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43화, 홍등가를 배회하는 형님
그 시간 비행기 주변을 돌며 유심히 살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날개 뒤에 붙는 판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세.”
“그럼 뒤에 붙은 것은 요?”
“세로로 서있는 지느러미 뒤에 있는 것은 좌우로 움직인다네.”
“그래서 방향을 조정하는 거군요. 배의 방향타처럼.”
“맞네, 그러니까 실상 별거 없는 것일세.”
변장한 선장과 조선소 기술자는 한동안 비행기를 염탐하고 떠나갔다.
김좌근이 박정기에게 다가와 몸을 비비 꼬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저~ 동생! 그러니까 돈 좀 있으면 좀 융통해 줄 수 있겠는가?”
“돈이요? 얼마나요?”
“물가를 잘 몰라서 그러는 데 자네가 알아서 주게나.”
박정기는 대왕대비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나 생각했다.
“1만 실버 정도면 되겠습니까?”
“뭐 아무튼 줘 보시게.”
“말도 안 통하는데 어떻게 하시게요?”
“괜찮네, 오늘은 구경만 하고 오겠네.”
“여기 수표로 드릴게요. 그리고 잔돈은 100실버만 가져가셔도 될 겁니다.”
박정기는 1,000 실버짜리와 100실버짜리 수표를 섞어 주었다.
“이 동그라미가 두 개면 100냥이고, 세 개면 1,000냥입니다. 잘 보고 주셔야 합니다.”
“이게 그렇게 큰 돈 인가?”
“여기는 물가가 비싸서 조선보다 가치가 낮습니다.”
“음 그렇군, 그럼 다녀오겠네.”
늦은 오후가 되었는데 나간다고 하니까 걱정이 되었다. 지난번처럼 거지꼴로 밥도 못 먹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지만 어른이 하겠다는 것을 말리는 것도 예에 맞지 않았다.
“저녁이 다되었는데, 지금 나가신다구요?”
“저녁에 볼 것도 있고 해서.”
“그럼 저하고 같이 가세요. 액자도 찾아야 해서 시내에 가야 하니까요.”
“크흠! 그런가? 그럼 같이 갔다가 나는 따로 일을 보겠네.”
“네 그러시죠.”
박정기는 배를 타고 시내로 나갔다. 집사 톰과 김좌근, 몸 구종이 함께했다.
“저는 여기서 액자를 찾아야 합니다. 들어가 보실래요?”
“무슨 액자인가?”
“저희 부모님 사진입니다.”
“오~ 그래 춘부장이시면 한번 봐야겠군.”
김좌근과 함께 액자 가게로 들어서니 사장이 반갑게 맞아준다.
“어서 오십시오. 액자는 여기에 있습니다.”
“와~ 직접 그리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이 일만 30년 했습니다.”
“사진하고 똑같이 그리셨네요?”
“하하하 부끄럽지만 모사 하나 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인정할 만했다. 사진 모사 잘하는 사람들이 간혹 TV에 나오는데, 그런 모사와 수준이 달랐다.
부모님이 그림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 이건 사진보다 더 정교하고 생동감이 났다.
‘이런 재능이 있으면서 왜 유명한 화가가 못 된 건가?’
하기야, 모사는 작품을 도둑질 한다는 정서가 강하다.
현대에서야 사진을 베껴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지만, 이 시대에 남을 작품을 모사 한다는 것은 떳떳하지 못한 행동일 것이다.
“와! 이런 건 얼마나 하는가?”
“20냥입니다. 하나 하시게요?”
“나도 하나 하고 싶네. 누님도 해드리면 좋아하실 텐데.”
누님은 대왕대비를 말한다. 해주고 싶지만 사진이 없으니 방법이 없었다.
“형님 것은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으로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하 그럼 부탁함세. 그럼 나는 볼일이 있으니까 가보겠네.”
“네 조심 하시구요.”
“걱정 말게. 하하하”
김좌근이 들뜬 얼굴로 가게를 나섰다.
“뭐가 저리 좋으신지.”
“저 사람과 일행이십니까?”
가게 주인이 김좌근을 가리키며 물어왔다.
“네 같이 온 일행이 맞습니다.”
“허허 그랬군요. 저 아래 블록에서 소문이 자자합니다.”
“무슨 소문이요?”
“??? ????”
가게 주인이 뭐라고 말을 했는데 집사인 톰이 통역을 안 하고 머뭇거린다.
“왜, 통역을 안 하는 거야?”
“그게 말하기가 곤란해서요.”
외국에 나가서 통역을 고용하면 통역이 장난질을 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박정기는 이런 경우를 당해봤기 때문에 통역이 제멋대로 걸러서 말하는 것을 극히 싫어한다.
박정기가 엄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톰! 이러면 내가 곤란해! 자네는 있는 그대로 통역을 하면 되는 거야, 판단은 내가 하는 거고. 자꾸 이러면 내가 자네를 믿을 수 있겠는가?”
우유부단한 통역을 믿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대화 내용을 순화 시키거나 좋게 표현하기 때문에 사업상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업상 거래 할 때 통역을 두 명 이상 고용해 교차 검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도 모자라 녹음을 하고 다른 통역에게 내용을 브리핑 받기도 한다.
그래도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잦고, 회사 기밀이 새어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욕을 하면 욕한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데, ‘저 사람이 안 좋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통역을 해버리면, 이쪽에서는 상대의 기분을 맞추려고 노력하게 된다.
그럼 상대는 ‘한국 놈들은 줏대도 없구나. 욕을 쳐 먹고 저렇게 아부를 떨어 대다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밤마다 홍등가를 돌아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홍등가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합니다.”
박정기는 괜히 얼굴이 뜨거워졌다.
‘헐~ 그럼 밤새 홍등가를 돌아다니다가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잔 거야?‘
“이런 빌어먹을 양반을 봤나, 저런 게 사대부라고 거들먹거리기나 하다니.”
박정기 입에서 한국말이 튀어나왔다.
암스테르담의 집창촌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국가에서 성매매를 인정하기 때문에 섹스를 목적으로 온 관광객이 넘쳐 난다.
박정기는 액자 값을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어딘가? 가보세.”
“네 알겠습니다.”
홍등가가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자 상상했던 그대로의 모습이 보였다.
빽빽이 들어찬 가게의 유리 너머로 반나체의 여인들이 손짓하며 길가는 사람들을 유혹했다.
글래머러스한 여인들의 신체는 확실히 이국적이었다.
‘어디 있는 거야?’
한참을 찾다 보니 좁은 골목 안에서 퍽! 퍽!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골목으로 들어서자 김좌근과 몸 구종은 바닥에 쓰러진 채 발에 밟히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이 구경만 하면 됐지, 어디서 X을 놀리려고 하고 있어?
-세상 많이 좋아졌네. 노랭이 놈들이 감히 여기까지 들락거리고.
“그만 하시죠.”
“어쭈, 노랭이 한 놈 추가네.”
“여기서 나갈 테니 보내주시오.”
“들어올 때는 네놈들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이 어르신의 허락해야 나갈 수 있는 거다.”
“많이 때리신 것 같은데 이제 봐주십시오.”
“한스 잡아와!”
‘이 동네는 한스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한스라는 거구가 박정기에게 다가왔다. 척! 멱살을 잡으려 하는 한스의 손목을 낚아 챘다.
뿌드득!
-크아악!
손목 관절이 어긋났다.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신음을 흘리자 다른 거한이 단검을 뽑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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