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발전의 토대
55화, 요새는 날이 갈수록 번창하고
윌슨이 나서서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하하하 여러분 환영합니다.”
-에그머니 무서워라.
-사내답고 멋있는데.
-야인들 아니야?
-저 소피 마려워요.
어린 나인이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
“야! 윌슨 다들 무서워하잖아. 조용히 숙소로 안내해줘.”
“네? 제가 무섭다고요?”
윌슨은 자신의 몸을 돌아봤다.
람보처럼 찢겨진 가죽조끼에 상체를 다 드러내고,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다.
“멋있기만 한데.”
“그래 멋있다고 치고, 얼른 숙소나 알아봐.”
“네 알겠어요.”
윌슨이 요새 안으로 들어가면서 몇 사람에게 지시를 내렸다.
요새는 이미 많은 건물로 꽉 차있었고, 요새 밖으로도 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다.
유럽의 작은 도시를 보는 듯 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걱정하지 마세요. 안전한 곳입니다.”
“옷은 저래도 모두 순진합니다.”
장금이와 승무원들이 안심하라고 말해주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따라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박정기가 앞장서고 장금과 승무원들이 따랐다.
요새로 들어서니 암스테르담의 거리처럼 양쪽으로 건물이 빼곡했고, 거리는 깨끗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T자형 교차로 정면에 관청처럼 생긴 건물이 크게 자리를 잡았고, 양옆으로 거리가 이어졌다.
“이건 뭐냐?”
“시청입니다. 지난번에 있던 걸 부수고 다시 지었어요.”
“시청?”
“네, 이제 인구가 많이 늘어서 시청이 필요하데요.”
“누가?”
“제가 그랬습니다.”
한쪽에서 카를로스 중위가 나오면서 대답했다.
“중위님 안녕하셨습니까?”
“네!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잘 갔다 왔습니다.”
카를로스 중위는 박정기 뒤의 궁녀들을 보고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 분들은 누구십니까?”
“조선의 궁궐에 계시던 분들입니다. 우리나라로 이민을 온 거니까. 잘 보살펴 주세요.”
“알겠습니다. 우선 숙소를 내드려야겠군요.”
“그럼 좋겠네요.”
카를로스 중위는 시청 뒤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시청 뒤에 관사를 지어 놨는데, 인원에 비해 좁겠지만 쓸 만할 겁니다.”
“그거 내 집 아니에요?”
“임시로 이 분들께 드리고 새로 지어서 옮겨드리겠습니다.”
“흥~ 알겠어요.”
윌슨이 퉁퉁거렸다.
“가봅시다. 길거리에 세워두기 그러니까.”
“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카를로스를 따라 시청 뒤로 돌아가자, 넓은 정원이 딸려있는 3층 짜리 저택이 지어져 있었다.
가운데 현관이 있고, 양쪽으로 길게 이어진 건물은 유럽식으로 창문이 많이 있는 구조였다.
“꽤 큰데요?”
“대장님과 윌슨 대장님, 그리고 기장님과 에바 아가씨께서 머무를 수 있도록 크게 지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빨리 지은 겁니까?”
“일하는 사람이 500명이 넘습니다.”
“아니 500명이라니요?”
카를로스가 윌슨을 쳐다보고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고, 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일단 됐고, 저 분들 숙소 좀 안내하고 애기 하자.”
“네~”
-큭큭 저 사람 귀엽다.
-나는 눈이 큰 사람이 멋있다.
-쓸데없는 소리, 조용히 해라.
-네, 마마님
궁녀들을 관사로 안내하라고 장금이에게 맡겼다.
“네가 안내하고 잘 지낼 수 있도록 보살펴 드려.”
“네, 알겠습니다.”
장금이 궁녀들을 인솔해서 관사로 들어갔다.
“와~ 넓다.”
“좋다.”
암스테르담의 대리석으로 만든 저택을 보면 기절할 것 같다.
목조로 골격을 만들고, 흙을 발라 벽을 세웠는데도 만족하는 궁녀들이다.
사실 조선의 한옥도 별거 없이 나무 기둥에 흙 벽을 쌓은 건 똑같았다.
방 하나에 대여섯 명씩 배정 받아 보따리를 풀었다.
가져온 이불과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방안을 꾸미기 시작했다.
어디 가나 적응력 하나 만큼은 남다른 민족이다.
침대가 모자라 바닥에서 잠을 자야 했지만 날씨가 따뜻해서 문제가 없었다.
시청의 접견실로 들어간 박정기는 일꾼이 늘었다는 말에 설명을 요구했다.
“세인트 조지에서 저와 함께 온 사람이 30명이고요, 유럽에서 온 노예가 100명입니다. 나머지는 윌슨님께서 모집해온 사람들인데 직접 들으시지요.”
“윌슨 어떻게 된 거야?”
“아! 네, 그게 그러니까~ 막 몰려와서 기병대를 한다고 해서요.”
“기병대를 한다고 해서?”
“말이 없잖아요. 그래서 일을 시켰죠.”
“일을 시키는 데 안 도망갔어?”
“네! 더 많이 오던 데요.”
윌슨의 설명에 뭔가가 부족해서 카를로스 중위를 쳐다봤다.
“그게, 핫도그를 식사로 제공하고, 저녁마다 영화를 보여주니까. 인디언 청년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골치가 아플 지경입니다.”
“식량이 많이 나가겠군요?”
"네, 고기는 넉넉한데, 밀가루가 부족할 것 같습니다."
"이번에 가서 많이 가져오겠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 사건 사고도 많아지는 법이다.
"문제는 없나요? 먹을 것을 준다고 해도, 말을 듣지는 않을 텐데."
“네! 너무 열심히 해서 탈입니다.”
“왜요?”
“영화 볼 때 앞자리에 앉으려고 기를 쓰고 일합니다.”
“아! 영화~”
박정기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영화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교대로 볼 수 있게 극장을 지어야 하나?’
“지금 상주 인원이 얼마나 됩니까?”
“이곳 요새에 있는 인원이 약 800명 정도 됩니다. 오늘 100명이 추가되었으니 곳 1,000명을 넘어설 것입니다.”
“그럼 영화를 볼 때 800명이 넘게 봤다고요?”
“아니요. 2,000명은 볼 겁니다. 옆 마을 사람들도 오니까요.”
“헐~ 2,000명?”
손바닥만 한 프로젝터로 화면을 키워봤자 얼마나 키우겠는가? 그리고 소리가 크면 얼마나 크겠는가?
그런 걸 야외에서 2,000명이 함께 본 다니까. 대충 그림이 나왔다.
‘그러니까. 목숨을 걸고 앞자리에 앉으려고 하는 거였군.’
박정기는 상상을 하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쁘지 않네요.”
“네?”
“등급을 매깁시다. S석, A석 B석 C석 D석 E석까지 앉을 수 있는 등급을 매기고 매달 평가를 해서 자리를 지정해주는 겁니다.”
“그럼 기병대는 S석이죠?”
“음~ 아니 기병대는 따로 보자.”
“그럼 두 번 틀자고요? 그때 대장님이 한번만 봐야 한다고 했잖아요.”
‘아이고, 융통성 없는~ 착한 자식! 그때는 잠을 자려고 둘러댄 말인데, 그 말을 여태 지키고 있었던 거야?’
처음 이소룡 영화를 보여줬을 때 밤새도록 영화를 틀어 달라고 해서, 하루에 한번만 보는 거라고 말한 것을 여태 잘 지키고 있던 것이다.
‘그래도 기특하네 요 녀석! 하는 짓이 가끔 귀여울 때가 있어.’
“음~ 그렇지. 그래도 기병대는 특별하니까. 따로 보여줘야지.”
“진짜요? 와~ 그럼 맨 날 람보만 봐야지.”
“한 가지 만 매일 보면 질리지 않냐?”
“그게 제일 재미있으니까요. 그리고 기병대도 다 좋아해요.”
‘아휴~ 단순한 녀석들~’
“그래 그건 네가 알아서 하고. 카를로스 중위님!”
“네 대장님!”
“요일 별로 정해서 분산 시키세요. 대략 300명씩 나누면 일주일에 한 번씩 볼 수 있겠네요.”
“그럼 폭동이 일어날 겁니다.”
폭동이라는 말에 암스테르담 극장에서 생긴 일이 떠올라 박정기가 질색을 했다.
“아니 왜 또 폭동입니까?”
“어디서 폭동이 일어났습니까?”
“크흠! 그럴 일이 있었습니다. 그럼 간부들은 매일 보여주고 나머지는 돌아가면서 보여주면 어때요?”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박정기는 여기도 폭동, 저기도 폭동 말만 들어도 골치가 아팠다.
‘영화하고 음악이 뭐라고 이렇게 난리들이지?’
어렸을 때 극장에서 영화 보여 달라고 울고불고 생떼를 쓰던 기억은 멀찍이 던져버린 박정기다.
“참! 세인트 조지 말입니다. 우리의 세력권으로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당장 쳐들어가시죠?”
“윌슨! 잠깐 기다려봐.”
엉덩이를 들썩이는 윌슨을 진정 시켰다.
“세인트 조지를 손에 넣는 것은 간단합니다. 저희 요새와 병사들이 남아있으니 제가 가서 접수하면 끝입니다. 하지만 산타페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산타페가 큰가요?”
산타페에 대해 에바에게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네 저희는 중대 규모지만 산타페에는 1개 대대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거기 책임자는 누군지 아나요?”
“페르난도 알렌드 대령입니다. 현재 멕시코 대통령인 산타안나 측근입니다.”
“그럼 에바 아버지를 추방시킨 그 대통령인가요?”
“맞습니다.”
에바는 대통령이 누군지 모른다고 했는데, 군인이라 그런지 확실히 정보가 달랐다.
“병력은 얼마나 됩니까?”
“250명 정도 될 겁니다.”
“그럼 중위님 부하들은?”
“저희는 50명 정도 있었지만, 지난번 중령님과 함께 전사한 30명을 빼면, 여기에 있는 포로 10명과 세인트 조지에 남아있는 10명이 전부입니다.”
‘음~ 전력이 밀리는군, 윌슨의 부대가 아무리 용맹하다 해도 실전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건데.’
“요새가 잘 갖춰져 있나요?”
“네, 요새를 어도비로 지어서 난공불락입니다.”
'어도비에서 만든 포토샵은 들어봤어도 어도비가 뭐야?'
“어도비가 뭔가요?”
“어도비는 사막 지역에서 흔히 쓰이는데, 진흙에 질긴 풀잎들을 섞어서 만듭니다. 굳으면 단단해져서 굉장히 견고합니다.”
멕시코나 스페인 문화권에서 많이 쓰는 건축 양식이다. 박정기는 남미를 여행하면서 많이 봤다.
“한마디로 흙벽돌 집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
“......”
윌슨이 크게 웃자, 카를로스 중위는 기분이 살짝 상했다.
“윌슨님! 그렇게 우습게 볼게 아닙니다. 총알도 막아내고 대포로도 뚫기 힘들다고요.”
“걱정 마세요. 내가 도끼 질 몇 번 하면 무너질 거예요.”
그건 인정한다. 아직 카를로스가 윌슨의 능력을 못 봐서 그런 것이다.
솔직히 윌슨 혼자서 요새를 박살 낼 수 있을 것이다.
“중위님 산타페를 점령하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잠시 생각에 잠긴 카를로스 중위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마도 산타안나 대통령이 직접 군대를 끌고 올 겁니다.”
“대통령이 직접이요? 미치지 않고 서는.”
“네 그자는 원래 그렇습니다. 정치는 부통령에게 맡겨 놓고 전쟁만 하러 다닙니다.”
“허~ 완전히 별종이군요.”
“네 맞습니다.”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1년 후인 1836년 4월 21일 텍사스 반란군과 치른 전투에서 산타안나가 이끄는 멕시코군은 크게 패배한다.
그 다음 날 사병의 복장으로 늪에 숨어 있던 산타안나는 포로로 붙잡혔다.
그래서 산타안나는 벨라스코 협정을 조인하며 텍사스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대가로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멕시코 대통령의 기행에 가까운 행보에 박정기는 생각을 바꿔해야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대통령이 직접 군을 이끌고 온다면 최소가 몇 만 단위가 넘을 것인데, 지금의 병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었다.
백 배에 가까운 병력을 상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정면 승부는 어렵겠군요. 세인트 조지에 있는 말은 몇 마리나 됩니까?”
“주민들 말까지 합치면 500마리는 될 것 같습니다.”
“많군요.”
“하지만 주민들 말을 모두 빼앗으면 반발이 심할 겁니다. 당장 농사와 목축업을 할 수 없으니까요.”
“음 그렇겠지요.”
카를로스 중위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후방의 주민들이 원한을 품고 등 뒤에서 총구를 겨눈다면 정복해도 정복한 게 아니다.
'기병대를 보충해서 기습을 하는 것도 어렵겠네.'
“결국 화력으로 밀어버려야 한다는 결론이군요.”
“퍼커션 캡이 우수하지만 병력의 차이를 상쇄 시킬 만큼은 아닙니다.”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딱 한 달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 달이요?”
“네, 한 달이요, 벨기에에서 올 손님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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