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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라 돌아라 강강수월래

왕녀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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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어스름달
작품등록일 :
2014.12.01 23:43
최근연재일 :
2017.11.24 03:18
연재수 :
417 회
조회수 :
632,329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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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80,019

작성
15.06.03 07:00
조회
2,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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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선발전 등록

DUMMY

방심했다. 방 안에 메담과 둘 뿐이라 평소처럼 편하게 대하고 있었는데.... 지금 나는 하녀로 보이고 있다. 하녀가 기사에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순수 귀족 혈통인 람켄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해답은 이미 나온 것 같다. 발리언트는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우유를 신경질적으로 벌컥벌컥 마셨다. 그래도 도저히 화를 참지 못하겠는지 그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지금 기사한테 성질을 부린 거야? 감히 하녀 주제에.... 메담이 그렇게 만만해 보여?”

명백한 적의를 한 몸에 받게 된 나는 몹시 당황했다. 동시에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은 아까 메담에게 물을 주는 맥스를 꾸짖었었다. 나는 그래서 발리언트가 출신 성분 때문에 메담을 업신여기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내가 메담을 귀족으로 대우해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아니야, 람켄. 방금 그 소리는 내가 낸 거야.”

.....하지 마. 제발.

“난 원래 화가 날 때 목소리가 이렇게 돼.”

어떻게든 날 감싸주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하지 말라고. 메담은 아까 소리 지를 때의 내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듣기 싫어. 흉하다고! 너무 어이없는 수작에 내가 더 부끄러워진다. 대체 그런 헛소리가 누구한테 통하....


“정말이야? 메담 너였어?”

....어린애한테는 통하는구나. 발리언트는 나를 향해 쏘아내던 성난 눈길을 거두고, 신기한 표정으로 메담을 보았다. 메담이 은근슬쩍 내게 눈길을 보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나는 녀석에게 고맙다는 신호도, 잘 넘어가서 다행이라는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일은 잘 풀렸지만 녀석의 민망하고 부끄러운 여자 목소리 흉내를 조금이라도 긍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 귀가 아플 정도의 큰 소리와 함께 덩치 큰 남자가 발리언트의 뒤를 따라 들어왔다.

“정말입니다, 도련님! 뒤에서 제가 봤습니다! 소리를 지른 사람은 틀림없이 메담 경이었습니다!”

굳이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그냥 소리의 규모만 느껴도 알 수 있다. 맥스였다. 나를 편들어 주는 건 고맙지만, 메담이 소리 지르는 걸 진짜로 봤을 리가 없잖아? 어떻게 저렇게 호언장담하는 걸까?

“자고로 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성격도 얌전하고 참한 법입니다. 그러니 소리 지를 리가 없지 않습니까?”

뭐지? 이 얼토당토않은 인과관계는? 이 아저씨 진심으로 저런 엉터리 논리를 신봉하고 있고, 그 맹목적인 믿음 때문에 있지도 않은 일을 자신이 직접 보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조금 무서워 지려한다.


“그건 그렇고 생각해봤어, 메담?”

발리언트가 메담을 똑바로 노려보며 물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그러고 보니 아까 맥스가 메담에게 물을 주고, 이를 발리언트가 막을 때도 대강 이런 분위기였다.

발리언트와 맥스가 지금 이 방에 들어온 건 그 때 나눴던 대화의 대답을 듣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메담과 발리언트 사이에는 대체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 뭐에 대해 생각해봤냐고 묻는 걸까? 나는 두 사람만큼이나 궁금한 얼굴로 메담의 대답을 기다렸다.

“역시 안 되겠어.”

메담은 무겁게 고개를 흔들었다. 발리언트와 맥스는 대답을 듣는 즉시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어깨를 떨구었다. 나는 당최 무슨 일인지 모르니 그냥 가만히 있었다.

“네 말대로 이번이 무보직 기사신세를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솔직히 여왕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수호기사는 나 같은 사람이 되면 안 되는 자리잖아?”

얘기를 들으니 대강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다. 발리언트는 메담에게 수호기사 선발전에 참가해보라고 권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메담은 여왕에게 충성할 마음이 없어 이를 거부한 것이다.

메담이 또 내 쪽으로 눈길을 주며 씨익 웃는다. 그제서야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메담 스피어.... 이 녀석은 의리를 무척 중시하는 성격이다. 먹을 걸 받아가는 거지 친구들의 정체를 나한테도 숨길 정도로 말이다. 즉 이 녀석이 휘렌델 바르테인을 싫어하는 이유는 바로 메리 때문이었다!

저번에 메리의 내력을 지어낼 때, 나는 내가 여왕 때문에 억지로 윈더민 왕성에 끌려왔다고 말했다. 그 때 얼굴을 찌푸리던 메담의 표정이 기억난다. 충성 서약을 거부했지만 당시 메담은 휘렌델을 싫어하는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내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맙소사....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경악한 얼굴로 메담을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가 지어낸 이야기 때문에 이 녀석이 인생에 둘도 없을 기회를 발로 차 버리게 생겼다!


“선발전에 안 나오면 다른 기사들한테 다 말한다? 너 화나면 여자 같은 소리 낸다고?”

발리언트는 짐짓 무서운 표정으로 협박했다. 그러나 있지도 않은 버릇으로 협박한들 메담에게 통할 리가 없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자 맥스가 맞장구치며 발리언트를 거들었다.

“그런 소문이 나면 몹시 곤혹스럽습니다! 저희도 지금 해명하느라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그러니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십시오!”

메담은 맥스의 말에는 흥미가 동한 얼굴이었다.

“해명하느라 고생한다고? 무슨 해명?”

왠지 이 녀석들도 어떤 소문 때문에 고생하는 모양이다. 무슨 소문일까? 잠자코 있던 발리언트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지기 시작한다. 대충 그만 하라고 신호를 주는 것 같은데 맥스는 이를 못 알아보고 말을 계속했다.

“메담 경은 그 괴상한 소문 못 들으셨습니까? 저와 도련님이 동성연애자라는 소문 말입니다! 아우! 진짜 화가 납니다! 대체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다니는지!”

맥스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콧김을 뿜으며 말했다. 평상시에도 큰 목소리가 더욱 크게 울린다. 그나저나 발리언트가 난색을 표한 것도 이제 충분히 이해가 간다. 저 정도면 꽤나 악질적인 소문이네.

“아.... 너희 둘이 같은 방에서 잔다는 얘기는 지나다니면서 얼핏 들은 것 같아.”

별 생각 없이 받은 메담의 말이었는데 발리언트와 맥스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며 굳어버렸다. 뭔가 이상한 예감에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사실인가 봐요? 두 분이 같이 주무시나요? 람켄 경의 방에서?”

귀족이 자신의 방에서 종자를 데리고 잔다는 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이게 사실이면 소문 때문에 딱히 억울해 할 입장도 아닌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맥스는 억울한 얼굴로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건 도련님이 밤에 혼자 자는 게 무섭다고 해서 그러는 겁니다!”

순간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발리언트 람켄.... 아무리 어른인 척해도 결국 애는 애구나. 갑자기 발리언트가 너무 귀여워 보인다. 잠깐만.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아무래도 자존심 강한 발리언트는 그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으악!”

발리언트에게 호되게 다리를 걷어차인 맥스가 비명을 지른다. 그러게 조심 하지. 아까부터 눈치 주고 있었는데.

“그런 소리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바보야!”

“어윽! 잘못했습니다, 도련님! 용서해 주세요!”


발리언트가 맥스를 마구 몰아세우는 사이 나는 재빨리 메담에게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혹시 여왕님을 별로 안 좋아하는 거.... 내가 해준 이야기 때문이야?”

“응 맞아. 메리 네 말을 듣고 여왕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

메담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나를 위해 나를 싫어하게 된 메담 때문에 기뻐해야 할지 화내야 할지 모를 복잡한 심정이 되었다.

“나 때문에 그러지마. 여왕님이 요즘에는 뭔가 달라졌어. 알고 보니 꽤 좋은 면도 있는 것 같아”

이 말은 거짓 없는 진심이다. 메담과 거지소년들을 만나고, 좋은 왕은 어떤 왕인가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은 것을 기점으로 내 마음가짐은 확연히 달라졌다.

“지나가다 들은 얘긴데, 여왕이 성 안의 남아서 버리는 음식을 걸인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라고 했대.”

신중하게 내 말을 듣고 있던 메담이 크게 놀라서 되물었다.

“정말이야?”

“그래. 정말이야.”

아무래도 그 말에 메담은 마음이 크게 동한 것 같았다. 생각을 해본 후에 아직도 맥스를 혼내고 있는 발리언트에게 말했다.

“그러면 나도 출전할게. 선발전에.”

발리언트는 놀란 얼굴로 메담을 돌아보았다. 자기의 반만 한 발리언트에게 쩔쩔매던 맥스가 순식간에 환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메담 경!”

뒤이어 그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크루거와 앤디가 공동으로 인장을 찍은, 참가자 명단이었다. 바로 등록할 수 있게 일부러 여기까지 가져온 모양이다. 메담은 맥스에게 받은 펜으로 양피지 위에 자신의 이름을 써 올렸다.

“그러면 잠시 후에 경기장에서 보자.”

발리언트와 맥스는 신난 얼굴로 방에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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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람켄 : 난 개그 캐릭터가 아니라고!

맥스 : 이미 늦었슴돠! 저랑 세트로 묶일 때부터 정해진 운명임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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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41 휘냥
    작성일
    15.08.24 21:38
    No. 1

    주인공 신분을 아무도 눈치 못챈다는게 좀 그렇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8.25 21:22
    No. 2

    스토리를 짜면서 가장 불안했던 부분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왕일 때는 짙은 화장을 하는 사실을 계속 강조해왔죠....
    스타워즈 에피소드1의 나탈리 포트만을 생각하시면
    납득이 갈 수 있지 않나...생각해 봅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일
    15.09.11 06:53
    No. 3

    나탈리 포트만 하니까 이해가 가네요. 초등학생 때 그 화장한 얼굴 보고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충격 받았었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4 어스름달
    작성일
    15.09.11 07:39
    No. 4

    저는 나탈리 포트만은 아직도 레옹 때의 그 이미지가 남아 있어요.
    왠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그런 배우입니다. 제겐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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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녀의 외출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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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메담의 직감 +4 15.06.05 2,239 64 11쪽
» 선발전 등록 +4 15.06.03 2,193 58 9쪽
55 변신검 +4 15.06.02 2,305 56 12쪽
54 유사이래 최초 +4 15.06.01 2,412 50 13쪽
53 수호기사 선발 +10 15.05.30 2,352 61 12쪽
52 폭군의 진실 +6 15.05.28 2,337 63 7쪽
51 휘렌델의 결론 +4 15.05.27 2,244 61 13쪽
50 귀족들의 자부심 +14 15.05.26 2,380 69 8쪽
49 성을 떠난 마법사 +6 15.05.25 2,526 67 11쪽
48 따귀 백만 대 +8 15.05.22 2,361 70 10쪽
47 [쉬어가는 이야기] 강철거인의 후예 +6 15.05.21 2,725 39 19쪽
46 꿈을 살고있는 자 +4 15.05.20 2,491 67 12쪽
45 메담의 공범 +8 15.05.19 2,201 60 16쪽
44 그에게 없는 것 +2 15.05.17 2,378 64 10쪽
43 어린 기사 +6 15.05.15 2,500 59 11쪽
42 [쉬어가는 이야기] 리더쉽에 관하여 +4 15.05.07 2,648 41 10쪽
41 따뜻한 소녀 +6 15.05.02 2,662 71 12쪽
40 고통 +6 15.05.01 2,680 77 9쪽
39 공명 +4 15.04.29 2,690 83 11쪽
38 분노하는 자들 +4 15.04.28 2,510 69 12쪽
37 여왕의 외출 +6 15.04.25 2,950 77 10쪽
36 바이우스의 노트 +6 15.04.24 2,893 81 11쪽
35 명군의 길 +10 15.04.23 2,941 93 8쪽
34 친구 +6 15.04.21 2,981 85 9쪽
33 스텝 사이드 킥 +6 15.04.20 2,779 86 11쪽
32 위험한 도시 +14 15.04.18 3,211 92 14쪽
31 최악의 하루 +8 15.04.17 3,083 110 12쪽
30 실연의 분노 +2 15.04.15 2,854 78 9쪽
29 기사도 +2 15.04.14 2,789 80 8쪽
28 우연 +2 15.04.13 3,041 8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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