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 음악
39화, 궁전 같은 저택을 접수하다
점심때가 되어 레스토랑으로 내려간 박정기는 얀센과 집사 톰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잘 주무셨습니까. 팍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박정기의 직함이 하나 더 늘어났다. 윌슨이 부르는 부기장, 인디언들이 부르는 대장님, 하와이 국왕의 박 대사님, 암스테르담의 팍 대표님, 박정기 본인도 헷갈렸다.
하지만 당분간을 상황에 맞춰서 신분에 맞는 행세를 해야 한다.
“제게 남은 재산은 한스 빌럼스의 저택이 다인가요?”
“저택과 노예들입니다. 우리나라는 노예가 불법이기 때문에 현물 투자로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아! 노예가 있었지. 어차피 미국으로 데려가서 해방시켜 줄 겁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팍 대표님.”
조금 있으니 여자 승무원들이 우르르 내려왔다.
“잘 쉬셨습니까? 사모님들!”
“......”
집사 톰이 일어나 인사를 했다.
“톰! 누가 사모님이래?”
“어제 침실로 모시는 데 따라 들어 오셔서, 나가시라고 했더니 서로 부인이라고 하셔서......”
“허어~ 기가 막혀서.”
박정기가 승무원들을 째려보자 고개를 푹 숙이고 나란히 서있다. 막상 혼내려 하니 얀센 사장이 옆에 있어서 그만두었다.
“점심 먹고 저택에 갈 테니, 톰이 안내를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톰 자네는 결혼했는가?”
“아닙니다. 할 형편이 안돼서요.”
“나이가 어떻게 되는 데?”
“32살입니다.”
‘고생을 해서 그런가? 겉늙었네. 에효~ 불쌍한 것.’
식사를 마친 박정기 일행은 한스 빌럼스의 저택으로 갔다. 시내 중심가에 정원을 갖추고 있는 좋은 집이었다.
“오~ 아주 좋은데?”
“암스테르담에서는 손가락 안에 꼽히는 집입니다.”
“그 흉악한 놈이 이런 집을 지었을 리가 없고.”
“몇 년 전에 어느 귀족과 결투를 하고 빼앗은 것입니다.”
“그게 가능해?”
“아무튼! 서류까지 완벽하게 받아내고 쫓아냈습니다.”
어이가 없는 박정기는 호기심이 들어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1,000평정도 되는 정원에 잔디와 나무들이 보기 좋게 관리되어 있었다. 궁전 같은 3층 짜리 건물은 연식이 좀 되었지만, 오히려 고풍스럽고 품격이 있어 보였다.
“와~ 너무 예쁘다.”
“대궐 같아요.”
“대궐보다 더 좋다.”
“이게 우리 집이에요?”
에바가 우리 집이냐고 물어보는 데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혹시 에바가 새벽의 일을 기억하나?’
마치 자신이 안주인 이라도 된 양 말하는 에바가 예사롭지 않았다.
집사가 문을 열라고 하자 저택 안에서 하인들이 나와 몸을 낮췄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어허 이러지 마십시오. 고개를 드세요.”
20여명의 여인들이 나와 인사를 하는데, 다양한 나라 사람들이 섞여있었다.
“메이드가 왜 이렇게 많아?”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그~ 그러지.”
톰의 표정에서 어떤 사정이 있음을 읽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택의 구조는 중앙에 큰 홀이 있고, 왼쪽에는 연회장 같이 큰 식당, 오른쪽에는 집무실이 있었다.
집사의 안내에 따라 집무실로 들어섰다.
안쪽에 큰 책상과 의자가 있고, 그 앞으로 쇼파가 양쪽으로 여러 개 놓여있었다.
집사가 정해준 자리에 앉자, 승무원들도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이제 말해보게.”
“네! 전주인은 부인이 없습니다. 밤에는 메이드를 불러서 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런 쳐 죽일 놈이 있나?”
“악마 같은 놈, 잘 죽였어요.”
에바 눈에서 불똥이 튀고 있었다. 다른 승무원은 말을 못 알아듣기 때문에 흥분한 에바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럼 저들은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외국에서 사온 노예기 때문에 갈 곳이 없습니다.”
“하여튼 나쁜 짓은 다하고 살았네.”
박정기의 말에 집사 톰은 허리를 숙여 용서를 빌었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나?”
“저도 책임이 있습니다.”
“강압에 의해서 한 일은 자네 책임이 아니네. 자책할 필요 없어.”
“......”
당분간은 이 집에 살게 해야 한다. 미국으로 데려가도 머무를 집도 없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자네 집은 어디인가?”
“저도 여기에서 삽니다.”
“그래? 왜? 아니 사정이 있겠구만, 자네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계속 살게 하겠네.”
집사 톰이 여기에 살았다는 것은 노예와 다름없는 신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하면 자존심이 다칠까 봐 말을 돌렸다.
‘에효~ 10여 년간 노예나 마찬가지로 살았으니 저렇게 삐쩍 말랐지. 불쌍해 죽겠네.’
집사의 안내에 따라 집안을 구경했다.
2층에는 30여개의 침실이 있었으며 하녀들의 방과 톰의 방도 있었다.
3층에는 좌우 양쪽에 큰 침실 2개와 서재, 드레스 룸, 작은 방 10개와 거실이 있었다.
“이 서재 딸린 침실이 그놈이 쓰던 방인가?”
“네 맞습니다.”
“책은 없고 이게 다 뭔가?”
“따로 모으는 귀중품들입니다.”
서재의 책장에는 각종 귀한 물건들이 넘치게 쌓여있었다. 중국 도자기부터 금으로 만든 각종 식기와 접시, 촛대, 한마디로 보물 방이었다.
“저 상자에 현금이 있을 겁니다.”
“잠겨있는데?”
“열쇠는 어디에 있는지 저도 모릅니다.”
박정기는 상자의 큰 자물통을 붙잡고 힘을 주었다. 우둑 우두둑! 자물쇠와 연결된 고리와 나무가 함께 뜯겨져 나왔다.
“어흡! 아니 어떻게 쉽게......”
“어디 보자.”
상자를 열어보니 금화가 잔뜩 들어있었다.
“와 이게 다 얼마야?”
“......”
톰도 놀랬는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건 우리 거 맞지?”
“네 물론입니다. 신세계 주식회사와는 모든 결산이 마무리 됐습니다.”
“또 없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방은 가끔 들어와 봤기 때문에....”
박정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금화만 해도 어마어마한데 책장에 있는 것들도 다 보물들이니 팔면 얼마나 될까? 행복한 계산을 했다.
“건너편 방은 뭔가?”
“예전에는 귀부인이 사용하는 방이었다고 하는데, 전 주인은 잠자리를 가질 때 저 방을 썼습니다.”
박정기는 들어가 보기도 싫어서 그냥 아래로 내려갔다.
“톰 자네는 3층에 있는 이불과 옷가지들을 모두 버리고, 새로 사서 잘 꾸며주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재산 목록을 다시 만들어서 내게 주게.”
“네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암스테르담에 오면 여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3층 서재가 있는 방은 자신이 사용하고 귀부인이 쓰던 방은 기장님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방에 에바와 승무원들 그리고 손님방으로 쓰면 적당할 것 같았다.
목록이 완성되면 귀중품과 금화 상자는 비행기에 실어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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