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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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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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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05.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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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DUMMY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종족들이 있다. 그 중에서 인간은 단연 적응력이 뛰어난 종족이었다. 그들은 피가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극지, 일 년 내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오지 가릴 것 없이 발길 닿는 모든 곳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았다.

인간은 또한 학습하는 종족이었다. 각각 접한 환경에 적응하면서 서로 다른 장기를 획득했다. 바닷가에 자리 잡은 인간들은 곧 집채만 한 배를 건조했고 숲에서 놀과 경쟁하는 인간들은 뛰어난 사냥꾼이 되었다. 큰 강 유역에 자리를 잡은 인간은 토지를 비옥하게 가꾸어 농사를 짓기도 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장기를 발전시키는 시기에 인간은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중의 한 부족은 산으로 올라가 드워프를 만난다. 그들은 키는 작지만 강인한 드워프들을 신앙심에 가까운 마음으로 숭배하였고 이 소인 종족들로부터 뛰어난 건축술을 배웠다. 이들은 마침내 ‘성’이라 불리는 거대한 건물을 스스로 짓는데 성공한다. 드워프들은 친애하는 인간들의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검은 강철로 만든 거대한 거인의 상을 선물하였고, 이 후 이 인간들은 스스로를 ‘강철거인의 후예’라 칭한다.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그 시절 다른 부족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막강한 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지은 성은 오우거와 맞부딪치면서 조직적인 전술을 익힌 부족의 공격도 가볍게 막아냈다.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또한 금속을 제련해 무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드워프들이 만든 검은 강철에는 못 미쳤지만 쇠로 만들어진 무기를 막아낼 수 있는 부족은 아무도 없었다.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그들의 영토를 ‘강철거인의 정원’이라 불렀다. 그들은 곧 정원이라는 소박한 표현이 무색해질 정도로 영토를 넓혀 나갔다.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다른 부족들을 힘으로 굴복시키고 그들이 쌓은 지식과 기술을 흡수해 나갔다. 곳곳에 강철거인의 깃발이 꽂히고 성이 지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원래부터 강철거인의 후예였던 자들과 나중에 합류한 자들로 계층이 나뉘게 되니 이것이 곧 귀족과 평민의 원형이다.


한편 레니칸 대륙의 중앙 척박한 황야에는 강철거인의 후예들과 생김새가 다른 인간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을린 갈색 피부에 검은 머리칼을 지닌 그들은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서쪽을 정복하는 것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서쪽 바다 끝까지 정복한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다음에 눈을 돌릴 곳은 그들의 땅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강철거인의 후예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소규모로 원자화되어 있던 부족 공동체들을 하나로 합치고 스스로를 ‘투슬’이라고 불렀다. 이는 바로 인간이 최초로 세운 국가의 형태였다. 투슬인들은 강철거인의 후예들의 성에 비하면 열악하지만 마을의 외곽에 벽을 쌓아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그리고 독자적인 기술로 철을 제련하는데 성공하고 휘어진 검을 만들어냈다.

레니칸 대륙의 서쪽을 모두 정복한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예상대로 동쪽으로 진군하였는데, 이 때쯤 투슬인들은 맞서 싸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승승장구하던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처음으로 어려운 싸움을 경험한다. 투슬인들의 저항은 거세었고 물과 식량이 부족한 척박한 땅은 그들에게 있어 또 다른 적이었다. 결국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발길을 돌렸고 투슬과의 첫 번째 전쟁은 이렇게 끝이 난다.

정원으로 돌아온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처음 겪은 패전으로 인해 평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하였다. 평민들을 복종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이 지닌 힘을 보여주는 것이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넓은 영토 위에 더 이상 칼끝을 향할 대상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에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냈다. 그 새로운 적이란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패전으로 생긴 갈등이 내전으로 발전한 것이다. 강철거인의 후예들은 분열하여 서로에게 창칼을 겨누었고, 한 때 레니칸 대륙의 서부를 지배했던 거대 부족을 상징하는 검은 강철의 거인상은 전쟁 중에 넘어져 토막 나 버렸다. 신성한 거인의 파편을 구심점으로 거대한 세력이 형성되었고 그 파편을 소유한 자는 강철거인의 정원, 즉 레니칸 대륙의 서부 전역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다. 이 절대적인 권력자들은 스스로를 왕이라 불렀다.

수세기를 거쳐 무수히 많은 왕국이 강철거인의 정원 위에 세워졌다 무너졌다. 개 중에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왕국도 있었고, 기 한번 펴지 못하고 검은 강철의 파편을 빼앗긴 왕국도 있었다. 따라서 그들 모두를 열거하는 건 매우 번거롭고도 불필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수많은 왕국들 가운데서 바르테인은 단연 눈에 띄는 나라다.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동안 최강국의 위치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바르테인이라는 나라는 역사학자들에게 있어 중대한 분기점 혹은 기준으로 여겨진다. 여기서는 바르테인과, 동시대에 존재했던 네 왕국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 소샤이트


여러 국가로 나뉘어져 난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어느 시대에나 독보적으로 강한 ‘패권국’은 존재했다. 소샤이트는 이 패권국의 계보에 가장 가까이 있는 왕국이다. 바르테인이 세워지기 전까지의 패권국이었던 로클리가 바로 이 소샤이트의 전신에 해당한다. 윈더민 성의 군사시설이 남쪽과 동쪽에 집중된 이유도 소샤이트가 윈더민의 북서쪽에 위치한 까닭이다.

소샤이트의 수도 웨이진은 로클리와 그 이전의 패권국인 할크루를 포함한 가장 많은 패권국들의 수도였다. 왜냐하면 내분이 일어나기 전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가장 넓은 덩어리의 땅을 지배했을 때 거인상을 옮겨놓았었기 때문이다. 즉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가장 빛나던 시기의 수도가 바로 웨이진이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소샤이트가 차지한 검은 강철의 양은 다섯 국가 중에 가장 적다. 거인상이 깨어진 후 각각 굵직한 파편을 집어가는 바람에 남은 부스러기만 겨우 건진 것이다.

소샤이트 왕가는 이 얼마 되지 않은 검은 강철로 왕관을 만들어 쓰고 있다. 이는 세력 면에서는 바르테인에 밀리지만 정통성에서 만큼은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2. 바르테인


로클리 시대 말 웨이진의 동쪽 얼마 떨어지지 않은 블랙번의 영주 세리오 람비드는 친구이자 이웃 영주인 윌리엄 바르테인을 설득해 함께 왕가에 반기를 들었다. 그다지 대단치 않은 세력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용감하게 봉기할 수 있었던 것은 전략적 이점 때문이었다. 둘의 영지는 인접해 있었기에 어느 한 쪽의 성이 포위당하면 다른 쪽이 적의 등을 찌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로클리 군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동쪽의 세력을 규합할 시간을 주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병력을 보강하여 더 이상 양면 공격이 두렵지 않게 된 로클리 군은 두 사람의 영지 중에 어디를 먼저 칠지 선택한다. 이 때 그들의 선택은 윌리엄 바르테인 쪽이었다. 하지만 공성을 시작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윌리엄의 병사들은 단 한 명도 싸우러 나오지 않았다. 성이 텅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황당해진 로클리 군은 근처를 샅샅이 수색하였지만 끝내 윌리엄 군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다.

당시 윌리엄의 영지 라딤 근처에는 ‘하이아온’이라는 이름의 드래곤이 살고 있었다. 하이아온은 수 세기 전부터 인간을 매우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사람을 결코 살려 보내지 않았다. 이러한 까닭에 하이아온이라는 이름이 ‘인간의 힘으로 대적할 수 없는 공포의 존재’의 대명사로 통용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하이아온은 자신의 영역을 떠난 상태였다. 윌리엄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로클리 군은 설마 윌리엄의 군대가 그 포악한 드래곤의 영역을 가로질러 남하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들을 찾는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는 사이 윌리엄은 남서쪽으로 순회하며 로클리 왕가에 병력을 차출해주고 텅텅 비어있는 영지들을 차례차례 점령하니 곧 강철거인의 정원의 중앙부에 해당하는 가장 넓은 영토가 그의 차지가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로클리 군 입장에서는 바로 눈앞에 있는 람비드 군이 문제가 아니었다. 윌리엄이 남쪽에서 노른자 같은 땅을 마구 먹어치우는 것부터 먼저 막아야 했던 것이다. 로클리 군은 병력을 둘로 갈라 더 큰 덩어리를 윌리엄에게 보냈는데, 이것이 실수였다. 남은 병력으로 람비드 군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윌리엄은 이 상황을 전부 계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윌리엄은 본대를 이끌고 남하하면서 하이아온의 영역에 별동대를 남겨 두었고, 이들은 로클리 군의 대다수가 움직이는 것을 본 후 행동을 개시했다. 람비드 군과 연동하여 양쪽 방향에서 로클리 군을 공격한 것이다. 물론 연합군은 로클리 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정면으로 윌리엄의 본대와 대치하고 있는데 승세를 탄 람비드 군이 뒤에서 몰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로클리 군은 혼비백산하여 퇴각해버리고 말았다. 이 치욕적인 패배로 인해 당시 패권국의 주인이었던 로클리가는 몰락하고 소샤이트 가문을 중심으로 국가가 재편성 된다.

로클리 군을 철저히 농락하면서 전략적 재능을 과시한 윌리엄은 풍운왕 할크루가 짓고 사용하지 않은 윈더민 성에 둥지를 틀고 바르테인을 건국한다. 수많은 영주를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윌리엄은 가장 많은 검은 강철을 차지하였는데, 이를 녹인 후 바르테인 가문의 상징인 검은 늑대상을 만들어 왕성의 중앙에 배치하였다.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최강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왕국의 전설은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3. 람비드


로클리가 자멸하는 동안 세리오는 새롭게 부상한 강자 윌리엄과 동맹이었다는 점을 무기 삼아 블랙번의 동쪽 땅을 차례차례 점령한다. 이 과정에서 세리오는 윌리엄에게 투항하는 줄로 알고 있던 영주들까지 속여 자신의 세력으로 규합했고, 이는 훗날 바르테인과의 사이가 틀어지는 계기가 된다.

신망을 잃기도 했지만 기회를 잘 포착한 덕분에 세리오 또한 자신의 왕국을 건국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 위상은 다섯 왕국 중에서 가장 불안한 상태다. 기세를 회복한 소샤이트가 바르테인을 뛰어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두 나라가 바로 람비드와 소샤이트다.

바르테인의 북동쪽에 위치한 람비드에는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드워프를 어울렸던 시지 산이 위치해 있다. 왕성인 검은 강철 성은 인간이 최초로 지은 성인 동시에 거인상이 최초로 서 있던 곳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통성 문제에서도 람비드는 소샤이트와 다투는 사이가 되었다.

윌리엄이 검은 강철을 녹여서 늑대상을 만들었단 소문을 들은 세리오는 자신도 왕국 내 검은 강철을 모아 새로운 상징물을 만들었다. 그 형태는 대장간에서 망치질할 때 쓰는 모루모양이었다. 드워프와의 인연이 시작된 기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윌리엄에게 받침대가 되어주겠다는 화해의 신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바르테인과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고, 도리어 소샤이트를 자극하는 결과만 가져왔다.


4. 알타메트


바르테인의 남서쪽에 위치한 알타메트는 다섯 국가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다. 에네버와 더불어 할크루 시대 이전에 건국되었다. 하지만 알타메트는 그 할크루 시대에 멸망할 수도 있었다.

풍운왕 할크루는 내전이 시작된 이후 최초로 강철거인의 정원을 통일할 수 있는 남자였다. 바르테인과 소샤이트, 람비드로 나뉘기 전까지 로클리가 차지하고 있던 드넓은 영토에는 원래 크고 작은 일곱 개의 왕국이 있었다. 이들을 모조리 무너뜨리고 하나로 묶은 인물이 바로 할크루였다.

그 시점에서 레니칸 대륙의 서부(속칭 강철거인의 정원)에 남은 국가는 남쪽에 있는 알타메트와 에네버 뿐이었다. 그리고 두 왕국이 힘을 합친다 해도 패기로 똘똘 뭉친 젊은 왕 할크루를 당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할크루가 강철거인의 후예들을 하나로 묶는 건 자명해 보였고 당시 사람들은 몇백년 만에 그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다는 생각에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그런데 놀랍게도 할크루는 두 나라를 공격하지 않고 동쪽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별안간 투슬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비웃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알타메트와 에네버는 할크루의 그 어리석음과 오만 덕분에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알타메트는 질 좋은 금속의 산지이다. 구리, 철, 은은 물론이고, 드워프들만 제조할 수 있는 검은 강철에 들어가는 재료도 이 곳에서만 생산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지맥에 마나가 많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쓰임새가 밝혀지지 않은 금속도 많아 연금술사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금속제련술은 람비드보다 오히려 뒤떨어진다고 한다.

알타메트 왕가는 검은 강철로 만들어진 검을 소유하고 있다. 한 때는 이 검이 최강의 무기였고 다른 국가의 기사들조차 이 검을 동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할크루 시대에 이보다 훨씬 더 견고라며 마법까지 써주는 정령검이라는 강력한 병기가 등장하게 된다.


5. 에네버


에네버는 풍요로운 왕국이다. 동쪽과 남쪽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고 국토의 요소요소에는 동맥과도 같은 강이 흐른다. 이 때문에 어업과 농업이 함께 발달했다. 혹자는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먹는 식량의 반 정도가 에네버에서 생산된다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에네버의 농민들이 다른 나라로 유입된 덕분에 전반적인 농업기술이 크게 향상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풍요의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 에네버는 다섯 국가 중에서 계층 간의 갈등이 가장 심한 나라이며, 사치를 일삼는 귀족들과 헐벗은 평민들의 생활상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곳이었다. 이 때문에 평민들의 출산율이 매우 낮아졌지만 욕심을 채우는데 여념이 없는 에네버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미래에 닥쳐올 위기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에네버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를 저지른다. 바로 최강국인 바르테인에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전면전은 아니었지만, 에네버의 주요 인사들이 여럿 관여한 공식적인 약탈이었다. 수많은 학자들이 왜 그들이 바르테인을 공격해야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이유는 허무한 것이었다.

에네버와 알타메트는 할크루의 공격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할크루시대는 허무할 정도로 짧게 마감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로클리가 그 거대한 세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지도상 남은 국가라고는 그 세 나라뿐이었으니 알타메트와 에네버는 전정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까닭에 두 나라는 북쪽을 경계하느라 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동안 세상을 바꿔버릴 만한 발명품이 둘이나 만들어졌다. 하나는 할크루를 따라 투슬 원정에 나선 마법사들이 만든 정령검이었다. 최강의 무기인 정령검은 단 몇 십 자루만이 만들어졌을 뿐인데, 남쪽의 두 나라는 그 중에 단 한 자루도 손에 넣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발명품은 피에르토 자크라는 마법사가 발견한 마석이라는 돌이었다. 보라색과 회색이 뒤섞인 이 돌은 마법사가 한 번 사용한 마법을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엄청난 효능을 지니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마석 중에 어떤 것은 평범한 사람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이었다. 이 마석 역시 로클리 시대에 발견되었으며, 일부 귀족들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퍼졌기에 에네버와 알타메트에서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었다.

에네버가 겁도 없이 바르테인을 공격한 건 바로 귀족들의 탐욕 때문이었다. 바르테인의 소크초 항과 교역하는 배를 운영하던 에네버의 귀족들이 정령검과 마석에 대해 듣게 된 것이다. 그들은 어리석고 오만했다. 단지 그것들을 손에 넣을 생각에만 사로잡혔을 뿐 정치적 이해관계조차 고려하지 않았다.

에네버의 귀족들은 군대까지 동원하여 가까운 바르테인의 영지를 들쑤셨고 정령검과 마석을 찾아다녔다. 이에 노한 웰링턴이 반격에 나섰고, 양국의 전쟁은 알트론 왕이 즉위한 후까지 이어졌다.

에네버 입장에서 할크루 시대 이후 또 한 번 크나큰 행운이었던 것이, 적 지휘관이 바르테인의 폭풍 웰링턴에서 우유부단한 알트론으로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결단력이 부족한 알트론은 전투에서 실리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고 이것이 누적되자 수적으로 열세인 에네버가 대등하게 버티는데 성공하여 결국 정전협정을 맺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에네버는 검은 강철로 금고를 만들었다. 그 귀한 검은 강철로 금고를 만든 까닭은 그 안에 검은 강철보다 더 값나가는 물건을 보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에네버 왕조는 그 금고 안에 채워 넣을 것을 찾지 못했다.


6. 기타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레니칸 대륙 서부에 있던 부족 공동체 전부를 굴복시킨 것은 아니다. 그들과 싸운 부족들이 차례차례 무너지는 동안 저항을 포기하고 살아남은 부족들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부족이 붉은 바위족이다. 다른 부족들이 강철 거인의 후예들과의 싸움을 무조건적으로 피해서 살아남은 것과 달리 붉은 바위족은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협상하며 강철거인의 후예들과 공존해왔다. 붉은 바위족은 강철거인의 정원의 동쪽, 레니칸 대륙을 기준으로 보면 중앙에 위치한 황야에 살고 있는데 투슬인들과도 친하게 지낸다.

붉은 바위족과 반대로 절대로 폭력을 선택하지 않는 부족도 있었다. 이들은 현재의 바르테인 동부에 위치한 숲 부근에 살고 있었으며, 살생을 저지르지 않는 아름다운 종족 엘프를 동경했다.

강철거인의 후예들이 삶의 터전을 짓밟았을 때 그들은 소중히 여기던 것들을 모조리 포기하고 미련 없이 숲으로 떠났다. 가끔 보았던 엘프들이 그들을 도와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엘프들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적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들은 이것이 엘프들 덕분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아무도 찾지 않을 정도로 깊숙한 숲 속에 마을을 세운 뒤 훗날 ‘패러릴라’라는 이름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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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아.... 이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세계관의 배경이 되는 설정.... 준비운동 삼아 가볍게 쓰고

오늘 분량을 써야겠다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긴지;;

진도는 나가지도 못하고 부록만 썼네요 ㅠ


왕녀의 외출에 나오는 벨포트는 엄청난 명문가라 소개됩니다.

그런데 그 성인 ‘스미스’는 현실에서 매우 흔한 성이죠.

아마 ‘스미스’라는 이름의 어원이 대장장이라는 걸 아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금속 제련술과 무기의 발달은 현실 세계의 문명에서도 굉장히 중요했습니다만

제가 설정한 세계관에서는 한층 더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를 반영하여 스미스라는 흔한 성을 대단한 명문가로 설정해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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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6

  • 작성자
    카리황제
    작성일
    15.05.21 08:14
    No. 1

    윈더민 성에서 서쪽과 북쪽만 공개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군요.
    읽다보니 새로운 깨달음이.....
    루시엘에서 소샤이트와 람비드가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고 나오죠.
    에네버에서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고 나오고요.
    하이아온에 대해서도 자세히 나오고...
    전부 다 연동이 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5.21 21:02
    No. 2

    맞습니다. 윈더민은 웨이진에 맞서기 위해 지어진 성이기 때문에
    북서쪽의 침입에 대응하기 용이하고, 이 때문에 작위의회 구성원들에게 허용된 쪽도
    북쪽과 서쪽입니다 ^^
    루시엘까지 읽어주셨을 줄은 몰랐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二月
    작성일
    15.05.21 10:06
    No. 3

    그동안 국가라고는 바르테인만 자세히 나왔는데 다른 국가도 자세히 나오는군요+_+ 비록 쉬어가는 이야기라지만 앞으로의 긴 호흡을 위해 잘 챙겨가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5.21 21:05
    No. 4

    왕녀의 외출은 1인칭 시점이라
    쓰다보면 작가인 저의 관점도 굉장히 미시적으로 수렴됩니다.
    갑자기 세계관 설정을 연재 중간에 끼워 넣은 건,
    모든 시대와 사건들을 종합적으로 살필 수 있는
    거시적인 시야를 회복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네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5.09.11 06:37
    No. 5

    휘렌델 보러 왔다가 좋은 공부 하고 갑니다. 현실의 역사서도 이렇게 재밌게 쓰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9.11 07:37
    No. 6

    으윽, 공부라뇨 ^^;
    알아두면 더 좋고
    몰라도 상관없는 역사죠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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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8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2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1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0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0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3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1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33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4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4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9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2 8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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