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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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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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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5.07 00:16
조회
2,647
추천
41
글자
10쪽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DUMMY

대학 시절 저는 영어 회화 동아리에 가입했었습니다. 사실 이 동아리 활동이 제 대학 생활의 모든 것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전공 수업은 일주일에 3번 정도였는데 동아리 수업은 평일은 물론 토요일에도 진행되었습니다. 매일 얼굴을 보니 같은 과 사람들보다 동아리 사람들에게 더 정이 갈 수밖에 없었죠.

“일주일에 6일이나 수업을 해? 그런 동아리가 있어?”

대학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누구나 이렇게 물으실 겁니다. 처음 가입한 동아리가 이런 곳이었던 저는 오히려 다른 동아리의 실상을 듣고 놀랐습니다. ^^; 사실 제가 과 활동을 접어두고 동아리에 올인한 이유도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정말 놀랍고 대단한 동아리였거든요.


일주일에 6일이나 되는 수업을 전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운영합니다. 지도 교수는 있지만 서류상 이름만 올렸을 뿐 얼굴도 보이지 않고, 전적으로 학생들이 운영하는 동아리였습니다. 모여서 하는 거라고는 정말 재미없는 공부뿐인데, 동아리 존속이 위협받을 정도로 이탈자가 생기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에서보다 더 끈끈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술 동아리지만 재미난 행사도 과에서 하는 것보다 자주 했습니다. 체육대회도 학기당 2번 이상 하고 MT도 1년에 4번 갔습니다 ^^;


저는 사실 동아리에 늦게 적응했습니다. 과 활동과 병행하려고 한 까닭에 서로 친해지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던 겁니다. 그래서 한 동안은 친한 사람도 없이 혼자 다니는.... 속칭 아웃사이더였습니다. 나중에는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동아리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 어떤 선배들은 제가 그만 둘 것 같다고 생각하셨다 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수업일수는 채웠기에, 1학년을 마친 후 정회원 배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만 해도 제가 나중에 동아리 회장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저도 그럴 마음이 없었습니다. 아니, 저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두려워하는 성격이었고, 회장이라는 자리는 제게 무척이나 버겁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대학교 1학년 때의 겨울 방학이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친해졌고, 그들은 굉장히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회장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막상 몇 번 경험을 해보니 저는 남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발표하는 걸 꽤 좋아하는 성격이었던 것으로 밝혀졌거든요.


이 때 제가 주목한 선배 두 분이 있습니다. 같은 나이였지만 우연찮게도 성격은 극단적으로 달랐던 분들이었습니다.


첫 번째 선배는 카리스마라는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 선배는 후배들의 잘못을 용서 없이 지적하는 분이었습니다. 그 특유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 때문에 그 선배의 질책은 마치 거대한 벽과 같이 위압적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회초리’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그 선배는 조용히 다그칠 뿐인데 많은 동기들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으니까요.


그렇지만 이 선배가 너무한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이라서 서투른 면에 대해서는 관대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만 화를 내고 무섭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경험을 통해 우리는 차츰 이 선배가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공감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그건 가끔이었고, 대개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원칙에 의한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선배가 누구를 혼낼 때에는 그 선배의 동기나 그 위 학번 선배들도 침묵을 통해 암묵적인 동의를 표시했습니다. 이 선배의 표적에서 벗어났을 때 우리 후배들은 안도감을 넘어 우리가 잘하고 있다는 어떤 우월감마저 느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본인이 굉장히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소규모 스터디 그룹을 이끌 정도로 학업에도 열심히였고 또 노는 자리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일반인 치고는 춤도 잘 추었고 노래는 열심히 불렀고.... 아무튼 뭐든 열심히인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편한 자리에서까지 그 엄숙한 원리 원칙을 가져오지도 않았고요. 잘못을 꾸짖는 것도 한 때일 뿐, 감정의 앙금은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동기들은 그 선배를 무서워하고 어려워했습니다. 가까이 하기에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풍겼고, ‘잘못을 지적하는 행위’ 그 자체에 거부감을 느끼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 선배와 허물없이 편하게 지냈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선배는 동아리의 거름망 역할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 선배가 무서워 동아리를 나간 사람도 몇 명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부작용입니다. 하지만 그 공포를 이겨내고, 그 선배의 기준에 맞추는데 성공한, 남은 사람들에게는 동아리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습니다. 제가 과 생활을 버리면서 동아리를 선택한 이유도 돌이켜 보면 아마 이 선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 선배는 정 반대의 성격을 지닌 분입니다. 첫 번째 선배와 마찬가지로 저보다 4살 많은 형님이었는데 동기보다 편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말 다시 생각해도 신기합니다. 두 선배는 또 동기사이라 서로 친했는데, 이렇게나 그 성격이 극과 극으로 달랐습니다. 한 분은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카리스마가 넘치는 사람이었고 다른 한 분은 가장 편한 사람이었으니 말이죠.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가장 친한 사람을 세 사람 꼽는다면 한 명은 저의 베프인 동기입니다. 또 한 명은 저보다 2살 많은 형이죠. 마지막으로 이 선배가 들어갑니다. 인간관계를 잰다는 게 조금 우습지만 굳이 서열을 매긴다면 제게는 3위 정도로 편하고 친한 선배입니다.


그렇습니다. 3위입니다. 이게 별로 대단하지 않게 들릴지 모르지만, 저희 동아리 회원이 대략 200명 가까이 됩니다. 그런데 저보다 네 살이나 많은 이 형이 3위를 차지한 겁니다. 동기모임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동갑내기 친구들보다 저 형이 더 편하고 좋습니다.


무서운 건 이 선배가 저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저 정도 순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첫 번째 선배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진 사람도 더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선배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때로 단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조차 기본적으로는 이 선배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더 무서운 걸 말해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겁니다. 동안에 잘생긴 타입이긴 했지만 외모를 화려하게 꾸미지는 않았습니다. 말을 잘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재치 있는 타입도 아니었고, 재미있는 타입도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가 이랬을까요? 확 끌어당기는 맛은 없어도 어느새 빠져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동아리 사람들의 대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이름이 바로 이 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형과 함께 보낸 시간을 마치 자랑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막상 제가 경험한 바로는 그다지 특별한 일은 없었을 텐데도 말입니다. ^^;


한 가지 특이할 점이 있네요. 바로 잘 들어준다는 거였습니다. 무언가 고민거리가 생기면 친구들보다 이 형이 먼저 생각 날만큼 말입니다. 또한 쓸데없이 권위적인 면이 없었습니다.

가끔 연락이 뜸하면 먼저 전화하시기도 하고.... "형이 할게."는 우리 사이에 유행어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 형이 이렇게 털털하고 점잖다보니 은근히 기어오르려 하는 건방진 후배들이 가끔 가다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후배들은 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이 형을 존경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괴로울 때 의지가 되는 이런 듬직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가 동아리의 회장이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저는 이 두 선배들을 본받으려 노력했습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첫 번째 선배처럼 엄하면서도 흐트러짐이 없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두 번째 선배처럼 편하고 의지가 되는 사람 말입니다. 이는 제게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고, 많은 것을 배우게 했습니다.


왕녀의 외출에 등장하는 크루거와 앤디는 저에게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남긴 두 선배의 강점을 각각 상징하는 캐릭터입니다. 완전히 똑같은 모습은 아니지만요. 그리고 노드는 두 선배의 강점을 합친 캐릭터입니다. 제가 목표로 삼았던 바로 그 모습이죠.^^


원래는 메담의 입장에서 이들을 조명하면서, 학창 시절에 제가 느꼈던 바를 전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휘렌델의 1인칭 시점으로 쓰기로 결정하면서 무산되어버렸네요 ^^;


왕녀의 외출 1부는 리더쉽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겪은 가장 핵심적인 경험을 빼버리게 되어 참 아쉽습니다. 휘렌델은 직책 상 두 사람보다 위에 있으니 아무래도 아랫 사람 입장에서 그들을 우러러 볼 때 느끼는 감정에 접근하는 건 어려운 일이겠죠. 한 때는 휘렌델이 하녀 행세를 하니까 그 점을 이용해 어떻게든 부각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 때문입니다. 리더쉽이 무언지 고민하던 제가 지침으로 삼았던 두 선배의 강점을 이렇게라도 여러분께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두 선배를 본받으려 노력하면서 느끼고 배웠던 점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제가 겪은 바를 통해 여러분이 무언가를 얻으셨다면 저는 무척 보람차고 즐거울 것입니다. ^^


어수선한 상황이라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이 쉽지 않아, 제 경험담을 써봤습니다. 스마트 폰이라 오타나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을 겁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어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대신, 이야기를 진행하지 못한 대신 이 글이 여러분께 소소한 읽을거리라도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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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선발전 등록 +4 15.06.03 2,192 5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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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유사이래 최초 +4 15.06.01 2,412 50 13쪽
53 수호기사 선발 +10 15.05.30 2,352 61 12쪽
52 폭군의 진실 +6 15.05.28 2,337 63 7쪽
51 휘렌델의 결론 +4 15.05.27 2,243 61 13쪽
50 귀족들의 자부심 +14 15.05.26 2,379 69 8쪽
49 성을 떠난 마법사 +6 15.05.25 2,526 67 11쪽
48 따귀 백만 대 +8 15.05.22 2,361 70 10쪽
47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6 15.05.21 2,725 39 19쪽
46 꿈을 살고있는 자 +4 15.05.20 2,491 67 12쪽
45 메담의 공범 +8 15.05.19 2,201 60 16쪽
44 그에게 없는 것 +2 15.05.17 2,378 64 10쪽
43 어린 기사 +6 15.05.15 2,500 59 11쪽
»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8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2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0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0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0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2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1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33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3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4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9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1 8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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