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BGM
그 게임 판타지 세계의 거대도시는 FPS나 RPG, 격투나 퍼즐 등의 여러 도시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도시라지만 지구 하나만 넘어가면 기초적인 매너부터 시작해 라이프 스타일까지 모든 게 변화한다. 장르란 늘 그랬다.
하지만 모든 지구에 공통적인 요소가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걸 꼽자면 음악이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평범한 세계의 상식이듯, 이 도시에서는 스피커가 없는 곳에서도 배경음악이 흐른다.
퍼즐 지구에서는 반복적이고 느긋한 멜로디가.
레이싱 지구에서는 심장을 두들기는 듯한 강렬한 비트가.
RPG 지구에서는 상황극에 몰입할 수 있는 인상적인 곡조가 공기 중에 감돈다.
소위 '빡겜'을 해야 한다며 방음설비를 철저히 갖춘 '노 뮤직 존' 같은 곳도 있었으나, 게임 판타지 세계는 배경음악이 없는 곳을 찾는 게 더 어려웠다.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각 지구를 돌아다니며 배경음악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순례자'들이 생겼다.
그 또한 순례자 중 하나였다.
특별히 잘하는 게임은 없었으나, 단순히 배경음악 감상을 좋아했다. 녹음기를 들고 도시 곳곳을 누비는 게 그의 삶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의 BGM 콜렉팅은 심각한 정체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 내가 이겼어! 이겼다고!"
그가 절규를 내지른 곳은 액션 게임 지구.
리듬, 파워, 집중력 등 온갖 복합적인 피지컬과 폭넓은 이해력, 판단력 등을 종합적으로 요구하는 이곳.
쓰러트려야 하는 보스는 가끔 성인군자조차 육두문자를 랩으로 쏟아내게 하는 부조리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만둬! 거기서 라틴어로 2페이즈 브금을 깔지 말란 말이다!"
하지만 그가 절규하든 말든, 그가 대적한 보스는 2페이즈 시작을 알리는 웅장한 배경음악과 함께 부활했다.
순간적으로 화력을 쏟아 넣으면 충분히 쓰러트릴 수 있는 상대.
하지만 이 순례자의 목적은 BGM 수집이다. 음악이 한번 끝까지 재생되기 전에 보스를 쓰러트리면 녹음도 중간에 끊기고 만다.
이제 와서 수집을 멈출 수도 없다. 그는 수집품 중 하나라도 빠지면 참지 못하는 골수 컬렉터였기 때문이다.
몇 번 쓰러졌는지는 이제 헤아릴 수도 없다. 울상이 된 순례자는 다시 부활한 보스를 향해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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