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경험의 물약
네크로맨서는 좀비에게 뇌 대신 먹일 호두를 구하느라 늘 돈이 궁했다.
거대 다람쥐 대부분이 어디론가 사라져서 물가 자체는 많이 내려갔지만, 돈은 여전히 궁했다.
어쩔 수 없었다. 좀비는 숫자가 많았으니까.
수가 적은 좀비는 막노동 현장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니 네크로맨서는 항상 일정한 숫자의 좀비가 필요했다.
결국 식대 때문에 가계부가 위험해지자 그는 다른 도시에 사는 상인 친구를 찾아가 사업 아이템을 상의하기로 했다.
사정을 다 들은 상인은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자네 해골은 취급 안 하나?"
"스켈레톤? 쓰려고 하면 쓸 수야 있지. 잘 나가던 전사도 마법사도 결국 죽어서 무덤에 묻히니까."
"그 해골을 파는 건 어떤가?"
"이보게. 내가 아무리 사회에서 거리가 먼 네크로맨서라도 거기까지 감각이 마비되진 않았어. 누가 해골을 좋아해서 사나? 호사가들이나 관심을 보일 텐데, 나는 임시 수입이 아니라 정기 수입이 필요하단 말일세."
"누가 해골을 있는 그대로 팔라고 했나?"
"아니, 해골을 팔라고 하면 해골을 팔지. 뭘 팔아?"
"해골을 우린 해골물을 팔게나."
" "
"어쨌든 무덤까지 있다면 현장에서 개죽음당하지 않은 실력자 아닌가. 분명 강했겠지. 분명 뼈에도 경험이 축적되어 있을 거야."
"아니, 그······."
"상품명은 경험의 물약이 좋겠군."
"자네, 네크로맨서보다 훨씬 사람의 길에서 멀어져 있구만."
"이 사람아. 장사는 만만하지 않아."
***
그리고 얼마 후.
"우오오오오오! 힘이다! 힘이 느껴진다! 힘이 빛을 만든다!"
"누가 전사냐! 내가 전사다! 10점 만점에 12점짜리 마법사!"
"주인자아아앙! 이 물약 얼마라고?"
"어···. 그게, 120mL짜리 병 하나에 20실버네만."
"교역 화폐도 받나?"
"원화 말인가? 그거라면 천이백 원만 주게."
"크하하하하하! 네크로맨서 주제에 양심적인 장사를 하는군!"
"전부 내놔! 잔돈은 팁이다!"
"다음에도 물량 준비해 두고 있으라고!"
네크로맨서는 옛 전사의 힘을 계승하고 인격까지 변한 모험가들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게 팔리네.'
경험의 물약 전사맛과 마법사맛. 그리고 엘프맛.
현재 절찬 판매 중.
딸기향이 첨가된 엘프맛은 금방 매진되니 사려면 서두르는 것을 추천.
민초맛, 농노맛은 개발중이다.
- 작가의말
민초맛은 레볼루숑한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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