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화 - 김성준 계약하다 (1)
스멜 오브 데블을 연재합니다. 현대 판타지물입니다. 재미있게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8화 - 김성준 계약하다 (1)
성준은 수면마취 상태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게 참으로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늙은이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는 게 자신으로서는 쌩뚱맞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나이에 걸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아서 생기는 거부감이 대단히 하찮게 생각되었다. 말하자면 인생에서 나이와 조건 같은 것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윽고 그의 황홀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성준의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의 정확하고 촉촉한 발음에서 성준은 우리말의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지며 내는 발성음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계약을 할 시간이다. 반갑구나!”
“예. 저는 좀 두렵습니다.”
“두려울 것 없도다! 너에게는 축복이다. 흐흐흐.”
“감사합니다.”
“우리 둘의 만남은 에피파니라고 한다. 일단 계약조건의 첫문이 열려서 나는 참으로 반가웠느니라.”
“당신같이 초능력을 지닌 분이 왜 저와 계약을 하려는 거죠? 그냥 명령하고 그냥 다 가져가면 되는 게 아닌가요?”
“바보같은 소리! 지난 이백 년 동안 내가 그렇게 안해보았는 줄 아는가?”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성준은 의아했고 그의 호통에 약간 긴장감이 돌았으나 수면 마취 때문인지 두려움이 생기지는 않고 오히려 점점 기분이 좋아졌다. 이상하게도 악마와 대화하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가는 자신이 낯설었다.
“그럼 계약의 조건이 무엇이죠?”
“계약조건은 모두 네 가지이다. 그것을 모두 만족해야만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니라. 그리고 지난 육 개월 동안 나는 너와 그 계약의 성립을 위해 여러 가지 시험을 해왔지. 흐흐흐흐"
악마라는 존재는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성준은 자신 가까이에 투명하고 물렁한 어떤 기운덩어리를 느꼈다. 그는 그를 만져보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그런데도 성준은 전혀 불안하다거나 답답하지가 않았다. 망망대해에서 요트를 타고 선탠을 하며 칵테일을 마시는 안락하고 느긋한 기분에 몸과 마음은 최대한으로 이완되어 있었다
“계약을 위해서는 너의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했다.”
“네 가지나요?”
“첫째로 니가 나를 알아보아야했다. 너는 귀엽게도 나의 에피파니를 인지하였도다! 흐흐흐흐흐. 둘째로 신뢰도와 충성도가 높아야한다. 너는 부산의 헬리포트에서 나의 부름에 응하여 뛰어내렸도다. 그거 아주 좋았다! 셋째로, 상호간이 교감이다. 너와 나의 세포가 서로의 몸에 착상되어 살아남아야하느니라. 나는 언제나 그 누구에게나 문제가 없지만, 나의 장난감들은 그게 쉽사리 되지가 않느니라. 그런데 너의 체세포가 아직도 나에게 살아있다. 만일 지금이라도 니가 거부하면 너의 세포가 나의 몸속에서 소멸되고 계약은 자동적으로 파기되느니라. 흐흐흐”
성준은 그가 움직일 때 그의 몸이 부들부들하게 떨린다는 것을 공기의 진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나머지 하나는요?”
“마지막으로 너는 나에게 에너지를 주어야한다. 사람들의 절규와 분노와 세상에 대한 원망에서 비롯된 악의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어야한다. 너는 그동안 하남과 제천과 분당에서 사고와 재난을 통해 그것을 입증해주었다. 한 마디로 합격이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야단을 쳤다.
“야! 인마! 감사하다고 인사를 해야지!”
“예, 물론이지요. 하지만 악마님께서도 저에게 감사하다고 하셔야하는 거 아니에요?”
“뭐?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이번에는 참 물건을 찾아냈도다! 으하하하하하!”
악마의 엄청난 박장대소에 성준은 고막이 터질 듯이 귀가 아플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놀라기만 할뿐 견딜 만했고 자신도 웃음이 나왔다.
“헤헤헤헤헤”
성준의 제의로 둘은 서로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악마는 계약을 선언했다.
“자! 이제 계약의 시간이다.”
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상태로 어떤 기운을 마치 손처럼 뻗어서 성준의 몸속으로, 아니 정확히 말해서 머릿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동안 자신의 정수리에 있었단 자신의 세포를 성준 뇌의 다른 부분으로 옮겼고 성준의 신경 세포를 가져가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그는 마치 계약 조건을 읽어내려가듯 대화투가 아닌 낭독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계약이 이루어졌도다!
너의 즐거움은 커지고 두려움은 없어지느니라!
너의 즐거움은 나에게 수백 배로 증폭되어 전달될 것이다!
너는 의식 중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나 나와 만날 때면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너는 나에게 에너지를 주면 그 해당 값어치만큼 돈을 벌게 될 것이다!”
“아아! 우 으으으! 아이고! 잘 잤다!”
성준은 엄청난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다. 프로포폴의 효과는 소문대로 아주 좋았다. 그는 숙면을 한 느낌이었다. 아랫도리가 뻥 뚫린 환자복을 입고 부스스한 자신의 모습을 보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히히히히히”
바보처럼 웃고나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병원 로비로 나오자 재엽을 데리고 갔던 간호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저어, 환자분! 조금 더 기다리셔야겠어요.”
“왜요”
“친구분이 대장 내시경시술 받다가 복통을 호소하셔서 검사를 거부했거든요.”
“그래서요?”
“그래서 조금 전 원장님이 직접 검사실에 들어갔어요. 한 십오분 정도 걸릴 거에요.”
“예. 말았어요.”
성준은 무심코 병원 책장의 서가에 성경과 불경책이 비치되어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나빠졌다. 그는 자리를 옮겨 맨뒤의 벤치로 갔다. 철퍼덕하고 앉다가 엉덩이 밑에 미끈하며 조금 미끄러졌다. 하필 그 자리에 무언가 신문지 같은 것이 깔려있었다.
역시 신문지였다. 성준이 주워든 면에 시가 적혀있었다. 시의 제목이 적혀있어야 할 위치에 이런 말이 성준의 눈에 들어왔다.
<세존께서도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기 전 악마의 유혹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혼자서 쓸쓸한 곳에 들어와
선정에 들어 고요히 생각하는구나.
나라와 재물 이미 버리고
여기서 다시 무엇을 구하는가.
만일 마을의 이익을 구한다면
어찌하여 사람을 친하지 않는가.
이미 사람을 친하지 않거니
마침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그 때에 세존께서는, 이것은 악마 빠삐만의 교란이라고 생각하시고,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이미 큰 재물의 이익을 얻어
마음이 만족하고 편하고 고요하다.
모든 악마를 무찔러 항복 받고
어떠한 욕망에도 집착하지 않노라.
혼자 고요히 생각하면서
선정의 묘한 기쁨 먹고 있거니
그러므로 구태여 돌아다니며
사람들과 가까이 친하여 않노라.
시를 읽고 난 성준은 가슴이 철렁했다. 그리고 곰곰 생각했다. ‘내가 왜 놀라나? 불교신자도 아닌데? 나는 무신론자가 아닌가! 그리고 잠시후 그는 실제로 아무런 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사귀면 오히려 그들을 더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재물을 버리지 말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더 좋을텐데‘ 하면서 웃음이 나왔다. 왜 그런지 몰라도 그는 자신만만해졌고 그렇게 되어가는 그의 마음과 태도가 그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이 건강검진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오자 이미 점심 시간이 지났고 회사는 마치 유령도시처럼 썰렁했다. 인사부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땅히 갈 곳도 또 누구에게 어떤 지시를 받아야하는지 몰라 서성대는 성준을 재엽이 잡아 끌었다.
“따라와.”
“어디 가는 거야?”
“밥이나 먹자구.”
그는 성준을 데리고 십층의 디자인실로 향했다. 샘플실, 디자인실 그리고 자재부가 배치되어 있는 십층은 구층보다는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창고나 시장 같은 분위기였다. 점심시간인데도 일하는 사람들도 아직 많았고 점심을 시켜먹는 축들도 꽤 됐다.
디자인실에서는 중국집 냄새가 확 풍겨나왔다. 그와 동시에 배달원이 방으로 빠져나갔다. 디자이너들이 중국요리의 랩을 벗기는 동안 재엽이 성준을 손을 잡고 디자인실로 들어왔다.
“우아! 짜장면 그리고 탕수육 냄새!”
이재엽이 환호성을 질렀고 수퍼모델처럼 늘씬한 아까씨들 네명이 필사적으로 그를 맊아섰다,
“야! 저리 안가?”
“뭐! 한입만 먹구 갈께!”
네 여자와 몸싸움을 하는 양이 이재엽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아 보였다. 아마 그는 자주 디자인실에서 빈대를 붙어 얻어먹은 모양이었다. 일 대 사의 몸부림이 계속되자 누군가 테이블을 탁하고 쳤다. 큰 책을 탁자 위로 떨어트린 모양이었다.
“조용!”
창가 쪽 테이블에서 긴 머리를 휘날리며 세련된 용모의 여자가 담배를 입에 문채 다가왔다. 은빛 원피스가 날씬한 그녀를 살아있는 갈치나 실버메탈 로봇처럼 보이게 하기도 했다. 그녀는 익숙하게 재엽의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는 성준 쪽으로 턱짓을 하며 말했다.
“누구?”
“여기는 실장님 이번에 저와 함께 입사한 김성준입니다. 야! 인사해! 디자인 실장님이셔!”
“예! 처음 뵙겠습니다. 신입사원 김성준입니다.”
“반가워요. 이영아에요. 근데 두 사람 여기서 뭐하는 거에요?”
“아! 우리 신검받고 왔는데.....혹시 여기 먹을 게 있나해서요.....”
“신검? 너 군대 가니? 신입사원 검진받고 왔어?”
“예!”
“야! 이재엽! 너 똥강아지처럼 그렇게 먹을 거나 찾아다니니까 모델도 짤린 거 아냐? 여기가 식당이야?”
“아이! 영아 언니! 왜 그러셔?”
“야? 니가 게이야? 그 말투 안 고쳐? 이게 어디서 엉겨!”
“에이! 그래도 한입만!”
“참 못 말린다! 너 이제 전속 모델 아니다! 여기 직원이야!”
“예! 실장님 아셨구나? 나 뽑힌 거?”
“그러니까 이제 말 안 들으면 막 팰 거야!”
“알았어요......”
이영아는 좌우를 한번 둘러보고는 마치 군대 지휘관처럼 말했다.
“어여들 먹자! 식사 개시!”
“예!”
디자인 실장의 한 마디에 나머지 네 사람의 디자이너들은 일사분란하게 착석하여 식사를 시작했다. 이영아의 지시에 디자이너들은 짜장과 양장피 그리고 탕수육을 칠등분으로 나누어 남자 두 사람에게도 급식을 했다. 성준은 어리둥절했지만 디자이너들이 군기가 세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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