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화 - 성정수와 이우현 (3)
스멜 오브 데블을 연재합니다. 현대 판타지물입니다. 재미있게 써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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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화 - 성정수와 이우현 (3)
“으아아!”
성준이 세게 밀치기는 했지만 덩치가 큰 우현이 소파 뒤로 밀리면서 그의 육중한 몸이 소파 위로 순간 올라섰다. 그러다가 그가 중심을 잃고는 소파와 그 뒤의 테이블이 덩달아 뒤로 넘어갔다. 그 때문에 우현은 무려 삼사 미터나 뒤로 밀려나 날아간 것처럼 카페 입구의 문짝이 부딪친 다음 쓰러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성준이 우현을 집어던진 것처럼 보였다.
“쨍그랑!”
“아이쿠! 으으....”
“아저씨! 술 그만 드시고 집에 가세요! 아유! 진상이야!”
우현이 문에 부딪치면서 문에 걸어두었던 방향제 통이 떨어져 깨졌고, 카페안은 라벤더의 강한 향이 확 퍼져버렸다. 우현은 그리 술을 많이 먹지는 않았지만 카페의 아가씨가 방향제를 주워 담으며, 우현에게 주사가 심하다며 혀를 찼다.
“ 쯔쯧! 주사는 말이죠. 알콜에 의해 뇌가 손상돼서 이러는 거에요. 약주 좀 줄이세요! 후후.”
성준과 정수가 질펀하게 널부러진 우현을 테이블로 끌고 왔다. 하지만 정학순은 쓰러진 그에게 알아듣지도 못할 잔소리를 해댔다.
“술주정이나 술먹구 난동을 자주 하는 사람은 알콜중독이야. 즉시 술을 끊고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야. 헤헤 나는 정신이 환자구 말이야. 아니 정신적 장애인이라고 할까?”
성준은 미안한 마음에 우현의 얼굴을 깜싸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현아! 괜찮아?”
“으응? 뭐! 내가 뭐?”
“기억 안나?”
“어? 내가 왜 여기 이러구 있냐?“
“너 뒤로 자빠졌잖아!”
“내가? 몰라! 아이구! 허리야! 몸이 여기저기 아프긴 하네? 야! 그런데 김성준! 너 진짜 오랜만이다! 흐흐”
곁에서 성정수가 이우현을 보고 한마디 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 같네?”
퇴근 후에 교보문고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마주친 정학순 시인 덕분에 성준은 그야말로 스펙타클한 밤을 보냈다. 정수가 우현을 택시 태워 보내고 학순은 정신나간 사람처럼 광화문쪽으로 혼자 걸어갔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고는 아무말이 없었다.
“한시다. 성준아 집에 가자.”
“그래.”
“그런데 말이야. 어제 박교수님이 전화하셨는데 너 잘 있냐고 물어보시던데?”
“그래서 이번주 금요일에 세영이하구 찾아뵐까해 월차 냈어.”
“그래? 그날 나도 학교에 갈 거야. 근데 세영이하구 같이? 왜?”
“아! 세영이 사촌언니가 우리학교 교수가 되셨대.”
“그래? 난 경찰행정학과 스터디후배들하고 풋살시합이 있어.”
“걔들이 왜 니 후배야? 인마! 미디어과 애들이 후배지!”
“복수전공했으니까 후배는 후배지!”
“알았어. 너두 같이 박교수님께 인사드리자.”
“그러지 뭐.”
성준은 총알택시를 타고 그야말로 총신에서 발사된 탄환처럼 초스피드의 스릴을 느끼며 송파의 형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고요했다. 금빛 시계는 한 시 반에 굳어 있다. 고장났을까? 절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고급스런 번득거림이 자못 위압적이다.
그때 형수가 방에서 나왔다.
“이제와요? 호호”
형수는 왜 웃을까? 그녀는 다시 의무적인 웃음을 웃는다. 어서 자라는 손사래를 치며 마치 어머니 같은 시늉을 한다. 그녀는 성준의 칫솔 하얀 치약을 길게 짜 건넸다. 처음이었다.
“어?”
“이 닦고 자야죠.”
“어, 엄마!”
성준은 자신도 모르게 엄마라는 말을 뇌까렸다
“뭐요? 후훗. 우리 도련님 취하셨네?”
성준은 오년 만에 우리 도련님이라는 다정한 뉘앙스의 말을 처음 들어보았다. 그리고는 그녀가 왜 하필 형과 결혼했을까 하고 생각했다. 불현듯 그녀에게 동정심이 생겼다
형수가 건네준 치약 바른 칫솔에서는 향기가 났다. 아카시아 향이었다. 그는 그 향기를 맡는 순간 형수의 행동이 모두 가식적이라는 걸 알았다. ‘겨우 백만 원에 이렇게 대우가 달라지나?’ 술에 취해 몽롱하거나 피곤해서 정신을 못차릴 때에도 성준은 이상하게도 어떤 향기를 맡으면 이성적으로 변하고 사태파악이 되어버리는 걸 요즘 부쩍 느끼고 있었다.
형수가 방으로 들어갈 때 손을 흔들며 억지로 웃어주는 모습에서도 가식적인 행동임을 분명하게 느껴졌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성준은 퍽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하루에도 몇번씩 바뀌는 자신의 감정기복이 리프레쉬한 향기나 환기 같은 걸로 조정된다면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긴 건 아닐까하는 추측을 막연하게 해보았다. 그리고 늘 그렇지만 형과 형수를 미워하다가 잠시 좋은 감정이 생겨도 이렇듯 다시 차가운 마음으로 바뀌게 되는 것도 이해못할 일이었다. ‘누군가 나를 조정하거나, 가지고 노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뒤척이다가 그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입사하고 처음으로 월차를 낸 성준은 정수의 타를 타고 모교로 가기로 했다. 오는 길에 세영을 태워 오기로 한 정수가 다소 늦었다. 이십분 늦게 도착한 정수의 차 앞자리에는 이우현이 타고 있었다.
“야! 성준아!”
“어? 우현이 니가 어떻게? 세영이는?”
“뒷자리에.”
“저 여기 있어요. 선배!”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내가 와서 티껍냐? 후후”
우현은 성준에게 윙크를 해보이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침에 내가 하남시 감일동의 화훼용 비닐하우스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조사하러 가자고 하니까 월차를 냈다는 거야. 너하구 세영이하구 모교에 간다나?”
“그래서?”
“그래서 내가 따라왔지! 내 애인도 지키고, 일도 하고 너와 못하다한 회포도 풀구 말이야!”
“뭐?”
성준은 그가 세영이를 애인이라고 농담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넉살 좋은 우현은 어제일을 잘 기억하지 못했지만 성준을 대하는 반가운 양은 아직 어린 고등학생 같은 분위기가 났다.
석촌호수의 백층이 넘는 롯데 타워부근이 교통정체가 되었다. 차가 서행을 하자 운전하던 정수가 돌연 외쳤다.
“돌발퀴즈! 저기 제이 롯데월드가 몇층일까요?”
“나! 세영이!”
“오케이! 말해!”
“백이십 층!”
“땡!”
“그럼?”
“백 이십삼 층”
“정수 선배는 그런 숫자에 강하더라?”
“히힛”
“그거라도 잘해야지 쟤가 뭐 잘하는 게 없거든!”
“맞아 맞아! 어? 성수사관 미안해요. 그냥 장난이에요.”
이현우가 성준의 농담에 맞장구를 치다가 성정수에게 급 사과를 했다.
표정 좀 어두워진 정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시도했다.
“자! 이차 퀴즈!”
“그런데 이 퀴즈 맞히면 상품이 뭐야? 점심이라도 쏘나?”
“오케이! 내가 쏜다!”
성준이 너스레를 떨자 정수가 말렸다. 자신도 모르게 점심을 산다고 말하고는 퀴즈를 냈다.
“이건 아무도 모를걸? 그렇다면 롯데타워의 높이는?”
그런데 뒷좌석에 세영이와 함께 앉아있던 이우현이 조용히 손을 올렸다. 정수는 룸미러로 뒤를 보았고 우현은 손가락 다섯 개를 펴서 세번 흔들면서 말했다.
“오백오십오미터! 딩동댕! 와! 정답입니다! 축하합니다!”
우현이 북치고 노래하고 혼자 다하자 세영과 성준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성정수가 조용해졌다. 그리고는 한강변을 치달리는 팔팔 도로에서 속도를 더 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하남시로 접어들 때 그가 별안간 외쳤다.
“축하합니다! 이 검사님! 점심은 하남시에서 가장 싼 걸로 사겠습니다!”
“뭐? 십분만에 반응을 보이다니. 하하하”
“호호호”
“이상한 친구야!”
세영의 사촌언니는 인문사회관 일층에 연구실을 배정받았다. 저널리즘 스쿨에 빈 연구실이 없어서 당분간 임시연구실을 쓰게 된 모양이었다. 공교롭게도 연구실은 박민철 교수와 매우 가까운 대각선으로 마주보는 위치였다.
세영은 문앞의 강의시간표를 보고 공강임을 확인하고는 노크를 했다. 그런데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연구실 문은 열려있었지만 세영의 언니는 자리를 잠시 비운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네 사람은 복도 건너편 박교수의 방으로 향했다. 어쩐 일인지 방문이 반쯤 열려있었다. 대학시절부터 정수가 늘 그래왔듯이 노크와 함께 문을 밀고 들어갔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어? 정수 왔나?”
“예, 저희들도 왔습니다.”
“어머 언니?”
“세영아....”
박민철 교수 방에 세영의 언니인 이승회교수가 와서 앉아 있었다.
“언니 박교수님 방에 어쩐 일로?”
“아니 박교수님이 나에게 향수를 하나 주시겠다고 고르라고 하셔서.....”
“그래요?”
박민철교수는 황급하게 일어서서는 자리를 권했다.
“자! 앉게들!”
박교수는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대학원생들에게 강의하는 라운드테이블로 방문객들을 앉혔다. 그는 하나하나 얼굴을 뜯어보다가 이우현을 보고는 잠시 멈칫했다.
“내가 아이큐가 백 사십인데, 자네는 기억에 없구만?”
“저는 여기 졸업생이 아니구, 성준이 친구인데, 교수님 뵈려고 따라왔습니다.”
“그래?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강남 대신 하남에 왔구만!”
“우하하하하하”
이우현은 별로 웃기지도 않는 박교수의 아재개그에 과도한 리액션을 했다.
“허허 그 친구 아무 마음에 드네. 자넨 어느 학교 나왔나?”
“예, 전 서울대 나왔습니다.”
“무슨 과?”
“경제학과 졸업했습니다. 교수님”
“그래? 내 직속 후배로구만!”
“그럼 교수님도? 아이고 선배님!”
“역시 처음부터 자네가 마음에 들더라고?”
“하하하하 반갑습니다.”
이현우는 박교수와 이승회 교수에게 명함을 건네고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주인공인 것처럼 행세했다. 성준과 세영에게는 박교수에게 어서 선물을 드리고 식사를 하러 가자고 채근했다.
박교수의 단골집인 천현동 마방집을 들어가서도 식사자리를 주재하듯 이우현이 사회를 볼 정도였다.
“자! 앉으시지요. 여기가 단골이신가요? 교수님? 아니 선배님!”
“그럼 여기 막집이야. 마방집은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지.”
“불고기 장작구이로 하시죠?”
“나는 그냥 꽁보리밥이면 되는데.....”
“물론 그것도 시키겠습니다.”
성준도 이 식당을 좋아했다. 불고기 장작 구이는 언제 먹어도 픙성한 반찬이 좋았다. 나물위주의 반찬과, 참숫구이 그리고 불고기 별도로 시킨 보쌈김치와 보리밥이 토속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그런 반찬을 불청객인 이우현이 가장 좋아했다.
식사를 마치고 티타임을 갖는 자리에서 박교수는 늘 그렇듯이 밥값 대신 충고을 해주었다.
“밥값 대신 좋은 얘기를 해주지. 특히 성준이 자네에게 내가 좋은 말을 하나해주지!”
“자네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지?”
“예. 교수님!”
“그런데 말이야 돈이란 놈은 말이야. 푼돈일 때는 모르지만 그게 점점 커지면 돈이 사람의 주인노릇을 하려고 들지.”
“예!”
“돈은 무자비한 주인이 돼서는 안되네! 어디까지나 자네에게 유익한 종이 되도록 하게나.”
“예....”
“돈의 노예가 되는 순간 자네는 돈을 잃고 자신도 잃어! 그러니 돈을 우습게 보는 게 좋아! 내 자네가 그렇게 되도록 기도를 하겠네.”
성준은 박교수의 말이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방집은 한옥 건물의 문을 모두 유리로 만들었는데, 그 유리문에 무언가 어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성준은 그 유리 속에 난반사되는 물체가 반사체가 아니고 유리 속에 들어가 있는 괴물체라는 걸 똑똑히 보았다. 그 순간 그는 숨이 막혔다.
“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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