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도시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포격으로 완전히 무너진 이 도시는 사방이 회색빛이었다. 아이들이 손을 잡고 뛰어다니는 형태의 동상은 시커멓게 얼룩이 졌고, 한 때 번화했던 광장에는 시커먼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여기저기 탄피가 떨어져있었고, 박살난 건물 파편 속에는 저격수와 대전차 포들이 매복되어 있었다.
여태까지 오토가 가보았던 소련 도시들 중에서도 이 도시는 전쟁 전에는 가장 번화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대다수의 소련 마을들은 전기, 상하 수도 없이 생활하였고, 독일 전차 부대는 비포장 도로를 통해 기동해왔다. 하지만 이 도시는 대학으로 쓰이던 건물도 있었고 도로들 또한 모두 포장되어 있었다.
스테판이 중얼거렸다.
"소련 놈들 맨날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고 하더니 빈부 격차가 어마어마하잖아!"
독일 병사들은 널부러진 시체들의 목에 걸려있는 타원형의 인식표를 절반으로 자르고 하나씩 챙기고 있었다. 어떤 시체들은 생쥐한테 눈알이 파먹힌 상태였다.
며칠 전부터 이 도시에서 싸우고 있던 보병들은 보드카를 긴빠이 친 것인지, 술 냄새가 진동을 했고 매일 마약을 한 것처럼 눈빛이 흐리멍텅했다. 이 녀석들이 슐레프 전차 부대를 보고는 환호했다.
"오오!! 전차다!!"
"우리 다 살았어!!"
하지만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시가지에서는 전차 부대 기동이 쉽지 않은데...저렇게 잔해가 많아서 어떻게 기동하라고...'
"1소대! 12구역으로!!"
오토의 소대 전차들은 장갑차와 함께 12구역으로 기동했다. 우라 돌격을 하다 쓰러진 소련군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고, 장갑차는 기관총으로 시커먼 시체들을 향해 확인 사살을 했다.
드득 드득 드드득
총알을 맞을 때마다 시체들은 충격에 살아있는 것처럼 경련을 일으켰다. 오토는 관측창으로 이 광경을 보며 식은 땀을 흘렸다. 그 때 무전으로 슐레프 중대장의 명령이 내려왔다.
"저격수들이 시체 틈에 숨어 있다가 전차장이나 장교를 노리고 저격을 시도하는 일이 잦다! 소련군 시체는 반드시 확인사살한다!"
그 말에 오토가 벌벌 떨며 무전수 요하네스에게 외쳤다.
"2시 방향!! 소련군 시체 무더기에 기관총 긁어!! 전부 꼼꼼하게 긁어!!"
드득 드득 드드득
가끔 중포탄이 떨어지는 육중한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쿠궁!! 쿠구궁!!!
오토는 천둥 번개가 치는 것 같은 이 웅장한 포격 소리보다도 어디 있을지 모를 저격수를 더욱 경계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저격수가 숨을만한 잔해, 건물이 너무 많았다.
그 때, 총알이 공기를 가르고 날아오는 소리가 났다.
쉬이잇!!! 카강!!
'뭐야!!'
오토 소대 뷜리겐 전차장이 무선으로 보고했다.
"기동 불가!! 대전차 소총에 우측 기동륜을 맞은 것 같습니다!! 2시 방향 저격수!!"
"다들 해치 위로 머리 내밀지 마!! 구하러 가겠다!!"
오토는 관측창을 통해 뷜리겐 전차장의 4호 전차에 대전차 소총을 저격한 저격수가 엄폐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 더미를 보고 우벤 전차장에게 외쳤다.
"2시 방향 잔해 더미로 고폭탄 자유 사격!!"
퍼엉! 쿠궁!! 쿠과광!!
우벤의 전차가 2시 방향 잔해로 고폭탄을 쏟아붓는 동안 오토의 티거와 슈뢰어의 판터는 뷜리겐의 4호 전차로 접근했다.
트응 트드드등
오토가 이를 갈았다.
'우리 소대는 T-34 20대도 격파했는데 어디 저격수 한 놈 따위가!!'
그렇게 티거와 판터는 뷜리겐 4호 전차 영 옆에 주차했고, 오토가 외쳤다.
"연막 발사!!"
뿌연 연막이 사방에 뿌려졌고, 뷜리겐과 승무원들은 4호 전차에서 탈출해서는 티거와 판터에 추가로 탑승시켜서 구조되었다. 우벤 전차장의 4호 전차는 저격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에 고폭탄을 때려부었고, 그 곳에 있던 가로수는 활활 불타고 있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면 그 저격수놈도 뒤졌겠지?'
오토는 조심스럽게 전차장 해치를 열었다. 그리고는 마네킹을 조심스럽게 위로 올려보았다. 그 순간!
쉬이잇!!
"으악!!"
오토가 해치 위로 올린 마네킹이 총을 맞은 것이었다. 오토는 마네킹을 끌어내린 다음 외쳤다.
"11시 방향에도 저격수!! 고폭탄 자유 사격!!"
퍼엉!! 쉬잇 쿠과광!! 콰광!!
오토의 소대 전차들은 11시 방향에 보이는 건물을 향해 고폭탄을 쏟아부었다.
쿠구궁!! 쿠과광!!
티거가 뿌연 포연으로 휩쌓여있을때, 오토는 조심스럽게 마네킹을 다시 해치 위로 올려보았다.
'이..이 정도면 뒤졌겠지?'
쉬이잇!!
퍽!
"으아악!!"
오토는 팬티에 오줌을 지리며 마네킹을 내려보았다. 마네킹 얼굴 정중앙에 저격수에 총알이 박혀 있었다.
"0시 방향 저격수!! 고폭탄 연속 사격!!"
퍼엉! 쉬잇 콰과광!!!
고작 저격수 하나 잡겠다고 이렇게 고폭탄을 낭비하는 것은 미친 짓 이었다.
'이...이 정도면 되었겠...'
그 때, 어디선가 총알이 날아왔다.
쉬이잇!
그리고 이 총알은 조종수용 관측창의 방탄 유리를 금이 가게 했다.
와지직!!
"으악!!!"
다행히 조종수 마티아스는 무사했지만 이렇게 방탄 유리가 금이 가면 시야 확보가 힘들었다.
"이 새끼 존나 잘 쏩니다!!"
그 때, 무선으로 우벤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종수 관측 바이저에 금이 갔습니다!!"
오토가 외쳤다.
"연막 뿌리고 후퇴!!"
그렇게 오토 소대 전차들은 뷜리겐의 4호 전차를 제외하고 모두 저격수의 저격이 닿지 않는 곳으로 후퇴했다.
'고작 저격수 몇 명 때문에 전차 한 대가 기동 불가되다니!!!'
결국 독일군 포병들은 이 곳에 엄청난 포격을 쏟아부었다.
쿠궁!! 쿠과광!! 쿠궁!!!
보병들이 이 광경을 보고 수근거렸다.
"전차병이라고 했는데 별거 없잖아?"
"고작 저격수 따위에 저렇게 포탄을 낭비하다니!!"
마티아스는 금이 간 관측창 방탄 유리를 빼고는 새 방탄 유리로 갈아끼웠다.
"이..이걸 한번에 맞추다니..."
오토가 심각한 표정으로 슐레프 중대장에게 보고했다.
"소련군의 저격수가 곳곳에서 대전차 소총으로 기동륜을 저격합니다! 쉬르첸이 부착되지 않은 전차에도 기동륜을 보호하기 위해 쉬르첸을 부착해야 합니다!"
그렇게 모든 전차에는 쉬르첸이 부착되었다. 오토는 아직도 저격수 때문에 손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부..분명 여러 곳에 저격수가 있을거다!! 어떻게던 방법을 찾아야...'
고작 저격수 때문에 오토의 소대는 고폭탄을 상당히 많이 낭비했고 이는 보고서로 제출해야 했다. 오토는 골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차라리 T-34나 대전차포 상대하는게 쉽군...'
아까 전에 상한 통조림을 먹은 것 인지, 오토는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약이라도 받아야겠다...'
주변에 한 보병에게 오토가 물었다.
"근처에 치료소 있나?"
"저 건물 지하에 치료소가 있습니다!"
오토는 건물 지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끔찍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악!! 아아악!!"
"자르지 마!!"
"도와줘!! 도와줘!!"
치료소에는 부상병들이 여기저기 다닥다닥 붙어서 널부러져 있었다. 기둥과 벽 여기저기에는 부상병들의 피자국이 묻어 있었다.
'이..이럴 수가...'
부상병들은 거의 뒤엉켜있는 거나 다름없이 시장통에 쓰레기들처럼 여기저기서 신음하고 있었다. 오토는 부상병들을 밟지 않게 조심하면서 발을 내딛었다.
"도와줘...도와줘..."
"물 좀 줘..."
오토는 복통이 싹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약만 받고 빨리 나가자...'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위생병은 한 부상병의 다리를 절단하고 있었다.
"으아악!! 아아악!!!!"
오토는 결국 약을 받지 않고는 서둘러 치료소 밖으로 나갔다.
'시발!!'
아직도 역겨운 피 냄새와 고름 냄새, 의약품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 때, 스테판, 게오르크, 블라덱이 오토를 불렀다.
"오토!! 이 쪽으로 와봐!!"
스테판, 게오르크, 블라덱은 손전등으로 하수구 속을 비추어보며 기웃거리고 있었다. 옆에 있던 MP40을 들고 있는 한 보병이 이야기했다.
"소련군 저격수들이 이 하수구에서 튀어나오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오토는 온갖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그 하수구를 살펴보았다. 이 하수구는 직경이 3m 정도 되었고 이 곳을 통해서 도심 어디로던 갈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저 시커먼 어둠 속에서 소련군이 튀어나와서 수류탄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 하수구는 도시 전체에 연결되어 있네!"
"들어가보자!"
오토와 친구들은 한 손에는 루거, 한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천천히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오토는 겁에 질린 것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며 말했다.
"그..그냥 여기 다 막아버리는게 좋지 않을까?"
"그건 안되지! 우리 쪽 보병이랑 저격수들도 이 쪽을 통해 왔다갔다한단 말야!"
오토는 맨 앞에서 손전등을 여기저기 비추며 천천히 걸어갔다. 미로처럼 하수구는 여러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다.
'왜 내가 맨 앞이지? 슬쩍 뒤로 가야겠다...'
블라덱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러다 길 잃는거 아냐? 슬슬 돌아가자!"
오토가 말했다.
"그...그래!! 도...돌아가자! 여긴 보병들에게 맡기고!"
그 때, 좌측 하수도에서 뭔가 발소리가 들렸다. 하수구에 얕은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좌측 하수도쪽에서 오는 누군가가 이 쪽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고 있었다. 오토는 루거를 든 채로 잽싸게 좌측으로 꺾으며 그 쪽을 겨누었다.
'으아악!!!!'
"아악!!"
슈탈헬름을 쓰고 있는 보병들이 하수구를 정찰하다가 오토와 마주친 것 이었다. 오토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 했다.
"아..아하하...아군이었군!"
그렇게 오토와 친구들은 보병들과 함께 하수구 밖으로 걸어나갔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저격수 놈들에 대해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그 때 무언가 물컹한게 발에 밟혔고, 오토는 바닥을 손전등으로 비추어보았다.
"으...으아아!!!"
쥐에게 눈이 파먹힌 소련군 시체를 밟았던 것 이다. 오토는 자신도 모르게 팬티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하지만 애써 놀라지 않은척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나갔다.
"벼..별거 아니군! 빠..빨리 나가지!"
첨벙 첨벙
그렇게 시커멓고 냄새 나고 으스스한 하수구 밖으로 오토와 친구들은 탈출했다. 스테판이 말했다.
"저격수들 때문에 해치 위로 머리를 내밀지도 못하겠군."
"전차에서 발사하는 연막으로는 부족하네!"
"박격포 지원이 반드시 필요해. 박격포로 연막을 쫙 깔아주면 그 때 전차 부대가 전진하는걸세."
오토는 아직도 아까 전에 그 저격수만 생각하면 손에서 식은 땀이 났다.
"그 저격수 새끼 실력이 대단하네. 한 방에 조종수 관측창을 적중했다고."
"어떤 놈인지 잡히기만 해봐라..."
이 때 소련군 점령지역에서 한 금발 머리 소련군 저격수가 하수구를 통해서 어딘가로 탈출하고 있었다. 그 저격수는 동료들과 함께 그 날 먹을 통조림을 하나씩 배급 받았다. 한 장교가 외쳤다.
"이봐! 류드밀라! 이것도 가져가게!"
류드밀라는 그 장교에게서 꾸러미를 받아들었다.
"여군에게는 특별히 속옷이 지급된다! 그만큼 더 열심히 싸우도록!!"
류드밀라는 통조림과 자신이 받은 속옷 꾸러미를 들고는 한 낡은 건물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꾸러미 안에 있는 것은 당연히 남성용 속옷이었다. 하지만 이 남성용 속옷마저 귀했기 때문에 일단 류드밀라는 이 팬티라도 입어야 했다.
그리고 류드밀라는 팬티를 입고는 차갑고 비계 덩어리가 가득한 통조림을 손가락으로 퍼서 먹기 시작했다.
Comment '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