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 해적
75화, 과학기술이 움트기 시작하다.
“왕비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
“아직도 국왕이 찾아옵니까?”
“왕자들이 찾아와서 힘들게 하네요.”
“왜요?”
“그것이~”
살다 살다 아버지와 아들들이 한 여자를 두고 다투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참나! 희한한 나라구나. 이래서 나라 꼴이 뭐가 되겠어?’
박정기는 몰랐지만 의외로 부자간의 여자 다툼은 많은 편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시려고요?”
“장례를 모셔야겠지요.”
“그거야 저들이 알아서 할 것 아닙니까?”
“정성을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와이의 장례 절차는 간소하게 이루어지는 편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궁녀들과 주민들이 장례를 맡아 진행하자 성대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연출 되었다.
예법에 목숨 거는 조선의 장례 문화인데 말해 무엇 하겠는가?
궁녀들은 왕비의 시신이 안치된 곳에서 하루 종일 곡을 했다.
그 곡소리가 얼마나 심금을 울리는지 듣고 있는 이들을 통곡하게 만들었다.
또한 왕비가 살아있는 것처럼 음식을 대접하고 제사를 올렸다.
그 정성이 얼마나 갸륵한지 말리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런 지극정성에 하와이 왕가와 신하들이 감복하며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3일장을 마치고 묘지로 모시는데, 조선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상여를 붙잡고 오열했다.
이를 지켜보던 하와이 주민들이 모두 탄복했다.
그렇게 국장을 무사히 마치자, 이 상궁의 처소에 왕자들의 방문이 뚝 끊기고 왕도 자숙하는지 들르지 않았다.
자신의 어미와 부인을 지극 정성으로 모셨는데, 거기다 추파를 던지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선장과 주동자들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선원들은 족쇄가 채워져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로 부려졌다.
돛대가 부러진 범선은 목수와 대장장이들에 의해 수리를 마쳤다.
“이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박 대사에게 빚을 많이 졌습니다.”
“그런 건 말보다 물질적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전하.”
“하하하 맞는 말이요. 원하는 것이 있소?”
박정기의 능청스런 대답에 진담으로 받아들이는 하와이 국왕이다.
‘왕이 물어보는데 대답을 안하는 건 예의에 맞지 않겠지?
“저 배가 필요하십니까?”
“흐음, 배가 필요하시오?”
“실려 있는 물건은 국왕전하께서 모두 가지시고, 배만 제게 주신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드옵니다만.”
박정기는 배 한척이 아쉬운 터라 국왕에게 넌지시 뜻을 던졌다.
“배가 딱히 필요한 것은 아니긴 한데~”
“제가 이 지연님과 다리를 잘 놓아보겠습니다.”
“정말이요? 언제 만날 수 있소?”
“그전에 확답을 주셔야~”
“알겠소, 드리겠소.”
박정기는 배를 받게 되자 뛸 듯이 기뻤다.
목수들에게 배의 정비를 맡겨두고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갔다.
“이게 뭐하는 짓이요?”
“그게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임시 막사 안에는 조선 기술자, 군기시 장인, 증기기관 기술자들이 모여서 발전기를 완전히 분해해서 늘어놓고 있었다.
“이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란 말이요?”
“우리나라에 없는 게 없다고~.....”
“다 있소, 그렇지만 지금은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고장 나면 어쩌려고 이런 짓을 하는 겁니까?”
갑자기 방문한 박정기에게 딱 걸린 기술자들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발전기는 완전히 분해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박정기는 반려견이 죽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발전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물건이다.
지금은 꺼내 놓지 않았지만 전기 용접기와, 미니 공기압축기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전동 윈치와 TV도 연결해야 하는데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빨리 제대로 맞춰놓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자 어서 어서 조립하세.”
“네, 빨리 합시다.”
“네네.”
기술자들은 잔뜩 쫄아서 발전기를 조립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도끼눈을 부라리며 지켜보고 있는 박정기의 표정은 흉신악살이 따로 없었다.
-이보게 여기에 있던 거 어디 갔나?
-글쎄요. 저는 못 봤는데요.
-저거 아닌가.
-저건 다른데 들어가는 거구요. 저것보다 작은 건데요.
-나도 본 것 같은데, 찾아보세.
뭔가를 소곤소곤 거리는 기술자들을 박정기가 째려봤다.
“뭐 없어졌어요?”
“아이고 아닙니다. 다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참을 뚝딱 거려서 발전기 조립이 끝났다.
“이제 작동이 되는지 시동을 걸어보세요.”
“네, 제가 걸게요.”
그러고는 안정호 팀장이 시동 줄을 잡으려고 손을 뻗으려는 순간.
툭!
데구르르르
뚝.
박정기의 구두에 작은 베어링이 굴러와 부딪혀 멈췄다.
-헉! 저게~
-들켰네.
-죽었다.
-저 자식이!
안정호 팀장은 작은 베어링이 팽팽 잘 돌아가는 것이 신기해서 마차바퀴에 이런 것을 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베어링을 잡고 요리조리 살피고 있었는데 박정기가 들이 닥쳤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기술 첩자로 오게 되면서 매사에 가슴 졸이던 안정호,
그는 박정기 앞에서면 고양이 앞에 쥐 마냥 한없이 작아졌다.
그중에 오늘이 최악의 날이다.
기술을 훔치기 위해 발전기 분해에 적극 가담하고 오히려 선동했다.
그런데 현장이 발각되자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
자신의 손에 베어링이 들려있다는 사실도 망각한 체.
한편.
증기 기관기술자는 발전기를 조립하다가 작은 부품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살펴보니 회전하는 부분인데 없어도 대충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자신의 반지를 대신 끼워놓고 뚜껑을 닫았다.
조립을 마치고 시동을 걸려는데 툭! 데구르르르 굴러가는 베어링을 보고 심장이 멈췄다.
몰래 속이려다가 발각된 것이다.
“.......”
“.......”
“.......”
“.......”
“베어링! 베어링? 으아악~~~”
박정기의 포효에 모든 기술자들의 무릎이 꺾였다.
* * *
조선소 관사 앞마당에 십여 명의 기술자들이 푸시업을 하고 있다.
“하나에 장비는 둘에 생명이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박정기가 뒷짐을 지고 양발은 어깨넓이로 벌리고 한손에는 전깃줄을 잡고서있다.
“소리가 작습니다. 그래서 정신교육이 되겠습니까?”
“시정하겠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17회를 실시하되 마지막은 복창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건 안 걸릴 수가 없다.
손가락 개수를 넘어가기 때문에 구호와 숫자를 함께 셀 수가 없다.
“실시!”
“장비는 생명이다.”
“장비는 생명이다.”
.
.
“장비는 생명이다.”
“장비는.....”
히죽 웃은 박정기가 전선을 들고 엎드려있는 기술자들에게 다가갔다.
“0.2초간 정신에 충격을 가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네에~ 알겠습니다.”
박정기는 기술자들의 발목에 연결된 전깃줄에 들고 있던 전선을 잠깐 붙였다 떼었다.
으아아아악으악아아악~
“이제 정신 좀 차렸습니까?”
“네엡! 차렸습니다.”
“옙! 정신 차렸습니다.”
“하나에 장비는 둘에 생명이다. 23회를 실시하되 마지막은 복창하지 않습니다. 알겠습니까?”
“네에~ 알겠습니다.”
“네엡! 차렸습니다.”
박정기의 정신교육은 늦게까지 이어졌고, 녹초가 된 기술자들은 숙소로 들어가 뻗어 버렸다.
-그런데, 엔진톱은 매일 아침에 새것처럼 변하던데.
-아이고~ 이젠 두 번 다시 그런 생각하지 말고 어서 잠이나 자게.
-저 베어링 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
-망할 베어링 같은 놈
안정호 팀장은 그날 이후 베어링으로 불리게 되었다.
조선에서 태우고 온 일꾼들을 조선소에 내려주고, 비행기는 피라미드 호수로 향했다.
“와~ 저것 봐라 벼가 많이 자랐지?”
“어머! 농사짓는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자라는 거죠?”
“이게 플랜테이션 농업이라는 거다. 하하하”
“그게 뭔데요?”
“저게 그거지.”
“......”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잘난 척 하시기는.’
장금이는 지금 예민해지는 시기이다.
피라미드 호수에 도착한 비행기는 못 보던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우리 집이 완성되었나 봐요.”
“왠지, 호텔 같이 보인다?”
“방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선착장 옆에 4층 짜리 호텔 같은 건물이 들어서 있다.
자신의 건물을 지어 달라고 했는데, 왜 호텔을 지었는지 궁금했다.
시청사로 이동한 박정기가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 동안 잘 계셨습니까?”
“네 시장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이번에는 아주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박정기는 한양에서 있었던 일과 북경을 불바다로 만든 일, 하와이에서 해적선과 싸운 일 등을 이야기 해줬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그려.”
“맞아요. 이젠 영화도 다 봐서 재미가 없어요.”
‘아 영화를 더 다운 받아 줘야겠구나.’
“그래서 비행기에 대포를 달았으면 합니다.”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제게 생각이 있으니 연구해봐야죠.”
“저희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암스테르담에서 온 기술자들이 열정을 내보였다.
‘기관총이나 미니건은 아직 힘들겠지? 일단 후장식포부터 만들어 봐야겠다.’
박정기는 미사일이나 대공포가 없는 세상이니 사거리 1~2km 수준의 소구경 포에 만족할 생각이다.
목표물 상공을 빙빙 돌면서 계속 쏴 대면 누가 버틸 수 있을까?
박정기는 베트남 전쟁 때 출현한 건쉽이 베트콩 트럭과 탱크를 무자비하게 조져 버리는 영상을 접했었다.
사격 연습하듯이 목표물에 대고 쏴 대는 모습이 하늘의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하늘의 전함, 죽음의 천사, 스펙터 (유령), 다양하게 불렸지만 하나같이 무시무시한 이름들이다.
가장 큰 장점은 한 곳을 빙빙 돌면서 공격하기 때문에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땅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한 피할 방법이 없다.
1800년대 지금 시대에는 공격 받을 일도 없다.
베트남 전쟁 이후 점차 설 자리를 잃었던 이유는 미사일의 발달로 건쉽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미사일은 앞으로 100년 간 없을 테니까. 하늘의 제왕이 따로 없지.’
대공포를 너무 무시하는 박정기다.
“요새 밖으로 이전은 많이 됐나요?”
“네! 관사에 계신 분들만 나가면 끝납니다.”
“그분들 숙소는 아직 완성이 안됐습니까?”
“이제 막 완성했습니다.”
“어디요?”
“선착장 옆에 있는 건물입니다.”
박정기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허허 그게 호텔이 아니고 궁녀들 숙소요?”
“네, 4층은 시장님께서 사용하시고 아래층은 여자 분들께서 사용하실 겁니다.”
“허~ 누가 그렇게 시켰습니까?”
“이분께서 그렇게 해달라고 하셔서......”
박정기가 장 상궁을 째려봤다.
“어떻게 된 거죠?”
“하도 치근대는 사내들이 많아서 그랬습니다.”
“치근대면 데이트도 하고 그러면 되지, 왜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겁니까?”
“데이트가 뭔가요?”
“거~ 뭐? 남자, 여자가 만나고 그러는 게 데이트지 뭡니까?”
“에고, 망측하게 무슨~”
박정기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폭탄 선언을 해버렸다.
“앞으로 1년 안에 시집 못 가는 사람은 다시 조선으로 보내버릴 테니까 알아서 하세요.”
“아니 그런.....”
“저는 분명히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
박정기가 일반 관리자를 내보내고 기술자들만 모아 놓고 회의를 진행했다.
노트북을 켠 박정기가 건쉽 영상 몇 개를 보여줬다.
“아! 이렇게 쏠 수가 있군요.”
“네 이걸 후장식 대포라고 합니다. 이걸 만들려면 탄피를 만들어야 하죠.”
“원리는 간단한 것 같습니다. 황동 탄피에 퍼커션 캡을 사용하면 되겠군요.”
“개념은 간단하지만 주의 할게 있습니다. 뇌관의 안정성이죠. 만일 뇌관이 터진다면 폭탄이 되고 말 테니까요.”
기술자들이 수긍을 했다.
그리고 박정기는 군 시절 경험했던 이야기와 나름대로의 과학 상식을 아낌없이 풀었다.
기술 회의는 질의응답 형식으로 밤이 새도록 이루어졌으나 피곤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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