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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백만잔의 서재

슈퍼 멍청한 판타지 모음집 2 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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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백만잔
작품등록일 :
2022.12.11 22:06
최근연재일 :
2023.10.17 11:33
연재수 :
2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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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글자수 :
55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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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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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Sp 001. 깊은 하늘의 창염화 (11)

DUMMY

Sp 1-20. 불은 꺼지지 않고



"죄송합니다. 전부 제 실책입니다."


다음 날, 이그니스는 오스카의 사무실에서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다른 단장이나 이그니스의 외삼촌은 없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프레이를 포함한 대부분이 서쪽 황야로 향했다.

병영의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기존 계획대로 왕비의 수송 명령을 수행하는 척하면서 구조대로 나선 것이다.

대병영에 남아 사태를 수습하고 있던 건 오스카와 이그니스, 그리고 부상 때문에 구조대로 나설 수 없던 소수의 기사 정도였다.

마음 같아서는 오스카 본인도 서부 황야로 가서 구조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잔류한 이들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이번 화재를 설명할 총 책임자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남아야 했다.


오스카가 잔류를 위해 댄 '명분'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실제로 다른 단장들 역시 그녀가 이 명분을 대자 순순히 수긍했다. 거짓말이 아니고, 필요한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녀가 남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가능하면 자신이 허탕 쳤길 바랐지만, 대병영 화재의 뒤처리는 그녀의 바람대로 흐르지 않았다.

특히 이그니스가 보고한 '자의식을 가진 감정의 불'과 결말은 기밀로 지정해 따로 '상부'에 올려야 했을 정도로 심각한 내용이었다.

따라서 이그니스 또한 변명을 붙여 대병영에 남겨야만 했다.

부상을 걱정해서 내린 지시이기도 했지만, 이건 그녀의 의지보다 '상부'의 지시 탓이었다.


"아니. 내 실책도 컸어. 아무리 전대미문의 화재라 해도 판단을 완전히 망쳤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거야. 정말로 미안해 이그."

"아뇨. 대단장은 최선의 판단을 하신 겁니다."

"그러면 이그도 최선의 판단을 한 거야."


그녀는 여전히 반전의 갑옷을 입고 있는 이그니스에게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대병영 화재는 불씨 하나 남지 않았으나, 그의 불은 안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비유가 아니었다.


"어쩐지 상부에선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거 같고."

"아까부터 좀 신경 쓰이는데, 의전단에 상부라뇨. 외무장관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니. 의전단과 외무부는 기본적으로 동격이다. 이 녀석은 의전과 함께 정보기관도 겸하고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말을 섞는 제3자의 목소리에 이그니스는 몸을 흠칫 떨면서도 재빨리 그가 해야 할 행동을 취했다.

의전 기사단 기사단장을 '이 녀석'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손으로 꼽는다.

그게 힌트였다. 이그니스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한편, 목소리가 난 곳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됐으니까 일어나. 공식적으로 온 것도 아니고. 괜히 귀찮기만 해."

"명을 따르겠나이다. 폐하."


제멋대로인 성격에, 의전 기사단 기사단장을 아무렇게나 부르는 게 허락된 인물.

감정의 불에 의해 그을리고 반쯤 녹은 단장실의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 아닌 인류왕국의 왕.

기둥왕 그림 엑셀리온이었다.


"그나저나 오스카. 새 인테리어가 사뭇 전위적이구나. 이래서야 손님 하나 못 맞겠는데?"

"어머나, 이 와중에 농담도 참. 정 그러시면 은혜를 내려주시지 않겠습니까?"

"흐음, 예산이라도 늘려달라는 거냐."

"감사한 말씀이지만, 이대로라면 여기 대화가 새 나갈지도 몰라요?"

"흥. 왕을 부려 먹으려 하는 건 튜버경 이후로 이제 네놈밖에 안 남았군."


불쾌하다는 어조였지만 정작 왕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대낮부터 술에 절여져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스카의 반응이 재밌기 때문일까.

튜버경이 죽은 이후 알현실을 독차지 한 채 종일 술을 마시는 게 일상이었던 그림이 가볍게 손을 휘젓자, 녹아내린 벽이 복구됐다.

유리가 자라나고, 가구는 수리되었으며, 아무렇게나 구르던 검댕은 먼지가 되어 햇살 속에 녹았다.


"대병영 전체를 수복하지는 않았다. 귀찮기도 하고. 원래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니까."

"과연 폐하. 키스하고 싶을 정도로 멋지시다니까."

"네놈은······. 하아, 뭐 됐다. 보고나 듣도록 하지."


갓 복구된 소파에 등을 파묻은 그림은 반전의 갑옷을 찬찬히 관찰하며 물었다.


"현자들은 죽어서까지 도움이 안 되는군. 감정의 불에서 유사 인격이 태어났다는 보고는 들었다. 얼음 장군이라고 자칭했던가. 녀석은 어디 있지?"

"네. 녀석은 지금······."


이그니스는 검지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 안에 봉인해뒀습니다."

"마도 단장.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아마 직접 보시는 게 빠르시겠죠."


이그니스는 반전의 갑옷 목 틈새에 손을 넣은 채 불처럼 타오르는 얼음을 시전했다.

이어서 달칵하고 부품이 분리되는 소리가 나고, 마스크가 투구에서 부드럽게 분리되었다.

그 안에 있던 건 이그니스의 얼굴만이 아니었다.

사람이 의식을 잃기 전까지 감정을 연소시키며 영원히 타오르는 감정의 불. 그 불길이 이그니스의 오른쪽 눈을 집어삼킨 채 이글거리고 있었다.


"현재, 얼음 장군의 인격은 제가 불 째로 삼켜서 몸 안에 가두고 있습니다."

"반전의 갑옷의 힘을 써서 죽는다는 결과를 계속 살아 있는 걸로 바꾸고 있는 거로군."

"정확히 보셨습니다."

"그게 다가 아니겠지. 보고에 따르면 감정의 불은 감정을 연소시켜서 불길을 이어간다. 그렇다는 건, 그 불을 삼킨 네 인격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질문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이그니스가 답을 한 건 조금 시간이 흐른 뒤. 마스크를 제자리에 돌린 뒤였다.


"확답은 드리지 못하지만, 얼마 안 남았습니다. 저는 머지않은 미래에 얼음 장군이 되겠죠."

"그런가. 미리 조의를 표하도록 하지."

"잠깐, 폐하?"


안색을 바꾸면서까지 급히 말을 끊은 건 오스카였다.


"포기가 너무 빠르지 않습니까?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조의라니요?"

"그렇다면 의전 단장. 저 녀석은 왜 반전의 갑옷을 벗고 회복마법을 받으려 하지 않지? 아예 한번 죽이고 나서 부활 마법을 거는 방법도 있을 텐데?"

"그건······."

"말을 반복하게 하지 말아라. 짜증 나니까. 구체적으로 설명하라 했지? 대병영 주둔 기사단 중에 봉인술 비슷한 거라도 쓸 줄 아는 건 종무 기사단뿐이지 않던가? 그것도 악마나 유령에게만 효과 있는 퇴마술이고."


술에 취해 국정을 방치했다 해도 기둥왕은 유능한 왕이다. 오스카가 사실을 숨기거나 에둘러 말해도 그의 통찰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얼음 장군을 봉인했다는 건 어떤 방법을 썼지?"

"···상극이 되는 두 마법을 강제로 융합하는 방식을 고안해, 놈의 영혼과 제 영혼을 그 마법의 매개로 사용했습니다."

"과연. 이해했다. 전문가도 아닌 녀석이 억지를 썼다가 부활 마법도 못 쓰는 꼴이 된 건가."


정확한 분석이었다. 지금의 이그니스를 한번 죽인 뒤에 성직자들의 힘을 빌려 부활시키면 감정의 불까지 함께 되살아난다.

또한 감정의 불은 영혼만이 아니라 몸까지 좀먹는다. 반전 갑옷의 힘이 없었다면 불은 진즉에 이그니스를 숯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안일했군. 의전 단장. 최선을 다했어야지."

"외람되오나 폐하. 그 시점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최선을 다했다면 나를 불렀어야 했다."


기둥왕의 지적에 오스카는 내장이 뒤틀린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프레이가 감정의 불을 폭주시킨 원인이 무엇이었는가.

전쟁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그녀의 양친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갑자기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누가 그 참상을 일으켰는가.

누가 순수왕국 병력 73만을 서부 황야에서 죽음으로 몰아넣었는가.

오스카는 그 답을 알면서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게 그녀가 왕가에 보일 수 있는 최대급의 충의였다.


"내 잘못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가?"

"으윽······."

"후후후. 됐다. 네게 튜버하고 완전히 같은 수준의 담력을 기대하는 건 무리겠지."


녀석이라면 질책했을 거다. 기둥왕은 그렇게 한 마디 덧붙이며 말을 이어갔다.


"어차피 너희는 이견을 내지 못해. 결과적으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 너네도 사람을 보낸 거 같으니 몇 명 정도는 살릴 수 있겠지. 아니면 뭐냐. 전쟁이 나기라도 바란 거냐? 인류왕국을 지키는 기사가?"

"그렇다 해도 73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으셨습니다. 폐하께서도 최선의 방법을 택하신 건 아니군요."

"호오, 이거 봐라? 현자가 만든 갑옷을 입으니 담력도 아주 단단해졌나 보구나."


기둥왕은 작게 웃으며 살기를 흘렸다.

방 안의 공기가 급격히 냉각되는 것 같은 기백.

다만 왕의 위협은 단순한 압력으로 그쳤다.

오스카는 여기서 이상함을 느꼈다. 반론을 펼치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는 건 73만 명 학살이 잘못되었다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한 셈이었으니까.

그리고 왕의 성격과 뒤틀린 교활함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왕이 자신의 실책을 인정한 게 단순한 속죄가 아니라 더 큰 그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왕은 다른 계획이 있음을 대놓고 드러냈다.


"그 용기를 높게 사 쳐 죽이는 건 봐주마.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나중으로 미루도록. 모두가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불만을 말할 수 있게 해줄 테니까. 지금은 그보다도 급히 확인해야 할 게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네가 얼음 장군을 봉···아니, 융합했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군. 얼음 장군과 융합했고,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그게 언젠가 네 인격을 대체할 거라는 건 분명하지?"

"···그렇게 되기 전에, 자결해서라도 결착을 짓겠습니다."

"그래. 그 반응이다. 의전 단장의 보고서에도 네가 그렇게 말했다는 부분이 있었지."


그게 신경 쓰여서 온 거라고 밝힌 뒤, 왕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말을 이었다. 골치 아픈 일이다. 직접 말하지 않았어도 표정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감정의 불은 얼음 장군이라는 이름을 대며 자신에게 의식이 있음을 밝혔다. 그 불과 융합한 지금의 너라면, 녀석의 목적이 뭔지 알았으니까 자결을 해서라도 막겠다고 한 거겠지?"

"얼음 장군은······."


***


Sp 1-21. 불과 얼음. 프로스트와 이그니스 2



그로부터 수개월 후.

프레이와 함께 수도를 떠나 아센으로 향한 이그니스는 산채에서 만난 프로스트에게 똑같은 사실을 밝혔다.


"얼음 장군은, 이 세계에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마법과 사용자들을 없애려 하고 있어."


산채 안에 마련된 프로스트의 방은 산적 두목보다는 기술자의 작업장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화로가 불을 뿜고, 벽에서 튀어나온 피스톤과 톱니가 쉴새 없이 움직였다. 곳곳에 깔린 구리선은 가끔 파직거리며 불꽃을 일으켰다.

마법만 전문으로 다뤄온 이그니스로서는 프로스트가 산채에 뭘 하고 있는지 도무지 파악할 수 없었다.

프로스트는 이그니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작업에 몰두하다,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


"그야 그렇게 움직이겠지. 갑옷의 현자가 만든 갑옷도 있겠다. 자기 외의 모든 마법 사용자가 죽으면 얼음 장군은 무적이 될 테니까. 갓 태어난 녀석이 살아남을 방도를 강구한 건 당연한 일이야."


프로스트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작업을 멈추고, 창문을 열었다.

겨울을 지나 봄을 앞둔 탓에 기온은 여전히 쌀쌀했지만, 얼마 안 가 따사로운 날이 이어질 것 같은 날씨였다.

수염을 기르지 않은 탓에 이그니스보다도 젊어 보이는 프로스트는 말없이 하늘만 쳐다보는가 싶더니, 뜬금없이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너는 좀 어때?"

"어떻냐니?"

"뭐, 좋을 대로 해석해. 말 그대로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도 좋고. 반란군으로 몰려 가족을 잃은 피해자로서 얼음 장군의 계획에 어디까지 동조하느냐도 좋고."


덧붙인 말에 이그니스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인류왕국의 제식 갑옷보다 상당히 크게 만들어진 반전의 갑옷 또한 그 움직임에 맞춰 과장되게 흔들렸다.

한편, 이그니스의 마음을 들여다본 것처럼 정곡을 찌른 프로스트는 계속 추궁하는 대신, 시선을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렸다.

산채에서 그의 작업실이자 침실이 있는 방은 2층.

산채 앞마당에는 프로스트가 보호하고 있던 버려진 고아들과 프레이가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아니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평화로운 광경.

하지만 프로스트가 느끼고 있는 건 평온이 아닌, 전쟁의 기척이다.


"최초의 현자이자 차원을 떠도는 나그네. 아이작의 봉인된 공방이 아센에 있다는 걸 알고 온 거냐."


프로스트는 이그니스의 방문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지고 수도를 나와야 할 처지가 되었다면, 정에 휘둘리는 게 심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은 오스카가 말했을 가능성도 충분했으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이그니스가 마음만 먹었다면 그를 찾아내는 건 쉬웠으리라. 수도는 인류왕국의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이니 말이다.


"내가 아는 이그니스는 말이다. 뭐, 최근 십몇 년은 튜버 타임즈를 통해 발행하는 신문으로 본 게 다지만. 나처럼 가족이고 뭐고 다 내버리고 산골로 튄 새끼보다는 성실하거든."


문제는, 이그니스가 이곳에 올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단순히 그리운 얼굴을 보러 왔다고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런 녀석이 자기 일을 끝마치지 않은 채로 나한테 왔다. 그런 속 편한 말은 도저히 못 하겠어.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짧게 심호흡. 프로스트는 언제라도 허리춤의 검을 뽑아 대적할 수 있도록 긴장을 유지한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데. 얼음 장군."


달칵. 마스크가 해제되고, 투구 안에서 이그니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오른쪽 눈에서 불길이 일렁대고, 그 눈부터 오른쪽 턱까지의 피부가 녹아내려 하얀 뼈가 드러났다.


"오, 치열 고르네~ 역시 젊어서 그러나. 큭큭큭."

"너무 그렇게 죽일 기세로 노려보지 말라고 옛 영웅 씨."


얼음 장군은 이그니스의 성대를 빌어 껄끄러운 웃음을 흘렸다.


"아직 이 몸을 완전히 장악한 건 아니거든. 뭐, 10년 정도 지나면 문제없겠지만."

"저 아래 있는 아이도 네가 얼음 장군이라는 걸 아나? 아니면, 자 아이도 동류이거나?"

"아아, 프레이. 귀여운 아이지. 내가 왜 저 아이를 울게 하겠어."


얼음 장군은 양손을 가슴에 올리고, 황홀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 아이는 이그니스를 좋아하거든. 단순히 보호자로서만이 아니라, 연인으로. 그러니 평생 이그니스를 도와주겠지. 뭐, 결과적으로 나를 도와주는 게 되겠지만. 보답으로 마지막에 이그니스와 결혼하게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반전의 갑옷 때문에 태어나서 그런가. 성격 한번 더럽고 음침하군. 이그니스하고 완전히 반대야."

"마음 내키는 대로 말하시지. 나는 마음이 넓은 편이거든. 그러니까 이그니스가 너한테 주려던 물건도 전해주러 왔고."


얼음 장군은 짐가방 안에 있던 노트 한 권을 꺼내 프로스트에게 건네줬다.

노트를 펼쳐 대강의 내용과 양식을 확인한 프로스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일기인가?"

"그래.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이걸 전해주고 싶어 하더군. 아아, 원래는 일기장을 넘겨주면서 정체를 밝히려고 했는데,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이야."

"너는 안 읽어본 건가?"

"사내놈 일기를 읽는 게 무슨 재미야. 게다가······."


얼음 장군은 다시 마스크를 쓰고, 프로스트의 방을 나서며 말했다.


"무슨 계획을 세웠고 일기에 적었든 다 부질없는 짓이야. 반전의 갑옷을 입은 내 적수는 없거든. 나중에 다시 보자고. 옛 영웅 나으리. 내가 받으러 올 때까지 '첫 현자의 공방'을 잘 지키고 있으라고."


프로스트는 얼음 장군의 뒤를 쫓는 대신, 침대에 걸터앉아 일기장을 펼쳤다.

곧바로 승부를 걸기엔 양쪽 다 준비가 부족했다.

얼음 장군이 이그니스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것처럼, 프로스트 역시 얼음 장군을 쓰러트릴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신중한 프로스트는 상대가 이그니스가 아니라 얼음 장군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위험성을 계산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이그니스가 자신에게 건네주려 했다던 일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얼음 장군의 뒤를 쫓는 건 손해뿐인 이야기였다.

그날, 프로스트는 밤을 지새우고 눈이 새빨갛게 될 때까지 이그니스의 일기를 반복해서 읽었다.


"이 바보 자식이······."


아침이 되었을 때. 산비둘기가 울고, 옅은 안개가 숲을 가리고, 잎새에 잊힌 이슬이 아침햇살을 머금고 빛나고 있을 때.

프로스트는 대병영 화재 이후부터 산채에 방문하기 전날까지 이그니스가 느낀 감정과 생각이 가득 담긴 일기를 꽉 쥔 채 중얼거렸다.


"세상의 어떤 머저리 새끼가 동경하던 영웅한테 자기를 죽여달라는 말을 하냐······. 멍청하기는······. 이 상머저리 새끼야."


쿵. 프로스트는 무심코 가슴을 쳤다. 그 모습은 속에서 일어난 불에 괴로워 몸을 비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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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77. 구조요원 23.01.21 37 1 4쪽
76 76. 불을 말하는 새 +1 23.01.21 40 2 4쪽
75 75. 다큐멘터리 23.01.21 41 2 3쪽
74 74. 강도 23.01.21 40 1 2쪽
73 73. 불금 23.01.21 44 1 3쪽
72 72. 기가 막힌 꿈 +1 23.01.21 37 2 3쪽
71 71. 마녀를 불에 던져라 23.01.21 38 2 3쪽
70 70. you need more practice 23.01.21 45 3 5쪽
69 69. 쥐덫 23.01.21 37 2 2쪽
68 68. Cooool 23.01.21 39 2 5쪽
67 67. 마법사의 제자 2 23.01.21 46 2 3쪽
66 66. 괴수와 짐승 23.01.21 39 2 4쪽
65 65. 최면술 +1 23.01.21 48 2 2쪽
64 64. 여고생 23.01.21 42 1 2쪽
63 63. Coool 23.01.21 41 2 5쪽
62 62. 요리 2 23.01.20 47 1 7쪽
61 61. 양아치 엘프와 트롤 23.01.20 41 3 7쪽
60 60. 히든 스킬 23.01.19 40 3 3쪽
59 59. 이불데드 23.01.18 36 1 6쪽
58 58. 죽여주는 맛 23.01.17 40 2 5쪽
57 57. 곰 2 23.01.16 41 1 3쪽
56 56. 악역 영애 23.01.15 39 2 6쪽
55 55. 추방 23.01.13 42 2 4쪽
54 54. 바다로 간 골렘 23.01.12 44 1 2쪽
53 52. 콩쥐 THE 어벤저 23.01.11 43 1 2쪽
52 51. 도시지기 23.01.10 48 2 4쪽
51 50. 과제 +1 23.01.09 48 1 4쪽
50 49. 계약 23.01.08 46 3 2쪽
49 48. 북부대공 23.01.08 46 2 3쪽
48 47. 계산 23.01.07 52 2 4쪽
47 46. 피자 23.01.06 49 2 4쪽
46 45. 카나리아 +1 23.01.05 56 2 2쪽
45 44. 트럭 처형인 +2 23.01.04 55 3 5쪽
44 43. 가고일 23.01.03 49 3 5쪽
43 42. 42 23.01.02 49 3 4쪽
42 41. 개그물 보정 23.01.01 58 2 2쪽
41 40. 스타일 +1 23.01.01 74 3 3쪽
40 39. 비밀클럽 +1 22.12.31 64 2 3쪽
39 38. 고대신과 새벽 아지랑이 +1 22.12.30 65 3 9쪽
38 37. 요리 +1 22.12.29 63 2 2쪽
37 36. 상인 +1 22.12.28 64 2 2쪽
36 35. 마법 22.12.27 60 1 2쪽
35 34. 트렌드 22.12.26 62 2 2쪽
34 33. 상태창 +1 22.12.25 65 2 2쪽
33 32. 산적 22.12.25 63 1 4쪽
32 31. 포스트 아포칼립스(였던) 22.12.25 68 3 3쪽
31 30. 서브 퀘스트 22.12.25 61 2 2쪽
30 29. 산 위의 고래 +1 22.12.25 61 2 2쪽
29 28. 마녀를 물에 던져라 +1 22.12.25 59 3 3쪽
28 27. 노래하는 검 22.12.25 66 1 3쪽
27 26. 마법사의 제자 22.12.25 61 3 3쪽
26 25. 헌팅 +1 22.12.24 65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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