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 음악
38화, 꿈이냐? 생시냐?
음악을 정지 시킨 박정기는 시치미를 뚝 떼었다.
잠시 진정되기를 기다리자 얀센이 말을 꺼냈다.
“정말 이런 음악을 저장할 수 있소? 아! 미안합니다. 여태 듣고도 믿어 지지가 않아서.....”
“저야 매일 들으니까 몰랐지만, 여러분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죠.”
“매일 들을 수 있으면 정말 천국에 사는 기분이겠군요.”
“네 뭐 그렇죠. 하늘도 날아다니니까요.”
음악을 들으면서 하늘을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는지 모두 눈빛이 몽롱해졌다.
“얀센 사장님! 아까 서류는 검토해 보셨나요?”
-아이씨~ 이 상황에서 그런.....무드가 없어요 무드가...
-미치겠네. 상상하고 있었는데....
기분 좋은 꿈을 꾸다가 깬 사람들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산산이 깨져 버리자, 속으로 원망했다.
“에헴! 그러니까. 그것이.... 좀 어~ 잠깐 쉬었다가 합시다.”
“아니 말씀을 하시다 말고......”
얀센은 감정이 센티해져 있어 사업 얘기를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해를 못하는 건 박정기다. 이 사람들이 왜? 감성 모드인가 싶었다.
현대인들은 소중한 것이 너무 흔해져서 하찮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음악만 해도 그렇다. 커피숍이나 가게에 가면 음악이 나오고, 핸드폰 벨소리도 음악, 아침에 울리는 알람도 음악이 나온다.
태어 난지 얼마 안 되는 갓난아기의 장난감에도, 심지어 자동차가 후진할 때도 음악이 나온다. 볼펜처럼 생긴 체온계에서 음악이 나와 놀란 적도 있다.
이렇듯이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니 어떨 때는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에 제대로 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부호들도 일생에 몇 번 경험하지 못한다.
파티에 가면 현악 3중주 정도는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아까 들었던 것과 같이 다양한 악기들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연주를 들으려면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가야만 접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가 아무 때나 있는 것도 아니고, 비싼 가격은 부자들도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그런 오케스트라보다 훨씬 좋은 음악을 듣고 감동에 빠지는 건 당연한 일, 여운을 즐기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을 때, 작은 소리가 분위기를 깨뜨렸다.
“제가 투자를 하겠습니다. 음악 저장 장치를 만들어 주시면 얼마든지 팔아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저와 계약을 하시지요.”
박정기에게 다가와 속삭이는 상인이 있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저와 계약해주십시오.”
“저도 참여하겠습니다.”
“저도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모두 참여할 수 있게 주식회사를 만들면 어떻겠소?”
“그거 좋은 생각이요. 미스터 팍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정기는 갑자기 주식회사가 나오니까, 뭐라고 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자본금이 나는 없는데요.”
비행기로 싣고 와 파는 상품은 엄연히 나라 돈이다. 개인 돈이 아니기 때문에 곤란했다.
그렇다고 딱 봐도 잘될 것 같은 사업에서 빠지고 싶지 않았다.
“미스터 팍은 오늘 아침에 받은 재산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넣으면 되지 않겠습니까?”
“오 맞아요. 자본금이 넉넉해지겠군요.”
“그런가요?”
새벽의 총알 한방에 대주주가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상인들은 수단이 좋아서 법률가와 회계사까지 입회 시키고 일사천리로 주식회사를 만들어갔다.
점심을 먹고, 세부적인 내용을 조율하니 저녁이 되었다.
“발기인 16명 모두 서명 날인을 했습니다. 신세계 주식회사의 설립이 완료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짝짝짝짝
신세계 주식회사는 박정기가 생산한 공산품의 유통과 A/S 를 담당하는 회사로 당장은 축음기를 시작으로 발동기 석유 그 밖에 새로 개발되는 제품들의 유럽 총판이 될것이다.
“대주주이자 대표이사인 박 대표님의 인사 말씀이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뜻있는 분들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제가 부탁 드리고 싶은 것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세상에 기여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짝짝짝짝
“그리고 저는 기술 개발과 생산에 주력 할 것입니다. 그러니 2대주주인 얀센님께서 본사의 운영과 사후 관리를 맡아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추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암스테르담 본사는 제가 관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
“저는 이만 줄이고 암스테르담 본사의 인적 구성은 여러분들이 합의하여 선임하도록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저희가 따로 회의를 열어 세부적인 사항을 조율하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창립 총회 2부 만찬을 시작하시죠?”
“좋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만세”
왜 만세를 부르는 건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박정기는 핸드폰으로 경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틀었다. 가뜩이나 달아오른 분위기에 불을 지핀 격이 되었다.
음악에 따라 분위기가 수시로 변했다. 댄스 곡이 나오면 다 같이 춤을 추었고, 잔잔한 노래가 나오면 술을 마셨다.
모처럼 술을 마셨더니 금방 취기가 올라왔다. 흥겨운 파티는 밤이 깊도록 계속되었다.
건배 제의를 모두 받아주던 박정기는 만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여자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캄캄한 새벽, 넓은 침대 위에 대자로 누워있는 박정기가 잠에서 깨어났다.
'아유 무거워~ 이게 뭐야?'
새벽이면 어김없이 깨어나는 박정기는 자신의 몸 위에 걸쳐진 물건을 옆으로 밀었다. 아직은 방안이 어두워 사위를 분간하기 힘들었다.
“이게 뭐야? 다리잖아!”
깜짝 놀란 박정기가 자신의 목에 걸쳐진 다리를 들어서 치웠다. 가만히 살펴보니 장금이 발이었다.
팔 베개를 하고 가슴을 만지는 김말똥 아니 김혜수의 손, 배에 올려 진 정샘의 팔, 필사적으로 다리를 붙잡고 있는 이샘,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위를 잡고 있는 에바까지 모두 박정기의 신체 한 부분씩 붙들고 잠들어있었다.
밤늦게 스위트룸으로 들어온 여자들은 정신을 잃고 잠든 박정기를 차지하기 위한 몸싸움을 벌였다.
술 취해서 싸우는 여자들이 늘 그렇듯이 머리채를 잡고 싸우다가 박정기의 신체 일부분이라도 차지하려고 쟁탈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공공의 적인 에바는 집단구타를 당하고 제일 먼저 탈락했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하나씩을 차지했다.
장금이가 머리를 김혜수는 오른팔, 이샘이 왼팔, 정샘이 다리 한짝, 서샘이 남은 다리 하나를 차지하고 매달렸다.
결국, 에바에게 남은 것은 모두가 포기한 그놈, 바로 그놈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늘어졌다.
에바의 손이 느껴지자, 똘정기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쟤는 왜 거기를 잡은 거야? 으윽 제발 똘이야, 멈춰라 제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 ...’
신경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주문을 외웠지만 소용이 없었다.
잡힌 물건이 커져서 그런지 잠이든 에바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켜쥐며 주물럭거렸다.
박정기의 입에서 작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윽! 제발~ 으~으~ 헤~’
결국 고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확인했지만, 박정기에게 남은 것은 자괴감이었다.
'하~ 어떻게 10초를 못 버티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거사를 치른 박정기, 몸에서 정기가 빠져나가자 온몸이 나른해져 다시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맛있게 잠든 박정기가 꿈을 꾸었다.
에바가 왕비이고 나머지는 후궁들이었다. 에바는 후궁들을 모질게 대했다.
그러면 후궁들이 박정기를 찾아와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그러면 살살 달래서 보내 놓고 밤이면 다시 에바를 찾았다.
점심이 다되어 깨어난 승무원들은 봉두난발에 풀어진 옷섶을 여미느라 정신이 없었다.
달콤한 꿈에서 깨어난 박정기가 허둥대는 승무원들을 보았다.
“뭐 하는 거야? 몰골은 또 왜 그래?”
“어 멋!”
“키악~”
“엄마야!”
“오 마이~ 쉣!”
우당탕 구르고, 구석에 머리를 박고, 커튼 뒤로 숨고, 화장실로 뛰어들었다.
“이건 누구야?”
이불 속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엉덩이는 내민 채 기어 들어오는 에바를 붙잡았다.
“아잉~ 왜 잡고 그래요?”
“크흠!”
박정기는 새벽의 거사가 생각나 얼굴이 빨개졌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찝찝함.
다행이 새벽에 리셋이 되면서 아랫도리는 빨래한 듯이 뽀송뽀송 해졌다.
‘꿈이냐? 생시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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