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좀비
그 문명에 언제 좀비가 창궐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건 역사가 아니라 캠프에 방문한 좀비 무리에게서 달아날 지혜였다.
방벽을 치고 총으로 머리를 쏴야 할까?
아니면 캠프를 버리고 도망가야 할까?
사실, 고민할 시간도 없었다. 좀비는 이미 캠프 방위선 안에 있었고, 그들 옆에 착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뇌···. 뇌에에에에에······."
좀비는 얼어붙고 부패한 성대를 울려 말했다.
"먹어···. 맛있어어어어어······."
"시, 싫어요!"
생존자는 뇌를 말하며 점점 다가오던 좀비의 손을 밀어냈다.
그 손에는 이미 한 움큼의 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다른 생존자의 뇌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좀비는 자신의 '성의'가 거절당하자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자신의 머리에서 더 많은 뇌를 퍼내 생존자에게 권했다.
생존자는 그 광경을 보고는 빼액 소리 질렀다.
"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먹기 싫다고!"
"실··· 망."
이곳은 문명이 멸망한 세계.
이곳의 좀비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
좀비의 수가 생존자보다 많아졌기 때문일까? 문명이 멸망한 곳에서는 장기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걸 썩은 뇌로 이해했기 때문일까?
좀비들은 사람을 물어 죽여서 동족을 만드는 대신, 자신들의 뇌나 살점을 식량으로 제공하려 했다.
마치, 호빵맨처럼 말이다.
호빵맨과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이 제공하는 살점은 허기를 채움과 동시에 좀비가 된다는 차이가 있었다.
생존자에게 뇌를 어떻게 먹일까 고민하던 좀비는 주변을 살피더니, 모닥불에 손을 집어넣었다.
"구워도 안 먹을 거니까요!"
"부족, 해···?"
더 새롭고 자극적인 영업방식이 필요했다.
이윽고 좀비가 찾은 답은 주변에 굴러다니던 후추병이었다.
"미디엄에···. 풍미를···. 더했어······."
"셰프처럼 설명해도 안 먹을 거라고요!"
"파슬리··· 추가할까?"
"아, 좀!"
어떻게든 먹이려는 좀비와, 어떻게든 거절하려는 생존자들.
저항은 완강했지만, 좀비들은 알고 있었다.
멸망한 문명에서 식량은 제한적이며, 시간은 좀비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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