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인디언
8화, 인디언에게 영화를 보여주다.
마을로 갔던 윌슨 일행이 음식을 잔뜩 가지고 왔다.
"윌슨, 수고했다. 다들 와서 먹으라고 해!"
"모두, 이리 모여라!"
윌슨이 소리치자, 인디언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윌슨이 주머니에서 소금 덩어리를 꺼내 손바닥으로 으깨어 나무 그릇에 담았다.
[와, 봐봐!]
[돌을 가루로 만들었어.]
인디언들이 서로 속삭였다.
고기와 음식과 소금을 골고루 나눠줬다.
[와~ 이거 왜 이렇게 맛있지?]
[그래, 혼자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르겠다.]
[하하, 맞아. 먹다가 죽어도 모르겠다.]
짭짤한 맛과 고소한 육즙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선사했다.
소금은 추장과 독수리 발톱만 먹어본 적이 있었다.
다른 이들은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다 먹은 청년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윌슨을 바라보았다.
윌슨 앞에는 아직 많은 양의 고기가 남아 있었다.
"윌슨! 나는 비행기에 다녀올 테니, 애들이 마을로 못 가게 해야 해!"
"알겠어요. 걱정 마세요."
고기를 입안에 가득 물고 말하는 윌슨이 못 마땅했지만, 신경을 끄기로 했다.
“독수리 발톱! 같이 가자.”
[가치가자!]
박정기는 독수리 발톱이 열심히 말을 배우려고 하는 모습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마을로 들어가서 보트를 타고 비행기를 향해 나아갔다.
“기장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알겠네.”
문이 위로 활짝 열렸다.
[와아!]
“들어가 보자.”
[드러가 보자.]
“흐흐!”
독수리 발톱은 눈을 반짝이며 빛났다.
비행기 안은 밖과는 달리 밝았고, 신기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신기한 게 많지?”
[오케이 만치.]
기장님은 누구냐는 듯이 턱으로 독수리 발톱을 가리켰다.
“이친구가 인디언 대장입니다.”
“그래? 윌슨은?”
“오늘부터 일주일은 밖에서 자야겠습니다.”
“비행기 놔두고 왜?”
“백인들 시신을 만졌기 때문에 혹시 전염병이 마을에 옮길 수 있어서 격리시키려고요.”
잠시 생각하던 기장님이 수긍했다.
“음~ 일리 있는 생각이군, 그런데 왜 왔는가?”
“담요가 필요합니다.”
“담요야 많이 있으니까, 아래 창고에서 꺼내가게.”
“감사합니다.”
“무슨 감사. 내 물건도 아닌 것을.”
“참 저녁 드셔야죠. 음식 드려라!”
[음시그 드려라.]
독수리 발톱이 나무그릇에 담기 음식을 내밀었다.
“잘 먹겠네. 말을 가르치고 있나?”
“네 저도 배우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말을 가르치나?”
“그냥 닥치는 대로요. 그런데 애들 언어가 한국말과 많이 비슷합니다.”
“그래? 신기하군.”
“특히 발음이 많이 비슷합니다.”
“잘됐으면 좋겠군.”
“네 열심히 가르쳐 보겠습니다.”
박정기는 하부 화물칸을 열고 담요 30장을 꺼내왔다.
‘하나로 둘이 덮도록 해야겠네. 나머지는 아껴야지.’
응급 들것도 2개 꺼내어 놓았다.
땅바닥에서 잘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조종실로 이동하여 자신의 백팩을 등에 메었다.
백팩 안에는 촬영 장비와 노트북 등이 들어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인디언 청년들이 격리되어 있는 장소로 돌아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 녀석들이 계속 마을로 돌아가려고 해서요.”
“그래서 이렇게 만든 거야?”
“그럼 어떻게 해요?”
인디언 청년 10여 명이 땅에 엎어져 있었고, 나머지는 무서워서 떨고 있었다.
“어떻게 한 거야?”
“몽둥이로 한 번씩 때리니까 쓰러지더라고요.”
“잘 타일러야지, 때리면 어떻게 하냐?”
“잘 말했는데도 계속 가잖아요.”
한 마디로 말이 통하지 않아서 벌어진 불상사다.
게다가 독수리 발톱까지 자리를 비웠으니 통제가 안 된 것이다.
‘그래도 얻어터지지는 않았네.’
50명이 동시에 덤벼들면 윌슨도 감당하지 못했을 텐데, 완전히 제압하고 있는 모습이 신기했다.
'그런데 얘들을 어떻게 잡아둬야 하지?'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
만약 그냥 보내다가 천연두가 전염된다면, 이 부족은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들을 잃는다면 우리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박정기가 고민하는 동안, 독수리 발톱은 쓰러진 이들을 돌봤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지금은 가만히 있지만, 우리가 잠들면 모두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원망하며 적대적으로 나올 것이다.
부족이 공격해올 수도 있고, 적어도 식사는 기대하지 못할 것이다.
‘하아,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윌슨의 잘못된 결정으로 상황을 더욱 악화 시키고 말았다.
‘이 녀석을 패버리고 미안하다고 달래볼까?’
박정기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이제 자러 가요.”
“가? 어딜 가?”
“비행기로 돌아가야죠?”
“그럼 애들은 어떻게 하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그냥 패버리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안 되겠다. 딱 10대만 맞자.’
개 패듯이 패버리면 인디언들도 화가 풀리겠지.
일단은 인디언들을 달래고 이놈은 나중에 음식으로 달래던가?
아니면 몽둥이로 잡으면 되겠지, 일단 패고 보자!
생각을 끝낸 박정기가 등에 메고 있던 백팩을 벗어 옆으로 던졌다.
그때 툭! 작은 물체가 땅에 떨어졌다.
“으윽! 이 중요한 순간에....... 안 깨졌나?”
박정기는 떨어진 물건을 얼른 집어 들었다.
어렵게 구한 아끼는 빔 프로젝트로 DSLR 카메라 다음으로 비싸다.
여기서 몇 십 년을 살려면 꼭 필요한 게 이 프로젝트일 것이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지만 성능은 굉장히 좋았다.
여행 다니면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편집할 때 모니터 대용으로 써도 좋다.
물론 외장 SSD가 제일 소중하긴 하다.
10여년간 여행 다니며 찍은 모든 사진과 기록들 그리고 불법으로 다운 받은 수 백 편의 영화나 드라마 음악들이 들어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
“고장 안 났나?”
박정기는 스위치를 켰다.
빔 프로젝트에서 빛이 나왔다.
[와~]
[저 돌에서 햇빛이 나온다.]
[불나오는 막대기보다 더 신기하다.]
[뭐 하는 거지?]
인디언 청년들이 박정기 주변으로 몰려들어 구경했다.
독수리 발톱이 프로젝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뭡니까?]
“왜? 궁금해?”
[궁구매]
'이것 봐라, 잘하면 인디언들을 잡아 둘 수 있겠는 걸.’
영화나 한편 틀어줄까? 신기해서 보고 있겠지?
무슨 영화를 틀어주지? 말이 안 통하니까, 액션이나 전쟁 영화가 좋겠는데.
"말이 안 통해도 재밌게 볼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뭐 하시는 거에요?"
“그래! 이소룡이 제일 좋겠다.”
"이소룡이 누군데요?"
빔프로젝트가 아니였으면 박정기에게 맞았을 윌슨이 궁금해 했다.
화가 풀리지 않은 박정기는 윌슨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박정기는 외장 SSD를 찾아서 프로젝트에 연결했다.
그리고 바닥에 비추면서 검색을 해서 이소룡 정무문을 찾았다.
“윌슨! 마차에서 천막을 찾아다 저기 나무에 걸쳐봐.”
“영화 보시게요?”
“그래 영화나 보자.”
“지금 이 상황에 영화가 눈에 들어와요?”
“뭐라고?......너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윌슨은 움찔하며 하소연 했다.
“저한테 왜 그러세요?”
“몰라서 물어? 네가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놨잖아.”
“가지 말라고 하는데도 계속 가는 걸 어떻게 해요.”
“하 휴~ 긴 말 필요 없고! 천막 칠래? 맞을래?”
“치면 되잖아요.”
“빨리 쳐라.”
“네!”
청년들은 박정기에게 쩔쩔매는 윌슨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 저자가 더 센 게 맞잖아.]
[그래 검은 유령이 밑이야.]
[검은 유령도 엄청 강한데, 저자는 얼마나 더 강할까?]
[아마도 10명이 덤벼도 못이길 걸.]
[이 바보야, 검은 유령도 10명을 이기는데, 저자는 15명은 이길 거야.]
인디언 청년들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박정기와 윌슨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뭐하는 거지?]
[저건 뭐냐?]
[나도 모르지]
[저속에 태양이 들어있다]
[근데 저자 이름은 뭐냐?]
[독수리 발톱한테 물어봐]
한 청년이 독수리 발톱에게 박정기의 이름을 물었다.
[대!장!님, 대장님이다]
[아 대장님이구나]
이름을 알아낸 청년은 다른 청년들에게 말을 전했다.
[야 저자 이름이 대장님이란다]
[그래? 이름이 이상한데]
[대증니임?]
[대! 장! 님! 대장님]
[아~ 대창님]
수군거리는 속에서 ‘대장님’이란 단어가 들렸다.
박정기는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이 씰룩거렸다.
“아직 멀었냐?”
“다 됐습니다.”
일부러 큰소리로 윌슨을 나무라듯이 소리쳤다.
‘이놈들에게 윌슨보다 내가 윗사람이라는 걸 보여줘야지.’
윌슨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빨래처럼 천막을 걸쳐 놓았다.
‘이런 건 잘 하네, 어디서 해봤나?’
박정기는 이미 삼각대에 프로젝트를 연결해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주위는 이미 캄캄해져서 화면이 잘 보였다.
적당한 크기로 화면을 조정하고 영상을 플레이 시켰다.
음악이 나오자 청년들이 움찔 놀랬다.
모두 화면이 나오는 천막으로 몰려들었다.
“좀 떨어져서 봐야지 모두 볼 수 있지.”
막무가내로 몰려들어서 박정기는 빔 프로젝트를 지키는 일에 온 신경을 썼다.
[으악!]
[유령이다]
[아악]
화면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오니까, 모두 뒷걸음질 치다가 사람에 걸려서 넘어졌다.
“거봐 뒤로 가라고 했잖아.”
[해짜나]
독수리 발톱이 따라한다.
몇 놈은 천막 뒤에 가서 사람을 찾아보고 있었다.
몇 번의 해프닝 끝에 모두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영화를 감상했다.
때로는 와~ 하고 어떨 때는 하하하하 웃었다.
박정기도 오랜만에 보는 고전이라 재미있었다.
특히 이소룡이 싸울 때는 모두 캬오~ 하고 기성을 내질렀다.
모두 두 주먹을 치켜들고 이소룡을 따라하고 있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소룡이 발차기 하는 장면에서는 모두 박정기를 우러러 보았다.
이소룡이 발로 차면 옆으로 픽픽 쓰러지는데, 박정기가 검은 유령을 찼을 때는 멀리 날아갔기 때문이다.
윌슨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안절부절 못했다.
아마도 저승의 문턱까지 갔다 온 공포가 다시 생각났나 보다.
영화 중간에 러시아 사람이 나오자 흥분해서 소란스러워졌다.
[파란눈의 악마다]
[죽여야 한다]
자신들과 싸운 백인들과 외모가 비슷해서 적대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결국 이소룡이 때려눕히자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좋아했다.
영화는 마지막을 향해 달려갔다.
이소룡이 끌려가는 장면에서 총을 든 백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소룡은 그들에게 달려가며 이단옆차기를 했다.
탕! 총소리가 났다.
[으악!]
[피해!]
[불방망이다]
[도망가]
총소리에 놀란 인디언 청년들이 바닥을 굴렀다.
잠시 후 영화가 끝나고 노래가 나오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애들 엄청 몰입하네.”
“부기장님도 저런 무술하세요?”
“그럼 태권도 한다고 했잖아.”
“네~ 알겠습니다.”
왠지 급격하게 풀이 죽어서 멀어지는 윌슨이다.
'뭐지? 저 자식! 나한테 감정이 남아있는 거지?'
영화가 끝났음에도 여기저기서 캬오~ 캬오~ 하면서 서로 대련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당수는 자리에 남아서 박정기를 똘망똘망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끝났어! 오늘은 끝이야, 끝!"
[끄티야 끝]
"독수리 발톱! 해산 시켜!"
[해산시켜!]
"말만 따라하지 말고."
[따라하지마고!]
"에고, 바보 한 놈 추가네!"
[놈? 이놈!]
독수리 발톱은 윌슨을 가리키며 '이놈' 이라고 했다.
박정기가 윌슨을 보고 이놈 저놈 하니까, 그걸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윌슨 이리와 봐라!"
"애들한테 담요를 나눠주고 빨리 재워!"
"그걸 왜 제가 해야 돼요?"
"그럼 내가 하리?"
"그건 아닌데, 얘들 시키면 되잖아요."
"그럼 네가 얘들을 시켜!"
"네 알겠어요."
박정기는 삐딱성을 타고 있는 윌슨을 벼르고 있었다.
'매를 버는구나. 한번 제대로 맞아야지 정신을 차리겠지?'
“9개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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