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339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6.05 07:00
조회
2,239
추천
64
글자
11쪽

메담의 직감

DUMMY

“으.... 내가 뭘 한 거지?”

람켄과 맥스가 지원자 명단을 들고 나가자마자 메담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이상해. 네 말을 듣고 여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마음이 든 건 사실이지만 경합에 나갈 마음까지는 없었거든. 그런데 나도 모르게 서명까지 해버렸어. 내가 왜 그랬지...?”

“글쎄....”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너도 모르는 네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안다고.... 메담은 여전히 석연찮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이상 출전 준비를 해야겠네.”

메담의 더위를 식혀주려던 시도가 영 신통치 않은 결과를 가져온 것에 내심 실망하고 있던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서둘러 대답했다.

“출전 준비? 내가 도와줄게.”

“아아. 고마워. 별로 할 일이 많지는 않아.”

메담은 쾌히 승낙했다. 정령검의 도움을 받으면서까지 메리로 분한 보람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보통 사람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도 갑옷을 입은 기사에겐 굉장히 까다로운 작업이 된다는 걸 나는 아까 목격했다. 경합이 벌어지는 동안 틀림없이 메담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내 방으로 가자, 메리. 시합용 갑옷부터 입어야겠어.”

나는 앞장 선 메담의 뒤를 따라 방에서 나왔다. 그의 시선이 걷는 앞을 향하는 사이 갑자기 꿈안개가 나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는 안다. 메담의 마음이 바뀐 이유. 네가 원했다. 휘렌델 바르테인. 메담은 네 눈에서 그 의지에 설득 당한 것.”

나는 이것이 전혀 허황된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꾸며낸 이야기 때문에 메담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박차 버릴까 불안해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메담에게 제발 자신을 위해 선발전에 참전하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이 외침이 쫑알이와 공명할 때와 비슷한 원리로, 눈빛 속에 녹아들어갔을 지도 모른다.

꿈안개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덧붙였다.

“메담. 꿰뚫어 보는 재능 탁월하다. 조심해. 나도 긴장하고 있어.”

이 이야기도 충분히 수긍할만한 것이었다. 휘렌델과 메리 양쪽 모두와 만나 본적이 있는 벨포트와 제시는 두 사람이 동일인물이라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런데 메담은 대번에 둘이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해내지 않았던가.


방에 도착하자마자 메담은 입고 있던 갑옷부터 벗기 시작했다. 옆에 하녀가 버젓이 있는데도 남에게 부탁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평민 출신 소년은 혼자 낑낑대며 용을 쓴다. 보고 있자니 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일부러 이 자식을 도와주러 온 이유를 새삼 느끼게 된다.

“도와달라고 하지.”

얼마나 많이 해봤는지 제법 익숙하게 벗고 있지만, 철판으로 만들어진 갑옷은 애초에 종자들을 데리고 다니는 기사들을 대상으로 설계된 방어구였다. 내가 거들자 메담은 한결 수월하게 갑옷을 벗었다.

“고마워. 메리.”

메담은 환하게 웃으며 흉갑과 견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땀에 푹 젖은 얇은 옷만 걸친 그의 상체가 드러났다. 나는 그의 가슴팍에 놓인 그 검은 손가락 같은 목걸이에 또 다시 시선을 빼앗겼다. 저 목걸이는 대체 뭘까? 왜 어디서 본 듯한 기분이 들까? 안타깝지만 처음으로 그 목걸이를 보았을 때보다 기억이 더 가물가물해지고 있다. 이러다 영영 저 목걸이의 비밀을 풀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목걸이에 대한 고민을 멈추고 나니 비로소 메담의 상체윤곽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들의 몸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메담의 몸은 꽤 멋진 축에 속할 것 같다. 마르지도, 통통하지도 않은 보통 체형이지만 어깨가 떡 벌어지고 허리는 잘록하여 전제적으로 꽤 뚜렷한 역삼각형 모양이었다.

“뭘 그렇게 봐?”

메담은 짓궂게 웃으며 수건을 옷 속으로 넣어 땀을 대강 닦아냈다. 그 바람에 그의 맨살이 드러났고 나는 경악하여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뭐하는 거야? 다 보이잖아?”

“뭐 어때? 여기서 처음 만나던 날 다 봤잖아.”

훌렁 벗고 있던 녀석의 모습이 떠오른 나는 절로 뺨이 붉어지며 아무 대답도 못하고 그냥 녀석의 방에서 나와버렸다.


복도에서 나는 녀석이 옷을 제대로 입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갑자기 꿈안개가 내 귓가에 속삭여왔다.

“휘렌델. 크루거가 환영 쪽으로 오고 있다. 곧 말을 걸 것 같아.”

이런 상황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미리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닥치고 나니 꽤 당황스러웠다. 꿈안개는 약속대로 크루거의 목소리를 나만 들을 수 있게 내 귓속에 직접 들려주었다.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여기 물 한잔 드십시오.”

나도 참 한심한 것이, 잠시 내가 처한 상황을 잊고 저 경기장에 있는 크루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신기해하고 있었다.

“당황하지 마. 휘렌델. 자연스러운 대답해라. 내가 전해 주겠다.”

꿈안개의 말에 정신을 차린 나는 조심스럽게 허공을 향해 평상시처럼 대답했다.

“고마워요. 스웨이츠 경...”

“미시겠다고 하지 마라. 환영은 컵을 들 수 없단 말이다.”

윽!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네. 아무 생각 없이 평상시대로 달라고 하려던 나는 얼른 대답을 바꾸었다.

“하지만 사양하겠어요. 지금은 별로 목이 마르지 않네요.”

“알겠습니다, 여왕님.”

그리고 꿈안개가 귀뜸해주었다.

“거울을 꺼내봐라. 휘렌델 바르테인.”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거울을 꺼냈다. 곧 거울 표면에 뿌옇게 김이 서리더니 나의 환영에게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크루거의 모습이 보였다. 첫 번째 돌발 상황을 무사히 극복한 나는 의기양양한 기분이 되었다. 때 마침 옷을 다 입었다는 메담의 목소리가 들렸고 나는 방으로 들어갔다.


“메리. 누구랑 얘기 했어?”

이 때 나는 메담이 복도에서 내가 한 말을 들었다고만 생각했다. 꿈안개는 쫑알이처럼 입술의 움직임만으로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기에, 아주 작은 소리를 내야 했었다.

“아니, 나 혼자 중얼거렸던 거야.”

“그래? 어떤 남자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이렇게 대충 넘어가는 줄 알았던 나는 메담의 대답을 듣고 문득 오싹함을 느꼈다. 이 녀석.... 정령검이 전해준 크루거의 목소리를 들은 건가? 나만 들으라고 귓속에 전해준 소리를? 그것도 문이 닫힌 이 방안에서? 꿈안개도 꽤 당황한 모양이다.

“어떻게 된 거지? 내 마법.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아. 속이는 것. 미리 알고 경계하지 않는다면 저항 작용이 일어나기 어렵다. 그런데...”

꿈안개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메담이 돌연 몸을 돌린 것이다.

“지금 또 들렸어, 그 소리. 아까 전부터 웅웅거리던 소리....”

메담은 대뜸 방문을 활짝 열고 복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좌우로 두리번거리며 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 적극적인 대처에 순간적으로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메담의 기행은 여기까지였다.

“이상하네.... 잘못 들었나? 오늘따라 왜 이러지....”

다른 사람 눈에는 내가 메리로 보이지만 내 눈에는 아직 내가 왕녀 휘렌델이었다. 눈에 들어오는 내 모습은 여왕일 때 입었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메리 행세를 하는 것이 불안했었던 나는 허리에 찬 푸른 단검을 손으로 가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 오늘 진짜 이상해. 아까는 내가 평상시와 달라 보인다는 말을 하질 않나.”

메담의 의구심을 보다 확실하게 죽여 놓기 위해 아까 있었던 일까지 들먹이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메담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사과한 후에 시합용 갑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재미있구나. 휘렌델. 내 마법 원래 이렇게 간단히 들통 나는 것 아니다. 과연 네 친....구답다. 내 예상보다 더 날카로운 감각을 지니고 있다.”

‘어이? 또 떠들어도 되는 거야? 방금 전에 들킬 뻔 했잖아.’

나는 겁도 없이 또 말을 걸어온 꿈안개에게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걱정 마. 이제 들어도 들었다 생각 안 해. 착각한다 생각해. 그런 성격이야, 메담은.”

다행히 검이 장담한대로 메담은 이번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갑옷을 펼쳐 입기 시작했고 나는 필요할 때마다 나서 그 작업을 도왔다.

“.... 이게 시합용 갑옷이야?”

내가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메담이 지금 입고 있는 갑옷이 연습 때 사용하던 것보다 훨씬 더 낡아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몸을 가리는 부품이 좀 더 많긴 했지만 영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연습용 갑옷이 더 낫겠다.”

“어쩔 수 없어. 연습용은 기사단에서 일괄적으로 지급되고, 시합용은 각자 준비하거든. 친구 녀석들과 급여를 나눠 쓰다 보니 좋은 갑옷을 살 여유가 없었어.”

순간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왔다. 왠지 메담이 기사단에서 가장 약한 녀석으로 취급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방에서 나온 나는 인기척이 드문 곳으로 숨어 들어가 꿈안개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여왕님?”

휘렌델의 환영에게 크루거가 와서 무릎을 꿇는 광경이 거울에 비춰졌다.

“시합용 갑옷이 하나 필요한데 어디서 살 수 있을까요? 키는 대략 180 센티미터 정도에 어깨가 좀 벌어진 체격의 남자가 입을 거예요.”

내가 말하고 나면 약간의 시간차로 환영이 내가 한 말에 맞춰 입술을 움직인다. 이거 꽤 재미있다!

“한 번 구해보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갑옷은 왜 필요하신 겁니까?”

“아까 기사단의 훈련을 지켜보는데 나를 알아보고 제일 먼저 경례한 기사가 있었어요. 이름을 봤는데 메담 스피어라고 했어요. 그 예의바른 행동에 작은 선물을 하고 싶군요.”

“아, 알겠습니다.”

나는, 아니 왕궁기사단장의 녹색 망토를 두르고 의자에 높이 앉아있는 휘렌델의 환영은 크루거에게 한 가지를 더 주문했다.

“되도록 빨리 그 기사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어요. 경합이 벌어지기 전에 말이에요. 그러면 선발전에 임하는 모든 기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는데도 도움이 되겠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그 후진 갑옷을 다 입은 메담이 방을 나가기도 전에 하인 셋이 번쩍거리는 새 갑옷을 가져온 것이다.




당신의 댓글 하나가 당신이 읽고 있는 글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작가의말

본문을 다 써놓고

여기서 지금 20분째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오늘은 드립칠 게 생각이 안나네요;;

한 번 쉬어가겠습니다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녀의 외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메담의 직감 +4 15.06.05 2,240 64 11쪽
56 선발전 등록 +4 15.06.03 2,193 58 9쪽
55 변신검 +4 15.06.02 2,306 56 12쪽
54 유사이래 최초 +4 15.06.01 2,412 50 13쪽
53 수호기사 선발 +10 15.05.30 2,352 61 12쪽
52 폭군의 진실 +6 15.05.28 2,338 63 7쪽
51 휘렌델의 결론 +4 15.05.27 2,244 61 13쪽
50 귀족들의 자부심 +14 15.05.26 2,380 69 8쪽
49 성을 떠난 마법사 +6 15.05.25 2,526 67 11쪽
48 따귀 백만 대 +8 15.05.22 2,362 70 10쪽
47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6 15.05.21 2,726 39 19쪽
46 꿈을 살고있는 자 +4 15.05.20 2,491 67 12쪽
45 메담의 공범 +8 15.05.19 2,201 60 16쪽
44 그에게 없는 것 +2 15.05.17 2,378 64 10쪽
43 어린 기사 +6 15.05.15 2,500 59 11쪽
42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8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2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1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1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1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3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1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33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4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4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9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2 8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