놀라 다음 말을 잊지 못했다.
‘뭐가 되려고 이러나?’
박정기는 심양성을 공략하기위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지휘부 군막을 찾았다.
“대책은 세웠습니까?”
“성벽이 높고, 대포가 많아서 공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네.”
“성문만 부셔주면 되겠습니까?”
“그게 가능하겠는가?”
“한번 해보죠 뭐!”
그 외 박정기는 작전의 변경을 제안했다.
“포위를 풀고 도망갈 길을 열어 주시시오.”
“어째 그러는가?”
“남문을 부수면 지레포기하고 도망갈 겁니다. 그래야지 희생 없이 심양을 차지하지 않겠습니까?”
“알겠네. 그리하지.”
박정기는 비행기로 돌아와 대포를 꺼내 빼앗은 마차에 실었다.
“잘 고정해야합니다.”
“네.”
대포 제작에 참여한 기술자가 대답하고 포가를 마차에 꼼꼼히 묶었다.
완성이 되자 마차를 끌고 남문으로 향했다.
거리는 1km밖으로 블랑기포 포탄이 날아올 수 없게 멀찍이 설치했다.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블랑기포로 보이는 대포가 성위에 간혹 보였다.
홍이포는 산해관에 있을까 여기에는 보이지 않았다.
“모두 철수시켰네.”
“그렇습니까? 그럼 보병과 기병을 기동하면서 위협을 가해보세요.”
“알겠네.”
기병들이 금방 들이칠 듯이 기동을 했고, 보병도 전열을 정비하고 전진할 것처럼 위협했다.
아니나 다를까 블랑기포가 발사되었다.
100m 앞에 떨어져 포탄이 튀어 올랐다.
“피해! 조심해야겠다.”
“어이쿠.”
많이 벗어나기는 했지만 박정기도 쫄았다.
“빨리 성문을 부수고 빠지자.”
“네, 바로 발사하겠습니다.”
쾅! 쑤우 펑!
새로만든 다이너마이트 포탄의 화력이 상당히 좋아졌다.
초탄이 기막히게 성문을 명중했고, 포탄이 터지면서 머리통만한 구멍이 뻥 뚫렸다.
성문 밖에 붙여놓은 철판에 머리통만한 구멍이 뚫렸다는 것은 뒤쪽 나무부분이 너덜너덜해졌다는 뜻이다.
“계속 발사!”
“발사!
쾅! 쑤우 펑!
다른 위치에 구멍이 뚫렸다.
계속 발사하자 성문을 지탱하던 나무가 박살나며 철편들이 무너져 내렸다.
“성문이 뚫렸다!”
“아직 대기하세요.”
“왜 그러나?”
“대포도 처리해야죠.”
블랑기 대포에 쇠구슬을 넣고 발사하면 큰 인명피해를 볼 수 있다.
“성벽위의 대포를 겨냥하세요.”
“네,”
쾅! 쑤우 펑!
대포 옆에 있는 여장에 맞은 포탄이 터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뛰었다.
대포를 재고 있던 포수들이 파편에 맞아 쓰러졌다.
-으으윽!
-아아아
죽지는 않았지만 부상이 심각해 대포를 쏘지는 못했다.
대포를 다루는 기술자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기술자 특유의 손재주와 요령으로 정확한 탄도를 계산해 내는 것이었다.
“기막히군요. 대포를 배운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지난번이 처음 쏴본 겁니다.”
“명사수네, 특별 보너스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포로 몇 번 쏘자, 성벽위의 병사들이 모두 도망가 버렸다.
자신들의 대포 사정거리 밖에서 쏘는 대포가 정확하게 날아와 폭발한다.
포탄이 폭발하면 주변의 4~5명이 쓰러졌다.
이걸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이미 성문은 뚫렸고 지원군도 오지 않는다.
“퇴각하라!”
“모두 내려가서 성문을 막아라!”
장수는 소리쳤으나 성문을 막는 자는 없었다.
그 시각 서문이 열리고 심양의 지휘부와 함께 기병이 달아나고 보병들도 뒤를 이어 달아났다.
“동생이 말하면 안 되는 것이 없구려. 어떻게 도망갈 줄 알았던 건가?”
“그거야 형님이 모르는 거죠. 무관들은 다아는 겁니다.”
주변의 장수들이 슬며시 딴 곳을 바라본다.
“형님! 병사들은 도망가게 두고 백성들은 막으세요.”
“알겠네.”
김좌근이 기병을 보내 병사들의 뒤를 막고 백성들의 탈출을 막았다.
드디어 심양(봉천성)을 얻었다.
병사들을 들여보내 심양성을 완전히 장악하고 어린 임금과 함께 성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들어가니 누르하치가 짓기 시작해서 청나라 황제가 된 청 태종 홍타이지가 완성한 황궁이 나타났다.
“하~ 여기가 효종대왕께서 볼모로 잡혀계셨던 곳이구나.”
“네 맞사옵니다. 그날의 한을 이제야 풀었사옵니다.”
대신과 병사들이 엎드려 통곡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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