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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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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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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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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수호기사 선발

DUMMY

바이우스가 나간 뒤 나는 방금 전에 그와 나눈 대화들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찾은 답을 그에게 피력할 때 느꼈던 짜릿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가 대화에서 밀리지 않을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전의 나였다면 성장에게 이겼다는 생각에 환호하고 부산을 떨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렇지 않고 있다.

평민을 우선 배려하는 왕이 되고 싶다는 말을 바이우스에게 고백하는 순간,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성장이 나의 결론에 회의적 반응을 보인 건 내 생각을 고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의지를 굳건히 다져주려 한 것 같다. 할크루를 이상적인 왕이라 대답한 건 나의 결론을 지지한다는 걸 에둘러 표현하는 동시에, 내가 그 길을 걸을 때 참고할만한 예시를 던져준 것이리라.

나는 아직 미숙하고 모르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더 이상 나를 두렵게 만들지 못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알아 가면 된다. 실수를 하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바로 잡으면 된다. 모든 것이 나의 목적지로 나아가는데 필요한 과정으로 여기자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겼다.

바이우스의 공책을 펼쳐 시정결산이 무언지 찾아보았다. 내 예상대로 매주 토요일 오전에 진행되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성 밖 윈더민을 다스리는 업무였다. 행정관으로부터 전반적인 운영 현황에 대해 서면으로 보고를 받고, 지시사항을 전달하면 된다.

“성에서 무료로 음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모든 윈더민 시민들이 알 수 있도록 벽보를 붙이세요. 자세한 내용은 성장과 상의를 하시면 돼요.”

첫 시정결산 보고는 이렇게 끝이 났다. 매끄러웠다. 똑같이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첫 회의 때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전날 밤을 새지도 않았고 조마조마하지도 않았으며 떨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를 기뻐할 일이 아닌,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오전 일정을 생각보다 일찍 마치고 회의실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앤디와 교대하고 나를 경호하고 있던 크루거가 면담을 요청해와서 그와 함께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셔벗 경과도 상의한 내용입니다. 저희는 하루라도 빨리 분노하는 자들을 소탕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어제 그 끔찍한 사건이 있었으니 말입니다....”

앤디도 꽤 분개했었지만 매사에 진지한 크루거는 그 이상이었다. ‘끔찍한 사건을 언급’할 때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는지 눈썹까지 부르르 떨리고 있었다.

“저희는 왕성의회에게 통보받은 대로 여왕님께서 결정을 내리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헤니건 경이 어베레드 원정을 이끌기로 결정되면서 왕궁기사단에 지휘관이 없어도 업무 처리에 큰 지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위험천만한 흉수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기사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해 줄 단장이 필요합니다. 이에 여왕님께 감히 부탁드립니다. 가급적 빨리 저와 셔벗 경중에서 기사단장을 선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나는 눈앞에서 단검이 날아가던 때보다 지금이 더 곤혹스러웠다. 크루거가 이러한 요청을 해오는 상황에 대해서는 십분 이해한다. 놈들은 이틀연속으로 나를 크게 위협했다. 나도 한시라도 빨리 잡고 싶다. 그러나 앤디와 크루거 중에 한 명을 선택하는 것은 그 이상으로 피하고 싶었다.

특별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앤디와 크루거는 서로 꽤 신뢰가 깊은 사이인 것 같았다. 누가 기사단장이 되든 깨끗이 결과에 승복하고 결정된 쪽을 잘 보필할 것 같다. 그래도 결정을 계속 미루고 싶은 건 아무래도 내 성격 탓인 것 같다. 한 쪽을 선택한다는 건 다른 한 쪽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이걸 참을 수가 없었다. 양쪽 다 훌륭한 기사들이었고 나는 그들 모두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나는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고 냉정하게 생각하려 애쓴다. 내가 왕인 이상 이와 같은 선택의 기로는 앞으로 매양 찾아올 것이다. 그 때마다 이렇게 주저할 수는 없다. 여기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자. 정 안되면 동전이라도 던져서....


“왕궁기사단장은 대대로 왕과 왕성의회가 함께 의논하여 임명해왔습니다. 여기서 결정을 내리실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우리와 함께 마지막까지 회의실에 남아 뒷정리를 하고 있던 바이우스였다.

“이미 여왕님과 왕성의회가 함께 참여한 회의가 있었습니다, 뤼프 경. 그리고 여왕님께서 저희 둘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신 후에 직접 선택하시기로 결정이 되었죠. 따라서 지금 여왕님께서 정하시는 게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선택하는가는 결정되었지만 어떻게 선택하는가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왕궁기사단장을 왕과 의회가 함께 선출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왕성의회는 작위의회처럼 사병을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목숨은 꼼짝없이 이 윈더민 왕성과 그 운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들의 신변을 지켜줄 지휘관을 선택할 권리는 주자는 것이 그 이유 아닙니까? 왕성의회가 단 한 명도 참관하지 않는, 이 자리에서 왕궁기사단장을 결정하는 건 그 취지를 완전히 무시하는 처사일 것입니다.”

확실히 바이우스의 말 대로다. 저번 회의에서 내가 왕궁기사단장을 선택하기로 결정되긴 했지만 이러한 형태는 아닌 것 같다. 귀족들에게 나를 설득할 기회를 줄 또 한 번의 회의를 기약하는 분위기였다.

“저 또한 이러는 것이 달갑지는 않습니다. 여왕님께도 심적 부담을 드리게 되어 송구한 마음 뿐 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시가 급합니다. 그들이 또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크루거는 바이우스의 논리를 반박하지는 못했지만 물러서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바이우스는 침착하게 그의 분노를 받아서 넘겼다.


“스웨이츠 경이 서두르는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제안할까 합니다.”

바이우스는 크루거를 향해 있던 시선을 내게로 옮기며 말을 이었다.

“현재 왕궁기사단장의 두 후보들은 수호기사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두 기사 분들이 수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는 까닭은 바로 경호에 많은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수호기사를 먼저 선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답답해 보였던 크루거의 표정이 안정을 되찾았다. 그가 진정 원하는 것은 분노하는 자들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왕궁기사단장을 뽑아 달라고 말한 건 그 목표를 위한 중간 과정이었던 것이다.

“셔벗 경과 스웨이츠 경 두 분은 업무에 있어 큰 충돌이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굳이 단장이 결정되지 않고 두 분이 공동으로 지휘한다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라 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크루거가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왕성의회는 성과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당장 소집하려해도 오늘 오후에 회의를 진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왕궁기사단은 이 시각이면 언제나 훈련장에 있습니다.”

크루거가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수호기사는 지원자들 간의 경합을 통해 선출합니다. 하지만 그 시간까지 포함해도 회의 결과가 나오는 것보다는 빠를 것 같군요. 게다가 수호기사를 선별하는 건, 기사단장이 선출되었을 경우에도 어차피 거쳐야할 과정입니다.”

왕을 24시간 경호하는 건 수호기사의 임무이고, 원래는 노드가 성을 떠난 날, 기사단의 충성 서약식 전에 수호 기사를 뽑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앤디와 크루거 중에 왕궁기사단장을 결정하지 못하는 바람에 두 사람이 교대로 그 일을 대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왕님. 오늘 오후에 수호기사를 선출하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크루거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내 의사를 물어왔다. 마음 불편한 선택을 또 한 차례 유보하게 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나는 그리고 바이우스에게도 말을 전했다.

“성장은 왕성의회를 소집해 오후에 회의를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오늘 회의를 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 때는 미리 알려 드리겠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아까 말한 대로 왕성의회 사람들이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성장이 먼저 인사하고 서둘러 나갔다. 나는 크루거와 함께 기사단 훈련장으로 향했다. 현재 그는 나를 경호하고 있기에 나와 항시 동행해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의 용무를 위해 내가 따라나선 것이다.


정말로 갑작스럽게 일이 진행되어버렸다. 이 상황이 재미있어서 가슴이 들떴다. 수호기사는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중요한 인물들을 이제부터 뽑는 건가? 훈련장에 들어서면서 나는 보이는 기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폈다.

모여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몇몇 기사들, 여기저기서 서성이고 있던 기사들이 크루거를 보자 다림질된 옷처럼 자세가 반듯해졌다. 크루거를 통해 내가 누군지 깨달았는지 경례는 나를 향했다. 나는 부드러운 미소로 그들의 환영에 답하며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대다수의 기사들은 햇볕이 내리쬐는 드넓은 훈련장에서 검을 휘두르며 연습하고 있었다. 얼마나 열중하는지 내가 온 것도 모를 정도였다. 그 중에 유달리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수 많은 기사들 중에서 특별히 그가 내 눈에 들어온 까닭은 그의 키가 다른 기사들보다 머리 하나 이상 작았기 때문이다.

‘발리언트 람켄....’

이렇게 다른 기사들과 비교해보니 정말로 어린애였다. 다리와 팔이 짧은 게 확실히 티가 난다. 왠지 귀엽다는 생각에 실소를 터뜨리던 나는 곧 웃음을 거두었다. 발리언트의 필사적인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녀석이 어리다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눈빛은 누구보다도 진지했고, 작은 몸놀림 하나하나에 저보다 큰 기사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불꽃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묵직한 감동마저 느껴졌다. 녀석의 실력은 결코 어리지 않다. 부끄러워졌다. 이 아이가 어른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루는 동안 나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숙연한 마음으로 람켄의 훈련을, 아니 그의 의지를 감상했다.

람켄 다음으로 내가 발견한 인물은 메담이었다. 이는 명백한 우연이다. 친구 녀석이 어떻게 훈련을 받고 있나 궁금하긴 했지만 아직 찾아볼 생각까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달리 눈에 띄는 기사가 있어서 봤는데 메담이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기사 수업을 시작해서일까? 녀석의 움직임은 독특했다. 다른 기사들과 확연한 차이가 났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예술적인 느낌이 난다고 할까. 강렬한 흡입력이 있는 것이 마치 춤 같다. 눈으로 본 녀석의 동작이 머릿속에서 너울거리며 재현되는데, 그 움직임이 만들어낸 선이 무척 아름다웠다. 나는 넋을 잃고 녀석을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화들짝 놀랐다. 메담 녀석이 갑자기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본 것이다. 혹시 내 얼굴을 알아볼까 불안해졌다. 70미터쯤 되는 녀석과의 거리가 충분히 멀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행이다. 녀석이 내게 경례를 했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답례를 한 후 서서히 뒤로 물러났다. 벨포트는 화장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얼굴을 구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불안하다. 여왕일 때는 메담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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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앤디 :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원래는 저희가 꽤 비중있는 역할이었다고 합니다.

크루거 : 알고 있습니다. 여왕님 1인칭 시점이 되는 바람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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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유사이래 최초 +4 15.06.01 2,412 50 13쪽
» 수호기사 선발 +10 15.05.30 2,352 61 12쪽
52 폭군의 진실 +6 15.05.28 2,337 63 7쪽
51 휘렌델의 결론 +4 15.05.27 2,243 61 13쪽
50 귀족들의 자부심 +14 15.05.26 2,379 69 8쪽
49 성을 떠난 마법사 +6 15.05.25 2,526 67 11쪽
48 따귀 백만 대 +8 15.05.22 2,361 70 10쪽
47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6 15.05.21 2,725 39 19쪽
46 꿈을 살고있는 자 +4 15.05.20 2,491 67 12쪽
45 메담의 공범 +8 15.05.19 2,201 60 16쪽
44 그에게 없는 것 +2 15.05.17 2,378 64 10쪽
43 어린 기사 +6 15.05.15 2,500 59 11쪽
42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7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1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0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0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0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2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1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33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3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4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8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1 8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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