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양아치 엘프와 트롤
양아치 엘프와 트롤은 소꿉친구고, 시골 영지 불사자 마을에 있는 아카데미의 학생이었다.
종족의 벽을 넘어 교류하고 어쩌고 하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냥 둘이 살던 숲에서 제일 가까운 교육시설이 불사자 마을의 아카데미 하나밖에 없어서다.
이런 이유로 같이 등교하던 중, 아침 흡연이 절실했던 엘프는 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 모금도 피우지 못했다.
불을 붙인 순간, 트롤의 큼지막한 손이 담배를 맨손으로 쥐어버렸기 때문이다.
“야! 뭐 하는 짓이야!”
“흡연은 몸에 나빠.”
“그딴 건 사람이나 신경 쓰라고 해. 넌 트롤이고 난 엘프잖아. 알겠어?”
“미안. 요령이 없어서.”
“손은? 안 다쳤어?”
“트롤인지라.”
그는 담배를 쥐었던 손을 펴 보였다. 솥뚜껑처럼 큼지막한 손에 비하면 화상을 입은 부분은 작은 두드러기로밖에 안 보였고, 그마저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으엑. 징그러워. 뭐 이런 걸 보여주고 앉았어!”
“미안. 요령이 없어서.”
“쒸이, 한 까치 밖에 안 남았네. 야. 잘 들어. 이번에도 손으로 꺼트리면 죽는다?”
트롤은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이번엔 꺼트리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얼마 안 가 생각을 바꿨다.
하필이면 이때 학교에서 가장 성격이 고약한 열혈교사가 지나가고 있던 것이다.
순간, 트롤의 머릿속에서 흡연을 들킨 뒤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저 교사의 성격이라면 들켰다간 그냥 혼나는 것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터. 최악의 경우 퇴학의 가능성도 있었다.
그녀의 일족은 숲의 더 깊은 곳에 살며 외부와 교류를 끊은 식인종 엘프들이다.
최소한의 외부교류와 학업을 이유로 그녀의 가족만 대대로 시골 영지 근방에 살았지만, 퇴학 처리되면 이를 빌미로 일족에게 돌아갈지도 몰랐다.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트롤이 엘프를 신경 써줄 이유는 없었다.
양아치 엘프가 둔해 터진 트롤에게 보인 행동은 대부분 시비조. 게다가 트롤은 그녀에게 갚아야 할 빚도 없다.
특히 싫었던 건 담배다. 트롤은 자체 회복력이 강한 만큼 신진대사량이 높고, 감각도 예민했다. 그런 트롤에게 간접흡연은 맹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엘프가 다른 곳으로 가는 건 그 간접흡연보다 더 싫었다.
문제는 어떻게 담배를 숨기느냐다.
손을 쓰지도, 꺼트리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한순간에 온갖 것들을 떠올린 트롤은 그중에서 가장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미안. 화는 나중에 들을게.”
“어? 너 지금 무슨 소리를···읍?”
트롤은 입을 쩍 벌려 그녀의 입술을 뒤덮었다.
달궈진 연기가 입천장을 지졌다. 타들어 간 담뱃재가 혀 위에 떨어졌다.
섬세한 트롤에게는 목이 뒤틀리는 고통이었지만 움직이진 않았다. 혹시나 침 때문에 불이 꺼질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열혈교사가 옆을 지나간 건 입 안의 담배가 반쯤 타들어 갔을 때쯤이었다.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지만, 특별히 주의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학교생활에 깐깐한 편이었으나, 이성 교제에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었으니까.
분위기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한 열혈교사는 달리는 마차처럼 쿨하게 자리를 피해줬다.
“휴우. 이제 됐어.”
“갑자기 무슨 개짓거리야!”
온갖 표정이 뒤섞인 엘프는 앞뒤 사정은 듣지 않고 그의 턱을 있는 힘껏 걷어찼다.
어떻게든 담배를 지켜주려 했던 트롤의 노력은 이 일격을 받고 완전히 헛수고가 되었다.
트롤 입에 들어가고서도 침 한 방울 묻지 않은 담배는 허망하게 땅에 떨어졌다.
"아, 담배가-"
"남의 입에 들어간 걸 피우겠냐, 등신아!"
최후의 일격을 가하듯 수직으로 내려꽂힌 엘프의 발이 담배를 완벽하게 짓이겼다.
***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던 교사는 두 사람을 불러세웠다.
“아, 너희 둘. 잠깐 나 좀 보자.”
“허?”
교사는 곧장 아침에 봤던 것을 이야기하고,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트집을 잡은 건 키스 때문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그 뒤에 아슬아슬하게 교문을 통과한 걸 봤기 때문이었다.
"...너희 둘이 그런 관계인지는 몰랐다만, 아무리 그래도 등교 시간은 제대로 지켜야 하지 않겠냐."
"엉? 쌤, 무슨 소리야?"
"분위기상 피해주기는 했다만, 나도 마침 거기 있었단 말이지."
그제야 엘프는 아침에 트롤이 왜 그런 짓을 벌였는지 이해했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아침에 있던 일이 다시금 머릿속에 펼쳐졌고,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엘프 특유의 하얀 피부 때문에 달아오른 게 필요 이상으로 선명히 보였다.
“그러니까 즉, 너희 나이엔 교제가 나쁘지 않다고 해도 학업은 소홀히 하지 말라는 거야. 알겠니?”
“죄송합니다. 요령이 없는지라.”
“아, 쌤. 잠깐만.”
“응?”
엘프는 자기 머리 위치에 있던 트롤의 멱살을 붙잡고, 단숨에 자기 입 아래까지 끌어당겼다. 보란 듯 입을 맞추었다.
돌발행동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놀라서 움츠러들었던 트롤의 혀를 억지로 끌어내서는, 손으로 붙든 채 교사를 노려봤다.
“얘 제 트롤인데요. 난 내가 키스하고 싶은 데서 할 거고. 나 성적 그렇게 낮은 건 아닐 텐데? 쌤이 뭔 상관이심?”
“ ”
“가자. 트롤아.”
엘프는 벙쪄있는 교사를 무시하고는 수면 중인 가고일처럼 딱딱하게 굳은 트롤의 팔을 붙든 채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연 건 한참 후, 학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길 위에서였다.
“야.”
“으, 응?”
“아침에 빚진 거, 이걸로 비긴 거다? 나중에 갚으라 하면 죽어?”
“어······? 내가 담배 두 개 빚진 게 아니라?”
“알 게 뭐야 그딴 거. 그보다 아침에 입은? 안 다쳤어?”
“트롤인지라.”
“그럼 됐어. 내일 보자.”
홀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엘프는 열혈교사에게서 슬쩍 훔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곧바로 물고 불을 붙이지는 않았다.
“건강에 나쁘다라······. 그러는 넌 심장에 안 좋다고.”
불이 붙은 건 뭔가를 한참 곱씹은 뒤였다.
어두워져 가는 오솔길 위쪽으로 한 줄기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 석양을 받아 길게 드리워진 나뭇잎의 그림자는 그녀의 입 끝을 부드럽게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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