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you need more practice
때는 왔다. 그는 이번 영업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했다.
상대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굴지의 대기업.
이번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계약을 성사시키면 그가 회사 중역으로 승진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
"···이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준비한 ppt는 끝났지만, 그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가 진짜다.
"흠, 과연. 이 정도면 상당히 전망이 좋네요. 하지만."
잠자코 있던 대머리 이사가 일어나자 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깡마른 체격과 움직임에 최대한 방해가 안 되는 캐주얼한 복장. 나이에 걸맞지 않은 범상찮은 스포티함이 느껴졌다.
그는 대머리 이사의 특성을 단번에 파악했다.
고수. 이사에게서 흐르는 기백은 그런 단어로 요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그쪽을 신뢰하기는 어렵군요."
"그렇다면 시험해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시험이라, 흥미로운 말입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외투를 벗어 던지고, 대머리 이사는 헤어밴드를 머리에 찼다.
여기까지는 사전에 예상했던 대로.
사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뛰어나와 '발판'을 설치했고, 두 사람은 각자의 발판 위에 올라가 숨을 골랐다.
얼마 안 가 회의실이 어두워지고, 스크린에는 ppt 자료 대신 채보를 선택하라는 메시지가 출력됐다. 전후좌우 전면에 설치된 스피커는 심장을 울리는 비트로 회의실을 장악해갔다.
그렇다. 그들이 있는 곳은 게임 판타지 세계에서도 가장 피지컬을 요구하는 리듬 게임 지구.
매력적인 사업계획을 얼마나 제시하든, 곡도 제대로 완주하지 못하는 뉴비는 대기업의 신뢰를 받아낼 수 없다!
"나이도 있으시니 유봉으로 하시는 게 어떠십니까."
"꽤 올드한 도발이지 않습니까. 그건 결국 플레이 스타일 차이일 뿐입니다."
스텝을 뭉개든 비비든, 겹발을 하든 허리를 틀든 발을 끌든.
화면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고속의 노트를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면 퍼포먼스는 무의미.
대머리 이사의 말 뒤에는 그런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었고, 일리 있는 일침에 그는 말없이 긍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만하지 말게 젊은이. 그리고 도발은 이렇게 하는 거라네."
대머리 이사는 노련한 손놀림으로 선곡을 끝내며 덧붙였다.
"You need more practice, never give it up."
오래된 격언의 인용! 마치 하수를 내려다보는 것 같은 울림이 그의 심장에 닿았다. 냉정해졌던 마음에 단숨에 불길이 치솟았다!
그는 이사에게 되받아 쳐주고 싶었지만, 따로 입을 열지는 않았다.
곡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의식은 빠른 BPM에 맞춰 트랜스 상태로, 리듬의 영역으로 빨려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영업맨과 거래처의 관계가 아니다.
갑과 을이 아니다.
발판 위에 존재하는 건 리듬 게이머와 리듬 게이머.
나이 차이를 대는 건 졸렬하기 짝이 없는 변명.
리스펙트할 것은 오직 플레이어의 실력뿐.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게이머를 초살(秒殺) 시키기 위해 쏟아지는 무자비한 폭타 패턴!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날렵한 스텝으로 단 하나의 미스 없이 패턴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단 하나의 노트도 뭉개지지 않았다.
비트를 혈액에 새긴다!
두 사람은 지금 온몸으로 음악을 표현하는 DJ.
리듬이라는 빅 웨이브를 탄 소리의 서퍼였다!
"어이어이, 저 녀석 대단하잖아!"
"이사님은 그렇다 쳐도, 애송이 주제에 제법인데?"
"이 게임,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군."
"가라! 2.7배! 너한테 걸었다!"
"다른 회사 직원한테 걸지 말라고!"
갤러리가 된 직원들이 열띤 환호를 보냈지만 두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비처럼 쏟아지는 전자의 화살표를 쫓아 몸을 움직인다. 나아가 채보를 읽고, 아직 출현하지 않은 노트를 본능과 경험으로 느낀다!
***
그렇게 불타오르기를 12곡. 약 1시간 경과.
갤러리는 열기에 불타 녹아내렸지만, 두 플레이어는 여전히 발판 위에 서 있었다.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친다. 어깨가 위아래로 오르내린다.
찢어진 근육이 바닥을 구르라고 비명 질렀지만, 게이머의 프라이드가 쓰러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스코어만으로 보면 Good 판정 때문에 콤보가 몇 번인가 끊긴 젊은 영업맨의 패배.
그러나 대머리 이사는 그를 조롱하거나 승리를 선언하지 않았다.
한계의 한계까지 힘을 짜낸 뒤, 두 사람 사이에는 승패보다도 서로를 향한 존중이 감돌았다.
대화는 필요 없다.
대머리 이사와 젊은 영업맨은 말없이 손을 들고, 땀이 떨어져 나갈 만큼 세찬 하이 파이브를 나눴다.
- 작가의말
설맞이 연속 업로드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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