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Cooool
"크라켄이 왜 돈을 못 빌리는지 아나?"
또 시작이군. 또 시작이야.
마왕군 사천왕 얼음 장군 휘하 일동은 얼음 장군의 일발 개그가 터지기도 전에 의욕이 떨어졌다.
그리고 실눈 참모는 일찌감치 얼굴을 감싼 채 속으로 오열했다.
이제 유머 같지도 않은 유머가 나오고, 유일하게 얼음 장군의 행동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불꽃 부관은 막는 대신 적당히 맞장구나 쳐줄 거라고 확신했다.
얼음 장군이 어떤 농담을 던지든 불꽃 부관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속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이다.
실눈 참모는 알고 있다. 그녀가 오래전부터 얼음 장군을 연모했고, 댄디한 외모에 정신을 못 차리는 타입의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불꽃 부관이 얼음 장군에게 의문을 품거나 딴지를 걸지라도, 적당히 하라고 주의를 줄 리가 만무했다.
그녀의 우선순위는 부대가 아니라 얼음 장군이니까.
"크라켄은 '연체' 동물이니까 돈을 안 갚기 때문이지. 하하하하하!"
천부장들 사이에서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기가 꺾이다 못해 절망감마저 느꼈는지 한탄하는 목소리도 새어 나왔다.
인류왕국군의 별동대에게 포위당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심각한 피해를 본 게 아닐까.
어쩌면 가장 큰 적은 왕국군이 아니라 얼음 장군이고, 얼음 장군은 작정하고 부대의 전투력을 저하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전략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실눈 참모는 위험 요소에 얼음 장군의 유머 센스를 넣는 걸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걸 기회로 부대 내에 정신 상담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는 게 좋지도 모르겠어.’
얼음 장군의 농담을 향한 공포가 구체적인 액수로 계산되기 시작될 무렵, 불꽃 부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장군, 지금 농담은 조금 심하시지 않았습니까?"
"흠?"
"어?"
설마 했던 항의에 얼음 장군이 움찔하고, 실눈 참모가 눈을 번쩍 떴다.
"마왕군 중에서는 바다 태생도 있습니다. 짧은 농담이라 해도 특정 종족의 신용에 영향을 주는 발언은 삼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그렇군. 조심하겠네."
"장군님은 발언 하나로 사람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계신다는 걸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
진지 이동 후 마왕군 대부분이 휴식에 들어갔을 무렵, 도저히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한 실눈 참모는 불꽃 부관을 찾아가 물었다.
"아니, 부관님. 당신 장군님이 말하는 건 무조건 받거나 적당히 흘리는 주의 아니었습니까? 그러다 장군님이 싫어하면 어쩌시려고?"
"그건 그거대로 불안한 일이지만."
불꽃 부관은 표정이 풀어지려는 걸 아랫입술을 깨물어서 참아낸 뒤에 말을 이었다.
"말을 전부 다 받아주는 건 아첨꾼이 하는 거야.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원하지 않아."
"허허, 그런 걸 '사악한' 마왕군이 말해도 되는 건지······."
실눈 참모는 평소 가늘게 뜨는 눈을 더 가늘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를 향한 확고한 신념'을 가진 불꽃 부관이 너무 눈부신 나머지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당신이 불꽃 부관이라 불리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응? 아니. 너도 알잖아. 평범하게 몸에서 불이 나오니까 불꽃 부관이라고 불리는 것뿐인데."
불꽃 부관은 손에서 보란 듯이 불덩이를 만들어내더니, 휴대용 화로에 넣어 주전자의 물을 끓였다.
"···그건 평범이 아닙니다만. 애초에 그런 의미로 한 말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자기만 좋아하는 농담을 쏟아내는 얼음 장군과 융통성이라곤 조금도 안 보이는 불꽃 부관.
주변 시선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만 보면 둘은 빼다 박은 듯이 닮아있었다.
실눈 참모는 속으로 '말이 안 통하는 답답한 무인들'이라고 투덜대며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돌아갔다.
한편, 불꽃 부관은 홀로 남은 막사에서 입을 삐쭉 내민 채 얼굴을 붉혔다.
"바보 녀석.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란 걸 알아도 그게 내색할 일이냐. 일일이 긍정하는 건 좀···. 부끄럽다고."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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