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가고일
이무깃돌, 가고일은 건축 양식에 포함되는 괴수 형태의 석상으로, 빗물받이를 겸해 해로운 것을 쫓는 상징도 겸하고 있다.
판타지 세계에서는 오랜 세월 그들이 지키는 저택에 살던 사람들의 기운을 받고 생명을 얻는 경우도 흔한 일이다.
- 첫 번째 나그네 아이작 저서 『던전 백과사전』 중에서 발췌.
***
금발의 건달들은 심야의 공원에서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주로 하는 일은 커플 괴롭히기. 추파 던지기. 남자 쪽이 저항하면 집단으로 린치하기.
왜 그런 무의미한 짓을 하느냐고 정론으로 항의해도 의미는 없다. 힘을 주체 못 하고 남에게 힘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집단은 대개 그런 법이다.
“어이어이, 저기 또 주위 신경 안 쓰는 커플들이 있는데.”
“공원 한복판에서 키스라니. 못하는 짓이 없군. 참교육이 필요해.”
“큭큭큭. 여자 쪽이 아깝네. 우리하고 노는 쪽이 더 좋지 않겠어?”
“NTR. 본래 애인이 못 줄 쾌락으로 빼앗는다라. 우리처럼 스타일 좋은 녀석들에게 딱이지.”
“이세계에서 온 놈들도 가끔은 도움이 된다니까.”
“자, 그러면 어서······. 응? 뭐야. 갑자기 왜 어두워졌지.”
심야라 해도 아직 가로등 지기가 가로등을 끄고 다닐 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가로등이 켜져 있다고 하기엔 너무 어두운 것도 사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갑자기 나타난 드래곤이 달을 가린 걸까? 심술궂은 난쟁이들이 가로등의 불을 모두 끈 걸까? 전설 속의 그림자 괴물들이 혼을 빼앗기 위해 나타난 걸까?
현실은 여전히 판타지답지만, 좀 더 단순했다.
그때 나타난 것은, 가고일이었다.
족히 3미터는 될 법한, 근육의 묘사가 대단히 훌륭한 가고일.
건달들이 눈치챘을 때는 앞에서 펼친 날개가 그들의 뒤까지 도달해 있었다.
퇴로가 차단된 가운데, 날개 틈으로 스며들어온 서늘한 달빛을 받은 가고일의 얼굴이 나타났다.
용처럼 압도적이고, 악마처럼 사악하며, 짐승처럼 흉포한 두상.
소리 없이 나타난 가고일의 위용에 건달들이 일제히 실금하는 가운데, 가고일은 검지를 들고 침묵을 요구했다.
가고일의 요구는 곡해 없이 정확하게 전해졌지만, 어디나 예외는 있는 법.
건달 중 한 명이 공포를 버티지 못해 비명을 지르려 했다.
그러나 아기사슴처럼 떠는 그보다는 가고일의 손이 더 빨랐다.
문자 그대로 바위 같은 손아귀가 비명을 지르려던 건달의 목을 움켜쥐었다.
건달의 목에서는 풀벌레와 유사한, 병든 당나귀와 개구리를 합쳐 반으로 나눈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아주 작게. 심야 커플의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무드가 깨지지 않을 만큼 작게.
패거리를 완벽하게 제압한 후, 가고일은 바위와 밤에 어울리는 묵직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YES 순애. NO NTR.”
“ ”
“대답은?”
문장은커녕 단어조차 떠올리지 못할 극한의 공포 속, 건달들은 헤드뱅잉에 가깝게 목을 흔들었다.
대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가고일은 날개로 만든 포위망을 천천히 풀고, 침묵을 요구했던 검지로 공원 출구를 가리켰다.
“가라. 조용히.”
짧지만 이해하기 쉬운 지시. 건달들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다리를 억지로 움직여 공원 밖으로 사라졌다.
건달들을 쫓아낸 후, 뒤로 돌아선 가고일은 커플의 남성 쪽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모든 걸 보고 있었다. 건달들이 오는 것부터 가고일이 내려와 그들을 제압하는 것까지, 모두 다.
애인이 겁먹지 않도록 길고 긴 입맞춤을 하고 있던 그는 가고일에게 눈으로 감사 인사를 보냈다.
청년이 보낸 감사는 가고일에게 전해졌고, 가고일은 엄지를 들어 화답했다.
추가적인 대화나 사례 따위는 필요 없었다.
떠날 때를 아는 가고일은 날개를 펼쳤다. 도시의 어둠 속에 녹아들기까지 걸린 시간은 수 초도 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딱 알맞게 식은 밤바람뿐.
가고일은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간 뒤에야 자신이 지킨 커플들을 향해 말했다.
“모든 순애에 축복을.”
해로운 것을 쫓으며, 사랑을 사랑하며, 순애의 로망을 지키는 것.
그것은 밤이다.
그것은 수호자다.
그것은 가고일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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