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퇴마 소녀
마법소녀가 로맨싱 스톤의 힘을 빌어 악과 싸웠을 때, 그녀의 가족은 도시의 어둠에 숨어드는 이매망량과 싸웠다.
귀신, 요괴. 때때로 사악한 독충.
어둠에서 암약하는 모든 사악을 퇴마하는 것이 그녀의 일족에게 전해내려오는 퇴마의 숙명.
...그런 90년대 세기말 감성을 타고난 가문에서 살았지만 소녀는 딱히 개의치 않고 생활하고 있었다.
가족과 그녀가 속한 퇴마사 집단은 현역이었지만, 정작 그녀는 귀신은 고사하고 심령현상조차 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족이 그녀에게 퇴마 활동을 숨긴 건 아니다.
아니, 그녀로서는 오히려 숨겨줬으면 했다.
가족은 태어나서 한 번도 귀신을 본 적도 없고 흥미도 없는 그녀를 어떻게든 퇴마 집단에 넣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가족의 노력은 그녀가 전혀 원치 않았던 방향으로 결실을 보았다.
***
"저기요······."
[보고! 적을 B29 지역으로 몰아넣었습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안 보이거든요. 뭐가 뭔지 구분도 안 되는데요."
아득하게 높은 상공.
수송기를 타고 자신의 사는 도시의 상공 위로 온 퇴마 소녀는 가면을 쓴 채 무전을 나누고 있는 퇴마사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그는 조금도 듣지 않았다.
"확인! 적을 육안으로 식별했다! 리틀 걸 투하 준비!"
"멋대로 투하하지 마! 야! 목소리 어디서 들었는데? 삼촌! 삼촌이지? 가면 벗어봐!"
"···이미 몇 번 해봤으니까 설명 안 해도 되겠지? 낙하산이 안 펴지면 이쪽 줄을 당겨라. 비상 낙하산이 펴질 테니까."
"떨어트리기만 해봐! 지난달 월급에서 절반 경마에 꼬라박은 거 숙모한테 말해버릴 테니까!"
"그거 안 말하기로 하고 휴대폰 새걸로 바꿔줬잖아!"
"거 봐! 삼촌 맞네!"
"···지, 지금 건 못 들은 걸로 하도록! 작전팀! 지금 리틀 걸을 투하하겠다!"
"하지 말라니까! 야, 작전팀! 누가 숙모한테 전해줘! 이 인간 경마에 총 얼마 때려 박았냐면···!"
"리틀 걸, 투하!"
그녀에겐 퇴마 능력이 없는 게 아니었다.
퇴마 집단 전체를 다 합친 것보다도 강대한 영력을 무의식적으로 방출하는 거야말로 그녀가 가진 힘.
힘에 대해 알기 전까지 자신은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라 착각했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그녀는 절대적인 최강이기에 어떤 해악도 접근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거기서 퇴마사들은 한 가지 답에 도달했다.
무적인 소녀를 상공에서 투하하면 그 아래 있는 귀신들을 모조리 뭉개서 소멸시킬 수 있지 않냐고.
그런 '활용법'이 고안된 후, 무적의 퇴마 소녀는 퇴마사들에 의해 비행기에서 몇 번이고 던져졌다.
"뭐가 정의라는 거냐! 너흰 그냥 소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꼴을 보고 싶을 뿐이잖아.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빌어먹을 퇴마사 놈들아! 평생 원망할 테다!"
한편, 조카가 도시 아래로 던져지면서 온갖 저주를 쏟아내는 꼴을 본 퇴마사는 생각했다.
'화내는 이유는 이해가 되는데, 묘하게 싸움에서 진 마왕이나 할 법한 대사를 하네.'
여고생이 어떤 원한을 품었든, 삼촌의 비밀을 누구에게 폭로했든.
이매망량이 들끓는 도시는 오늘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녀 덕분에 평화로웠다.
- 작가의말
'boy meets girl'하면 대표적인 클리셰 중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일 텐데, 요즘에는 그게 잘 안 보여서 조금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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