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수양
이번 전투가 끝나고 장전수 알프레트 녀석은 정신을 완전히 놓은 상태였다. 티거 옆에 주저 앉은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았다. 오토가 알프레트에게 가서 슈납스 병을 내밀었다. 알프레트는 그 때서야 벌컥벌컥 슈납스를 마셨다.
"이보게! 싸울 수 있겠나?"
"야볼!!"
흙먼지로 얼굴이 시커멓게 된 알프레트가 거의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녀석은 숨을 가쁘게 몰아내쉬며 호흡 곤란 증상까지 오고 있었다.
오토가 알프레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침착하게."
티거 전차에서 장전수 역할은 쉬울 것 같지만 생각보다 까다롭고 섬세함이 필요했으며 아주 중요한 자리였다. 잠금장치를 너무 빨리 열면 포탄이 발사되지 않은 상태로 폭발해버리기 때문에 탱크가 폭발하는 사고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알프레트는 이제야 진정이 된 듯 했고 오토는 알프레트에게 담배를 하나 건네 주었다.
전투가 끝나고 오토의 소대 전차들도 정비가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했다. 오토는 병사들과 함께 각 전차에 직접 포탄을 보급했다. 오토가 티거 해치 안으로 포탄을 하나씩 옮기며 외쳤다.
"철갑탄 고폭탄 1:1로 적재한다!"
다행히 오토의 소대 전차 4대는 모두 정비가 완료 되었다. 오토의 소대 병사들은 군에서 지급한 대마초를 피우면서 암페타민이 들어간 마약을 먹고 있었다. 다들 얼굴은 시커멓고 손은 벌벌 떨고 있었다.
한 보병은 판저 파우스트 교육 책자에 그려진 만화를 읽고 있었다. 이 만화에는 얼뜨기 같은 병사가 뒤에 바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풀 속에 숨어서 T-34를 향해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는 장면이 있었다.
BOOM!!!
다음 장면에서 그 병사는 얼굴이 시커멓게 되었고 소대장은 열받은 표정으로 병사를 쳐다보았다. 그 병사는 어색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고, 만화에는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뒤에 바위나 집, 엄폐물이 있으면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했을때 반동에 위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명심하라!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기 전에는 뒤를 확인한다!]
다음 페이지에서 그 얼뜨기 같은 병사 캐릭터는 철십자 훈장을 받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우리의 벤이 과연 철십자 훈장을 받을 수 있을 것 인가?]
벤은 덤불 속에 엄폐한 다음 소련군의 T-34를 향해 멋지게 판저 파우스트로 한 방 먹였다.
벤이 환호하는데, 다음 장면에서는 다음 소련군 T-34 가 포탄을 쏘았다.
BOOM!!!
벤은 또 다시 아까처럼 시커멓게 그슬린 얼굴로 씨익 웃었다. 만화에는 이렇게 설명이 되어 있었다.
[판저 파우스트를 사용한 다음에는 신속하게 위치를 이동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꼴이 된다!!]
병사들은 모두 돌려가며 이 판저 파우스트 교본을 읽은 다음에 책장을 찢어서 담배를 말아 피웠다. 그리고 다음 날, 독일군은 소련군 나머지 방어선을 돌파하기 위해 또 다시 치열한 전투를 시작했다. 오토의 티거 또한 후면에 있는 거대한 두 배기관을 통해서 가스를 뿜어내며 소대 전차들과 앞으로 전진했다.
오토가 무선으로 외쳤다.
"하겐이다!! 스프가 너무 뜨겁다!('놈들의 저항이 거세다'를 뜻하는 암호) 식혀 먹겠다!! ('우회기동 한다' 를 뜻하는 암호)"
그렇게 오토의 소대는 우회 기동을 시작했다. 그 때, 무전수 요하네스가 외쳤다.
"소대장님! 1소대도 2소대 3소대와 같이 전진하라는 명령입니다!"
오토가 외쳤다.
"무시해!! 대답하지 말고 무전기 꺼버려!!"
오토는 그렇게 외치고는 자신의 헤드폰이 발신 모드가 아닌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말했는데 발신 모드였다간 전투 끝나고 중대장한테 깨질 수도 있었다.
"목표 발견!!!2시 방향으로 포탑 선회!! 고폭탄 장전!!"
포수 에밀이 포탑 선회 패달을 밟으며 신속하게 포탑을 선회시켰다.
드으으으 으으으으 드으으
"조준 완료!!"
"발사!!"
한편, 소련군은 참호 속에 숨어서 대전차 소총을 이용해서 독일군의 전차를 향해 발사하고 있었다.
타앙!
탕!
하지만 이는 거의 소용이 없었다. 빅토르는 대전차 소총을 쏘면서도 이는 거의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독일군의 전차는 빅토르의 위치를 알아챈 것 인지 이 쪽으로 기관총을 긁기 시작했다. 뿌연 연기 속에서 불꽃이 번쩍거렸다.
드륵 트르륵 트르르륵
빅토르는 재빨리 자신의 개인호 속으로 몸을 웅크렸다.
"으아악!!"
일단 위치가 발각된 이상 소총 들고 튀는 수 밖에 없었다. 빅토르는 잽싸게 대전차 소총을 들고 사수 데니스와 함께 튀었다. 기관총 사수들이 쓰다가 포대경만 버려두고 튄 개인호에 다시 빅토르는 데니스와 자리를 잡았다.
'어차피 이 거리에선 쏴봤자 소용이 없다! 놈들이 더 전진해오면 그 때 쏴야한다!!'
데니스 녀석은 포대경을 보며 독일군의 전차가 제발 대전차 지뢰를 밟기를 기도했다.
'제발 밟아라...제발 밟아라...'
뿌연 연기 속에서 독일군의 전차들이 지뢰 지대를 건너서 오고 있었다. 어차피 대전차 소총은 이 거리에서 별 타격도 안 준다.
"걸려라...걸려라..."
그런데 독일군의 전차들은 대전차 지뢰에 하나도 걸리지 않고 계속해서 지나오고 있었다.
"공병 새끼들 뭐한 거야!!"
결국 빅토르는 다시 자리를 잡고는 침착하게 독일군의 전차를 대전차 소총으로 겨누었다. 지금 한 독일군의 4호 전차가 측면을 보이고 있어서 기동륜을 노리기 딱 적당한 상황이었다. 빅토르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숨도 쉬지 않고 대전차 소총을 발사했다.
타앙!!!
총구에서 날아간 대전차 소총 총알은 4호 전차의 기동륜을 적중시켰다.
카가강!!
독일군의 4호 전차는 기동륜이 박살난 상태로 기동 중지되었다. 포대경을 보고 있던 데니스가 외쳤다.
"명중!! 기동 불가!!"
독일군의 4호 전차는 빅토르와 데니스를 향해 포탑을 선회시키기 시작했다.
"튀어!!"
그렇게 소총과 탄약만 챙기고 열나게 튄 다음 빅토르와 데니스는 다른 호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독일군 전차 몇 대가 기동 불가 된 상태로 정지한 상태에서 기관총과 포를 쏘고 있었다.
쿠과광!! 쿠궁!!
데니스가 외쳤다.
"좋았어!! 좀만 버티면 된다!!"
빅토르 또한 이 광경을 보며 안도했다.
'이제 좀 있으면 전차 부대 지원이 올 거다!!'
그 때, 누군가 외쳤다.
"저 쪽이다!! 파시스트 전차야!!"
놀랍게도 독일군, 오토의 전차 소대가 우회 기동해서 소련군의 방어선을 박살내고 있었다. 빅토르는 쌍안경으로 제일 선두에서 이 쪽으로 오는 육중한 직각 장갑의 티거를 발견했다.
'으...으아아...'
"튀어!!!"
빅토르와 데니스는 대전차 소총까지 버리고 허리를 숙이고는 미친듯이 참호를 따라 달렸다. 티거의 기관총이 빅토르가 달리는 참호 라인을 따라서 불을 뿜었다.
드륵 드르륵 드륵
여기저기서 흙이 튀어올랐고 모래 주머니에 총알이 박혔다. 빅토르와 데니스는 겨우 구석에 있는 개인호로 들어가서 몸을 수그렸다. 데니스가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 상태로 중얼거렸다.
"사..살았다!!"
순간, 고폭탄이 날아와서 폭발했다.
쿠궁! 쿠과광!!
빅토르와 데니스는 산산조각나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독일군은 강력한 소련군의 방어선을 모두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오토는 전차장 해치를 열고는 밖으로 나왔다.
끼익 탁!
오토의 전차의 포신에는 적 전차를 격파한 횟수만큼 40개의 흰색 페인트 자국이 둥글게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지쳐서 페인트 자국으로 표시를 할 힘도 없었다.
보병 녀석들은 이 난장판이 된 참호를 수습하고 있었다. 보급선이 길어지는 바람에 오늘이나 내일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오토의 소대 녀석들은 소련군으로부터 식량을 노획해서 먹기 시작했다. 완두콩 스프, 비스킷, 그리고 흰 비계가 30프로 정도를 차지하는 엄청 짭짤한 고기 통조림, 구루지아 차.
기름과 흙먼지로 범벅이 된 손으로 짐 속에서 소대원들은 모두 수저를 꺼냈다. 이 당시 독일군이 쓰는 이 수저는 포크와 일체형으로 된 거라서 정말로 편리하기 그지없었다. 이 지저분한 포크로 차가운 비계 덩어리 고기를 통조림에서 꺼낸 다음 익히지도 않고 상태로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다들 발을 씻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지만 식수도 부족했기에 이는 불가능했다. 조종수 마티아스 녀석은 소련군에게서 노획한 마호르카 담배를 종이에 말아서 피워보았다.
"켁..켁...이건 영 별로야!"
"물...물 있냐?"
슈납스 병이 전달되었고 병사들은 벌컥벌컥 슈납스를 마시고 대마초를 피웠다. 오토는 공허한 눈으로 멍하니 주저 앉아 있었다.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힘도 없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싸워야 하지?'
보병 녀석들이 지나가다가 티거를 보고 환호했다.
"오오!! 이것이 그 강철 호랑이!!"
보병들은 티거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티거가 얼마나 강력한 전차인지는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이 티거의 강철 포신 앞에서는 이반 놈들 T-34도 깡통에 불과하다며?"
무전수 요하네스가 말했다.
"그렇긴한데 놈들의 대전차포는 엄폐가 잘 되어 있어서 T-34보다 까다롭네. 대전차포를 상대로 싸울 때는 자네 보병들 도움이 필요하네."
"대전차포야 고폭탄으로 펑 쏴서 티거가 날려버리면 되지 않나?"
한편, 한병태는 사다오, 쿠리바야시, 다다즈미 등과 함께 독일에 와 있었다. 독일군은 일본군에게 3호 전차와 4호 전차, 그 외 기관총도 지원해주었다. 한스는 일본 전차에 대한 서류를 읽어 보고 있었다. 한스는 이번에 독일로 파견된 일본 장성들과 함께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이런 전차로 소련군을 어떻게 상대한다는거지?'
한스는 외교적인 문제를 생각하며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머..멋진 전차입니다. 하지만 이런 리벳 주조 방식은 주변에 포탄이 폭발했을 경우 리벳이 내부에서 파편처럼 튀기기 때문에 승무원 안정성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리벳 주조 방식을 전환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
한스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측면에 철판을 덧대거나, 모래 주머니를 위에 얹는 것 만으로도 방호력에 효과가 있을 것 입니다."
통역가가 이 말을 통역했고 일본 장성이 뭐라뭐라 말했다.
"전차 측면에 철판을 덧대거나 모래 주머니를 위에 얹는 것은 전차병들이 실제로 시도는 했으나 현재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스는 이 말에 의아했다.
'그걸 왜 금지하지?'
"무엇 때문에 금지하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통역가가 통역하고 일본 장성이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천황 폐하가 하사한 물건에 병사들이 손을 대어서 개조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판을 덧대거나 모래 주머니를 위에 얹는 것은 각 부대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한스의 이마에서는 식은 땀이 흘렀고 입으로는 억지 미소를 지었다.
"아하하..그렇습니까."
한편, 한병태는 자신의 부대원들과 함께 독일의 4호 전차를 이용해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이 독일 놈들은 일본이 소련의 한 쪽 전선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병태의 부대원들은 독일군의 전차병들과 함께 전술 시합을 하기도 했다.
병태는 이 전술 시합으로 골머리를 썩혔다.
'확실히 독일의 전차 전술은 일본군보다 30년은 발달해있다..이것이 임무형 전술의 힘인가? 여태까지 난 군사 학교에서 쓸데없는 것들만 배웠었다..'
그 때, 병태는 한스 파이퍼가 이 쪽을 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 인간이 한스 파이퍼?'
다다즈미는 일본군에게 목청껏 외쳤다.
"일본 제국군의 힘을 전세계에 보여줘야 한다!! 반드시 이번 전술 시합에서 승리한다!!"
하지만 결국 일본군은 독일군을 상대로 한 전술 시합에서 완전히 깨지고 말았다. 한스가 낙담한 표정을 지었다.
'일본군이 소련군을 동부 전선에서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다다즈미는 일본 전차병들을 보며 길길이 날뛰기 시작했다. 한스가 물었다.
"뭐라고 하는건가?"
통역가가 말했다.
"이는 일본 제국군의 수치이므로 할복한다고 합니다."
"근데 왜 아무도 말리지 않지?"
다다즈미는 군도를 꺼내들고 외쳤다.
"나는 일본 제국군의 명예를 위해서 할복하겠다!!"
사다오가 달려와서 다다즈미를 말리는 시늉을 했고, 그제서야 다다즈미는 진정되었다. 대신에 뭐라고 뭐라고 외쳤다. 한스가 자신의 통역가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뭐라고 하는가?"
"교를 실시한다고 합니다!"
"교?"
"교라는 것은 나태함을 반성하기 위해 48시간 동안 마시지도 먹지도 않고 정신 수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 전차병들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시발!!'
'오늘 고기 요리라고 들었는데!!'
'좆됐다!'
다다즈미는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한스가 중얼거렸다.
"확실히 문화가 많이 다르군."
통역가가 말했다.
"하지만 교를 실시하게 되면 장교들 또한 같이 단식을 합니다."
다다즈미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번 전차 전술 훈련에 대해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몰래 화과자를 먹기 시작했다.
"우걱우걱"
그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다다즈미는 화과자를 삼키며 외쳤다.
"들어오게!!"
사다오가 훈련 과정 관련해서 보고할 것이 있어서 한병태와 같이 들어온 것 이었다. 병태는 다다즈미 입에 뭔가 묻은 것을 발견했다. 다다즈미는 자신의 입에 묻은 것도 모르고 서류를 읽기 시작했다. 병태는 애써 아무것도 못 본척 했다.
"좋아!! 끄윽!!"
화과자가 목에 걸렸는지 다다즈미는 계속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전술 시합에는! 끄윽! 꼭 승리하도록! 끄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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