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로인은 자신의 가슴을 부여잡고, 떨리는 손으로 인벤토리를 열었다. 린이 서둘러 달려와 로인을 자신의 몸에 기대게 했다. 로인은 힘없이 린에게 몸을 기대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로인은 겨우 포션을 꺼냈다. 린이 서둘러 포션을 받아, 로인의 가슴에 뿌렸다.
포션 한 병이 모두 가슴에 뿌려졌음에도 로인은 숨을 헐떡이며 다시 인벤토리에 손을 넣어 포션 한 병을 더 꺼냈다. 린이 그것을 받아, 로인의 입에 흘러 넣어 주었다. 린의 손도 떨리고 있어서, 절반 정도는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스터... 죽으면 안 돼. 절대로...”
린은 그렇게 말하며 로인의 볼을 쓰다듬었다. 로인은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죽지는 않을 거야. 걱정마. 그것보다... 이제 슬슬 마나가 떨어져 가니까 마나포션 좀 줘라.”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마나가 떨어지면 가이스가 역소환 될 수 밖에 없는데, 가이스는 이 전투에서 꼭 있어야했다. 로인의 빈자리를 채우려면 가이스가 꼭 필요했다. 린은 로인의 허리춤에 달린 마법 주머니에서 마나포션을 꺼내 그에게 먹여 주었다. 로인의 마나가 다시 채워지기 시작했다. 로인은 활력이 돌아오는 몸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몸을 운신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상태가 좋아졌다는 의미. 린은 조금 안심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내가... 더 빨리 공격을 했어야 하는데...”
린은 그렇게 중얼 거렸다. 하지만 로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가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 수도 있었어. 고마워.”
로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린의 표정은 펴지지 않았다. 로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이제 움직이자.”
로인은 그렇게 말하며 몸을 움직였다. 다리는 멀쩡했으니, 움직이는 것은 문제가 없었으나 아무리 조심스럽게 움직여도 가슴이 아파왔다. 로인은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걸음을 옮겼다. 로인이 가는 길에는 더 이상 젝슨 백작의 병사가 없었다. 이미 젝슨 백작의 병사들은 시체가 되어 있었다. 로인은 군데군데 보이는 자신의 병사들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렸다. 린은 로인이 인상을 찡그리자, 다시 가슴이 아픈 줄 알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로인은 아군의 시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병사는 거의 없었다. 어차피 사기가 꺾인 적군이었고, 멀린과 따로 훈련을 시킨 저격수들에게 혹시라도 포위가 됐거나 하는 병사들은 도와달라고 말을 해두었기 때문이었다.
로인은 목책으로 돌아와, 목책위에서 전쟁의 상황을 바라보았다. 이미 젝슨 백작의 군대는 후퇴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나인이 뒤에서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있어서, 제대로 후퇴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있었다. 게다가 블랙 와이번 기사단이 후퇴하는 병사들을 쫓아다니며 밟고 있었다.
로인은 수가 상당히 줄은 블랙 와이번 기사단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언데드 기사들은 밤이 되면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회복을 도울 마나석까지 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쓰러졌던 자들도 다시 일어날 것이었다.
하지만 언데드가 아닌 기사들은 그렇지 못했다. 로인이 인간 기사들을 최대한 도우라고 말해서 그나마 피해가 적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한 10명 정도는 수가 준 것 같았기에, 로인의 표정이 변한 것이다.
로인은 계속 그 관경을 지켜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상대의 기사단은 모두 처리가 된 듯, 기사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젝슨 백작 또한 크론벨의 검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었다. 젝슨 백작의 목이 떨어지자, 로인은 입을 열어 린에게 명령을 전달했다. 소리를 내면 가슴이 아팠다.
“이제 항복을 권유하라고 해.”
로인의 말에, 린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로인을 바라보다가, 몸을 날려 목책을 내려갔다. 로인은 의자에 앉아 달리는 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린은 마치 새라도 된 듯, 빠른 속도로 신영을 움직였다. 로인은 역시 린은 빠르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몸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 고통을 잊을 수는 없었다. 로인은 무심코 자신의 가슴을 만졌다. 그는 이를 악 물고 눈을 감았다.
린은 크론벨에게 로인의 지시를 전달하였고, 크론벨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인이 혹시라도 지휘가 불가능하다면 크론벨이 모든 군대를 지휘하기로 말을 해놓은 상태였다. 크론벨은 조금 더 무력을 행사 한 다음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해도 상관은 없었다.
크론벨이 여러 가지를 지시하고, 그의 옆에 있던 기사들이 그것을 전달했다.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라! 목숨을 살려주겠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크론벨의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로인은 크론벨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눈을 떴다. 로인은 아직 완벽히 낫지 않은 상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포션을 한 병을 더 사용하면 더 빨리 낫겠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포션을 쓰는 것보다 멀린에게 힐링 마법을 받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이었다.
로인은 이제 할 일이 없어진 멀린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목책 밑으로 내려갔다. 멀린은 로인의 상태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 아니 누가..!”
“백은 기사단장인 것 같았는데... 일단 힐링을 좀 부탁해야할 것 같네.”
“아, 힐링.”
멀린은 서둘러 로인의 가슴에 손을 데고, 힐링을 시전 했다. 그러자 로인의 상처가 눈에 띄게 아물어져갔다. 로인은 겉으로 아무런 상처가 없음을 보고,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로인은 찢어진 겉옷과 갑옷을 벗고, 인벤토리에서 새로운 옷을 꺼내 입었다.
“전쟁은 일단 우리의 승리이고... 얼마나 많은 적병의 항복을 받아내느냐가 중요해졌군.”
로인은 그렇게 중얼 거렸다. 적병을 죽이는 것보다,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공적치를 더 많이 주었다. 거의 두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당연히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 로인에게 좋았다. 로인은 전투가 끝나고 자신에게 돌아올 공적치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순간의 아픔이 있었지만, 그 후에 받을 공척치를 상상하면 그 아픔은 사소했다.
로인은 이 전투의 총사령관이니, 엄청난 공적치를 받을 것이 자명하다. 사병을 거느리고 있을 경우, 충성도에 따라 그 주인도 50%에서 80%에 이르는 공적치를 받게 된다. 로인의 경우는 약 75%에서 80%가량 받을 수 있었다.
2만이 넘는 적병이 목숨을 잃었고, 현재도 계속해서 잃고 있는 중이었다. 대부분 항복을 하고 있어서 그 수가 적었지만 말이다. 2만에 달하는 적병의 목숨과 나머지 포로들은 로인에게 엄청난 공적치를 안겨다 줄 것이었다. 단순 계산으로도 작위가 하나는 오를 수 있을 정도의 공적치였기 때문에, 로인은 주먹을 쥐었다.
게다가 전쟁을 하며 받는 공적치는, 단순하게 죽인 병사와 항복받은 병사의 수로만 세는 것이 아니다. 주변의 피해와, 시간도 중요했는데, 주변의 피해도 무고한 국민의 피해는 단 하나도 없었고, 목숨을 잃은 황군이 800명 미만에 로인의 병사들은 100명에 미치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엄청난 대승인 것이다. 로인의 작위가 하나는 오르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다.
“미리 손을 봐두었기 때문에 약 7000에서 8000가량의 적군이 항복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멀린이 입을 열었다. 이미 로인이 멀린에게 적군이 후퇴를 할 때는 장범위하게 유혹 마법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미약하게만 써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무리해서 시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효과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고클래스 마법사가 아무리 약하게 마법을 시전한 듯, 일부러 위력을 낮추지 않는 이상 기본적인 효과가 대단한 것은 당연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정리하고 내 방으로 오고, 크론벨에게도 말해서 오라고 해.”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크론벨에게 명령을 전달한 린이 로인의 곁으로 돌아와 로인과 함께 그의 방으로 들어섰다. 나인도 함께였다. 린이 나인을 호위하며 돌아온 것이다.
로인은 방에 들어와 지도가 놓여있는 탁자 앞에 앉았다. 나인이 로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로인은 지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베르시아 백작에게 가는 것이 좋겠지?”
“예, 아무래도 베르시아 백작쪽이 더 가깝기도 하고 실비아님이 있으니... 그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고도 없이 베르시아 백작에게 가버리면 후에 혹시라도 그것으로 이유삼아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은?”
로인은 나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로인도 생각을 할 수 있고,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다.
“일단...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우리 군에서 발 빠른 자를 골라서 본진에게 보내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은 문제가 꽤나 있겠지.”
“예, 일단 사실 우리가 젝슨 백작을 처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말이죠. 적어도 2주는 걸리리라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알아본 바로는 본진은 아직 서로 전면전도 치르지 못하고 계속 자잘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 몇 명의 병사가 보고를 한다면 믿지 못할 것이 뻔합니다.”
나인이 설명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생각하고 있던 바였다.
“두 번째 방법은?”
“일단... 린과 마스터가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첫 번째 방법과 비슷한 경우가 일어질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신이 조금은 줄어들 확률이 있고, 여러 가지 유리한 부분이 있습니다. 일단 보고가 훨씬 더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과, 직접 보고를 하고 결론을 내림으로서 확실한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불신이 있을 수 있지만 전혀 문제가 없는 방법입니다.”
“별로 마음에 안 들어. 내가 계속 움직이며 고생해야 한다는 거잖아.”
로인은 중얼거렸다. 나인은 그 것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방법은, 황군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일단 불신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있다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준남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믿기 어렵겠죠. 하지만 일방적으로 보고를 하는 것이기에 조금의 마찰이 일어날 우려가 있습니다. 게다가 황군이 움직임으로서 우리의 전력이 줄어드니, 조금의 손해가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어차피 황군은 베르시아 백작 밑으로 지휘권이 넘어갈 테니 손해가 그리 크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마지막 방법을 사용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나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보기에도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약간의 마찰이 있을 수 있으나, 그렇게 크지 않은 마찰일 것이고, 전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아예 마찰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정식으로 보고를 올리면 적어도 일주일이 걸릴 것인데, 그 동안 전쟁을 계속될 것이고, 피해가 늘어날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는 후작이니 굳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었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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