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331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5.22 07:00
조회
2,361
추천
70
글자
10쪽

따귀 백만 대

DUMMY

내 방으로 통하는 비밀통로는 어두웠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내 자신이 누구인지도 보이지 않아 점점 모호해졌다. 그 무저갱의 어둠속에서 나는 하녀 메리에서 서서히 여왕 휘렌델로 변해간다.

아까는 무서워서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던 제시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그녀에게 뺨을 얻어맞았다는 사실이 갑자기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졌다. 머리가 뜨거워 질 정도로 화가 난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날수록 더 냉정해지는 성격이었다. 이번에는 이 침착함을 나 자신을 달래는데 활용했다. 하녀 메리일 때 당한 일에 여왕으로서 복수해서는 안 된다. 이는 좀 더 공정한 왕이 되기 위해 나 스스로 정한 철칙이었다.

나 자신을 끊임없이 진정시키는 동안 어느덧 방에 도달했다. 그리고 너무나도 뻔한 사실 하나를 기억해냈다. 내가 하녀 메리로 있었던 시간이 대략 네다섯 시간에 달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메담에게 자루만 건네주고 금방 돌아올 생각에 앤디에게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말을 전해두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왜냐하면 그 네다섯 시간 중에 저녁 식사시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내가 여왕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적어도 한번은 나를 찾아와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방문을 두드렸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나는 오늘 오전에 죽을 고비를 넘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위로한답시고 찾아왔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더 이상 여유롭게 걷고 있을 수가 없었다. 전력질주로 어두운 복도를 돌파한다. 비밀문을 열기 전에 귀를 대어보았다. 다행히 벽 너머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를 확인한 나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비밀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나는 밖의 상황을 살피기 휘애 방문을 열었다. 내가 없어진 걸 알고 성내가 발칵 뒤집혔을 수도....

“이제 일어나셨습니까?”

앤디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잠깐 마음을 졸였던 게 허무해질 정도로 말이다. 잃어버렸던 왕을 되찾은 기사의 태도가 결코 아니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내가 자리를 비웠었다는 사실은 들키지 않은 것이다.

“좋아 보이셔서 다행입니다. 주무시는 동안 많은 분들이 찾아오셨습니다. 크루거 경, 웨버 경, 오티즈 경, 라울 경.....”

앤디는 수많은 이름들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물론 나는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사람들의 이름에는 약간의 관심도 없었다. 그보다 앤디가 ‘주무시는 동안’이라고 말한 것에 주목했다.

“....내가 잠이 든 건 어떻게 알았어요?”

“아.... 저의 검 덕분입니다.”

앤디는 내게 자신의 정령검, 쫑알이를 내보였다.

“몇 년 전에 저는 알트론 선왕의 수호기사 임무를 수행했었습니다. 그 때도 이 검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알트론 선왕께서는 사생활을 침해받는 것에 관해서는 몹시 민감하셨던 분이라....”

여기까지 들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대강 짐작이 되었다. 내가 하녀 메리로 분하여 방을 나갔던 것을 쫑알이는 그 초감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녀석은 나를 위해 앤디에게 거짓말을 해준 것이다. 한편 삼촌이 침해받기 싫어했던 사생활이란 게 어떤 건지도 슬프지만 짐작이 갔다. 부끄러워진 나는 앤디의 말을 중간에 자르며 물었다.

“그 정령검이 말해 주었나요?”

“이 녀석의 유일한 좋은 점이죠. 사람과 말을 한다는 것 말입니다.”


앤디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쫑알이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저 녀석이 사람들에게 욕을 퍼부었던 건 그만큼 인간이라는 종족을 증오했기 때문이다. 녀석과 공명했을 때 나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분노와 증오를 분출하려는 녀석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라도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싶은 것 또한 녀석의 솔직한 심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 번 더 그 검을 빌려주시겠어요? 단잠을 깨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앤디는 나의 부탁에 선뜻 쫑알이를 건네주었다. 녀석을 쥐자마자 낮에 그랬던 것처럼 원래 인간의 몸으로 느낄 수 없는 초월적 감각이 느껴진다. 가장 먼저 나는 웃음소리를 들었다. 아니, 공명을 통해 머릿속으로 직접 전해지는 것이니 소리는 아니다. 이것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설명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 중에서 가장 비슷한 개념인 까닭에 웃음소리라는 단어를 택한 것이다.

-킬킬킬킬킬...!!!!!-

‘웃음소리 비슷한 것’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 요란함에 당황할 겨를이 없었다. 쫑알이가 초감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공명을 통해 나에게도 봇물처럼 흘러들어왔기 때문이다.

편의상 초감각이라고 말하는 그것은 내가 쫑알이와 공명해서 녀석의 감각을 엿보는 과정과 매우 흡사하다. 내가 쫑알이를 엿보는 것처럼, 쫑알이도 공기 중에 떠다니는 굉장히 단순한 사고 회로를 가진 어떤 것들과 공명하여 그들의 감각을 엿보는 것이다. 지금 쫑알이가 공명하고 있는 어떤 것들은 아까 하녀들이 바느질을 하던 방에 있던 어떤 것들이었다.

“이 요망한 년! 짝!”

경황이 없어서 몰랐는데 제시가 저런 욕도 했었구나.... 쫑알이는 지금 내가 제시에게 따귀를 얻어맞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녀석과 함께 제 3자의 눈으로 내가 겪은 일을 구경한다.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다. 맞는 순간 얼굴이 퍽 구겨지며 못생겨졌다. 불쌍한 휘렌델.... 얼이 빠진 표정으로 아픈 뺨을 어루만지는데 별안간 처음의 장면으로 돌아간다. “이 요망한 년!”이라는 소리가 들리며 제시의 손바닥이 내 뺨에 다시 작열한다.

-킬킬킬킬킬....!!-

어쩌면 쫑알이가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던 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한다. 이 녀석... 보통 비뚤어진 게 아니다. 내가 얻어맞는 광경을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보고 있다! 그러면서 좋다고 웃고 있다!


“너 이 자식!”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긴 복도를 따라 성난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앤디가 놀란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혹시 그 놈이 여왕님께 못된 말이라도 했습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나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앤디에게 미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머릿속에 울리는 쫑알이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초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웃음소리는 나의 당황한 모습에 쫑알이가 어느 정도로 기뻐하고 있는 지까지 정확한 정보를 내게 전달해준다. 한층 더 부아가 치밀었지만 그럴수록 놈이 더 기뻐한다는 것을 알기에 필사적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좋냐?’

속삭인 것이 아니다. 앤디가 빤히 쳐다보는 앞이라 아주 작은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단지 입술만 뻐끔거렸을 뿐이다. 하지만 왠지 내가 쫑알이에게 공명하는 것처럼, 쫑알이도 내 입술의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쫑알이가 용케 알아듣고 대답해온 것이다.

-행복해.-

‘쳇! 변태 자식....’

-이걸로 비긴 셈 치지. 잊었어? 얼마 전에 나도 너처럼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통이라는 걸 느껴봤다고.-

할 말이 없어졌다. 이 녀석은 따귀를 맞은 정도가 아니라 죽을 뻔 했으니까. 더구나 나는 제 3자인 제시에게 맞은 거지만 이 녀석은 나한테 직접 당했다. 오히려 녀석 쪽이 손해였다. 그러나 검에 갇혀 나에게 직접 복수할 수 없는 처지인 쫑알이는 이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이 녀석은 초감각 덕분에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실감나게 구경할 수 있는데다가, 놈의 비뚤어진 세계 속에서 휘렌델은 벌써 수백 대나 얻어맞았을 것이다.

‘좋아. 이제 비긴 거야.’

나는 녀석이 이러한 사실들을 눈치 채기 전에 얼른 제의를 수락했다. 그리고 앤디에게 녀석을 돌려주려 했다. 그런데 쫑알이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잠깐. 나한테 고맙다는 말을 전하기로 했잖아.-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혹시 듣고 싶은 거야? 나한테서 고맙다는 말을?’

-.....-

쫑알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 되었다.

‘근데 너 앤디에게 거짓말도 할 수 있어? 손잡이를 쥐고 있는 주인한테?’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지. 그 전까지는 괜찮아.-

‘그렇다면 나를 위해 거짓말을 해준 건 꽤 무리를 한 거였구나.’

“고마워.”

마지막 세 글자는 앤디의 귀에도 들릴 정도로 분명하게 말했다. 쫑알이는 나와 무언의 대화를 하는 내내 한편에서는 내가 따귀를 맞는 광경을 계속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녀석은 그것을 멈추었다.

-조심해라. 휘렌델 바르테인.-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후에 쫑알이를 앤디에게 건넸다. 그리고 방 안으로 돌아왔다.




당신의 댓글 하나가 당신이 읽고 있는 글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작가의말

쫑알이 : 조심하라는 말에는 좀 더 복합적인.... 음? 왜 여기서도 내 이름이 쫑알이로 나오는 거지? 내게도 정령다운 멋진 이름이 있는데....!

예니토 : 헷갈릴까봐.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녀의 외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메담의 직감 +4 15.06.05 2,239 64 11쪽
56 선발전 등록 +4 15.06.03 2,193 58 9쪽
55 변신검 +4 15.06.02 2,305 56 12쪽
54 유사이래 최초 +4 15.06.01 2,412 50 13쪽
53 수호기사 선발 +10 15.05.30 2,352 61 12쪽
52 폭군의 진실 +6 15.05.28 2,337 63 7쪽
51 휘렌델의 결론 +4 15.05.27 2,244 61 13쪽
50 귀족들의 자부심 +14 15.05.26 2,380 69 8쪽
49 성을 떠난 마법사 +6 15.05.25 2,526 67 11쪽
» 따귀 백만 대 +8 15.05.22 2,362 70 10쪽
47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6 15.05.21 2,725 39 19쪽
46 꿈을 살고있는 자 +4 15.05.20 2,491 67 12쪽
45 메담의 공범 +8 15.05.19 2,201 60 16쪽
44 그에게 없는 것 +2 15.05.17 2,378 64 10쪽
43 어린 기사 +6 15.05.15 2,500 59 11쪽
42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8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2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0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0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0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3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1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33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3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4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9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2 8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