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동인도 회사의 몰락
115화, 동인도 회사의 몰락
영국 동인도회사 소속 선장인 윌리엄 존슨은 광동성에서 침몰한 같은 회사 상선의 진상을 파악하라는 명을 받았다.
주변의 상인들과 어부들에 의해 밝혀진 내용은 어처구니없는 사실들뿐이었다.
-하늘에서 드레곤이 나타나 불을 뿜으니 배가 폭발했다.
-큰 새가 배를 반으로 갈라 침몰시켰다.
-봉황이 벌을 내려 배가 불타고 가라앉았다.
신기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목격자가 워낙 많은데다가 봉황인지 드레곤인지 북쪽으로 날아갔다는 사실이다.
보다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자, 북경에도 봉황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래서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함대를 이끌고 천진에 도착해 조사를 해보니 황제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며 남만의 오랑캐를 무찔렀다는 내용까지 파악할 수 있었다.
-황제께서 봉황을 타고 광동성까지 한달음에 날아가 신민을 괴롭히는 서양 오랑캐의 배를 수장시키고 돌아오셨다.
-황제께서는 용을 부리고 봉황을 타고 다니십니다.
-봉황은 하루에 1만리를 날아 서양의 오랑캐를 무찔렀다.
윌리엄 존슨 선장은 영국 상선 침몰에 황제가 개입했음을 알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친서를 북경으로 보냈다.
하지만 며칠 만에 돌아온 것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말로만 듣던 드레곤이 실제로 나타나 자신의 배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독수리가 자신의 머리 위를 돌고 있는 착각이 들었다.
침몰한 상선이 하늘에서 공격받았다는 말을 듣고 대포를 고각으로 세워놓았다.
혹시라도 하늘에서 공격해온다면 반격을 하기 위해서다.
드디어 때가왔다.
“우리를 공격하려고 한다. 대포를 발사하라!”
“발사!”
콰콰쾅! 쾅! 콰쾅! 콰콰쾅!
쾅! 콰쾅! 콰콰쾅! 쾅! 콰쾅!
수십문의 대포알이 하늘로 솟았다.
하지만 드레곤이 지나간 뒤 허공만 가르고 말았다.
“다시 장전하라!”
“재장전!”
퍼버벅챙!타다닥퍼버버벅챙!타다닥퍼벅챙!퍼버버벅
쉴새없이 쏟아지는 총알이 갑판을 뒤덮었다.
나무에 박히고 대포에 맞아 불꽃을 튕겼다.
타다닥퍼벅챙!퍼버버벅퍼버벅챙!타다닥퍼버버벅챙!
장전을 하고 있던 수십 명의 병사들이 삽시간에 바닥에 나뒹굴고 자신이 서있던 조타석에도 벌집처럼 총알이 날아와 박혔다.
선장은 급히 선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총알은 선체와 창문을 뚫고 선장실까지 초토화 시켜버렸다.
“크아악.”
“선장님!”
“크으응, 몸을 낮춰라!”
“넵! 제가 컥!”
떨썩!
쓰러진 선장을 부축하려던 항해사는 총알에 맞아 절명했다.
선장은 허벅지를 관통한 총알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수천발의 총알이 훑고 지나간 배위는 신음소리만 가득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격이 멈추고, 선장은 허벅지에서 올라오는 고통을 참으며 보고서를 작성했다.
그도 얼마가지 못하고 점점시야가 흐려졌다.
“이자가 책임자더냐?”
“그러하옵니다. 지금은 출혈이 심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나이다.”
시끄러운 소리에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앞에는 황금색 곤룡포를 입은 황제가 있었다.
알 수 없는 대화에 입을 열려고 했으나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눈을 떴습니다.”
“오호, 살아있었구나. 이자를 잘 치료해 주거라!”
“네이~ 황상!”
황제는 기분이 좋은지 조금 들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 다시 흐려지고 귓가에선 웅 웅 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
“형님 폐하, 광동성에 가실 겁니까?”
“가야지 하하하.”
“지금 가면 늦으니 내일 일찍 가시죠?”
“그럴까?”
영국 배를 점거하고 부두로 예인해 오느라 벌써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바다에 빠졌던 포로들은 포박되어 항구 한쪽에 꿇려져있고, 예인되어 온 배에서는 부상자와 시체들이 내려지고 있었다.
“계속 보고 계실 겁니까?”
“왜 그러나?”
“저는 속이 거북해서 더 이상은 못 보겠습니다.”
팡팡
박정기 등을 팡팡 두들긴 황제가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알겠네, 알았어. 오늘은 승전연을 베풀어야겠네.”
“또, 약주 드시게요?”
“그럼 이렇게 좋은날 술이 빠지면 되겠는가?”
황제가 관리에게 명하자, 관아에는 승전을 축하하는 연회가 준비되었고, 지역의 관리와 학자, 유지들이 끝없이 몰려와 황제를 칭송하고 선물을 바쳤다.
박정기는 황제의 옆에 앉아서 선물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었다.
황제가 보니 너무한다 싶어서 한마디 했다.
“동생, 뭘 그렇게 챙기나?”
“형님은 재산이 태산처럼 많지 않습니까? 저는 기름 값이라도 벌어야지요.”
“무슨 기름 값을 번다고 그러는가?”
“저 비행기가 한번 뜨려면 기름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 지 아십니까?”
박정기가 비행기를 띄우는데 기름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하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황제가 물었다.
“비행기는 기름을 먹나?”
“그럼요. 한 번에 으음~ 1,500말 정도 들어갑니다.”
중국이라고 기름이 싼 게 아니었다.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가?”
“네, 그러니까 많이 챙겨야 합니다.”
박정기가 툴툴거리자 황제는 태감을 시켜 받은 선물을 모두 주라고 시켰다.
“이제 반은 건진 것 같습니다.”
“걱정 말게 환궁하면 더 내어주겠네.”
“뭐 그래 주신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짐은 그런 것도 모르고, 앞으로 기름은 내가 대겠네.”
박정기가 생각해보니 기름 값을 주고 마음대로 타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형님! 이 비행기는 아무 기름이나 먹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저도 바쁩니다.”
“하지만 짐이 외침을 받으면 와줄 것이 아닌가?”
“그거야 그렇지만.......”
“하하하 그럼 됐네.”
황제가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을 보니, 전쟁을 만들어서라도 부를 심산인 것 같았다.
‘아이씨, 제대로 엮였네. 앞으로 방위조약 맺을 때는 조심해야겠다.’
밤늦게 이어진 연회가 끝나고 새날이 밝았다.
관아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서양 배를 포함한 포로들에 대해 처결이 이루어졌다.
박정기와 비행기의 공로가 제일 크다고 평가되어 배에 있던 모든 상품의 소유권이 인정되었다.
배에 있는 은화와 귀중품은 비행기로 옮겨 실었고, 차와 도자기는 너무 많아서 천진항 관아에 보관해주도록 요청했다.
큰 배 5척에 실려 있던 양이니 비행기로 실어 나르려면 20번은 왕복해야 할 정도 되었다.
또, 배에 실려 있던 해도를 모두 받아냈다.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인도 연안, 말라카해협, 동남아시아의 작은 바위섬까지 상세하게 표시된 귀중한 자료였다.
그리고 수백 상자에 달하는 아편은 전량 소각처리하기로 했다.
범선은 박정기에게 필요가 없어서 청나라 수군이 사용하도록 양보했다.
또한, 포로는 배상금을 받을 때까지 구금하기로 했다.
빠르게 정리를 끝내고 광동성으로 출발하기 위해 관아를 나섰다.
항구 주변으로는 여전히 많은 인파가 모여서 비행기를 구경하면서 황제를 칭송했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 폐하 납시오.”
황제가 관아를 나와 비행기로 향하자 백성들이 부복하고 만세를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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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는 백성들에게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칭송이 대단합니다.”
“모든 게 동생덕분이라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늦었군.”
비행기는 천진항을 벗어나 출력을 높였다.
길게 물보라를 뿌리며 하늘로 날아올라 남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안정된 항로에 접어들자 박정기는 기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기장님! 지금부터 중국산 차와 도자기 비단을 보이는 대로 사 모으세요.
-응? 매점매석을 하라는 건가?
-네, 맞습니다.
-그건 너무 하는 거 아닌가?
-괜찮습니다. 서민 등치는 것도 아니고, 귀족들이야 돈 좀 써도 됩니다.
-하긴 서민이 쓸 물건은 아니지. 그런데 무슨 일인가?
-광동성에서 영국 배들을 몰아낼 겁니다. 그럼 당분간 중국 상품이 유럽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겁니다.
-알겠네, 이참에 돈 좀 벌어봐야겠군.
-얀센 사장에게도 알려주시고요.
-걱정 말게.
박정기는 차와 비단 가격이 폭등하면 청진에 있는 물건을 유럽에 내다 팔 생각을 했다.
‘히히히 떼돈 벌게 생겼네.’
유럽에서는 몇 달 후에나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그사이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을 싹 쓸어 담고 기다리면 자연스럽게 몇 배의 마진을 챙길 수 있다.
영국은 이미 홍차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유행하고 있었다.
어느덧 비행기는 광동성 마카오 상공에 들어섰다.
마카오 작은 섬 주변으로 수없이 많은 정크선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대형 범선이 정박하고 있었다.
“무슨 배가 저렇게 많은가?”
“그러게요. 아편 파느라 저러겠지요.”
박정기가 슬쩍 황제의 심경을 건드렸다.
황제의 얼굴이 울그락 붉그락 해지더니 박정기에게 명령을 내렸다.
“동생 저 놈들을 모두 없애버리게.”
“모두요?”
“그래, 전부.”
잠시 고민을 하던 박정기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라, 다시 물었다.
“서양 놈들만 처리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으음, 알겠네. 그리하지.”
황제가 생각해 봐도 자신의 백성을 죽이는 것은 좋지 못하다고 판단했는지 수긍을 했다.
“그럼 공격하겠습니다.”
“그래 모두 수장시키게.”
“나포가 아니고 수장시켜요?”
“나포할 필요 없네. 본보기를 보여야 하니까 침몰시켜주게.”
박정기는 배에 실려 있은 금은보화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아씨 괜히 건드려서 아까운돈 다 날리게 생겼네.’
박정기는 아편으로 황제를 도발한 자신을 원망했다.
[대포로 준비해!]
기관총을 떼어내고 대포를 장착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비행기는 광주를 향해 기수를 돌리고 주강을 따라 올라갔다.
주강에는 수많은 배들이 상하로 이동하고 있었고, 광주의 강변에는 크고 작은 배들로 빼곡했다.
“무역이 활발하군요.”
“으음, 좋은 것은 내어주고, 나쁜 것을 들여오니 걱정이 크다네.”
“큼큼, 임 총독님! 폐하의 근심을 잘 아셨죠?”
“흑흑흑! 원통한 일이옵니다. 폐하! 소신 분골쇄신하여 폐하의 근심을 덜어드리겠나이다.”
임칙서가 흐느껴 울자 기내에 있던 대신들도 눈치를 보다가 울기 시작했다.
‘뭐야? 하여튼 관리라는 것들이 전부다 간신들만 있으니...’
“임칙서 그대를 홍콩 총독과 겸해 광동수사에 임명한다.”
“아니, 줬다가 뺏어 가면 어떻게 합니까?”
광동수사는 광동지역의 수군 함대를 총 지휘하는 자리다.
홍콩총독으로 줘놓고 갑자기 뺐어가니 박정기가 항의했다.
“나중에 다시 돌려주겠네. 하지만 지금은 급박하니 봐주시게.”
“크음, 알겠습니다. 그럼 광동함대를 홍콩과 마카오에 주둔하도록 해주십시오.”
“알겠네, 그리하지.”
홍콩에 광동함대가 주둔하면 임칙서가 홍콩을 관리 하는데도 문제가 없을 것이고, 홍콩이 위험에 처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박정기가 홍콩 함대를 구성할 때까지 광동성을 봉쇄하고 서양의 배를 못 들어오게 막는 역할도 할 수 있다.
‘나쁘지 않네.’
그때 보고가 올라왔다.
“대장님! 대포가 준비됐습니다.”
“알았다. 장전하고 기다려!”
“넵! 대장님.”
비행기는 다시 주강을 따라 내려가 마카오 상공으로 돌아왔다.
마카오 외항에 정박해 있던 배들이 벌써 눈치를 채고 도망갈 준비를 했다.
배들 중에는 영국배가 가장 많았고, 프랑스, 러시아, 네덜란드, 포르투갈, 심지어 미합중국 배도 있었다.
범선이 유럽을 떠나와 마카오에 도착하면 몇 달씩 머물다가 태풍과 바람 방향을 봐가면서 다시 돌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외항에는 상당히 많은 서양배가 머물고 있는 것이다.
‘겁나게 많이 왔네, 여러 나라와 싸워서 좋을 게 없으니까 영국 배만 조져버리자.’
박정기는 영국 국기가 게양된 배를 골라 선회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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