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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319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4.20 01:54
조회
2,778
추천
86
글자
11쪽

스텝 사이드 킥

DUMMY

나는 위기에 처했을 때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심 그들이 한심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나에게도 이런 일이 닥치니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페나에서 오는 길에도 도적들을 만나서 겁에 질렸던 적이 있었지만 그 때는 나를 지켜주는 기사들이라는 완충막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 남자의 검은 손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나쁜 의도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이렇게 직접 대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를 믿기가 힘들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이렇게 밝고 화려한 도시에 저런 불한당들이 돌아다니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되잖아....

“이쪽이야, 메리!”

날카로운 외침이 오른쪽 고막을 울린다. 내 이름은 휘렌델인데 메리는 또 누굴까? 어쩐지 최근에 그런 이름으로 자주 불린 것 같긴 하지만.... 그래, 맞아. 나를 메리라고 부르는 건 단 한 사람뿐이었지. 고개를 돌리자 메담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이 순간 녀석은 더 없이 늠름하고 듬직해 보였다.

“웬 놈이냐?!”

불량배들은 갑자기 난입한 메담을 험상궂게 노려보며 소리쳤다. 불행히도 녀석들은 메담이 기사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지금 입고 있는 왕궁기사단의 푸른 정복은 특별한 행사에만 입는 옷이고, 그 특별한 행사들은 주로 윈더민 성내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사라는 걸 알았으면 그 즉시 혼비백산하여 도망쳤을 것이다.


“내가 시간 끄는 동안 도망가, 메리!”

메담은 그가 오는 쪽 골목을 맡고 있던 남자에게 뛰어들면서 내게 다급하게 외쳤다. 혼란에 빠져 있던 내게 그 말은 마치 계시와도 같이 들렸고, 나는 그대로 따랐다. 메담이 악당에게 달려드는 틈을 타 거침없이 달려 엉겨 붙은 두 사람의 곁을 통과했다.

메담은 독수리처럼 몸을 웅크리며 적을 향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용감하게 두 팔을 올려 머리와 얼굴을 감싸고.... 그 남자에게 복부를 얻어....맞았다?

메담이 방금 한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니 뭔가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보통 기사들은 이런 상황에서 ‘내가 시간 끄는 동안 도망가.’라고 말하기보다 ‘놈들을 해치우는 동안 기다려.’라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재수 없는 애송이 벨포트도 전혀 힘든 기색 없이 도적들을 제압했었다. 나는 메담도 같은 기사니까 당연히 그 셋을 압도적으로 두들겨 팰 줄 알았다. 그런데 내 기대와 정 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뒤따라온 두 남자까지 합세하여 불량배 셋이 압도적으로 메담을 두들겨 패기 시작한 것이다.

“밝은 곳으로 도망쳐, 메리! 큭....!”

그 세 남자는 메담를 때리는 것보다는 날 잡는 걸 우선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메담이 몸을 던져가며 진로를 방해하는 바람에 뿌리치지 못했다. 그들은 메담이 나타나기 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움직였고, 그들의 눈은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흉흉한 안광을 뿜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나는 더 이상 공포에 떨지 않았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저렇게 맞고 있는데 어떻게 메담을 버리고 갈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 자식들이 얼마나 나쁜 놈들인지 아직 모른다. 내가 이 자리를 벗어나면 남아있는 메담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공포는 사라지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화가 날수록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성격이었다.


가장 처음에 메담이 맞닥뜨렸던 녀석. 나와의 거리도 가장 가깝다. 여기서 내가 요쪽으로 살짝 꺾으면....

“그쪽이 아니야, 메리! 그냥 쭉 달려!”

아무 것도 모르는 메담이 소리친다. 걱정 마. 이건 내가 계산한 대로니까. 갑자기 나의 위치가 바뀌자 그 남자는 방향을 틀어 메담의 손길을 손쉽게 뿌리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지금까지 겁에 질려 돌처럼 굳어있는 나의 모습만을 보아왔다. 내가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잘해봐야 뛰어서 도망칠 거라고만 생각했을 것이다. 그 허점을 찔러주마.

나는 옆으로 선 채 왼발로 땅을 박차고 튕기면서 전진했다. 착지할 때 딛는 발도 왼발이다. 살짝 점프했기에 온몸의 무게가 급격히 왼발에 쏠린다. 이 무게중심을 부드럽게 오른발로 이동시킨 다음에 쫙 뻗으면서 한 번에 폭발시키면....


“퍽!”

오른발 옆차기는 녀석의 얼굴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달려오던 기세 때문에 놈은 한층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맞은 충격도 충격인데다 뜻밖의 기습이었기에 녀석은 반쯤 의식이 날아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왠지 이대로도 해치운 것 같지만 지금은 머독에게 이단옆차기를 날렸을 때와 다르다. 확실하게 쓰러뜨려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나는 옆으로 돌아가서 점프하면서 그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 찼다.

“크억!”

그는 비명을 지르며 풀썩 쓰러졌다. 내 비명소리가 아닌 굵은 남자의 비명소리는 이 불한당들에게 뜻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들이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점프에서 착지하자마자 메담이 맞고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나의 접근에 두 남자는 혼란스러워한다. 나는 그 중에 좀 더 얼이 빠진 것처럼 보이는 쪽을 택해 돌진했다.

“으앗?!”

동료가 쓰러진 것을 본 녀석은 긴장한 표정으로 머리와 얼굴을 감싸며 방어자세를 취했다. 공격할 수 있는 부위가 순식간에 제한되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내가 노린 곳은 다른 곳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그 곳 말이다.

“....!!”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고작 한 방을 맞았을 뿐이지만 녀석은 완전히 전투 능력을 상실했다. 그는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며 자신의 중요한 부위를 감싸 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마지막으로 앞니가 시커멓게 썩은 놈만 남았다. 순식간에 수적으로 불리해진 녀석은 불안한 시선으로 나와 메담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쪽도 섣불리 덤벼들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내가 두 명을 쓰러뜨린 건 순전히 방심을 이용한 덕분이었고, 메담은 흠씬 두들겨 맞은 터라 잘 싸워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게다가 지금 보니 메담은 뭐하느라 지쳤는지 숨이 차서 조금씩 헐떡거리고 있었다.


잠시 동안 우리와 대치하던 썩은 이빨은 슬금슬금 동료들 쪽으로 움직였다.

“빨리 일어나, 멍청이들아!”

그는 두 남자를 두들겨 깨운 후 대강 부축한 뒤, 우리를 경계하면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감히 뒤쫓을 엄두는 내지 못했던 나와 메담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야 여유가 생긴 메담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메리, 어떻게 된 거야? 둘이나 쓰러뜨렸잖아?”

너야말로 어떻게 된 거야? 한 명도 못 쓰러뜨리고 맞기만 했잖아. 기사라면서.... 그래도 지금은 이 녀석의 한심함을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메담이 때마침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등골이 서늘해진다. 상상도 하기 싫다. 내가 냉정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불량배들을 제압할 기회를 잡은 것도 모두 이 녀석 덕분이었다. 나는 많이 다친 건 아닌지 걱정스러워 메담의 용태를 주욱 눈으로 훑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도 없고 얼굴도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어쩐지 저번에 맞은 곳이 굉장히 아프다 싶었는데, 너 정말 보통이 아니었구나! 누구한테 싸우는 법을 배운 거야?”

메담은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묻는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렸을 때는 제1 왕위계승자였던 아버지의 금지옥엽이었고, 페나에서는 영주인 외할아버지의 후계자로 자라왔다. 숙녀....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숙녀로서 살아온 나다. 사내들이라면 받아봤음직한 검술이나 무술에 대한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단지 달리기를 좋아해서.... 여자애 치고는 건강한 것뿐이야.”

“아 맞다. 넌 뛰는 걸 좋아한다고 했지? 그래서 다리 힘이 그렇게 센 건가? 어쩐지.... 잘 뛰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퍼뜩 깨달았다.

“너....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어?”

이제야 메담의 호흡이 흐트러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비밀통로에서 여기까지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곳에서 헤어졌던 메담과 이곳에서 우연히 재회한다는 건 확률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즉 녀석도 나와 헤어진 후 전속력에 가까운 속도로 달려 여기로 왔다는 뜻이다. 그리고 녀석이 그래야 했던 이유는.... 내가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맞아. 몰래 뒤따라오고 있었어.”

메담은 어설픈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순순히 시인했다. 그러자 고마웠던 마음은 사라지고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었다.

“뭐라고? 왜 나를 미행한 거야?”

녀석은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태연히 대답했다.

“말로는 안 간다고 했지만 눈빛을 보니까 네가 생각하는 게 빤히 보였어. 그리고 결국 내 예상이 맞았잖아.”

윽.... 그러고 보니 내가 화낼 입장은 아니네. 먼저 거짓말을 한 건 나니까.... 하지만, 애초에 이 녀석은 왜 나에게 윈더민 시내로 가지 말라고 했던 걸까?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서 순간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 묻는 걸 깜빡했다. 대충 성밖으로 외출하려면 허가라도 받아야 하나 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메리 네가 도개교 선언을 지키는지 확인해야 했단 말야.”

도개교 선언? 그게 뭐지? 궁금했지만 메담에게 물을 수 없었다. 눈치로 보아 하녀라면 당연히 알고 있는 개념인 것 같았고 이를 물어보면 내가 하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들통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까지의 메담의 말로 추측하건데, 하녀가 윈더민 시가지를 돌아다니는 건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 같았다.

“여기까지 나온 이유는 대체 뭐야?”

메담의 이 말에는 ‘굳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라는 전제가 생략된 것 같았다. 나는 약간의 긴장을 느끼며 둘러댔다.

“소원이었어.... 바르테인에서 제일 큰 도시를 한 번 구경해보고 싶었어....”

나는 제대로 변명한 건지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한 마음으로 메담의 반응을 살폈다.

“그래서 계속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다녔던 거구나. 사람들 시선을 피하면서 구경하려고....”

녀석이 이제야 모든 것을 이해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때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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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메담 : 여러분 안녕하세요. 왕녀의 외출에서 액션을 담당하고 있는 메담 스피어입니다.

휘렌델 : 액션 담당? 무슨 근거로?

메담 : 초반에 찔끔 나온 후로 거의 20화가 진행동안 동안 나오지 않던 액션 신이 내가 등장하자마자 나왔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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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메담의 직감 +4 15.06.05 2,239 64 11쪽
56 선발전 등록 +4 15.06.03 2,192 58 9쪽
55 변신검 +4 15.06.02 2,305 56 12쪽
54 유사이래 최초 +4 15.06.01 2,412 50 13쪽
53 수호기사 선발 +10 15.05.30 2,351 61 12쪽
52 폭군의 진실 +6 15.05.28 2,337 63 7쪽
51 휘렌델의 결론 +4 15.05.27 2,243 61 13쪽
50 귀족들의 자부심 +14 15.05.26 2,379 69 8쪽
49 성을 떠난 마법사 +6 15.05.25 2,526 67 11쪽
48 따귀 백만 대 +8 15.05.22 2,361 70 10쪽
47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6 15.05.21 2,725 39 19쪽
46 꿈을 살고있는 자 +4 15.05.20 2,491 67 12쪽
45 메담의 공범 +8 15.05.19 2,201 60 16쪽
44 그에게 없는 것 +2 15.05.17 2,378 64 10쪽
43 어린 기사 +6 15.05.15 2,500 59 11쪽
42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7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1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0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0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0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2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0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3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3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8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1 8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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