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화 - SB상사 입사 (1)
스멜 오브 데블을 연재합니다. 현대 판타지물입니다. 재미있게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 5화 - SB상사 입사 (1)
하남시에서 잠실로 가는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운좋게 바로 앞 사람이 내려 자리에 앉게된 성준은 버스 창가에 기대어 무심코 한강변을 보는데 구름 하나가 이상하게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구름을 따라 창문 위쪽으로 목을 길게 빼고 바라보면 버스 천정에 가려졌다가 다시금 나타나는 게 마치 구름이 자유활공을 하는 것 같았다.
“요새는 UFO가 저렇게 생기기도 하나?”
“푸흡! 콜록!”
성준이 무심코 뱉은 말에 옆의 아가씨가 억지로 웃음을 참다가 기침을 했다. 하지만 그는 그 구름 올려다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요상한 구름을 바라보려면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따라잡아야만했다. 그런데 구름이 있는 높이의 상공에 강한 바람이 부는지 아까 그 비행선 모양의 구름이 닥스훈트 강아지처럼 변해버렸다. 그는 개모양의 구름을 보니 문득 향수가 떠올랐다.
“아! 개향수!”
그는 박민철 교수에게 선물한 애견용 향수가 생각난 것이었다, 성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성정수에게 전화를 했다. 정수가 박교수의 애제자였기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정수야, 나 성준이.”
“교수님 잘 만나 뵙고 왔냐?”
“나 사고 쳤다!”
“뭐? 뭔 사고?”
“니가 알려준 향수집에 가서. 템테이션을 사가지고 갔는데 말야.....”
“야, 병신아! 내가 템페스트 사라가고 했잖아! 템테이션이라니? 그거 개 샴푸나, 개방향제 아냐?”
“그러니까! 내가 미쳤지!”
“널 어쩌냐?”
“나중에 박교수님 만나뵈면, 정수야 니가 말 좀 잘해주라!”
“내가 뭘 어떻게?”
“니가 그래도 박민철 교수하고 친하잖아! 교수님하구 자주 당구도 치고 맥주도 마시고 그랬잖아.”
“그거 몇전 일이구...... 아! 몰라몰라! 지금 바빠.”
“아! 새끼, 까칠하긴. 좌우간 시간나면 내 진심을 알려드려! 실수라고 말이야..”
“알았다. 검사님이 불러서 가봐야 해. 아! 열나게 불러조지네! 씨!”
“그럼 부탁한다.”
“알았다.”
사흘 후 성준은 종로 이가의 SB상사 사장 비서실에 앉아 있었다. 관운빌딩 구층과 십층 전체를 쓰고 있는 사무실은 지난번 합격이 취소되었던 용진실업보다 작은 회사가 아니었다. 수출팀이 다섯팀이나 있었고 직원도 백명이 넘어보였다. 사장비서는 서양 사람 같기도 했고 일본 사람 같기도했다. 희디흰 피부에 오똑한 콧날이 서양 사람을 방불했지만 언젠가 숨죽여 본 일본 AV 혼혈 여배우 같이 생기기도 했다.
그녀의 비음은 무척 쎅씨했고 키도 웬만한 남자만큼 컸다. 사장의 부재를 말하면서 그녀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가 두눈을 꾹 감았다. 그리고는 한쪽 눈을 살짝 떴다.
‘어? 윙크‘ 성준은 무척 당황했다. 그런데 그녀가 한껏 웃으며 말했다.
“김성준씨 맞으시죠? 사장님이 조금 후에 오실 거에요. 바이어 미팅 후에 브런치 드시러 가셨거든요. 열한시까지는 오십니다.”
“예.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일단은 커피 한잔 드시겠어요?”
“네 고맙습니다.”
“그리고 이단은 쵸코칩 쿠키도 있어요. 그리고 삼단은 캔디도 있네요.”
성준은 그녀가 그렇게 귀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그는 무심코 농담을 던졌다.
“그거 몇단까지 있는 거에요?”
“몇단? 오늘은 거기까지! 삼단이요! 긴장하지 마세요. 사장님 면접 재미있을 거에요! 후후”
그녀 덕분에 성준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까지 오십 번 넘게 면접을 보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 상태로 면접을 기다린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속으로 바보처럼 웃었다. ‘흐흐흐흐’
잠시후 부리나케 중년 남자가 비서실로 뛰어들어왔다. 누가 봐도 그가 사장임을 알 수 있었다. 비서가 귀여운 표정으로 인사하며 성준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후 키가 크고 핸섬한 젊은 남자가 역시 뛰다시피 비서실로 들어왔다. 뒤따라 들어온 남자를 잠시 비켜서게 하고는 사장이 성준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쳤다.
“오늘 면접 보러왔지요?”
“예!”
“좋아!”
사장은 뒤에 그를 뒤따라 들어온 사람에게 이상하리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자네 말야! 좋아! 내일부터 출근해! 서류전형 통과했고, 면접도 합격이야!”
“감사합니다.”
“그래. 내일 봐!”
사장은 그에게 봉투를 하나 건네고 나서 성준을 힐끗 보더니 사장실로 들어오라는 턱짓을 했다. 순간 성준은 마치 주인이 애완견을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이내 개향수가 떠오르면서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에이! 앞에 저 사람이 합격이면 나는 꽝이겠구나!’ 이런 생각으로 골몰할 때 사장이 질문을 했다.
“명문대 출신이야?”
“예!”
“명문대 어디? 서울대?”
“아닙니다. 그 명문대가 아니고 이름만 명문대입니다. 우리대학은 한자가 다릅니다. 이름 명(名)자가 아니고 밝을 명인데요.”
“학교가 서울에 있나?”
“지방대입니다.”
“지방 어디?”
“하남이요.”
“이 사람아! 경기도 하남시의 대학을 지방대라고 하면 어떻게 해?”
“예?”
“수도권대라고 해야지”
“수도권대라고하면 스카이를 포함해서 서울과 경기도의 모든 대학을 일컫는 거잖아! 안그래?”
“아, 예, 맞습니다.”
“미디어제작과를 나왔는데...... 왜 영문학과를 복수 전공했나?”
성준은 갑자기 편두통이 심해졌다. 사장이 자신을 나무라고 나자 자신감이 없어졌고 이윽고 한쪽 골이 지끈지끈해졌다. 그런데 별안간 정수리가 가려웠다. 머리꼭대기가 간질거리기도 하고 무척 시원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유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싱긋 웃어보였다. 성준은 사장과 눈이 마주치자 혀를 낼름거렸다. 사장이 그걸 보고는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하하하!”
“헤헤헤헤헤”
성준도 사장을 따라 웃었다. 눈을 마주한 두 사람은 흡사 동갑내기 친구들처럼 눈을 찡긋하며 함께 웃었다. 그는 그렇게 기분 좋은 상태에서 웃으며 말했다.
“헤헤헤. 그, 그건 제가 영국의 락밴드 딥퍼플을 좋아해서.....”
“딥퍼플? 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예.....”
“예라고?”
“예!”
그때 성준의 전화벨이 울렸다.
"~~ storm bringer's coming, storm bringer's coming, Time to die ~~~ "
“~~폭풍을 몰고 오는 자가 온다. 폭풍을 몰고 오는 자가 온다. 죽을 시간이다 ~~~”
성준은 당황해서 전화기를 아예 꺼버렸다.
"그 노래는 뭔가?"
"딥퍼플의 스톰......브링어.....인...데...요...."
"스톰-브링어? S.B?"
"예....."
“좋아! 아주 좋아! 하하하”
“짝짝짝”
사장은 쌩뚱맞게 박수를 쳤다.
“자신의 가치관을 밀어붙이는 사람을 나는 아주 좋아해!”
사장은 성준의 자기소개서를 대충 훓어보고는 빠르게 물었다.
“체력은 어떤가? 아픈 데 있어?”
“건강합니다.”
“오케이, 디자인, 의류, 섬류원단, 가죽, 폴리우레탄, 화공과, 유통업, 영어회화, 일본어 회화. 이중에서 해당되는 게 있나?”
“영어회화와 일본어 회화가 조금 됩니다.”
“한국어까지 삼개국어 하나?“
“예. 간단하게.....”
“좋아. 삼개국어로 자기의 꿈을 말해보게.”
“예! 저는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재력으로 이 나라를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돈없는 사람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이 회사를 들어오려고 합니다. 저를 뽑아주신다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나중에 제가 능력을 인정받고 중역이 되고 나면 전 재산을 모아 이 회사를 사서 사장이 되고 싶습니다.”
성준은 미리 준비한 대로 영어와 일본어로도 위의 말을 빠르게 말했다. 사장은 성준의 눈을 노려보듯이 응시했다. 그리고는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자기소개야?”
“예!”
“그건 내 회사를 빼앗겠다는 결심 고백 아냐?”
“그 결심을 한 저를 소개한 것입니다.”
“자네가 이 회사를 키워서 잡아먹겠다는 소리지?”
“네. 그렇습니다”
“하하하하하! 좋아! 우리회사는 비전공자 특례로 인문계 출신 학생 특별대우를 하기로 했네. 그거 어떻게 생각하나?”
“정말 잘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회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장님!”
"왜?"
"인문학이 사람의 기본이니까요. 또 회사에서는 사람이 기본이니까 두말이 필요없지요!"
사장은 다시 한번 더 성준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성준은 직감적으로 그의 노려보는 듯한 표정에서 자신이 불합격임을 예상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지 않고 의도하지 않는 미소가 입가에 계속 지어졌다. 사장은 담배를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그리고는 길게 담배연기를 뿜었다. 단 한 모금만 피우고 사장은 담뱃불을 껐다.
“내일 아침부터 출근하게!”
“예! 정말요? 알겠습니다!”
“비서에게 면접비 받아가게.”
“예!”
성준은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합격취소가 된 적도 있었고 또 박교수에게 개향수를 선물한 일이 잘못될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사장실에서 비서실로 나오자 그녀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김성준씨!”
사장 비서는 좀 전보다 더 예뻐 보였다. 그녀는 두손으로 공손하게 흰 봉투를 성준에게 건넸다. 성준이 아까는 못 보았는데 그녀는 가슴에 은색 금속으로 된 명찰을 달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비서 윤미지>라는 명찰도 퍽 이쁘게 보였다.
“면접을 잘 보셨봐요? 후후. 참! 내일 아침 굶고 오세요! 건강검진이 있어요. 그럼 내일 뵐께요?“
순간 성준은 머리가 빙글 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면접을 어떻게 보았지?’ 그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합격했다는 실감도 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뭐 이런 일이 다 있지?“
SB회사 복도를 걸어나오면서 그는 비맞은 중처럼 중얼거렸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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