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328
추천수 :
14,829
글자수 :
1,880,019

작성
15.05.26 07:00
조회
2,379
추천
69
글자
8쪽

귀족들의 자부심

DUMMY

“그만하게.”

바이우스는 단지 한 마디 했을 뿐이다. 그런데 제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얼른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왜 그녀의 말을 자르는 거지? 어쩌면 하워드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이 정말로 괴물일 가능성도 있잖아? 그 삼엄한 경비를 전부 제압하고 왕을 죽이는 동안 수많은 바르테인 군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부터 말이 안 된다. 인간의 능력으로 그럴 수 있나? 제시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은데....

“당시 하워드 선왕을 비롯하여 사망자들 전원에게서 동일한 무기에 의한 상처가 발견되었습니다. 붉은 바위 족이 주로 사용하는, 흑요석 검의 자국 말입니다. 거대한 이빨이나 발톱에 의한 상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시. 노망난 할망구. 괴물이라니 감히 누구 앞에서 저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알케니아님이 윈더민 성을 떠난 것은 8년 전의 일입니다. 그 때 이미 유아기적 퇴행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수많은 사람이 목격했습니다. 그 상태에 접어든 마법사가 더 악화되면 악화되었지 회복된 사례는 지금까지 전혀 없습니다.”

바이우스는 성을 떠난 마법사가 제시 앞에 나타날 리 없다는 말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그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근거를 제시했을 뿐이다. 그럼으로써 그녀의 말이 맞을 가능성 또한 동시에 열어두었다. 이렇게 군더더기 없는 화법은 매사에 자로 잰 듯 정확한 바이우스에게 무척이나 어울렸다. 또한 특별히 강조하는 부분 없이 물 흐르듯 말하는데도 대단히 설득력 있었다.

이로써 제시의 꿈 이야기는 일단락되었고, 덕분에 먹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 식사가 끝나고 제시와 다른 하녀가 간이이동식탁을 끌고 나갔다. 바이우스는 그녀들이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품에서 새 공책을 꺼냈다. 쓰던 공책을 내게 양보한 뒤 새로 장만한 건가 보다.


“내일은 토요일입니다. 오전에 시정결산 보고를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시정결산 보고라는 건 또 뭐지? 말투로 봐서는 토요일마다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세요.”

시정결산 보고. 나중에 성장의 공책을 찾아봐야겠다.

“오후에는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기다렸던 순간이다. 저 시정결산 보고라는 게 없었다면 아마 오전에 잡았을 일정을 나는 바이우스에게 알렸다.

“왕성의회를 소집해 주세요.”

내가 왕으로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려는 의지를 밝히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새 공책에 뭔가 적을 준비를 하던 바이우스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물론 얼굴은 언제나와 같이 무표정이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나는 이렇게 나오는 바이우스가 오히려 반가웠다. 그의 성격이라면 내가 하려는 일이 제대로 된 건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실수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지만, 이상하게 바이우스만은 예외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나의 계획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회의를 열기 위해서예요.”

“분노하는 자들에 대한 긴급대책을 세우시려는 겁니까?”

“그자들에 대한 대책을 굳이 왕성의회와 의논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왕궁기사단도 알고 있는데.... 기사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봐야 오히려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 회의를 여시려는 겁니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좀 더 멋있는 말을 찾고 싶은데 더 생각이 나지 않아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보았다.

“윈더민 성에서 남는 음식으로 빈민들을 구제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회의요.”

바이우스는 한 5초 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는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충 알 것 같다. 이렇게 오랫동안 말이 없는 건 나의 발언이 예상 밖이라 놀랐거나, 뜻을 이해하지 못해 풀이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혹은 둘 다일지도 모르겠다.

이윽고 바이우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빈민을 구제한다고 하셨습니까? 성에서 남는 음식으로 말입니까?”

“성 안에서는 어딜 가나 음식이 준비되어 있잖아요. 바꾸어 말하면 매양 먹지도 않고 버려지는 음식이 있다는 뜻이죠.”

내 목소리는 꽤나 확신이 차 있었다. 왜냐하면 비밀통로를 이용할 때마다 지나치고 있는 창고 안에서 멀쩡한 음식이 버려지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시각을 정해 어차피 버려질 음식들을 성 밖으로 내놓는 거예요. 그러면 먹을 것이 절실한 사람들이 와서 받아갈 거예요. 어때요? 괜찮은 생각 아닌가요?”


나는 메담과 대화를 하면서부터 이 계획을 바르테인의 7대 왕 휘렌델 바르테인의 첫 번째 정책으로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 성 안에서는 음식이 항상 남고 버려지는데, 성 밖에 있는 그의 친구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고 살고 있다. 양쪽 모두에 적을 두고 있던 메담은 그 격심한 괴리를 견디지 못하고 성의 음식을 훔쳐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메담이 하는 일의 확장이었다. 그는 기사로서 자신의 좀도둑질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가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않는다. 이 참에 공식적인 정책을 만들어 메담의 행동을 정당화해줄 작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메담처럼, 어둠속에서 본 거지 소년들의 남루한 차림과 가냘픈 팔목을 보고 괜히 미안한 감정을 느꼈다. 이는 내가 하녀 메리의 입장을 겪어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나의 야심찬 계획을 당당히 선언한 후 나의 기분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다 바이우스의 이 한 마디에 순식간에 마음에 먹구름이 끼어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말에 고분고분 설득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당당히 들고 바이우스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어려운 점이라니요? 그냥 남는 음식을 모아서 내놓기만 하면 되는 건데..... 간단하잖아요?”

바이우스는 어려운 점이 많을 거라는 대답은 거의 곧바로 내놓았는데, 막상 그 어려운 점이 무언지에 대해선 바로 예를 들지 못했다. 바이우스답지 않은 일이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바이우스는 겨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왕성에 거주하는 수많은 귀족들이 결과적으로 ‘평민이 먹는 것과 같은 음식’을 먹게 됩니다. 그들은 그런 치욕을 받아들이지 못할 겁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모두 들고 일어서며 결사적으로 반대할 것입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어안이 벙벙해져서 말했다.

“치욕이라니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귀족들이 조금만 자존심을 굽히면 정말로 절실한 사람들에게 음식이 돌아갈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기분상의 문제이지만 성 밖에 있는 굶주린 사람들에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고요!”

“하지만 윈더민 성에 거주하는 귀족들은 평민들의 목숨보다 그들의 명예를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대할 겁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인지 바이우스의 저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가 순간 너무나도 얄밉게 들렸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내가 화를 낼 대상은 바이우스가 아니다. 그리고 그는 내 말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본 바로도 귀족들은 평민들과 같은 음식을 먹을 위인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성 안에서도 하녀와 하인들을 위한 식사는 따로 준비되고 있었다.


“귀족들이 평민들의 기준에 맞출 수 없다고 한다면 제 기준에 맞추라고 하세요.”

바이우스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앞으로 저는 하녀들과 똑같이 식사겠어요. 그러면 귀족들도 불만 없겠죠. 왕과 같은 대우를 받는 거니까.”




당신의 댓글 하나가 당신이 읽고 있는 글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작가의말

오늘 분량은 꾸벅꾸벅 졸면서 썼습니다 ㅠㅠ

더워서 그런가... 지금도 비몽사몽입니다.

짧아서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4

  • 작성자
    Lv.81 우룡(牛龍)
    작성일
    15.05.26 07:52
    No. 1

    안짧아요!(아마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5.26 21:33
    No. 2

    왠지 괄호 안의 말에 더 눈길이 가네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二月
    작성일
    15.05.26 11:30
    No. 3

    짧아요! (아마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5.26 21:33
    No. 4

    으윽! 고쳐 썼더니 분량이 좀 늘어났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카리황제
    작성일
    15.05.26 16:11
    No. 5

    처음으로 휘렌델에게 감동했습니다.
    여왕님이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5.26 21:55
    No. 6

    언제까지나 왕녀로 남아 있을 순 없죠 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8 바다해미
    작성일
    15.05.26 19:42
    No. 7

    바이우스 눈썹이 꿈틀했다는건 휘렌델이 잘못생각한점이 있다는건데.. 끙. 또 혼날것 같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5.26 21:56
    No. 8

    어떻게 될 지 봐주세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담담한
    작성일
    15.07.27 09:48
    No. 9

    물 흐르듯 않게 말하는데도=> 물 흐르듯 말하는데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7.27 19:31
    No. 10

    감사합니다 ^^ 수정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2 라라.
    작성일
    15.10.24 23:52
    No. 11

    여주는 여왕으로서 자각이 없네요.
    식사를 하녀들과 같게 먹는다고 해서 그게 좋은 여왕은 아니죠.
    신분제 사회에서 최정점인 자는 자애도 필요 하지만 아랫사람들의 동경과 환상의 대상이 되어야할 의무도 있죠.
    자신들과 그냥 똑같은 존재를 위해 백성들이 세금을 내고 희생 하는건 아니죠. 판타지를 충족 해줘야 하는 의무도 닜는 겁니다.그걸 못 하겠다면 왕정을 폐지 하던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10.25 00:58
    No. 12

    세종대왕은 흉년이 들자 움막을 짓고 그곳에서 기거하시며 백성의 어려움을 함께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일화에 굉장히 감명을 받았고, 왕정 하에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리더상을 소설에서 구현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네오앨리스님이 이상적으로 생각하시는 리더상과 다른가 보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4 동방현자
    작성일
    16.12.09 14:07
    No. 13

    50화 잘보고 갑니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읽다보니 어느새50화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6.12.09 21:09
    No. 14

    따라잡히지 않으려면 꾸준히 올려야 할 텐데.... ㅠㅠ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왕녀의 외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7 메담의 직감 +4 15.06.05 2,239 64 11쪽
56 선발전 등록 +4 15.06.03 2,192 58 9쪽
55 변신검 +4 15.06.02 2,305 56 12쪽
54 유사이래 최초 +4 15.06.01 2,412 50 13쪽
53 수호기사 선발 +10 15.05.30 2,352 61 12쪽
52 폭군의 진실 +6 15.05.28 2,337 63 7쪽
51 휘렌델의 결론 +4 15.05.27 2,244 61 13쪽
» 귀족들의 자부심 +14 15.05.26 2,380 69 8쪽
49 성을 떠난 마법사 +6 15.05.25 2,526 67 11쪽
48 따귀 백만 대 +8 15.05.22 2,361 70 10쪽
47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6 15.05.21 2,725 39 19쪽
46 꿈을 살고있는 자 +4 15.05.20 2,491 67 12쪽
45 메담의 공범 +8 15.05.19 2,201 60 16쪽
44 그에게 없는 것 +2 15.05.17 2,378 64 10쪽
43 어린 기사 +6 15.05.15 2,500 59 11쪽
42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8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2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0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0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0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3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1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33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3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4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9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1 82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